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1막은 배우, 2막은 사업가로 성공한 ‘원숭이’ 이원승을 만났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이제 새로운 인생 3막을 꿈꾼다. 여전히 서른아홉을 살고 있는 이원승의 세 번째 무한도전.
국내에 화덕피자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 디마떼오의 이원승 대표를 오랜만에 만났다. 빡빡 깎은 머리는 여전했고 친절한 서빙도 변함없었다. 이탈리아의 유명 레스토랑 디마떼오를 들여온 지난 1996년. 기대와 달리 부채만 쌓여가는 가게를 뒤로하고 한때는 자살을 결심했다. 이후 “덤으로 얻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그는 하루하루가 연극 같다.
국내 화덕피자 1호점 디마떼오
이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만도 한데, 이원승은 여전히 짝짝이 실내화(이탈리아 국기색에 해당하는 빨강, 초록)를 신고 허리 숙여 손님을 맞는다. 남이섬 분점 외에 매장을 늘리지 않은 것도 두 지점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디마떼오는 16년째 장수하며 순항 중이다.
“처음에는 한 층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자체 건물을 둘 만큼 성장했죠. 층별로 다양한 콘셉트를 심었어요. 여기(4층)는 심성운 작가가 만든 설치미술 공간이에요. 주로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요. 아래층은 앤티크한 가구들을 배치해 클래식한 느낌을, 또 다른 층은 모던한 느낌을 줬어요. 오는 손님마다 취향에 맞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연극을 보러 온 친구끼리, 특별한 날을 맞은 커플끼리, 나이 든 중년 부부가 손잡고 와도 어색하지 않을 인테리어다. 이는 이원승이 지향하는 가게의 모토와도 일부 맞닿아 있다.
“남자들이 ‘처제, 내가 오늘 정말 맛있는 집으로 데려갈게.’ 하고 말할 수 있는 가게가 되었으면 해요. 사실 와이프한테 잘하려면 처제한테 잘해야 하거든요. 처제 앞에 멋진 형부가 될 수 있는 가게라면 좋겠어요. 또, 그 남자가 나이가 들어 손주들과 함께 올 수 있는 가게였으면 해요. 이를테면, 세월이 녹아든 가게 말이죠.”
건물 외벽을 수북이 덮은 담쟁이덩굴처럼 디마떼오에도 그만한 더께가 쌓여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건 피자의 맛. 지금이야 화덕피자가 대세지만, 한때는 아무도 이 화덕피자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픈 당시에는 화덕피자라는 게 생소할 때라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가 힘들었어요. 아무리 미국식 냉동피자와 차원이 다른 냉장피자라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삼겹살이 냉동이든 냉장이든 별 상관 않던 시절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부채의 압박에 못 이겨 옥상으로 올라갔지만, 이내 맘을 고쳐먹었다.
“(다시 살기로 결심한) 그 지점부터 잘된 것 같아요.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전에는 손님을 왕처럼 모셨다면, 그때부터는 피자 때문에 만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손님들을 대하기가 편해지더군요. 너와 나의 소꿉놀이, 피자놀이가 된 거예요.”
JP가 즐겨 찾은 루콜라피자
“어제는 차범근 감독이 다녀갔어요. 이승엽 선수도 가끔 오고요. 장미란 선수는 역기 들기 전에 자주 왔어요.”
디마떼오는 오랜 영업 일수만큼 단골이 많다. 대학로에 위치하다보니 연극인은 물론 입소문을 타고 오는 정치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까지 한 무더기다. 그중에는 김종필 전 총리와의 인연도 있다.
“어느 날 총리실이라며 전화가 걸려왔어요. 저희 가게 번호 끝자리가 ‘4444’예요. 평소 장난 전화가 자주 걸려오니까 그 전화 역시 장난 전화인 줄 알았죠. 그만하라고 말하고 두 번이나 끊었어요.”
그런데도 집요하게 다시 울리는 전화. 수화기를 들자 이번에는 “이원승 사장 있느냐”며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했다.
