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여행주간이 다가왔다. 10월 24일부터 11월 6일까지 14일 동안 진행된다. 여행주간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살피다가, 대구가 눈에 확 띄었다. 미개방관광지 스탬프 투어? 전국 프로그램 중에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뽑혔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장소들이 문을 연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영남 지역 최초의 중등학교인 계성중학교 본관
대구 경북 최초의 교회, 제일교회로 떠난 시간 여행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근대골목이다. 근대골목은 이미 백만 스물한 번도 더 다녀온 곳이다. 취재뿐이랴. 가족과 친구 또 데이트 장소로도 이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이 탄생한 청라언덕,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은 90계단, 붉은 벽돌과 쌍탑의 계산성당을 지나면 빼앗긴 들을 노래한 이상화 시인의 집이 있고, 어린 시절 함께 골목을 누비던 친구 얼굴이 떠오르는 진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근대골목을 걷다 보면 만나는 제일교회 옛 예배당
근대골목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에 담쟁이로 뒤덮인 옛 교회 하나를 어김없이 만나게 된다. 신비로운 이 건물이 제일교회 옛 예배당이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발길이 몇 번이었던가? 드디어 그 비밀의 문이 열리는 옛 제일교회 앞에 섰다. 붉디붉은 벽돌에 아치형 창문이 유난히 선명하다. 그사이 교회를 푸르게 뒤덮고 있던 담쟁이덩굴은 면도로 말끔히 사라졌다. 신비롭던 모습은 간곳없고, 그저 잘생긴 얼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층마다 모양이 다른 종탑의 창문이며 계산예배당이라는 이름표가 눈에 뛴다.
[왼쪽/오른쪽]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던 제일교회 옛 모습 /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선 머릿돌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머릿돌이 두 개다. 왼쪽 예배당에 1933년이라 새겨진 돌이 있다. 종탑에는 '鐘閣奉獻 李主悅(종각봉헌 이주열)'이라는 돌이 머릿돌보다 크게 새겨져 있다. 예배당을 짓고 후에 이주열 권사가 수성들에 있는 논을 팔아 내놓은 헌금으로 종탑이 세워졌고,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아치형 창문과 이국적인 비석
예배당 머릿돌 앞에는 오래된 기념비가 있다. 아치형 창문과 어울리는 이국적인 비석이다. 이렇게 심쿵한 기념비를 지금껏 목전에 두고 돌아가야 했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 여행주간이 고맙기도 하다. 이 비석은 애덤스 선교사(한국이름 안의와)를 기리는 선교기념비다. 비석 측면에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아니라 조선예수교장로회라 새겨진 것이 특이하다. 종탑 앞쪽에 비석이 하나 더 있다. 제일교회50주년기념비다. '또말삼하샤대너희는온天下에단니며萬民의게福音을傳播하라' 옛말로 적은 성경 구절이 훈민정음처럼 정겹다.
[왼쪽/오른쪽]제일교회50주년기념비에 새긴 성경 구절이 예스럽다. / 이주열 권사가 수성들 논을 판 헌금으로 세웠다는 종탑 기념돌
제일교회는 미국인 베어드 선교사(한국이름 배위량)가 초가집과 기와집을 사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1908년 교인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교회를 확장해서 새로 지었다. 교회는 1994년까지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청라언덕 위에 네 번째 교회를 세우면서 역사관으로 바뀌었다.
[왼쪽/오른쪽]제일교회 1층 역사관 내부 / 2층 예배실 모습
제일예배당이라는 이름판이 선명한 아치형 정문으로 들어서면 긴 복도가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빼앗길 뻔한 종이 전시되어 있다. 천장은 우물정자 모양의 나무로 마감되어 있고, 바닥에 나무마루판은 윤이 반질반질거린다. 전시관 안에는 100여 년 전 시간이 마법처럼 펼쳐져 있다. 백 년도 넘은 피아노와 성경책은 물론 주보까지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다. 성가대원들 사진 속에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얼굴도 보인다. 대구에 처음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웠던 근대의 찬란하고 슬픈 역사를 소복이 담고 있다.
계단에 걸린 성화 [왼쪽/오른쪽]1930년대 성경책, 하ᄂᆞ님이란 아래아 표현이 눈에 띈다. / 빛바랜 풍금
독립선언문을 제작했던 비밀의 공간, 계성중학교 아담스관
제일교회 역사관을 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서문시장 옆에 있는 계성중학교다. 미국인 선교사 안의와(애덤스)가 세운 영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학교 건물이다. 정문을 지나면 푸른 나무가 터널을 이룬 50계단이 나온다. 계단 위에 서 있는 건물이 학교 본관인 핸더슨관이다. 블레어 선교사가 1931년에 지었다. 가운데 2개의 탑이 인상 깊은 고딕 양식 건물이다. 핸더슨관 2층에는 학교의 역사에 관한 자료와 아담스관 지하 공간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왼쪽/오른쪽]나무 터널이 운치를 더하는 50계단 / 핸더슨관 2층에 있는 박물관
핸더슨관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담스관이다. 계성중학교를 설립한 애덤스 선교사가 1908년에 학교에서 가장 먼저 세운 건물이다. 애덤스 선교사는 한옥을 무척 사랑했나 보다. 이국적인 건물에 기와지붕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벽면에 독특한 돌이 무수히 박혀 있다. 일본인들에 의해 허물어진 대구읍성 성돌들이다. 300년 가까운 성돌과 고딕의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대구읍성 성돌은 대구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서문시장과 계성중학교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면 성돌로 쌓아올린 학교 석축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왼쪽/오른쪽]기와지붕을 올린 아담스관 / 붉은 벽돌과 대구읍성돌이 어우러진 벽면
아담스관 뒤편에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스런 장소가 나온다. 희미한 전등 아래 작은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등사기가 있다. 이곳이 바로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던 역사의 현장이다. 어둡고 좁은 방안에 그날의 뜨거운 열정과 시대의 아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아담스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3·1운동 전날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인쇄하던 현장
여행주간 동안 특별 공개되는 문화재는 제일교회 역사관과 계성중학교 아담스관 외에도 인흥마을 인수문고, 경상감영공원 선화당과 징청각, 옻골마을 문중 서적, 경북대학교 병원 의료박물관이다. 그중 인흥마을 인수문고와 옻골마을 문중 서적 그리고 경북대학교병원 의료박물관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1913년에 지은 맥퍼슨관
여행정보
제일교회 역사관
- 주소 : 대구 중구 남성로 23
- 개방시간 : 10월 24일(월)~11월 6일(일) 10:00~17:00
- 문의 : 010-4521-1233
계성중학교 아담스관, 핸더슨관
- 주소 : 대구 중구 달성로 35
- 개방시간 : 10월 24일(월)~11월 6일(일) 10:00~17:00
- 문의 : 053-232-8356
주변 음식점
- 서문시장 칼국수골목 : 칼국수, 수제비 / 중구 큰장로26길 45 / 053-256-6341
- 미림식당
- 미도다방 : 약차 / 중구 진골목길 14 / 053-252-9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