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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김제 만경 성모암 (聖母庵) 답사
➡소재지 : 전북 김제시 만경읍 화포3길 54-9
자유인 조동화는 입소문을 듣고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김제 만경의 작은 산 유양산자락의 성모암을 답사하였다.
김제 만경의 성모암은 익산에서 약 15km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주말이면 전국에서 30-40대의 관광버스가 전국에서 몰릴 정도로 방문객들이 찾아와 북세통을 이루며 성모암에 있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를 참배하며 만경의 명소로 떠 오르고 있다고 한다.
성모암은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 명종 17년)가 어머니 '성모'를 모신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의 의미는 "자손 없어도 천 년 동안 향화를 올릴 명당자리란 뜻"이며 불거촌에 어머니 묘를 모셨다.
진묵대사(震默大師)는 조선 선조~인조 때 서산 대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뛰어난 고승이지만 깊은 산중에서 은둔하고 지낸 까닭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아 기행이 많은 전설상의 인물처럼 돼버렸다.
그의 부도는 전북 완주군 용진면 봉서사(鳳棲寺)에 있다.
저술은 없으나 조선 후기의 승려 의순(意恂=초의선사)이 구전되어오던 것을 정리하여 진묵대사에 대한 유일한 자료인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라는 책을 남겼다.
천혜의 명당터로 알려진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무덤에 참배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김제 만경의 나지막한 산 유양산 자락의 성모암에는 우리나라의 내노라하는 정치가들이 찾은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하였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성모암을 답사하면서 규모가 사(寺)로 불려야 할 정도로 큰 절이이라고 느껴졌다.
'사(寺)'와 암(庵)'이 궁굼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통상적으로 큰 절은 사, 작은 절은 암이란 이름을 붙인다.
명산에 큰 절이 세워지고 사세를 넓혀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큰 절 주변으로 작은 절이 생기게 마련이다. 본찰인 사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 절에는 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와 같이 규모가 큰 대찰에는 으레 10개 이상의 산내 암자가 존재한다. 곧 암자는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을 가리킨다. ‘庵(암)’의 본래 의미는 ‘마을과 일정하게 떨어진 곳에 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임시 움막’이다.
김제 만경의 성모암은 세월이 흐르면서 규모가 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보통 스님의 부도가 있는데, 성모암 사찰에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 진묵대사의 어머님 묘 봉분이 안치된 것이 특징이다.
조동화의 벗님들!
10월도 저물어가고 11월이 오는 겨울의 문턱에서 건강관리 잘하시고 행복해야지요.
감사합니다.
<진묵대사 어머님의 묘,
비석에는 진묵대성사어머님묘라고 세겨져 있으며, 묘 우측의 묘비에는 "震默大聖師 尊妣之墓(진묵대성사 존비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妣(비) = 죽은 어머니 비>
묘 앞 좌측에는 소원성취함에는 수십개의 대형양초가 1년내내 향화가 꺼지지 않고 향불이 타 오른다.
사람들은 진묵대사 어머님묘에 소원성취 불공을 드리면서 진묵대사의 사모곡을 생각하며 참배하며 양초에 광명의 불을 밝히리라.
<소원성취 참배요령을 유심히 살펴보니
자세를 바로잡고,
처음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2번 반복후
가슴 높이에서 양손을 모읍니다.
살며시 두 손을 모으고 정성껏 기도합니다.
두 손을 내리고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끝납니다.>
<진묵대사 어머님의 묘 아래 우측에 양초 무인판매대가 있는데, “무자손천년향화지”에 참배하는 참배객들은 소원성취를 이루고자 대형양초 1개 10,000원에 구입하여 양초에 불을 붙이고 참배하고 간다.>
진묵대사 모친 49제 제문
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태중시월지은 하이보야 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
胎中에서 열 달을 품으신 恩惠를 어떻게 갚으리까. 膝下에 三 年을 키우심도 잊을 길 없나이다.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猶爲嫌焉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何其短也
(만세상갱가만세 자지심유위혐언 백년내미만백년 모지수하기단야)
萬歲 위에 다시 萬歲를 더 살지라도 아들의 마음은 오히려 不足하온데 百 年 안에서 百 年도 채 못 사셨으니 어머님의 壽命은 어찌 이다지도 짧으십니까.
