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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열혈사제'와 '나쁜형사'의 공통점은 금권(金權)과 경찰의 유착이 줄거리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종영된 '나쁜형사'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돼며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신부복(神父服)을 입은 사제가 불법과 비리에 흥분해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날려 '천주교 신도'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열혈사제'도 결국엔 악에 대한 응징으로 끝날 것이 틀림없다. '나쁜형사'에선 광역수사대장이 금권의 하수인이다. '열혈사제'에선 아예 관할 경찰서장이 불법커넥션의 '몸통'중 하나로 등장해 부하들의 수사를 방해한다.
시청자들이 이런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맞춰 터진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의 경찰관 유착 의혹은 좋은 실례다. 작년 11월24일 강남구 역삼동 르메르디앙 서울호텔 지하의 최고급클럽인 ‘버닝썬’에서 손님인 김 모씨가 클럽 이사와 보안요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해 늑골이 부러지는 등 상해를 입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추가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이를 전면 부인하는 경찰, 폭행은 인정하나 김 씨의 범죄로부터 시작됐다는 클럽 측의 삼자 공방이 벌어지면서 경찰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빅뱅’ 멤버인 승리가 운영하는 버닝썬은 매일 금수저들의 호화스런 파티가 이어진 곳이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버닝썬의 1천명을 수용하는 홀에는 ‘부티’나는 고객들로 꽉 찰만큼 호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폭행뿐만 아니라 마약을 매개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불법행위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르메르디앙서울 호텔의 대표 최 모 씨가 강남서 경찰발전위원회 위원이었다.
경찰은 버닝썬이 미성년자 출입 사건 무마를 위해 '(경찰에)돈을 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조폭출신 인물이 버닝썬 측으로부터 민원 해결 요청을 받고 경찰관들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데 관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경찰은 지난 21일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 고리로 지목된 전직 경찰관들을 긴급체포한 바 있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버닝썬과 경찰의 공생관계가 지속되면서 '손님 폭행과 마약유통'은 조용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에서 자치경찰제 도입에 속도를 낸다는 보도를 보면서 버닝썬^경찰유착의혹이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자치경찰제는 올해 안에 세종시와 제주도등 5개 시^도에서 시범 실시하고, 오는 2021년 전국으로 확대 시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하고 경찰의 설치·유지·운영 등에 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 제도는 '지방분권으로 가는 길'의 필수 단계로 꼽힌다. 개정이 되면 시^도지사는 자치경찰본부장,·자치경찰대장 등을 임명 할 수 있고 독립 합의제행정기관인 '시^도 경찰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를 통한 자치경찰도 운영할 수 있다. 자치경찰제에 대해선 '지역맞춤형 경찰서비스'와 경찰혁신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이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토호 권력들과의 유착으로 인한 부패 가능성이다. 또 정치권 인사들의 간섭으로 경찰이 휘둘릴 수 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닝썬 집단폭행'과 같은 사건이 지역에서 발생한다면 과연 쉽게 수면위로 드러날 수 있을까. 이권(利權)을 지키고 탐내는 토호권력들은 속으로 자치경찰제를 환영할지 모른다. 르메르디앙 서울호텔 대표처럼 이들이 경찰위원회 위원이 돼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인사권은 광역자치단체장에게 있지만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과 토호권력들의 입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충청권에선 지금도 지역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대형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를 앞두고 아예 총경출신 경찰간부 출신을 영입해 사장으로 앉힌 기업인도 있다. 경찰이 지역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지방권력에 줄을 대고 유착된다면 자치경찰제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 '자치경찰제'는 필요한 제도이긴 하지만 시기상조는 아닌지 깊이 따져봐야 한다. 경찰이 '버닝썬'처럼 금권을 가진 토호권력과 지방정치의 도구화가 된다면 자치경찰제도의 취지는 빛이 바랠 것이 뻔하다.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