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구경
임병식 rbs1144@daum.net
모처럼 시간을 내서 찾아간 수석 박물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나는 수석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빼어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사람의 집념이 이런 성취를 이룰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내가 찾아 간 곳은 ‘세계순천수석박물관.’ 이웃고을에 대규모 수석관이 들어섰다는 말을 진즉 들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못 내다가 마침내 가볼 기회를 얻었다. 수석관은 도시 외곽인 상사면 오실리에 있었다. 도로변에 거대하게 깎아 세워놓은 표지석이 안내 역할을 해주었다.
3만평 부지 안에 조성된 수석 전시관. 그러나 이날의 발걸음은 자칫 헛걸음을 할 뻔 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상시 문을 연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는데 막상 수석박물관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난감했다. 이런 상황을 맞아 보통 일반 관람객이라면 그냥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인가. 누구라도 일부러 찾아간 발걸음이라면 쉽게 포기하기는 않겠지만 나는 더 하였다. 수석광이란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닌가.
그 길로 돌아서지 않고 잠긴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그러자 자람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낯익은 목소리였다. 쪽문을 통해 대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박병선 관장과는 그간 일면식이 없으나, 동영상을 통해 많이 보았고, 그래서 목소리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결례를 무릅쓰고 다가가 누구라고 말을 하니 반갑게 맞았다. 수석관은 수개월 전에 개관을 했으나 아직도 손볼 부분이 있어 문을 닫아두고 있다고 했다. 잠시잠깐 대화를 나누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 수석박물관은 거금을 들여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다고 한다. 당초 예식장으로 쓰던 곳인데 조경을 보충하고 건물은 내부를 수리하여 놓았다고 한다. 들여간 돈만 100억대의 돈. 거기다가 수석만 8,000점이라고 한다. 그것을 구입하려 40여 년간 전국각지를 돌아다니고 좋은 수석을 찾아서 중국을 수십 번을 다녀왔다고 한다.
좌대값만 해도 수억이 들어갔다고 하니 놀랍다.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전부터 한국에 세계제일의 수석관을 세울 계획을 가직 있었다고 한다. 그런 돌이 지금은 몇 천억이 넘을 거라고 한다. 한 일례로 에피소드를 전해주는데 얼마 전 중국에서 사람이 와 3천억 원에 넘기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호히 거절했단다. 얼마나 수석사랑이 지극한지를 엿볼 수가 있다.
그가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고 조족지혈이다. 그렇지만 수석을 좋아하고 아끼는 측면으로 보면 결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로부터 이런 저런 말을 듣자니 그가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끈기와 인내와 집념이 보여준 한사람의 애석 인에게 공감하며 흡족한 마음이 되었다. 이 얼마나 수석을 아끼고 애호라는 사람인가.
전시관은 일층과 이층으로 구분하여 모두 13개 태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크게 보아 산수석과 물형석을 나눌 수 있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산수경석, 그중에서도 그림돌이 주를 이루고 물형석도 인물석, 형상석등 다양했다.
음식관을 보면 동파육을 비롯하여 시루떡 같은 돌, 각종 나물을 닮은 돌이 수두록했다. 십자가 형상을 한 것도 수 십 개, 1,2,3,4 숫자석도 수십 개였다. 전직 대통령을 닮은 돌도 그럴싸하고 태극기와 한반도를 닮은 문양석도 시선을 끌었다.
하나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달밤에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 망루위에 두둥실 뜬 달, 해변을 노니는 백조, 나뭇가지에 앉은 한 쌍의 비둘기, 풍경화 같은 소나무와 달. 하나같이 눈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壽石이라는 글씨는 무엇이며 一石은 또 무엇인가. 지게에 나무를 지고 내려오는 나무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왕관 쓴 왕비의 모습.
그 중에서도 나는 첩첩상중에서 흘러내리는 계류폭포, 산허리에 걸린 반달, 험한 바위산 위의 정자, 길게 뻗어 내린 소로 길 풍경은 머릿속을 어찔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돌을 모을 수가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보다도 나는 조물주의 조화와 신비를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어느 신필이 붓을 들어 이런 풍경을 펼쳐놓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고 보면 수석 감으로 채택된 것은 수많은 붓 칠 가운데 명품하나가 나오듯이 그것도 닳고 닳은 돌중에서 극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이런 돌은 주은 사람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수백 번 돌밭에 나가 수천 번을 돌을 뒤집었으리라.
수석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낸 격이다. 극적으로 만나서 극적으로 취사선택 되어진 것이다. 그러니 인연으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점지해주었다고 할까.
그러한 것이 선택되어져서 전시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한 경험이며 특별한 인연인가.
세상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돈을 벌려고 힘쓰고 나름의 보람된 일을 찾아 매달린다. 그런 일중에 박병선 애석인이 벌려놓은 수석박물관도 큰 의미가 있지 않는가한다. 이렇게 해놓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돌을 구경하겠는가.
나는 수석박물관을 보고 나오면서 그가 한없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내내 보고나온 돌들이 뇌리 속에 영상으로 맺혔다. 그래선지 모처럼 먼지떨음 하고나선 발걸음이 내내 가볍고 즐거웠다. ( 2023)
첫댓글 귀한 장소에서 귀한 만남이 이루어지셨군요 진기한 수석과의 만남 그리고 수석의 진인과의 조우가 애석인이신 선생님께 참으로 뜻 깊은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자연의 예술작품은 천필의 불가사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예술활동도 크게는 자연의 재발견이라 여겨집니다
그날의 수석방물관 탐방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석은 무엇보다도 조물주가 만들어낸 천물이라는데 의미가 큰데
수많은 명품 수석을 직접 보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순천을 빛낼 명승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