簞瓢路上行乞一僧 旣云已矣 橫釵閨中未婚小妹 寧不哀哉
(단표로상행걸일승 기운이의 횡차규중미혼소매 영불애재)
표주박 하나로 길거리에 乞食하며 사는 저는 이미 말할 것 없사오나, 閨中에 혼자 남은 어린 누이同生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上壇了 下壇罷 僧尋各房 前山疊 後山重 魂歸何處 嗚呼哀哉
(상단료 하단파 승심각방 전산첩 후산중 혼귀하처 오호애재)
이제 벌써 上壇佛供도 마치고 下壇 祭祀도 끝나서 스님들은 저마다 自身들의 處所로 돌아갔습니다. 앞山은 疊疊하고 뒷山 또한 겹겹인데 어머니의 魂은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嗚呼라. 슬프고 슬프도다.
<대웅전 앞에 서다.
대웅전 주련의 진묵대사의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진묵대사의 어머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담겨 있도다.
道傳寂寞三更月(도전적막삼경월) : 도를 위한 마음은 삼경의 마음처럼 적막하기만 하다.
愁送江山萬里風(수송강산만리풍) : 근심, 걱정, 번뇌의 마음은 만리 밖으로 날리어 보낸다.
聖母宮殿香雲開(성모궁전향운개) : 성모궁전의 향내음은 구름따라 만리에 퍼지고
靑雲衲子雲集來(청운납자운집래) : 맑고 청정한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행 정진하리라.>
봉서사(鳳棲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 사이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절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진묵대사부도(震默大師 浮屠)를 비롯한 몇 기의 부도가 있으며, 1979년에 세운 일붕선시비(一鵬禪詩碑)가 있다.
진묵대사(震默大師)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는 고시레라는 말이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년] 어머니 고씨 부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진묵대사는 전라북도 김제 만경현 불거촌에서 태어난 유명한 승려이다.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속명은 일옥(一玉)으로 1562년(명종 17)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다.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진묵대사가 태어난 화포(火浦)는 불거촌(佛居村)의 다른 이름으로, 즉 ‘불(佛)’의 음을 취한 뒤 불을 뜻하는 ‘화(火)’자를 쓰고, ‘거(居)’가 개로 음이 변한 뒤 갯마을을 뜻하는 ‘포(浦)’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불거촌은 진묵대사와 같은 고승(高僧)을 낳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진묵대사는 7세에 출가하였는데 그 후로 일생 동안 수많은 신비스러운 일을 행하면서 살았다. 대개 출가한 스님들은 가족과 맺었던 인연을 다 끊어버리는 것이 상례였지만, 진묵은 출가한 후에도 늘 어머니와 누이들과 깊은 사랑을 나누면서 살았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힘과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누이들과도 피를 맺은 형제로서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진묵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다하였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간절하게 드러냈다.
