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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산(靑龍山)과 황룡산(黃龍山)은 월광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대구 달성군 도원지를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이동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해온 산이지만 이번에는 역설적으로 가까웠기때문에 찾게된다.
그렇게 단순한 의도로 올랐던 청룡산에서 뜻밖의 횡재를 하게될 줄이야...
청룡산 암릉에서 누리는 전망이야 익히알고 올랐지만 신(神)만이 제공한다는 운해(雲海)의 절경까진 언감생심(焉敢生心) 기대하지 않았다.
산줄기는 청룡산을 거치며 금호강으로 그 여맥을 내려놓는 청룡지맥상에 놓여있다.
청룡지맥(靑龍枝脈)은 비슬지맥의 비슬산(1083m) 북쪽으로 분기하여 비슬산(1083m)-청룡산(794m)-산성산(653m)을 거쳐 대구 시내를 가로 질러
두류산(125m)-와룡산(300m)-궁산(251m)을 지나 금호강을 건너는 강창교앞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34.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신령스러운 ‘영물(靈物)'
그 영물인 쌍룡이 또아리를 틀고 앉은 산자락 곳곳에 용트림의 자취가 흩어져있고,그 서쪽 자락엔 천리마를 스토리텔링한 비마(飛馬)의 이야기가 슬프다.
그 이야기줄거리를 테마로 벽화를 그려 한갖 시골마을인 마비정(馬飛亭,井)마을을 전국의 내로라하는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남평문씨세거지(민속문화재 제3호)는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
80년대 장미희 주연의 '황진이'를 촬영한 광거당과 강수연이 주연한 '씨받이'가 촬영된 수백당을 비롯한 아홉채의 건물이 있다.
지난 날 산청 남사예담촌의 돌담길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엔 흙으로 버무려 쌓은 돌담과 흙돌담에 내려앉은 능소화가 고와 철맞춰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산행 후 남평문씨인흥(본리)세거지 탐방
<클릭하면 원본크기> 파란색 트랙이 동선.
※ 참고 개념도 <마비정마을 원점회귀)
※ 대덕산과 앞산을 연계한 청룡산 개념도
<청룡지맥>
네비엔 '대구 보훈병원'을 입력하여 재활체육관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들머리에서 하차를 한다.
B팀은 도원지를 돌아 삼필봉으로 접근 마비정마을을 가기로 하였다.
산불초소에 단체의 이름과 입산인원을 적은 후 잘 닦여진 길로 오른다.
등로는 보훈병원 뒤로 줄곧 이어지는데,계곡으로 곧장 들어가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희미한 족적을 따라 좌측 능선으로 붙었더니 반듯한 등로를 만나는데,바로 상원초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솔향이 그윽한 솔숲길이 끝나고 능선길은 다소 가팔라진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만나는 청룡굴(기도터) 갈림길.
바위 우측의 가파른 능선길이 청룡산 오르는 길이고,바위 좌측 아래의 반질반질한 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청룡굴이 나오고,더 내려가면 청소년수련원이 나온다.
갈 길이 급한 나는 그만 패스.
<펌> 청룡굴
등로 좌측 달비골 너머로 대덕산(좌)과 앞산(우)이 보인다.
달비골은 대덕산과 앞산 그리고 동남쪽 청룡산 줄기가 이루어 낸 계곡.
골이 너무 깊어 달이 뜨면 달빛이 계곡에 비친다하여 "달비골"이라 불렀다고...
그것이 '달배골'로 변해서 '월배'로,또 등(배背)뒤에서 달(월月)이 뜬다고 해서 월배가 되었다 하기도 하고...
산아래는 뿌옇게 박무가 끼여있다.
나란히 달리는 듯한 대덕산과 앞산의 능선.
산행내내 어깨를 같이하더니 이제는 앞산 뒤로 팔공산 마루금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금 당겨본 앞산의 시설물과 뒤로 팔공산 마루금.
전망바위에 오르자 뜻밖의 횡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탄성! 또 탄성!
카메라가 다 담아내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즐겨 부르던 산노래 한자락을 흥얼거린다.
-- 운해(雲海) --
♬ 이리 보아도 산이요,저리 보아도 또 산이네.
