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조작에 집착하면 선병 끄달려(禪病要說) / 성수 스님
참선을 공부하는 이는 조사의 공안을 한 결 같이 잘 참구하지 못하고,
대부분이 병마에 끄달려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투탈(透脫)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몸을 꿈쩍거리기 싫어하고 마음만을 조용하게 만들어
일체를 모두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선(禪)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체성이 본래 공하고 그림자와 같은 이 몸이 무상한 줄 모르고서
몸과 마음에 대해 쓸데없이 집착하여 용을 쓰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화두상에 의정(疑情)은 잊어버리고 자기 가슴속에
한 물건에 대한 분별망상만이 조용해지면 당장 진심(眞心)이 다 된 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지켜 일체에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선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眞)과 망(妄)의 자체가 물건이 그림자를 따름과 같아서
지키는 자와 있는 자가 모두 다 환화(幻化)인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환법(幻法)으로 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까닭입니다.
어떤 이는 화두상에 의정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하고 잠잠하여 일체를 생각하지 않고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선을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본래 공하고
무아(無我)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지 않음과 마음을 비움, 이 두 가지 때문에 끝내 해결되기 어려우니 이것이 곧 병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조사의 공안을 그저 붙잡고 놓지 않아 가슴속에 간직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세간의 온갖 망상을 공안에로 되돌리기를 끝없이 계속하고
그 끝없는 모양이 현전하는 것으로 선을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안의 요지가 의정에 있고 막힘없이 환하게 깨달아
향상하는 데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조사의 공안에 대해 마음으로 억지 의심을 일으켜
억지 의심을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홀연히 마음이 초조해지고 답답해지면
문득 ‘단지 속을 기어 다니는 자라’를 얻은 것으로 선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화두 공부가 일체 조작을 떠난 것인 줄을 모르는 탓이요,
조작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는 선지식에게 법문 듣는 바로 그 순간에 의단이 단박 일어나고
당장 앞뒤가 끊어져, 마치 맹렬한 불무더기처럼 세간 일체 형상 있는 물건이
접촉할 수 없듯이 홀연히 가슴속에 걸리는 것이 없어지고 나면
마음 꽃이 활짝 피어 부처님과 조사의 모든 기연(機緣)의 차별을
척척 알아맞히는 것으로 선을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깨쳤다는 마음’이 그대로 ‘미한 마음’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깨쳤다는 마음’을 가지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면
스스로 마음을 흔들어 그 순간의 날카로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인과 따위가 뭐냐’하는 등의 걸림 없는 행동을 함부로 저질러 큰 병을 만들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상에서 말한 여러 ‘선병’ 밖에 어떤 것이 병 아닌 선이겠습니까?
새싹은 봄바람이 아직 싫어서
나무 난간 사이로 흔들흔들 기어든다.
대중들이여, 분명하게 눈을 뜨고 보십시오.
이 무슨 시절인고?
이 속에 이르러서는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것이 모두 다 몽환(夢幻)인 것 입니다.
55위(五十五位)도 또한 몽환이요, 18불공법(十八不共法)도 몽환이요,
성문이나 연각이라는 것도 몽환이요, 보살이나 부처니 하는 것도 모두 몽환이요,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명암색공 모든 법이 전부 다 몽환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도 또한 몽환일 따름이며, 몽환이라 하는 것까지도 몽환인 것입니다.
이 속에 이르러서는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밝고 어둡고
모양 있고 모양 없는 모든 법이 또한 몽환이 아닙니다.
보살과 부처도 또한 몽환이 아니요, 성문이나 연각도 오십오위와
십팔불공법과 보리와 열반 모두가 몽환이 아닙니다.
이 속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보살이 꿈이 아니라 하여도 얻지 못하고
성문과 연각과 오십오위와 십팔불공법과 육도사생이 꿈이 아니라 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또한 산하대지와 만상삼라와 유정무정과 밝고 어둡고 모양 있고
모양 없는 모든 법이 꿈이 아니라 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중에게 묻겠습니다.
어떻다고 들먹이면 모두 안 되는 것이니 필경에 어떻게 해야만
거푸집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시며 이르시기를 여기에서 양산 읍네가 40리(里)니라.
어서 빨리 떠나지 않으면 돌아오기 어렵나니.
-〈운봉선사 법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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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봉 성수 스님 (1889~1944)
스님은 성도재일 전날 밤인 1889년 12월7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성수(性粹)이며, 법호가 운봉(雲峰)이다.
13세 때 부친을 따라 영천 은해사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발심하여
일하(一荷)스님에게 의지하여 출가했다.
15세에 강백 회응(晦應)스님에게서 교법을 배운 뒤 23세에
범어사에서 만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청화산 원적사에 가서 석교스님으로부터 율(律)을 배운 후
금강산, 오대산, 묘향산, 지리산 등지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그러다가 35세인 1923년 장성 백암산 운문암에서 먼 동이 트는
새벽녘 문밖에 나갔다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홀연히
마음 광명이 열리면서 가슴에 막혀 있던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면서
대오하게 됐다.
이후 깨친 바를 점검받고자 혜월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부산 선암사를 찾아갔다가,
운봉(雲峰)이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를 받게 된다.
이후 20여년간 통도사, 범어사, 도리사, 내원사 등지에서
수행납자를 제접하며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1944년 2월 ‘향곡 혜리 장실에 부치노라,
서쪽에서 온 문채없는 법인은 전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것일세.
전하느니 받느니를 뚝 떠나면 해와 달은 동행하지 않으리라’라는
유표(遺表)를 손수 써서 남기고
세수 56세, 법납 44세로 열반에 들었다.
[출처] 나홀로 절로 | 작성자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