진묵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들인 자신과 두 누이가 모두 세상을 떠나더라도 길이길이 모든 사람들의 향과 참배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자손 없어도 천 년 동안 향화를 올릴 명당자리란 뜻]의 불거촌에 어머니 묘를 모셨다. 지금도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의 성모암에는 진묵대사와 그의 어머니가 모셔져 있다. 이 성모암에는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와 묘비가 단아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는 ‘진묵대성사존비지묘(震黙大聖師尊妣之墓)’라는 팻말이 서 있고 전통사찰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1562년경 조선 명종 때 진묵대사에 의해 봉안된 묘소, 동양의 소석가모니 칭송을 받던 대사는 노모를 이곳 만경현의 북쪽 불거촌(佛居村)에 묘를 봉안하고, 이곳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천하 명당인 ‘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 칭하고, 모친 묘에 제사를 지내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것이니 향과 초를 올려 참배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의대선사가 지은 『유적고(遺蹟攷)』에서는 “대사는 동양의 소석가이시지만 효를 실천한 민족의 대스승이시다.”라고 칭송하였다. 모친의 성은 ‘제주고씨’이며 훗날 조의씨(調意氏)라고 존칭해 왔다. 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이곳 묘에 경건히 참배하여 효에 대한 숭고한 정신문화를 유지 계승하기 위해 사단법인 진묵대사 유적진흥회에서 사적지 1호로 지정하였고, 진묵대선사가 모친을 위하여 지은 49제 제문이 전한다.<디지털김제문화대전>
성모암(聖母庵)
➡주소: 전북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389 (화포3길 54-9)
성모암(聖母庵)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유양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일제강점기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華之地)로 전해오는 전라북도 지역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모친의 묘소에 세워진 암자이다.
성모암이 건립되기까지 내력을 살펴보면 1927년 5월에 이순덕(李順德) 화부인(華夫人)이 계룡산 신도안에 있다가 고향인 임실로 가는 도중 지금의 성모암 인근 마을에 유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서쪽 하늘로부터 흰 가마가 내려오더니 한 스님이 나타나 이 가마를 타라고 하였단다. 그 가마를 타자 공중으로 날아올라 어느 묘소 앞에 내리더니 쉬었다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신심이 일어 집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 주인이 인근에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곳이 영험한 곳으로 소문나 있으니 참배하고 소원을 빌어보라고 귀띔해 주었다는 것이다.
날이 밝아 묘소를 찾으니 봉분은 무너지고 잡초는 우거져 찾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이에 바로 묘소를 사초(莎草)하고 시묘하면서 지방유지 신도들과 봉향계(奉香契)를 조직하여 정성스레 보살폈다. 그 후 사람들이 묘소 밑에 제각을 건립하고 고인이 된 이순덕 화부인의 공적비를 세운 것이 성모암의 시초가 되었다.
성모암은 근래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보전, 산신각, 고시례전, 종각 등의 건물을 조성하였다.
봉서사(鳳捿寺)의 진묵대사(震黙大師)
전라북도 완주군 소재 봉서사에 가면 진묵대사에 대한 소개 글이 있다.
이 글에 의하면
진묵대사는 조선조 명종17년(1562)에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서 태어나 1568년 7세 때 봉서사(전북 완주군소재)로 출가 하여 인조11년(1633년) 완주 봉서사에서 세수 72세로 입적했다.
진묵대사의 이름은 일옥이며, 진묵은 그의 호다. 주로 완주지역 봉서사에서 불법을 수행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진묵대사(震黙大師) 오도송(悟道頌)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 하늘은 이불로 땅은 자리로 산은 베개로 삼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 달은 촛불로 구름은 병풍으로 바다는 술통으로 삼아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 크게 취해 흔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 행여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로구나.
이 오도송(悟道頌)은 진묵대사(震黙大師)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式) 선시(禪詩)다.
기구(起句)의 스케일만 보더라도 대사(大師)의 수행 깊이가 무애(無礙)와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잠자리로, 산을 베게로, 달을 등잔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닷물을 술통으로 삼아 거나하게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는데 장삼 자락이 곤륜산(崑崙山)에 걸릴까 염려(念慮)가 된다.’는 발상이 그것을 대변한다.
곤륜산(崑崙山)은 세속(世俗)의 규범(規範) 잣대다.
속가(俗家) 연(緣)은 전북 김제 만경읍 화포리 불거촌(佛居村)에서 조의씨(調意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잃고 7세에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로 출가(出家)했다.
대사(大師)가 출생(出生)한 집은 조앙사(祖仰寺) 사찰이 되었다.
