매력적인 교회
2022년 6월 5일 잠 24:11-12
1. 교회의 사명
세상에 교회들이 많은데, 교회마다 성적을 매길 수 있을까요? 만약 교인 숫자로 성적을 따진다면 점수를 매기기는 수월하겠습니다만, 그러나 교인의 수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교회에 성적을 매길 수 있을까요? 뭘 보고 그 교회의 건강함을 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교회의 기능입니다. 그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초대교회 때부터 영적인 공동체로서 교회가 지녀왔던 4가지의 사명이 있습니다. 예배, 교육, 친교, 봉사가 그것입니다. 이 4가지 사명을 잘 수행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1) 예배
케리그마라는 그리스 말은 신앙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그리스도)시다.”라고 선포되는 신앙의 진리를 말합니다. 이를 가장 간단히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란 말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신앙적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이 선포는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은혜를 체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진리를 널리 전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첫째 사명입니다.
(2) 교육
교육(디다케)이란 교회의 가르치는 사명을 말합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믿음의 성숙한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공부하며, 기도에 힘쓰며, 영성수련을 하며, 때로는 특별한 교육과 훈련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장성한 어른의 신앙이 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 교육의 대상은 자라나는 어린이를 포함한 전체 교인입니다. 따라서 현실 교회에서는 교회학교 교육과 성인 교육으로 나타납니다.
(3) 친교
친교라고 번역한 그리스 말 ‘코이노니아’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교제, 사귐을 말합니다.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가벼운 차원의 교제로부터 시작하여, 생명의 삶을 사는 이들의 깊은 유대감, 연대감을 이루고 누리는 데까지 이르는 깊은 사귐을 뜻합니다. 이것은 혈연관계인 가족 간 관계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관계로 발전합니다. 이 친교는 예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고 하신 말씀과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말합니다. 이 친교, 교제를 통하여 성도들은 깊은 신앙적 유대감과 충만함을 누립니다.
(4) 봉사
봉사라고 번역한 그리스어 ‘디아코니아’는 우리말로 하면 섬김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디아코니아란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사랑 계명’을 준행하며, 교회의 영적,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교회 안과 밖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는 기능을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 내적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의 다양한 봉사를 수행하며, 그리고 지역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생명과 자연을 살리는 운동에 참여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상의 4가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4가지 사명이 교회의 건강함을 재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건강해지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이것을 매력이라고 합니다. 매력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매력적인 교회! 우리가 꿈꾸어야 할 교회입니다.
2. 잠언 24:11-12
(1) 잠 24:11-12
너는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 주고, 살해될 사람을 돕는데 인색하지 말아라. 너는 그것이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겠지만,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님께서 어찌 너의 마음을 모르시겠느냐? 너의 목숨을 지키시는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시지 않겠느냐? 그분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실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죽는 사람을 살리는 겁니다. 이 사명을 경시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실 것이다.”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제 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죽는 사람들 가운데도 스스로 죽는 사람, 자살자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수는 대략 13,000명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헤아리는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1위입니다. 2003년도부터 1위입니다. 2017년도에 한번 리투아니아가 1위를 했을 뿐, 다시 2018년도부터 우리나라가 1위입니다. 1년에 13,000명이면 하루에 35명이고, 40분마다 한명씩 죽는 꼴입니다. 정말 험악한 생태환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지요. 요즘 선거철을 맞아 정치인들의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하는 말들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많은 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말들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보다는 자기의 권력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 다른 정치인들을 탓하는 말들만 내뱉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풍토가 매우 건강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어떤 젊은이나, 어린 자녀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하면 그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래? 잘해봐라.”하고 흔쾌히 박수를 치며 응원할까요? 아마도 말리기 십상일 겁니다. 원래 정치는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일이건만 어찌 이상하게 비틀려버렸습니다. 제가 단적인 예로 정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우리 사회 여러 곳에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2) 그 정을 알고도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법률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 정을 알고도 … 하면, 얼마의 벌금이나 몇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 정을 알고도”란 표현이 묘합니다. 그 정을 알고도! 여기서 ‘정(情)’이란 사정(事情), 즉 일의 돌아가는 형편을 말합니다. 그 정을 모르면 죄가 안 됩니다. 예컨대 어떤 물건이 장물(贓物)인지 모른 채 보관하고 있으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장물인 줄 알고도 그 물건을 보관하면 그것은 장물죄가 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번연히 알면서도, 그 정을 알고도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교회의 사명에 비추어 오늘 우리 사회의 교회들과 우리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3. 매력적인 교회
(1) 어떤 교회를 꿈꾸나요?
이제 한 달 후면 우리교회가 합병10주년을 맞습니다. 10주년을 맞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납니다. 처음 연합하여 예배드릴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쪽에는 영은교회 교인들, 한쪽에는 하늘샘교회 교인들이 몰려 앉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그런 모습은 없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은 합병할 때 함께 했던 여러 식구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게다가 지난 2년 여 코로나 기간을 지나는 동안 다른 많은 교회들처럼 우리 교회도 침체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연로하신 권사님들은 교회에 출석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한 분 한 분, 한 가정 한 가정 모두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우리교회의 예배드리는 인원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10주년을 맞는 요즘 담임목사로서 제 심정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입니다. 파도처럼 반복하여 밀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어려운 지경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우리 주변에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써야겠습니다.
(2) 교회에 필요한 사람
오래전 한 청년이 ‘미스코리아 기도’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청년회 모임에서 누군가 갑자기 기도를 하게 되면, 하기는 하는데 준비가 안 된 까닭에 기도의 내용이 구체성이 떨어지지요. 좀 막연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럴 때 흔히 대두되는 것이 세계의 평화, 혹은 아름다운 세상, 뭐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기도를 두고 미스코리아 기도라고 놀린 겁니다. 미스코리아들이 수상 소감 밝힐 적에 흔히 하는 멘트 같은 기도란 말이죠. 너무 재밌어서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미스코리아 기도는 될 수 있으면 피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비슷하게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와 같은 교인이 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들과 같이 고상한 자태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수고하세요!” 인사하고 돌아가는 그런 교인들이 되지 말란 말씀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일꾼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역마차의 3등석 승객처럼 마부와 함께 수렁에 빠진 역마차를 끌어내어 다시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쓰는 그런 일꾼 말입니다. 가장 비싼 1등석 승객은 마차가 망가져도 내리지 않습니다. 2등석 승객은 마차가 망가지면 마차에서 내리지만, 수리를 도울 책임은 없습니다. 구경만 합니다. 3등석 승객은 비록 제일 싼 요금을 낸 승객이지만 마부를 도와 마차를 수리하는 데 함께 해야 합니다.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을 장거리로 달리는 이 역마차 운행의 성공여부는 놀랍게도 이 3등석 승객에게 달려있었습니다. 3등석 승객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이 여정이 잘 되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영화제 배우가 아니라, 역마차의 3등석 승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잘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아니라, 예배를 이끌어가는 운영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교우들이 될 때, 이 역마차 교회가 험난한 여정을 잘 달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교회 합병 10주년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