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산과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가조도(加助島) 옥녀봉(玉女峰, 331.9m)
산 행 일 : ‘19. 6 29(토)
소 재 지 : 경남 거제시 사등면(沙等面) 가조도
산행코스 : 농협 효시공원→백석산(신전산)→도로→노을이 물드는 언덕→사등면 가조출장소→실전마을→임도전망대→옥녀봉→신교마을(소요시간 : 7.25㎞, 2시간 5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거제도의 북단 사등면 성포리에서 북쪽으로 약 1㎞ 떨어진 진해만 해상에 위치한 면적 5.78㎢(해안선 20.3㎞)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거제시 관내에서는 칠천도 다음으로 큰 섬이란다. 섬은 중앙의 좁은 지협부에 의해 남북 두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해안선이 단조로운데다 침식해안(侵蝕海岸)도 아니다. 때문에 기암절벽 등 눈에 담을만한 절경은 갖고 있지 못하다. 외부에 덜 알려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2009년에 섬의 남쪽과 거제도의 성포리를 연결하는 가조연륙교(길이 680m, 너비 13m)가 개통되면서부터 원추형으로 솟아오른 ‘옥녀봉’을 찾는 등산객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단다. 참고로 가조도(加助島)라는 지명은 거제도에 딸린 섬으로 거제도를 돕고 보좌한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같은 연유로 ‘가좌도(加佐島)’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가지매섬’으로도 불렸단다.
▼ 산행들머리는 농협효시공원 입구(거제시 사등면 창호리 2024)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 IC에서 내려와 14번 국도를 타고 거제도로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등면사무소가 있는 성포리에 이른다. 탐방예정지인 가조도는 이곳 성포리의 최북단에서 2009년 7월에 개통된 680m 길이의 ’가조연륙교(加助連陸橋)‘로 연결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진두마을이 오늘 트레킹의 들머리이다. 참고로 이곳 진두마을은 성포항을 오가는 차도선이 있었던 시절에는 섬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 읍내 볼 일을 보고 오는 사람, 갖가지 일로 섬을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해가 질 무렵이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단다.
▼ 왼편에 보이는 오르막길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금룡정사‘와 ’수협효시공원‘의 이정표를 참조하면 된다. 참! 오른편으로 곧장 가면 ‘논골마을’로 연결되니 참고한다. 논이 귀했던 섬에서 다른 마을보다 논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농사를 지을 사람조차 없어 잡초만이 무성하단다. 잠시 후 ‘수협효시공원’에 올라선다. 수산업협동조합(수협)의 역사가 이곳 거제에서 시작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1942년 조선어업조합중앙회가 발행한 ‘조선 어업조합 요람’에는 <1908년 7월 10일(대한제국의 수산 관련 업무를 관장하던) 농공상부대신의 인가를 받아 최초로 거제시 사등면 창호리 가조도에 ‘거제한산가조어기조합(巨濟閑山加助漁機組合)’이 설립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수산업협동조합의 효시이자 거제수산업협동조합의 전신이란다.
▼ 공원은 7370㎡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건축면적 886㎡, 연면적 1314㎡)로 이루어졌다. 1층에는 어구·어업 기록물·어업기술의 발달사·수협의 역사 및 발달사 등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전시관과 영상실, 세미나실, 어린이 아카이브, 특산물 판매장이 2층에는 ‘조화의 광장’이 들어서있다. 3층과 4층은 실내전망대와 커피하늘이 각각 배치됐다. 4층에는 야외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는데 아쉽게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문을 열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 이곳 수협효시공원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가히 일품이라고 알려진다. 거제의 명소로 소문난 ‘노을이 물드는 언덕’보다도 오히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 새벽. 거제도 쪽 바다에 떠있는 작업선이 내쏘고 있는 휘황한 불빛으로 대신해본다. 노을보다야 한참 떨어지겠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 공원을 둘러봤으면 이젠 산행을 나설 차례이다. 들머리는 공원의 맞은편 산자락에서 열린다. 도로변에 이정표(신전산↑ 1.18㎞/ 가조연륙교↓ 0.32㎞)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정표에는 ‘노을길’이라는 지명도 표기되어 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란다.
▼ 산길의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길이 널찍한데다 경사까지 완만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른 아침이어선지 공기까지도 상쾌하다.
▼ 여명(黎明)의 바닷가에 작은 섬들이 떠있는 게 보인다. 무인도인 ‘멍애섬’과 ‘노루섬’이다. 2년쯤 전엔가 이곳 가조도와 멍애섬을 잇는 길이 230m의 출렁다리를 놓는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저곳을 두고 한 말이었던가 보다. 당시 기사는 노루섬과 멍애섬을 스카이 레일바이크로 연결시킨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사가 완공되는 2023년 이후에 다시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 산길은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이어진다.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지 않아 크게 힘들지는 않다. 다만 웃자란 잡초들로 인해 길을 찾기가 힘들 때도 있다는 게 조그만 흠일 수도 있겠다. 참! 산악회의 리본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 가끔은 너덜지대도 만난다. 아니 바위의 크기가 저 정도라면 너덜이 아니라 바위지대라고 하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0분 만에 백석산(206m) 정상에 올라선다. 펑퍼짐한 분지(盆地) 모양으로 생긴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다. 무당집 처마처럼 너절하게 매달려있는 산악회의 리본들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 또한 일절 터지지 않는다. 머무르지 않고 곧장 떠나버리는 이유이다. 참고로 백석산은 국립지리원의 지도에 나온 이름이다. 지역에서는 ‘신전산’으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요 아래에 있는 ‘신전마을’에서 따왔지 않나 싶다. 신전마을은 초원이 풍부해 섶밭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단다.