성모암(聖母庵)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절인데,
無子孫千年香火不絶之地
‘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불이 끊어지지 않는 명당(明堂) 터’다.
진묵대사(震黙大師)는 출가를 했어도 속가 어머니를 절에 모시고 살았다.
출가하면 속세와의 연을 끊는다는 계율보다 천륜을 더 중시했다.
일화에 의하면 여름철에 모기가 많아 어머니가 모기에 물려 잠을 못 주무시고 괴로워하자, 대사께서 알몸으로 어머님 곁에 누워 모기를 유인하였다고 하니, 대사의 지극한 효심(孝心)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진묵대사께서 어머니 49재 때 쓰고 읽은 제문(祭文)이다.
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 猶爲嫌焉,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 何以短也, 簞瓢路上行乞一僧 旣云去矣, 橫釵閨中未婚小妹 寧不哀哉, 上壇了下壇破 僧尋各房, 前山疊後山重 魂歸何處 嗚哉哀哉
'태중에 열 달 동안 품으신 은혜는 어떻게 갚사오며,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는 결코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에 만세를 더 사신다고 해도, 자식의 마음에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백년(百年) 중에 백년(百年)도 다 채우지 못하셨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표주박 하나로 거리에서 걸식하는 저야 이미 스님이 되어 갔다고 하지만, 아직 비녀도 꽂지 못한 채 시집 못 간 누이동생은 어찌 불쌍하지 않습니까?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 제사도 마쳐서 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중한데, 어머님 혼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참으로 슬프고 슬픕니다.'
부모니의 은혜(恩惠)를 96자 짧은 글 속에 다 응축(凝縮)시킨 필력을 보면 수도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전하는 열반할 때의 일화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도 알 수 있다.
제자를 모아 놓고 내가 몇 월 며칠 열반하겠다, 하니 시봉사미(侍奉沙彌)가 스님! 그날은 안 됩니다. 정초(正初)라 바빠서, 안됩니다. 그랬구나! 그럼 언제 가면 되겠느냐? 다음날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날이 돌아오자 열반에 들려고 하니, 사미가 또 안 됩니다, 그날은 49재가 있어서 바쁩니다, 49재 끝나고 가십시오, 그렇겠구나! 하고 49재 마치고 열반하려고 하니, 큰스님께서는 누구의 법맥(法脈)을 이었습니까? 제자들이 물었다, 비록 명리승(名利僧)이기는 하지만 서산대사(西山大師) 법을 원사(遠嗣)하였다고 하고 열반에 드셨다.
대사가 남긴 저술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진묵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逸話) 등을 기록한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라는 책을 남겼다.
인생은 둥글게 둥글게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결정하거나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고
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든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행복하고
어느 정도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막막합니다.
이러면서
나이가 들고 건강을 잃으면
"아! 이게 아닌데..."하는
후회의 한숨을 쉬겠지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열심히 살까요.
어디를 향해 이렇게
바쁘게 갈까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요.
결국, 나는 나,
우리 속의 특별한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 고통,갈등 ,불안, 허전함은
모두 나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입니다.
참 나를 알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서,
나만의 특별함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렇게 바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아무 목적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
고유의 의미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찾으면
그날부터 그의 삶은
고통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열정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뀝니다.
이것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에서 만나는
가장 극적이 순간이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여 오래 입지 못하듯이,
아무리 좋은 일도,
때에 맞지 않으면 불안하듯이,
아무리 멋진 풍경도
마음이 다른데 있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으면,
늘 불안하고 흔들립니다.
하지만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아주 멋진 환희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게 되고
행복과 기쁨도 이때 찾아 옵니다.
- 좋은글 중에서 -
《삶의 보람과 즐거움》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 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을 맑게 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게 내 눈 반짝이네
한 줄의 글귀에 감명 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 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마디에
우울한 기분을 가벼히 할 수 있으며
보여 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 일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 하다는 것을…..
오늘이라는 좋은 날에…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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