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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순이가 좋다. 본래 이름은 김인순(金仁順)인데 가톨릭 교우다. 세례명이 체칠리아(세실리아/ 음악의 성녀) 팝/ 댄스 팝/ 소울/발라드/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인순이가 이번에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출마했다. 한국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아버지 미국인 사이에 태어났다. 학교에 다닐 때 외모로 인하여 절망의 세월을 보냈으나,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김흥국 후보와 경합을 벌였는데, 아깝다. 낙선되고 말았으니---.우리 교우가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된다고 해서 천지 개벽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못내 섭섭했다.
체칠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수로 이미자가 있다. 역시 세실리아는 음악과 관련이 있다고 하자.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세례명이 소화 테레사. 그런가 하면 대중 가요 가수 주현미도 소화 데레사.
지나간 얘기지만, 인순이의 씨디로 복음 성각 몇 곡을 배워 죽어라 불렀다. 그런데 살아났다. 특히 '살아계신 주' '주여 내 눈을' '오 주 없인 살 수 없네' 등이 나를 병석에서 일어나게 했다. 인순이가 흑인 영가를 부르면 나는 기절이라도 해야 한다. '방황하는 나그네'를 예로 들어 보자. 흑인 영가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에서 노동을 착취 당하면서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부른 구약 성경을 소재로 한 노래다. 아마 흑인 영가를 인순이만큼 부르는 가수? 단연코 없다!
<인순이에게서 거만하거나 건방스러움을 찾지 못하겠더라. 회장 기간 내게 전화를 걸어 직업 한 표를 부탁했다. 어린애처럼 순진하다 할까? 인순이가 말이다. 노조 위원장 김지현 가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굉장히 야무진 사람임을 한눈에 알았다고 하자. 인수이 키가 163세티미터라던데, 나보다 커 보인다.아, 그렇지 높은 구두를 신었겠지. 인순이 뒤에 서 있는 남자분은 언론 기관에 있었던 가수 김규민 님이다. 선거 기간 내내 카톡이며 문자메시지,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었는데---.>
회장보다는 이사 선거가 더 치열했다. 13명을 뽑는다. 출마자는 16명. 최하 17표로 당선된 후보가 있다. 최고 득표는 진미령 41표. 조빈/ 이상우/ 박상민은 낙선되고---.노래 실력이 아니라 평소의 인간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세상사 다 그런 게 아닌가. 유열/ 최유나/ 박수정/ 박일서/ 신형원(교수)/ 정수라/ 진미령/ 서수남/ 이자연/ 정훈희/ 함원식/ 김진아가 이사로 선출되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간도 크게 애국가의 홀대(?)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 복음성가가 나를 살린 이야기를 했다. 어떤 할아버지가 저렇게 극성일까, 하고 웃었을는지 모르지만, 나하고 악수라도 한 후보는 거의 당선되었다. 마이다스의 손? 가톨릭 신자가 몇몇 있다. 그게 참 기분 좋게 받아 들여졌다.
<최고 득표 진미령. 개표 때 환호성이 마구 터지더라. >
<은방울 자매. 재작년 용인문화회관 공연 때 만났었다. 해후는 역시 반가운 법!>
<박상철과 다시 만나다. 이윽고 본격적으로 가사를 창작하려는 내게 잘 보여야 할 텐데, 아직 기미가 없다. 중앙은 박수정 이사>
<저 유명한 임희숙을 만나다니---.임희숙은 혼자가 아니라, 구순이 가까운 금사향 선생을 부축해서 입장했다. '그 사람 떠나고'를 불러 심금을 울렸던 임희숙. '진정 난 몰랐네' 도 생각났다. 65세로 보이지 않을 만큼 씩씩(?)했다. 가운데 보라색 염색 머리를 한 분이 한국 최초의 하이힐 여성 금사향 선생. 타이피스트로도 있었고, 지금은 공연할 때 자리에 앉아야 할 정도지만 목소리 하나는 그대로다. 태극기 흔들며 님을 보낸 새벽 정거장 기적도 울었소/ 만세 소리 하늘 높이---.1953년 발매한 곡이다. >
<'여름에 만난 사람 가을 이면 가 버리고/가을에 만난 사람 겨울이면 떠나가네/ 어디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박건을 만났다. 나보다 세 살 위라는데, 인터넷을 보니 41년생이라 한 살 차이다. 그게 뭐 대순가. 그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이번 내 콘서트에 잘하면 와서 한 곡 불러 줄지 모르겠다. 나보다 훨씬 카도 크고 당당했다. 아무츤 같이 늙어 가니 서로 의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묵주반지는 여기서도 돋보인다. 묵주도 손에 들었다.>
