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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6 더위에 하도 뎌서 새벽바람을 3일째 쐬고 있습니다. 같은 코스인데도 훨씬 가벼운 건 습도 탓일까요? 기분 탓일까요? 수제비 집 앞에 롯데 캐슬 주상복합이 분양을 하는 모양입니다. 처음엔 20만도 안되는 구리에 뭔 놈의 주상 복합 아파트냐고 건성으로 지나다녔는데, 오늘 보니 돌다리와 꽃길 사이에 구리역-한양대 구리 병원-삼성 생명까지 다 있습니다. 그야말로 역세권입니다. 700세대짜리 분양가가 12-9억 대니까 왕숙천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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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관심 없고 숍을 하나 더 하고 싶은데 상권이 아직까지는 전통시장을 끼고 꽃길이나 돌다리 쪽이 더 나은 것 같긴 합니다. <오디세이 2026>이 암표까지 극성일 만큼 장안에 하도 떠들어 대서, 극장을 가고 싶었는데 러닝 타임이 장장 3시간이라서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놀란(1970년생) 감독이 어떤 위인이지 궁금하긴 합니다. <다크 나이트> ,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를 공부하듯(웜홀, 양자역학) 보긴 했는데, 크게 감동을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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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허구이지만 모든 역사는 왜곡된다는 점에서 신화야말로 진실의 보고인지도 모릅니다. SF 영화를 홍콩 영화 취급을 하는 바람에 <스타워즈> <아바타> 같은 명화를 못 본 게 아니라 안 봤다는 것 아닙니까? 허걱. 창세기를 신화로 봐야 한다는데 동의한 지가 1년이 채 안 됐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뒤늦게 발바닥에 땀나게 쫓아다니며, 명화를 수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놀란이 부모님 덕에 <스타워즈>를 남보다 일찍 보았다니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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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는 오브제일까요? CD일까요?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으로 시작되어, 그리스 연합군이 10년에 걸쳐 트로이성을 공격하면서 벌어진 고대 최대의 전쟁입니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그리스인들은 기발한 계략을 사용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뛰어난 목수이자 권투선수였던 에페이오스가 속이 빈 거대한 나무 말을 만들고, 그 안에 병사들을 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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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철수한 척하며 테네도스 섬으로 이동한 그리스군은, 남겨진 병사 시논을 통해 트로이인들에게 “이 말(목마)은 아테나 여신(아프로디테)께 바치는 신성한 제물”이라고 설득하게 합니다. 비극적으로도, 트로이의 예언자 라오콘과 카산드라는 이를 경고하지만 무시당하고, 트로이인들은 승리의 기념물이라며 말 안으로 들여놓습니다. 그날 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성문을 열었고, 그리스군은 손쉽게 도시를 점령하며 전쟁을 끝냅니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더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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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로 황금 사과를 던진 사건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그 사과를 놓고 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다투게 되고, 심판자로 선택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헬레네를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녀를 선택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과 하나가 수많은 신과 인간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기폭제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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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는 스파르타를 찾아가 헬레네를 유혹하여 데려오고, 그녀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그리스 연합군을 조직해 트로이를 공격합니다. 전쟁의 와중에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파리스와 아킬레우스, 영웅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복수의 순환이 이어집니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목마 계략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트로이는 내부의 경계 실패로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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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트로이 목마’는 오늘날에도 외부에서 침투한 속임수로 내부가 무너지는 현상을 일컫는 상징적 용어(Trojan Horse)가 되었습니다. 말(Horse)이라는 존재는 고대 전쟁의 상징이자 인간 감정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니체가 안은 말, 그리고 트로이 목마 속에 숨은 병사들 모두는, 힘의 논리와 고통, 감추어진 진실이 공존하는 세계를 은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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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는 <일리아스>의 뒷이야기에 해당합니다.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끔찍한 상처를 입힌 오디세우스에게 분노한 포세이돈이 그의 뱃길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온갖 시련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길고 험난한 여정을 ‘오디세이’에 빗대어 말하곤 합니다. 이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깊은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적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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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고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단순히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소망과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위대한 서사시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10년간의 치열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직후입니다.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그리스의 승리를 이끈 영웅,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이제 그가 할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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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귀향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장님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이죠. 신의 저주는 그의 배를 정처 없이 떠돌게 만들었고, 고작 몇 주면 도착할 거리였던 그의 여정은 무려 10년이라는 기나긴 고난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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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는 가장 인간적인 소망인 ‘귀향’이라는 목표를 향한 처절한 분투에서 시작됩니다. 