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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며, 조선 태조의 본향으로 왕조의 뿌리다. 또 한식과 한복, 한지 등 우리 문화의 참맛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전주한옥마을은 그 중심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 상인들에 대항해 조성한 한옥촌으로, 세월이 흘러 전주를 상징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천주교의 성지 전동성당, 한류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 전주향교 등에서 우리 문화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한지 공예,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전통 공예 체험도 가능하다. 근래 들어서는 ‘한복데이’가 생기며 한복 차림으로 한옥마을에 오가는 젊은이가 많다. 전통 공연 역시 각광받는다. 공연만 보는 게 아니라 식사나 체험 등을 결합해 한옥마을을 한층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다. 비빔밥, 오모가리탕, 콩나물국밥 등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은 전통과 문화,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슬로시티다.
오목대 방면에서 바라본 전주한옥마을 전경
전주는 두말이 필요 없는 고도(古都)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후대에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왕조의 뿌리가 됐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곳으로, 호남과 제주 일대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판소리’의 고장이자,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다.
이를 뽐내기라도 하듯 전주는 고속도로 입구 현판부터 다르다. 서예가 여태명이 쓴 민체다. 한글을 사용하던 백성의 글씨를 닮은 서체다. 그러고 보니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화약이 맺어진 땅이다. 그 자체로 자연과 전통, 철학의 공동체라는 슬로시티의 취지에 부합한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한옥을 아우르는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에는 전주의 꼿꼿한 정신이 담겼다. 시간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군가도가 개설됨에 따라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 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확장했다. 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에 조성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오늘날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오목대에 올라 전경을 보면 실로 장관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한옥마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전국적 명성이 자자한 전동성당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 여행은 태조로를 걷는 데서 시작한다. 태조로는 풍남문에서 오목대 방면 약 550m 도로다. 한옥마을의 가장 큰 길이자,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조선의 시간을 잇는다. 풍남문 쪽에서 태조로로 들어서면 전동성당이 먼저 반긴다.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돋보이며, 1914년에 완공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소문이 나며 그 명성이 전국에서 손꼽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천주교의 성지다. 179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지 위에 세웠다.
[왼쪽]포토존으로 인기 있는 경기전 내 사고 가는 길의 대나무 숲
[오른쪽]어진박물관에서 보면 경기전의 담장과 전동성당이 시간을 넘나들며 조우한다
전동성당 건너편에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은 전주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조선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주사고의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유일하게 지켜졌다. 내부는 전시관으로 개방한다. 사고 입구의 대나무 숲이 아름다워 포토 존으로 인기다. 북쪽에는 태조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에 지은 어진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경기전 서문 쪽으로 나오면, 경기전 담장과 전동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에서 조선의 600년 시간이 한 프레임에 담긴 느낌이 든다.
한류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자주 등장하는 전주향교의 대성전 모습 [왼쪽]옛 BYC 공장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교동아트센터
[오른쪽]지난 2012년 전주한옥마을에 개관한 여명카메라박물관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태조로를 걸은 다음에는 평행한 북쪽의 어진길이나 남쪽의 향교길, 그 사이를 수직으로 잇는 전동성당길, 경기전길, 은행로 등을 선택한다.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촬영한 전주향교, 옛 BYC 공장 건물을 개조한 교동아트미술관, 《혼불》의 최명희 작가를 만나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 카메라 400여 종을 전시한 여명카메라박물관 등 꼼꼼히 들여다볼 공간이 즐비하다.
[왼쪽/오른쪽]한복은 지금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통 체험이다 /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은 전주한옥마을에 새로운 생기다
그에 앞서 슬로시티와 어울리는 전통문화 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통 체험은 뜻밖에도 한복 체험이다.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생활한복에서 기생 한복, 커플 한복까지 젊은 층을 사로잡는 고운 한복이 많다. 한옥마을 거리는 한복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전주향교에서 시작한 한복 대여소도 한옥마을에만 20여 곳으로 늘었다. 1시간에 5000원, 3~4시간에 1만 원 선으로 대여 비용도 큰 부담이 없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한복데이’에는 흥미로운 행사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왼쪽]식사나 체험 등을 곁들인 패키지형 전통 공연은 이색 즐거움이다
[오른쪽]전주부채문화관에서는 글씨나 그림을 그려넣은 나만의 부채를 만들 수 있다.
종전의 전통 체험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전주부채문화관은 부채를 생산하던 조선 시대 선자청의 맥을 잇는다. 여러 가지 부채를 전시하고, 상설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현장에서 부채를 구입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는 한지 공예를,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모주 거르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한지산업지원센터의 한지뜨기 체험 [왼쪽/오른쪽]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남부시장 야시장 / 서학동예술인마을의 예술 감성이 넘치는 골목
전주의 매력이 한옥마을에 머물까. 한국전통문화전당 또한 전주의 수려한 문화를 담는다. 전주문화관과 한문화관 등 홍보관, 전주의 공예품 전시실 등을 갖춘 열림동, 여러 공방이 입주한 키움동, 공연동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한지 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한지산업지원센터는 한지 뜨기, 한지 공예 등 알차고 실속 있는 체험이 장점이다.