구름 뚫고 솟은 이곳에서 저기 아래를 굽어 보면
저산들은 구름에 묻혀 바다에 뜬 섬 같고
다시 내려보면 나를 향해 밀리는 파도와도 같아.
세상일 다 잊어 버리고 나 그안에 취해보면
아~이몸은 정녕 세월속의 작은 한자락 바람이라
<김정환 글,곡>
능선 좌측으로 대구의 진산인 앞산능선이 계속 따라오더니 이젠 능선 우측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운해의 물결.
노고단 운해가 아름답다고 하였지만 삼대(三代) 덕(德)은 커녕 당대(當
산을 찾아 헤매고 다닌지 수십년. 나는 오늘 끊임없이 밀려드는 구름바다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가슴벅차하고 있다.
운해 좌측 끄트머리에 청룡지맥의 분기점인 비슬산이 보인다.
청룡지맥(앞산)갈림길을 만난다.
앞산과 달비고개 방향은 청룡지맥이 뻗어가는 길.
사진 맨 좌측으로 시설물이 있는 비슬산 조화봉.
운해의 구름바다를 내려다보 나는 쉬이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강물이 흘러가면
저 깊고 푸른 바다를 보게 되리라
그 큰 희망을 안고 가는 것이야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구름이 흘러가면
저 넓고 푸른 하늘을 보게 되리라
그 큰 꿈을 품고 가는 것이야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우리가 흘러가면 더 큰 세상을 보게 되리라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도 흘러가겠지만
강물이 흘러가면
저 깊고 푸른 바다를 보게 되리라
강한 뜻 품고 가는 것이야
홍광일의 시집<가슴에 핀 꽃>중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
청룡산에 오른다.
청룡산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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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산에서의 이정표
청룡산에서의 운해.
산자락을 내려서려다 청룡지맥이 뻗어나가는 비슬산을 바라본다.
그녀들은 한마음의 꽃.
끊임없는 열정의 주례 오사장님.
산길 내내 만나는 '쌍룡녹색길'안내판.
100m간격으로 촘촘이 세워진 '쌍룡녹색길'안내판은 달서구의 대단한 자부심으로 보인다.
쌍룡녹색길은 달서구 신당동 와룡산과 대곡동 청룡산을 연결하는 걷기 코스다.
금호강과 낙동강을 잇는 수변 공간을 활용한 도보여행 길로 느림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와룡산~궁산~금호강변~대구수목원~청룡산으로 이어지는 18㎞의 걷기 길.
와룡산에서 금호강으로 내려가 계명대 뒤 궁산까지 산길을 걷는다.
이어 금호강 제방길을 따라 유천교를 거쳐 대구수목원을 지나 앞산과 비슬산을 연결해주는 청룡산에 이른다.
금호강변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고, 특히 탁 트인 강변길을 체험할 수 있는 게 쌍룡길의 특징이다.
가까이 삼필봉 너머 산첩첩(疊疊)을 바라보며 한동안 머물다...
배바위의 전설.
수밭고개로 내려선다.
수밭고개의 안내판
수밭고개에서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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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천천히 앞질러 가는 까투리 한마리.(암꿩이 맞는 진 몰라?) 이 암꿩은 빨리 도망도 가지않고 천천히 나와함께 숨박꼭질을 하잔다.
털빛깔이 워낙 보호색을 띈 터라 사진에 잘 식별이 되지않아 몇 장을 폐기하였다.
다시 안부에 내려서니 사거리인 도원지갈림길.
안부의 이정표
황룡산에 올라섰다.
황룡산은 이렇다할 정상표식을 보지 못했다. 다만 이 끈질긴 생명력의 나무 한그루.
모진 바람에 완전히 쓰러졌지만 다시 꼿꼿이 몸을 일으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황룡산 갈림길의 이정표. 이 이정표가 가리키는 용연사는 국제신문의 '마비정원점회귀'의 코스이다.
체육공원을 지나고...
도원공원 이정표는...
도원지(월광수변공원) 3.2km를 말한는 듯...
솔밭길을 살짝살짝 에두르며 올라서니...
삼필봉에서 맞는 표식은 용상등.
진등산,시루봉,청룡산의 세 등의 꼭대기가 용의 머리를 닮았대서 용상등. 다른 이름으로 작봉(鵲峰 까치봉) 이라고도 한다네.