오디세우스의 10년간의 항해는 온갖 기상천외한 위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 키클롭스의 동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라고 속여 위기를 탈출하고,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끄는 세이렌의 바다를 지날 때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어 유혹을 이겨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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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험들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주인공은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뛰어난 ‘지략’과 ‘인내심’으로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이 위대한 서사시는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괴물과 유혹들을 이겨낼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인간의 지혜와 굳은 의지임을 가르쳐 줍니다. 주인공이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의 고향 이타카에서도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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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탐욕스러운 구혼자들이 몰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하며 왕국을 제멋대로 차지하고 있었죠. 그들은 왕의 재산을 탕진하며 매일같이 연회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현명한 아내 페넬로페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그것을 푸는 기지를 발휘하며 끈질기게 시간을 벌었고, 어느덧 장성한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직접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처럼 이 이야기는 한 영웅의 모험기일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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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정을 지켜내는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나긴 여정 끝에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고향 이타카 땅을 밟습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남루한 거지꼴로 변장하여 자신의 집에 들어섭니다. 이는 20년의 세월 동안 누가 자신의 편이고 누가 변절했는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그의 마지막 지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아내가 ‘주인공만이 당길 수 있는 활’을 쏘는 자에게 시집가겠다고 선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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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오직 그만이 쏠 수 있는 활로 오만한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하고, 마침내 왕국과 가정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이 통쾌한 복수는 오랜 기다림과 시련 끝에 찾아오는 정의의 실현을 보여줍니다. <오디세이>는 단순히 한 영웅의 귀향 모험담이 아닙니다. ‘오디세이’라는 단어 자체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의미하게 된 것처럼, 이 작품은 인생이라는 긴 항해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타카’ 즉, 마음의 고향이자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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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만나지만,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고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되찾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호메로스가 남긴 이 고전 서사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인생의 모든 고난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욱 단단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앞에 놓인 삶의 파도를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떠나는 것인가, 돌아오는 것인가?
2.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인생을 여행하는가, 아니면 그 여행을 통과하며 ‘돌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가? 2026년 더위에 하도 데어서 새벽바람을 3일째 쐬고 있습니다. 같은 코스인데도 몸이 훨씬 가벼운 것은 습도 탓일까요, 기분 탓일까요?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인간은 기온 속에서만 걷는 존재가 아니라 기분과 기억 속에서도 걷는 존재니까요. 수제비집 앞에는 롯데캐슬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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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20만도 안 되는 구리에 웬 주상복합인가 싶어 건성으로 지나쳤는데, 오늘 보니 돌다리와 꽃길 사이에 구리역, 한양대 구리병원, 삼성생명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700세대 규모에 분양가가 9억~12억 대라니 왕숙천보다 싸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는 별 관심이 없고 숍을 하나 더 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전통시장을 끼고 있는 꽃길이나 돌다리 쪽 상권이 더 좋아 보입니다. 도시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길이 생기고 건물이 올라가고 상권이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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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시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에게는 이상하게 돌아갈 곳이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장안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극장에 가보고 싶기는 한데 러닝타임이 장장 3시간이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도대체 어떤 위인이기에 이렇게 거대한 영화를 계속 만드는지도 궁금합니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를 웜홀이며 양자역학 공부하듯 보았지만, 나는 특별한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을 통과한 인간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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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이미 3천 년 가까이 전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가 던졌습니다.『오디세이』는 『일리아스』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10년 동안 계속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트로이 목마의 지략으로 승리에 기여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곳, <이타카>입니다. 그러나 귀향은 또 다른 10년이 걸립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한 대가로 그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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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는 바다를 떠돌게 됩니다. 키클롭스, 세이렌, 키르케, 칼립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그의 앞에는 끊임없이 괴물과 유혹과 죽음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 같은 압도적인 힘의 영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메티스(mētis), 즉 지략과 상황 판단의 지혜입니다. 