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이혼
- 이은채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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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따사로운 햇빛 한 줌 비치지 않는 어두운 거리, 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사람은 텅 빈 거리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줄을 선다. 주인공이 사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회색도시는 '지옥'이다. 매일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싸움은 분란을 불러와 점점 멀어져만 가는 영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 그에 비해 버스가 향하는 곳은 이른바 '천국', 보통보다 훨씬 견고한 풀과 나무들, 빛으로 이루어진 견고한 영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주인공은 버스에서 내리자 싱그러운 녹음과 눈부신 빛, 실재하는 모든 생명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처음 마주한 것은 자신의 권리를 따지고 들며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주장하는 유령과, 그를 설득하려 하는 영. 그러나 그 유령은 자신은 권리를 찾으러 왔다며 곧이어 사라져버린다. 다시 길을 찾아 나선 주인공은 또다시 영과 대화를 하고 있는 성직자를 발견한다. 성직자는 기성품 진리와 해답이란 종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저 탐구의 자유로운 유희를 바랄 뿐이라며 떠나버린다. 그 후 여럿의 유령을 만나고 무작정 걷던 주인공은 천국과 지옥이란 모두 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철저한 광고전략일 뿐이라는 한 유령의 말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얼마 안 가 만난 스승같은 존재, '조지 맥도널드'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그는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선한 사람의 과거는 결국 모든 기억이 천국의 특질을 띄도록 변화되지만, 악한 사람의 과거는 결국 음울함으로 가득 차버리는 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지옥은 심리 상태가 맞지만 천국은 실재 그 자체라고도 하며 버림받은 영혼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편, 주인공과 조지는 여럿의 영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자신의 남편은 자기 없이는 변화하지 않는다며 자신은 남편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하는 아내와, 죽어버린 아들에게 집착하며 자신을 떠나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하는 어머니, 그저 천국의 풍경에만 관심을 가지던 예술가까지. 다양한 영혼들이 선택의 갈래에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공은 곧이어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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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는 이 책에 근본적인 사람의 욕망과 죄,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원', '사후세계'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또한 인간의 죄는 어떤 형태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다양하게 표현하여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지기도 하였다. '판타지 문학' 이라는 주제 아래서 여러 인간 유형과 그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소개하여 어렵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주인공과 조지가 대화하는 부분인데, 대화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같을 거라며 누구든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충실했다고 말할 거라는 장면.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심통부린다' 라고 하지만 어른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수백가지의 근사한 이름들을 붙여 놓는다는-예를 들어 복수, 비극적 위대함, 정당한 자존심 같은-말을 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비참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지키려고 고집하는 것들이 늘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 매우 감명깊었다.
루이스는 책 안에서 다뤄지는 심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인간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기심과 유약함에 대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선'과 '악'의 경계에 서서 죄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지 주장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인간과 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