붓을 닮았다고 필(筆)봉이라고도 한다. 세 필봉 중에서 제일 높은 필봉이 삼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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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지 원점회귀가 내내 산객을 불러댄다.
우리는 마비정마을을 내려가야 하는데,
능선길에서 좌측으로 90도 이상을 휘익 꺾어야 한다.
90도만 꺾으면 대구수목원으로 빠진다. 그 날 우리의 '개금아제'는 수목원으로 갔다가 돌아 왔다고 한다.
마비정 갈림길에서 뜬금없는 삼필봉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산이름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본다.
삼필봉,용상등,작봉,까치봉,증봉(甑峰).시루봉,송봉,소방산(小方山,召榜山) 아휴~~
'마비정가는길' 안내판도 따로 붙어있고...
'마비정벽화마을'1.5km이정표도 붙어있다. 그 길은 새로 단장하여 어린이와 함께 와도 좋을 것.
마비정 벽화마을과 연계한 '마비정 누리길'.
1구간은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삼필봉을 잇는 1.5㎞ 길로 달서구 월광수변공원에서 올라가면 곧장 마비정마을로 갈 수 있다.
가벼운 등산을 겸해서 걷는다면 길은 아주 수월하다.
3구간은 화원자연휴양림에서 마비정으로 가는 1.4㎞.
마비정에서 가창 정대를 연결하는 옛길을 따라 조성된 2구간 5.5㎞ 누리길은 말을 타고 장에 가거나 피란길로 걸어갔던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솔밭 'ㅓ'자 갈림길에선 이정표가 가리키는 좌측 내리막으로 갈아탄다.
'ㅓ'자 갈림길의 이정표
마비정마을이 내려다 보이자 때맞춰 눈이 내린다.
마을에 내려서자 사각정자(馬飛亭)와 우물(馬飛井)이 반긴다.
왼쪽 모퉁이 솔밭길로 올라가는 입구에 거북바위와 남근갓바위도 보인다.
마비정 정자와 산길입구의...
이정표는 삼필봉 1.5km를 가리킨다.
마비정의 현판과...
마비정 우물.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남근갓바위와 거북바위.
다소 생경스러운 스토리텔링은 계속된다.
골목 민가 담벼락에 그려진 코믹한 벽화 아래에...
춘하추동 계절을 담은 그림도 보인다..
돌배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목이 골목어귀에 서 있다.
이제 눈은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런닝맨'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는...
쏜 화살과 경주를 하였다는 천리마의 비애가 그려져 있다. * 숨은 그림 찾기.
찾았땅.ㅋㅋ
천리마는 쏜살같이는 달릴 수 있어도 쏜 화살보다 빠를 순 없었다. 마비(馬飛)의 비애는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니...ㅠㅠ
이야기는 계속되어...
느림보 우체통의 우편물은 1년 뒤에 배달된다고...
버스종점으로 내려오는 담벼락에도 어김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 안내도.
뻥이요~~
버스에 내려 마을로 올라가는 입구
달성 2번 마을버스는 달성군청에서 오네.
종점 정류장의 노선안내
미나리 삼겹살 파티가 열리는 '들밭 미나리 14호'를 찾아서 마을을 벗어난다.
마비정벽화마을(직진)과 화원자연휴양림,용문사,대형주차장(우측 길) 갈림길이다.
'들판미나리 14호'는 더 내려가야하니 족히 1km는 넘는 거리 같다. 대신에 버스가 회원들을 일일이 태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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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미나리 14호'에 닿는다.
들판미나리 농장의 일련번호는 뒤죽박죽 문을 연 순서대로 정해져 있어 체계적이지 못하다.
셋팅이 완료된 좌석에 앉아 타는 목마름을 굿데이로 축이고...
그제서야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렌즈에 김이 서려...ㅉㅉ)
미나리전도 부치고...
귀가하는 가까운 길가의 '남평문씨세거지'를 찾아간다.
대형주차장과 게이트볼 경기장이 있는 입구.