키클롭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라고 속이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돛대에 묶어 파멸을 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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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욕망이 없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인간입니다. 여기서 『오디세이』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철학이 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욕망을 제거하는 초인적 의지가 아니라, 때로는 <자기 자신을 돛대에 묶을 줄 아는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 행동을 제한하는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이렌 이야기는 단순한 괴물 이야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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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괴물은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디세이』의 더 깊은 주제는 모험이 아니라 귀향(nostos)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대륙의 발견도, 더 거대한 왕국도 아닙니다. 그는 왕이고 전쟁영웅이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자기 침대와 아내와 아들과 고향입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서양 최초의 거대한 모험담이면서 동시에 이상할 만큼 반(反) 모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토록 멀리 떠나는 이유가 결국 돌아오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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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말하면 이타카는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내가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20년을 떠돌고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과연 떠나기 전의 오디세우스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전쟁을 겪었고, 동료들을 잃었으며, 신들의 변덕과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아름다운 여신들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세상을 경험한 뒤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출발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귀향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돌아왔지만, 돌아온 사람은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원점회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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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로 나갔다가 경험과 부정성을 통과하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은 이미 이전의 자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디세이』의 구조를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출발 → 상실 → 방황 → 시련 → 자기인식 → 귀환 그러니 귀환은 출발점의 반복이 아니라 <변화된 자기 자신과의 재회>입니다. 이 점에서 페넬로페도 중요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공간을 여행했다면 페넬로페는 시간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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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다시 풀어버립니다. 오디세우스의 영웅성이 바다를 건너는 능력이라면, 페넬로페의 영웅성은 무너지는 시간을 견디는 능력입니다. 한 사람은 떠나면서 사랑을 지켰고, 다른 사람은 머물면서 사랑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오디세이』는 남성 영웅 한 사람의 모험담을 넘어 떠난 사람과 기다린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귀향의 서사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오지만 영웅의 모습으로 입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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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로 변장합니다. 누가 자신을 배신했고 누가 자신을 기다렸는지를 확인한 뒤 활을 들고 구혼자들을 제거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는 여기서 한 번 더 질문해야 합니다. 구혼자들의 처단은 정말 정의의 완성일까요? 고대 영웅서사의 세계에서는 질서를 파괴한 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는 폭력이 다시 폭력을 낳는 문제도 보입니다. 실제로 『오디세이』의 마지막에는 복수의 연쇄를 끝내기 위한 신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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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중요한 대목입니다. 진정한 귀향은 적을 모두 죽이는 순간이 아니라 복수의 시간이 끝나는 순간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디세이』를 단순한 자기 계발서처럼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고난이 언제나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않습니다. 어떤 고난은 사람을 무너뜨리고, 어떤 상실은 평생 상처로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을 어떻게 통과하고 해석하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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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를 성장시킨 것은 파도가 아니라 파도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실패하고, 욕망을 절제하고, 끝내 자신이 돌아갈 곳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디세이』의 핵심을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빠른 항해가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는 항해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이타카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신앙이며, 누군가에게는 오래 붙잡아온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결국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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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파도를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세이렌을 만나고, 키클롭스를 만나고, 길을 잃고, 때로는 표류하더라도 내가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똑같은 길을 걷는데 어제보다 오늘 몸이 가벼운 것도 어쩌면 작은 오디세이인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왕숙천이고 같은 길인데 그 길을 걷는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시도 변하고, 상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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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에는 변하면서도 끝끝내 돌아가야 할 어떤 중심이 있습니다. 인생은 멀리 떠나는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변화를 통과하고도 내가 돌아갈 이타카를 잊지 않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찾아 헤맨 이타카는 단순히 저 멀리 기다리고 있던 목적지가 아니라, 그 긴 여행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만들어진 새로운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2026.8.14.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