“정말 국무총리실이었어요. 자리를 예약하더니 잠시 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수행원들을 데리고 가게를 방문했어요.”
그런데 이원승은 JP와의 첫 만남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사실 그때까지 김종필 전 총리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충남 서천에서 야당으로만 (국회의원, 군수 등에 출마해서) 세 번을 떨어졌거든요. 그때 대척점에 있던 사람이 여당의 JP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 기억 속의 JP는 ‘아버지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 선거 때마다 어머니를 눈물짓게 만든 사람’이었어요.(웃음) 그래서 총리가 방문했는데도 두 다리를 떡 벌린 채 ‘본 조르노!’ 하고 인사했지요.”
당황해 하는 JP를 보며 이원승은 내심 기뻤다고 한다. 마치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음식만은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아버지 때문에 장난스럽게 인사하긴 했지만 음식은 정말 제대로 만들었어요. 백화점에서 산 수입 채소로 피자를 만들었는데 그게 루콜라였어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피자였죠.”
이후 디마떼오의 단골이 된 김종필 전 총리는 올 때마다 루콜라피자를 주문했다. 지지난해 12월 23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손주들을 데리고 이곳을 방문했다고. 그렇게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간 디마떼오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서빙을 하는 이원승 대표처럼 변함없는 맛, 서비스 때문이다.
가평에서의 삶 & 연극마을
4년 전 디마떼오 압구정 분점이 남이섬으로 옮겨가면서 그는 일주일에 절반씩 남이섬과 대학로를 오가고 있다. 남이섬 주변 가평에 집터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지점 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2~3번은 남이섬에 머물러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머물 곳이 필요했죠. 적당한 터를 찾아 흙집을 지었는데, 그렇게 살기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온 가족이 이사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열심히 번 돈으로 성북동에 집도 마련했고 아이들도 손에 꼽는 사립학교에 보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적으로 아이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요. 강아지만 키울 수 있다면 무조건 오케이래요.(웃음)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학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지금은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이에요. 아토피도 전부 사라졌고요. 가평의 작은 학교도 서울의 내로라하는 사립학교 못지않게 소수 인원을 자랑해요. 소위 SKY에 진학하는 학생 수도 많고요. 뭐, SKY 못 가면 어때요. 제 부모 피 닮았으면 이쪽 길을 걷지 않겠어요? 아니면 피자집을 물려받아 운영해도 좋고요.”
바닥을 치고 올라온 경험 때문일까? 그에게서 새삼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제 그는 수입에 연연할 필요 없는 미래를 꿈꾼다. 희망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단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는 현재 실행 중인 ‘가평 연극마을’이다.
“내일이면 제가 소속된 연기예술학회와 가평군, 중앙대학교 예술학부가 MOU를 맺어요. 가평에 조금씩 사들인 4천 평 부지에 연극마을을 만들 예정이에요. 야외극장과 실내극장은 물론 연습실과 레지던스를 만들어 연극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을 위한 자생 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치즈도 만들고 농사도 지으며 자가발전할 수 있는 마을이 된다면 더없이 보람 있는 인생 3막이 되겠죠?”
그는 자신을 징검다리에 비유했다. ‘원숭이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 하겠어?’라는 본보기이자 징검다리의 돌멩이 하나가 되고 싶단다.
“또 다른 원숭이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문화의 힘’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마을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 콘텐츠가 수익을 내면, 그 수익으로 연극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금 제가 바라고 꿈꾸는 인생 3막이랍니다.”
이원승의 성공 비결 5
KNOWHOW 1
끊임없이 개발하라
이원승 대표는 해마다 1월이면 이탈리아로 출장 겸 견학을 떠난다. 피자의 본고장이자 디마떼오 본점이 있는 나폴리에 있는 피자집들을 순회하기 위해서다. 오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매해 빼먹지 않는 이유는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마다 1월이면 가족과 함께 나폴리를 방문합니다. 치즈를 비롯한 식자재를 주문하고 가격을 절충하기 위해서죠. 또 하나, 나폴리의 유명하다는 피자집들을 성지순례하듯이 들릅니다. 그리고 1년 전에 비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메뉴를 개발했는지를 체크합니다. 나폴리의 피자집 순회를 마치면 로마나 피렌체로 건너가요. 나폴리는 나폴리의 스타일이 있고 북쪽은 북쪽의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이 모든 걸 맛보고 느끼고 기록한 후 한국에 돌아와 메뉴 개발에 참고합니다.”