전통시장도 들러볼 만하다. 풍남문 지척에 자리한 남부시장은 전주의 활기를 느껴볼 수 있는 일석삼조의 시장이다. 첫째, 남부시장 본래의 생기다. 조선 시대 남문밖장의 맥을 잇는 장터로, 전주에서 가장 북적이는 시장이다. 둘째,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부터 펼쳐지는 야시장이다. 시장 통로를 중심으로 이동 판매대가 들어서고, 먹거리와 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파는 짜조와 쌀국수 같은 동남아 음식, 전주비빔밥, 초밥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간다. 셋째, 시장 2층의 청년몰이다. 젊은 작가들이 꾸려가는 젊은 문화 시장으로, 형태부터 문구나 판매 물품까지 종전 시장의 틀을 깬다.
전주의 골목 풍경이 보고 싶을 때는 자만벽화마을이나 서학동예술인마을이 제격이다. 동네 골목과 예술 감성이 어울려 아기자기하다. 구석구석 쉬이 지나칠 수 없는 매혹이 넘쳐나고, 그 속에서 우리 이웃이 살아간다. 천년 고도의 근근한 생명력이요, 그 위에 새롭게 더해진 슬로시티의 숨결이다.
전주는 교동의 한옥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구석구석 재미난 요소가 많은 까닭이다. 한옥에서 하루를 묵어갈 수 있고 전통체험도 가능하다.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전동성당과 조선 왕조의 역사가 서린 경기전 등 문화재도 값지다. 오목대에 올라 마을 전경을 감상해도 좋다. 전통의 거리지만 크고 작은 갤러리와 카페 등도 반긴다. 먹을거리도 빠질 수 없다. '가맥(가게 맥주)'처럼 특별한 먹을거리에서 바게트버거, 치즈 츄러스, 지팡이 아이스크림 등 소소한 군것질거리까지 다채롭기 그지없다.
근래에는 한옥마을 여행과 연계할 밤 문화도 생겨났다. 서쪽 끝 풍남문 옆에 있는 남부시장이 그곳이다. 전주는 예부터 시장이 이름을 떨쳤다. 조선 후기에는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사대문 밖에는 어김없이 장이 섰다. 남부시장의 전신 격인 풍남문 옆 남문밖장은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싸전다리 주변 싸전과 매곡교 인근 우시장 등이 열려 북적댔다. 여느 재래시장이 그렇듯 부침을 겪기는 했어도 여전히 전주를 대표한다. 800여 개 점포에서 1200여 명이 채소와 건어물, 주단, 잡화 등을 판다. 피순대와 콩나물국밥 등 전주의 먹을거리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10월 31일에는 야시장이 첫선을 보였다. 2013년 안전행정부에서 추진한 야시장 사업으로 부산의 부평깡통야시장에 이어 두 번째다. 위치는 남부시장 안 1층 북쪽 입구에서 청년몰 입구에 이르는 아케이드 통로다.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6시면 그 사이로 35개의 이동판매대가 줄 지어 자리하며 상설 야시장의 개시를 알린다. 7시 남짓이면 벌써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나들이 나온 가족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까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동절기에는 오후 10시까지, 하절기에는 자정까지 문을 연다.
풍남문 쪽에서 들어서면 생활 디자인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자수와 생활도자기 공예품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곁에는 머플러나 털모자 같은 패션 소품을 파는 판매대다. 장식용 수공품과 액세서리도 빠질 수 없다. 아무래도 여성 고객들이 몰리는 편이다. 동쪽의 상가 번영회 쪽 입구로 들어서도 무방하다.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 시장 지도나 기본 정보를 얻어 출발할 수 있다.
풍남문 쪽에서 진입하든, 번영회 쪽에서 진입하든 길이 만나는 교차점에 이르면 야시장의 꽃이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등장한다. 향토 먹을거리에서 동남아 야시장의 별미까지 군침이 절로 돈다. 남부시장 상인회의 심사를 거쳐 입주한 야시장 간이 매장이다. 상인들의 구성도 흥미롭다. 특히 대학생이나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판매자들이 두드러진다. 풍남문 쪽에서 중앙 교차점에 못 미친 곳에 '총각네스시'가 있다.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선후배 4명이 의기투합한 곳이다. 조리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손님을 맞는다.
전공은 한식이지만 야시장 콘셉트에 맞춰 초밥과 길라면 등을 낸다. 가격도 저렴하다. 초밥 6개 세트가 4,000원이고, 길라면이 3,000원이다. '훈남' 넷이 신명나게 만들어내니 가장 복작댄다. 풍남문 쪽에 총각네스시가 여심을 매혹한다면 반대편 천변주차장 쪽으로는 '달달한두여자네'가 남심을 뒤흔든다. 관광과를 졸업한 대학 동기 허지언, 박미리 씨가 운영한다. 푸드 트럭을 준비하다 야시장 소식을 듣고 판매대를 신청했단다. 직접 개발한 팬케이크 핫도그가 주력 메뉴다. 일종의 크레이프로 누텔라 초콜릿과 고구마 등이 견과류와 어울려 달콤하면서 고소하다. 3,000원에 맛보는 달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