민속자료 제3호 '남평문씨본리(인흥)세거지'는 19세기 중반 인산재(仁山齋)문경호(文敬鎬/1812∼1874)가 지금의 광거당(廣居堂) 자리에 용호재(龍湖齋)를 건립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그 이후 용호재 주위에 남평문씨 일가가 지어졌으며 이 건물들은 전통 한옥건축의 변화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종 9년(1873) 후은공과 문봉성이 남평 문씨 문중을 위하여 건립하여 후손들이 수학하던 장소이다.
광거당 건물은 丁자형 으로 정면 4간, 측면 5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광거당(廣居堂)이라 편액이 달린 전면의 향우 단간이 앞으로 한 칸 불쑥 돌출하여 누마루가 되었다.
누는 퇴마루보다 한단이 높은데,그 구성이 밖에서 보면 두간처럼 되어 보인다.
'丁'자 건물인 광거당엔 수석노태지관이란 현판도 걸려있다.
광거당 현판은 석촌 윤용구 (1853~1939)가 썼고,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현판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 수석노태지관이란 수석(水石)과 묵은 이끼(老苔)와 연못(池)이 있는 집(館)이라는 뜻.
측면에 높고 낮은 누마루를 빙 둘러얹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산을(山) 등지고(背) 물(水)을 내려다본다(臨)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길지임에도 허한 부분을 나무를 심어 비보(裨補)하였으니 요즘으로 치면 도시계획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흙돌담 길이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자 누군가 "가자가자.문이 모두 잠겨있다."고 하자 일행들은 모두 우루루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니 만큼 조심스럽다.
여름철 능소화가 담 밖으로 내려온 그 골목에는 이파리 떨쿤 능소화만이 담넘어로 고개를 내밀고 있고...
막다른 골목 닫힌 문은 더욱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골목을 돌아나와 만나는 너른 공터에...
안내판 뒤의 열린 문을 들어서면...
수백당(守白堂)이다.
마을담장이 높고 건물또한 우리 전통 기본규격보다 훨씬 크게 지어졌다.
툇마루도 높아 발이 닿지않고, 기둥또한 아주 크다.
마을 공동의 배움터이자 커뮤니티(community) 센터 구실을 하는 건물인데, 작은 마을에서 이 정도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당시 마을의 세력과 경제력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은 1930년대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계급과 직위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망한 뒤에는 이런 기준들이 사라져 재력가들은 크고 화려한 집들을 많이 지었다고...
이 건물도 그 중 하나인데, 우리 전통 한옥이지만 일본강점기의 일본 목수가 참여한 것이 아닐까할 정도로 이색적인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자료를 찾아 주련(柱
元公肇始斯仁著(원공조시사인저) 원공(수봉)께서 그 인을 펴내기 시작하여,
亨道爲通庶類蕃(형도위통서류번) 도를 형통하여 널리 퍼뜨리니 여러 무리가 번성하게 되었으며,
物興俱生皆有得(물흥구생개유득) (이로써) 만물을 일으켜 두루 생명을 갖추어 모두가 만족하더라.
德雖至大不踰閒(덕수지대불유한) 비록 덕은 제일로 큰 것이라 하나 (선비의) 그 한가로움을 이기지는 못하더라.
수백당(守白堂)현판은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 1870-1935)의 글씨
가예문(迦藝門)
대단한 규모로 지어진 건축물로 보인다.
뒤로 돌아서 보면...
경유당(敬遺堂) 현판이 붙어 있다. 현판의 글씨는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썼다.
눈길을 끄는 마루 아래의 문인석.
후손이 묘역에 세울려고 준비하였으나 아무런 석물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으로 인하여 이렇게 사백루(思白樓) 아래에 누운 채로 보관되어 있다.
* 사백(思白)이란 결백을 생각한다는 뜻.
빨리 차로 귀환하라는 재촉에 마을을 벗어나는데,논밭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탑 한 기.
살짝 당겨보니 망가진 석탑의 모습이다.
13세기 인흥사가 있었던 곳이니 석탑은 인흥사의 흔적인 셈. 또한 인흥이란 이름이 붙은 어원이기도 하다.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와...
남평문씨 안내판이 서 있는 도로로 나왔다.
안내판엔 '달성보 찾아가는 길'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요즘 유행하는 걷기길이다.
족필(足筆) -이 원 규-
노숙자가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 볼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