KNOWHOW 2
오리지널을 유지하라
국내에 화덕피자 열풍을 불러온 디마떼오는 오픈 당시부터 내세운 철칙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피자의 본질을 지키자는 것. 현지화하지 않은 이탈리아 고유의 맛, 그것이 다른 피자집과 디마떼오의 첫 번째 차이다.
“이 가게를 16년째 일궈오는 동안 수많은 화덕피자집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우리 가게의 차별점은 확실합니다. 이탈리아 국기를 걸고 하는 만큼,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피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가게는 피클이나 소스가 없어요. 이탈리아가 그렇거든요. 고르곤졸라 피자를 시키면 꿀을 주는 곳이 많은데, 우리 가게에는 꿀이 없어요. 그럼 고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그 집, 정말 맛있어!’ 또는 ‘여긴 한국인데 왜 그 따위로 장사해?’예요. 두 번째는 포기하더라도 첫 번째를 택하기로 했어요.”
KNOWHOW 3
식자재 비용을 아끼지 마라
디마떼오의 메뉴 가격은 다른 이탤리언 레스토랑보다 다소 높다. 심지어 10만 원대 피자(4만5천 원어치 캐비아가 아낌없이 들어간 캐비아피자다)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즈와 재료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원승 대표는 식자재만큼은 값을 따지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질을 위해 매번 치즈를 이탈리아에서 직접 수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수입 치즈는 어느 정도 가격대를 (마진이 남게끔) 맞춘 것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탈리아의 A급 레스토랑에서 쓰는 피자를 따로 수입합니다. 일반적으로 원가의 30~35%를 식자재비에 할애하는 데 비해 저희 가게는 40% 정도 할애해요. 2천~3천 원 정도 비싼 값을 매기더라도 식자재부터 차별화를 하니까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먹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디마떼오를 ‘우리나라 피자집 중에서 최고’라고 말했어요. 지금은 아예 다른 노선이라고 말합니다. 왜냐고요? 그들(다른 피자집)이 쓰는 재료는 안 쓰기 때문이에요.”
KNOWHOW 4
늘 같은 맛을 유지하라
이 대표와 이탤리언 셰프는 갑을 관계가 아닌 허물없는 친구 사이다. 비록 대표라는 직을 달고 있지만 이것만은 절대 터치하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맛이다.
“맛에 대해서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아요. 그 대신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죠. 무엇보다 디마떼오를 찾는 단골 고객이 기억하는 맛, 이탈리아의 본질을 훼손하면 안 됩니다. 경험 많은 이탤리언 셰프를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변함없는 맛, 현지의 맛을 위해 이탤리언 셰프 3명이 교대로 6개월씩 근무하고 있습니다.”
KNOWHOW 5
어느 정도의 배짱은 필요하다
외국의 레스토랑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려면 상당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원승 대표는 그런 디마떼오를 로열티 하나 없이 한국에 들여왔다. 두둑한 배짱 덕분이다.
“그들에게 사업을 제시했더니 로열티를 달라더군요.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유명하기 때문에 홍보비를 받아야겠다’고 각을 세웠어요. 그랬더니 한동안 답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 자기네 결혼식에 저를 초대하더라고요. 결혼식장에서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한국인을 궁금해하기에 개그맨답게 팬터마임으로 그들을 웃겼어요. 그걸 본 그 집안의 어른이 디마떼오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저런 사람과는 돈이 안 되더라도 파트너를 맺는 것이 우리의 정서 아니겠느냐’고요. 다음 날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랐습니다. 그리고 디마떼오를 로열티 없이 한국에 가져올 수 있었죠.”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