<신형원 교수. 인형처럼 예쁜 얼굴이다. 신형원은 대중 가수로서는 드물게 교수이기도 하다. 특히 '개똥벌레', 신형원의 히트곡! 그걸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내가 부산에서 노인학교를 운영할 때 나를 도와 준 동료 직원이 이 노래를 융동과 함께 노인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기가 막히게 잘 따라 했다. 그립다, 그 시절이.>
<정수라. 며칠 전에 PBC를 시청했는데, 정수라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아 대한민국! ' 하늘엔 조각 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본래 내 키가 165센티미터 정수라와 같은데, 같이 서 보니 훨씬 내가 작은 게 아닌가? 늙었다는 증거다. 사제들이 청중 속에 섞여서 박수를 보내다니, 놀라웠다.>
<유열이란 가수도 참 인성이 괜찮은 친구다. 공부도 많아 해서(한국 외대 무역학과) 수준 높은 가요를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노총각으로 있다가 몇 년 전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던데--.아무튼 비교적 득표를 많이 하여 이사로 당선되었다.>
<최유나. 키도 크고 미인이었다. 목포여고 졸업이라 해서 더욱 관심이 갔다. 근래 내 창작 중편 소설 '목포에 간 요동 흰돼지'에 목포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난영/ 김시스터즈/ 남진/ 이수미---.목포는 가요의 고장이다. 목포 이름이 나오는 가요가 몇 있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 안개 낀 목포항' 등등. 내 소설에 목포 이름을 넣은 '목포의 추억'이란 대중가요 가사가 등장한다. 곧 곡을 붙여야 할 텐데---.이번 9월 5일 콘서트 때 내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도록 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 노래다. 그 탄생 배경을 직접 설명도 한다.. 뒤모습을 보이는 분은? 바로 안다성 선생이다. 나보다 12살 많은데 정정하다. 86살!>
금사향 선생. 대중가요 가수로서는 드물게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신 분. 안다성 선생보다 세 살 연상. 용인문화회관 공연 시 금사향 선생은 '홍콩 아가씨'를 불렀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는 꽃 파는 아가씨/ 그 꽃만 사가시면 그리운 영난 꽃----'글쎄 그 날 '영난꽃'이 무슨 꽃인지 설명을 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겠다. 낭패다 잊음이 헐해서, 쯧쯧>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가수 최백호. 그와의 인연 자체가 소설이다. 부산교구 은빛 사목지원단장이라는 거창한 벼슬(?)을 할 때 , 전동기 선교사목국장 신부님에게 저녁 한 끼를 대접하게 되었다. 그분이 내게 이야기했다.
"형제님, 최백호를 닮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낭만에 대해여'를 두어 소절만 불러 보겠습니다. 궂은 비 내리는 발 그야말로 옛날씨 다방에 앉아 도러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총각이 규수를 맞아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다. 영세 규모의 식장 사장이 내게 부탁을 했다. 정말 어려운 형편의 부부인데(사실혼), 뒤늦게 신부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월요일. 신랑 신부, 신부 어머니, 신부 언니 등등뿐이고 하객도 없다는 것. 일찌감치 식장에 갔더니 그야말로 한산하다. 사장 겸 사진사 부부/ 청소 아주머니/ 사모 . 다 합해야 나까지 열한 병.
신랑에게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영월이란다. 영월? 영일? 비슷한 발음이다. 내가 물었다.
"자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아는가? "
안단다. 그래서 사회도 없이 내가 모든 걸 맡아서 집전하면서 도중에 '영일만 친구'나 부르자고 부추겼다. 그래 신랑과 주례가 소리를 드높이는데 신부까지 합세하여 정말 기록적인 주례를 끝냈다. 최백호 만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번에 그걸 이루 것이다. 닮긴 닮은 것이다. 이번에 그에게 얘기했다.
"당신이 다녔었던 일광초등학교에 내가 1년 근무핬다오."
