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갈비의 추억
나영애
주말, 그이와 연향이 가득한 연밭을 향해 드라이브 겸 꽃구경 가기로 약속했다. 잿빛 하늘이 염려되더니 집을 나서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우산의 방향 잡기도 어려울 만큼 바람도 동반한다. 다행히 그이가 먼저 어렵겠다며 포기했고, 빗길 운전이 염려되던 나 역시
아쉬움이 가득 남았지만 포기했다. 아쉬움은 저녁 매식으로 이어져, 집 앞 식당의 돼지 갈빗집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왁자하다. 고기가 불판 위에서 꿈틀거리며 익어 간다. 숯 타는 냄새와 실내에서 풍기는 내음이 추억의 등에 불을 켠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다닐 무렵부턴가? 우리 집 외식 메뉴는 회나 돼지갈비였다. 주말이면 심심치 않게 아들과 딸을 데리고
슬리퍼를 신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창3동에 위치한 창동 갈빗집이나 그 근처 횟집으로 매식하러 다녔다. 형편이 넉넉할 때나 셋방살이
때도 남편이 나가 먹자고 하면 먼저 아이들이 들떴고, 나 역시 늘 환영했다. 아버지로서 유일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시키는
시간이었기에 또한 그 시간은 더 쉽게 마음을 열고 부드럽게 가슴에 숨은 것들을 꺼내 놓고, 입에 단것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별다른
훈계를 하지 않아도 그때마다 가족의 띠는 더욱 단단하게 결속되었기에.
아들이 성인이 되어갈 무렵에는 밥상에서의 뒷바라지를 아들이 맡아 했는데, 다정하게도 잘 익은 고기를 밥그릇에 얹어 주기도 했다.
술도 한잔 씩 가르치기도 하고 서로의 잔에 술 따르며 끈끈한 부자의 정이 말없이 오고 갔다. 아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서부터,
월급날이면 퇴근 시간에 가족을 부르고 돼지양념갈비를 사곤 했다. 시간이 달리기했을까? 어느새 아들의 자리는 비고, 의정부에서
식사하고 있지만, 마음은 지난날의 창동 그 갈빗집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눈에서 멀어 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
했던가? 그러나 멀어졌다는 활자가 이런 경우엔 별로 어울린 것 같지 않다. 성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았기에
그 위대한 과업을 이뤄야 할 것이므로! 그렇게 자신을 위로 하지만 여전히 허전하다. 애들의 상황을 알면서도, 마치 아들네는 김치만
먹고, 우리는 고기를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들 없이 절대 외식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1년 9개월
만에 남은 가족끼리 먹고 있다.
단란하고 행복했던 지난 시간, 같은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기에 그립지만, 그런 시간이 오늘의 튼실한 가정을 하나 더 탄생시켰다고 믿는다.
다음 주면 아들 내외가 온다. 땀 많이 흘리는 여름, 몇 가지 한약을 넣고 해물 닭백숙으로 기운을 돋아 줘야 하겠다. 아니다. 추억을
되새기며 지난날이 아닌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아들은 내 곁에서 돼지 갈비를 먹는 그 시절에 있다고, 확인하며 돼지갈비를 먹어야 하겠다!
첫댓글 글의 숲을 거니실 때 잡초들이 발을 붙잡거든 댓글 남겨 주십시요.
사정 없이 낫을 휘두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꽃 달드림.
훈훈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고 지금도 그래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자식은 그들 나름의 세상을 엮어가고 있으니 조금은 홀가분하게 살려고 합니다.
자식이 내 품을 떠나면 하나의 우주가 되는 것이니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사랑이야 어디 끝이 있겠습니까?
출출한 새벽에 돼지갈비 굽는 생각을 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홍해리 선생님, 자식에게는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하다 느끼나 봅니다.
저도 늘 미안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사는 것이
그들의 몫이고 그것으로 인해 삶이 즐겁고 보람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겸손한 말씀에 존경의 마음 올리며 우기에 강녕하시길 빕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을 쫓아 허덕이다 보니 가족들과 저렇게 단란한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여유있는 자세로 가족에게 임하여야 겠습니다.~
좋은 가정 꾸려나가시는 나영애님의 가정에 늘 웃음 만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김영원 님, 긴 글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지만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고
하기 싫은일 안할 수 있는 날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