그는 무척 반가워했다. 이번 내 콘서트 장에는 못 오지만 언제든 연락을 하면 만날 수는 있다. 원래 계획대로 쟈니리가 온다. 모두가 하느남 뜻이니 내가 어쩌란 말인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지. 여럿에게 묻기나 해 보자. 과연 내가 최백호를 닭기나 하였는지----.또 같은 가방을 거깨에 같은 모양으로 맨 것 자체도 심장찮다. 최백호는 나보다 8살 아래다. 괜찮은 가수 최백호다.>
<그룹 '도시 아이들'의 박일서 현 부회장이다. 이사로 출마하여 세 번째 다득표 ( 37표)를 얻어 당선됐다. 진심으로 연장자를 종경하는 그에게 호감이 갔다. 달빛 창가에서/ 선녀와나무꾼/ 소설 속의 여인 등의 대표고이 있다.>
<최백호 이야기 좀 더 하자. '낭만에 대하여'는 참 멋진 노래다. 한데 대중 가요도 이제 가사가 좀 더 다듬어져야 하겠다. 그 2절을 불러 보자. '밤늦은 항구에서/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어 보렴---'그야말로' 부사는 얼토당토않다야. 차라리 '비에 젖은 연락선---'이면 어떨까? 그리고 말이다. 선창(船艙) 자체가 부두와 같은 말로서 선창가라면 틀린다. 최백호는 그런 것까지 모른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맞은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라는 노래는 제목이 '선창가' 아니고 '선창'이다. 콘서트 장에서 이걸 모두 설명하려면 글쎄 시간이 죽어나지 내가 죽어나는 게 아니다. 최백호는 60대 중반이다. 명곡을 더 만들어야 한다. 그를 사랑한다. 기표소를 향해 줄을 선 선거권자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참 최백호는 이사 출마를 안 했다.>
<서수남. 진짜 거인이다. 187센티미터! 1963년도에 '아리랑 브라더스'를 결성했고, 1964년도에는 미군 웨스턴주 빌리교 입단했단다. 1969년에는 '서수남과 하청일' 콤비로써 연령을 초월한 음악으로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다. 현재는 서수남음악원을 운영하고 있다. 43년 생이란다. 오랜만에 만나서 참으로 반가웠는데, 그의 가식 없는 에 비해 나는 주눅이 들었는가? 어째 보니 이상하다.
<태진아. 대한가수협회 3 / 4대 회장이다. 초등학교 학력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서 대한가수협회 회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몇몇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그를 좋아하는 트로트 팬이 굉장히 많다. 2015년 제 15차 대한가수협회 정기 총회(2015. 3. 26) 때 만나고 나서 처음이니 꼭 5개월 만이다. 그 날 서류를 뒤져보자. 협회 발전기금 (2014.1-12월)으로 그는 2,000,000원을 기부했다. 아들 이루도 5,000,000원을 냈고. 고액 기부자가 또 있다. 박현빈(빅지웅) 2,000,000원/ 조항조 2,000,000/ 럭키제이(전준용) 5,000,000원/ 휘성(조휘성) 5,000,000원/ 마야(뮤토뮤지크) 5,0000,000/ 주현미 5,000,000원/ 신웅 3,000,000 등등. 90,000원을 기부한 가수도 있다. 200,000원도 있고. 나도 200,000원을 기부할 정도는 된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협회에서 내 말발이 설 때쯤에 지갑을 연다. 그보다는 작은 돈을 모아 본당 빈첸시오 등에 내는 게 급선무다. 아무튼 태진아가 전임 회장이니 협회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남백송 형님도 한창 때는 태진아 모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늙음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니 재주를 가졌으면 좋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가사만 좋으면 트로트도 결코 저속하지 않다. 지난번 회의 때 '형평의 원칙'을 '형편---'이라 했다. 내가 쓰고 있는 책 '네가 만난 50명의 가수'에 그도 당연히 포함된다. >
<정말 그리운 또 한 사람 정훈희를 만났다. 정훈희가 내게 전화를했다. 가수들은 자기 전화 번호를 노출시키지 않기로 유명한데, 정훈희는 당당하게 밝혔다. 최백호와 인순이를 밀기로 헀으니 좀 찍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사 출마를 했단다. 나는 당연히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정훈희도 최백호도 부산 사람이다.
정훈희는 고등학생 시절에 '안개'라는 영화의 주제곡을 불렀다. '안개'는 '무진 기행'의 다른 이름을 영화한 것이다. 신성일 윤정희 주연. 제대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 그 영화를 본 것같다. 삼랑진 극장에서. 친구 안창회와 노윤길 등 셋이서. 러브씬에 미혹되었었고, 정훈희를 직접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얘길 자주 햇다. 두 달 전에 뱅뱅 사거리에서 우리 친구 셋이 수십 년만에 재회! 내 코서트에 오기로 했다. 그러데 뜻밖에 정훈희를 투표장에서 만나다니--.'무진 기행' 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김승옥 선생은 나보다 한 살 많다. 건장이 안 좋단다. 나를 가수로 데뷔 시켜 준 남백송(한때 가요무대 최다 출연 가수) 형님도 지금 위독하단다. 모든 게 허망하다. 그런 가운데 주님의 현존을 나는 체험하고 있다. 한데 어라? 여기선 정훈희가 안경을 머리 위에 얹었네. 내 전배 특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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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 그만한 가수가 드물다.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가 아니다. 1970년 '안개' 동경세계가요제 입상'/ 1971년 '너' 그리스 국제 가요제 입상/ 1972년 '좋아서 만났죠' 동경세계가요제 입상/ 1975년 '무인도' 칠레국제가요제 입상/ 대한민국 화관 문화 훈장--.정훈희에게 물었다. '안개' 의 원작가 김승옥 선생의 근황이 어떤지 아느냐고. 모르겠단다. 김승옥 선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오래지만 투병 생활을 잘해 지금 일상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기사를 어제 보았다. 50,000,000원 문학상도 시행하고 있단다. 작품 속의 무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 작가가 태어난 순천을 배경으로 했을 뿐이다. 내가 몇 달 걸쳐 창작한 중편 '목포로 간 요동흰돼지'도 외람되게 주장하지만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다고 자부한다. '가거도'가 일부 무대이기도 한데 지나치게 현장 묘사를 하느라 애썼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떳떳이 '가*도'를 '가구도'로 바꾸자.
<김진아 가수다. 내가 무슨 대가라도 되는 듯 뻐긱 앉아 있고, 그 앞에 김진아가 겁 먹은 표정으로 섰다. 하기야 한 표가 소중한데, 그러지 않는다면 제 그르다. 김진아의 경력도 화려하다. 그 흔하디흔한 홍보대사를 안 맡은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진아 기획 컨설팅 대표/ 음악저작권협회 회원/ 음반사업협회 회원/ 음악실연자협회 회원/ 가요작가협회 회원 등등의 경력도 있고, 필리핀 노래자랑 대상 수상/ 대만 노래 자랑 금상 수상/ 불자 가수 가요제 입상 등등의 상력도 있다. 22표로 이사 당선>
<이 친구는 가수가 아니고 깅흥국의 해병대 후배다. 그날 대여섯 명? 제복을 입은 그들이 씩씩해서 좋았다. 계급을 물렀더니 병장이란다. 나는 나에게 경례를 붙이라고 했다. 예비역이지만 해병대로부터 경례를 받는 기분이 묘했다. 방송회관으로 들어서니 김흥국이 먼저 인사를 했다. 그가 1번이어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인순이라서 인순이에게 바쁘게 다가가느라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지나쳐서 사진은 없다. 여기서 잠깐! 당인 승려(스님) 가수가 둘이나 왔더라, 한데 사제는 가수가 없는지 로먼 칼라를 한 남자가 안 보였다. 신부도 때로는 가요를 불러야 신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본다. 내 콘서트에는 경북 예천군 하림면 정화사 보덕 주지스님이 와서 찬불가요 '영원한 사람'을 부르게 되어 있다.
첫댓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우와~~한국의 내놓아라 하는 유명 연예인들과 교분을 나누셨네요
최백호가수와는 형제같습니다. 우리 본당의 자랑입니다
차후에 본당 신축바자회 개최 시에 아시는 가수불러 한마당잔치라도 해야겠습니다
회장님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요 발전을 위해 기여할게요. 가톨릭 신자 가수들과의 교분을 위해서도 애쓰겠니다.
모데스타 자매님(3월 13일 축일)께. 저의 글을 앍고 댓글까지 달아 주시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콘서트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뵐 기회가 있으면 큰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