▼ 올라왔던 방대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거기다 미끄럽기까지 하니 주의할 일이다. 흙길이라서 넘어진다고 해도 다칠 위험은 없겠지만 말이다.
▼ 그렇게 12분 정도를 진행하면 도로에 내려선다. 노을길은 이곳에서 반대편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정표(옥녀봉 입구 1.71㎞/ 신전산 0.92㎞) 또한 그쪽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길은 막혀있다. 땅 주인이 새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우회로를 새로 내놓던지 하다못해 이정표의 방향표시라도 고쳐놓아야 했지 않았을까 싶다. 거제시청의 무책임한 행정이라 하겠다.
▼ 이후부터는 도로를 따른다. ‘가조로’인데 잠시 이 도로는 ‘가조서로’와 합쳐지면서 해안도로로 변한다.
▼ 100m 남짓 내려왔을까 길가에 ‘새들 숲속놀이터’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새집이 보인다. 새집 뒤편으로 치고 올라 ‘노을길’을 타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억지로 뚫고 나가기에는 길이 너무 험해져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다. 불행 중 다행인지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풍경이 제법 아름답다. ‘시야가 툭 트이는’ 해안길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 사위(四圍)가 밝아오면서 바다 풍경 또한 점점 또렷해진다. 바다는 온통 양식시설 일색이다. 국내 굴 총생산량의 60%가 통영 앞바다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굴양식장이 분명할 것이다.
▼ 바닷가 벼랑에는 동백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있다. 나뭇가지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가끔은 늦깎이 동백꽃도 보인다. 하지(夏至)가 지난지도 모르는 게으름뱅이들이라 하겠다.
▼ 섬에는 유독 수국(水菊)이 많았다. 수국의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인데,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다. 화려함보다는 잔잔하고 편안함을 주는 꽃인데, 수구화에서 수국화를 거쳐 수국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길가에는 모시송편의 재료인 모시풀도 많았다. 들깻잎처럼 생긴 잎만이 수국과 비슷할 뿐인데도 난 수국이라고 꾸역꾸역 우겨댔다. 그러다가 잎의 앞면이 초록색인 반면 뒷면은 하얀색이라는 모시풀의 특징을 집사람으로부터 가르침 받았지만 말이다.
▼ 도로를 따라 23분 정도를 걷자 '노을이 물드는 언덕'이 나온다. 노을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가조도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전망대라고 보면 되겠다. 2층으로 된 전망대 외에도 여러 가지 체육시설들을 갖췄다. 벤치도 놓았다. 화장실도 새로 지었음은 물론이다. 주민들을 위한 쉼터의 기능까지 겸한 것이다. 참! 전망대로 오는 길에 막혀버린 탐방로의 진입로를 만났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이정표(옥녀봉/ 신전산)에는 진전산 방향에다 ‘폐쇄’라고 적고 있었다.
▼ 이곳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해를 볼 때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단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을이 지는 때를 맞추지 못해 일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확인해볼 수 없었다.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는 난간에 걸린 거제도의 명승들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 전망대에 오르자 바다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여명의 바다에는 얼핏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보이는 ‘어의도(於義島)’가 두둥실 떠있다. 원래는 크기가 거의 같은 2개의 섬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중앙에 사주(砂洲, sand bar)가 발달하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 모양이 흡사 개미를 닮았다 하여 '충의도'라고도 부른단다. 그러나 어의도를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으로 본 사람들이 더 많았던가 보다. 배를 움직이자면 ‘어의 여차’를 외쳐야 한다면서 ‘어의도’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말이다.
▼ 어의도의 왼편에 떠있는 자그만 섬은 ‘수도(水島)’이다. 우리말로는 ‘물섬’, 땅 속에서 물이 ‘펑펑’ 솟는 섬이란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여 ‘물섬’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거제도의 성포항에서 하루에 2번 운항하는 객선이 있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단다. 그럴만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참! 물섬의 뒤편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섬은 ‘지도(紙島)’이다. 두 섬 모두 통영시에 속해있지만 섬사람들의 생활은 거제에서 이루어진다.
▼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삼각뿔처럼 솟아오른 옥녀봉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르면 된다. 가장자리에 보도를 따로 만들어 두었으니 안전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 길가에 세워진 빗돌 하나가 눈에 띈다. ‘고 사인 천일두 처 전주 이씨 열행기실비(故 士人 千日斗 妻 全州 李氏 烈行紀實碑)’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어느 열녀(烈女)의 뛰어난 행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내판도 세워져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석을 세웠을 정도로 타의 귀감이 되는 행실이라면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도 한번쯤 들려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 그렇게 잠시 걸으면 ‘사등면 가조출장소’가 나온다. 가조출장소는 주민들의 생활과 생업의 편의를 위해 1987년 설치됐으나 IMF 한파를 겪으면서 8명이던 정원이 2명으로 대폭 줄어 지금은 주민들의 민원 업무만을 담당하고 있단다.
▼ 출장소 앞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왼편은 창촌마을과 계도체험 마을, 탐방로는 실전·유교 마을로 향하는 오른쪽 길을 따른다. 출장소의 대문 옆에 ‘옥녀봉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출장소 담벼락에는 등산로 입구로 가는 방향표시도 해놓았다.
▼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비탈에 기대앉은 실전·유교·신교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다소 복잡한 듯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어업과 밭농사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가조도의 모습이라 하겠다.
▼ 옥녀봉으로 오르는 탐방로는 브런치 카페인 ‘볼리에르’의 앞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출장소에서 5분쯤 떨어진 지점인데 오솔길이 갈리는 지점에 이정표(옥녀봉 정상 1.0㎞/ 가조출장소 0.3㎞)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 들머리 부근에는 작은 텃밭들이 제법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 실전마을을 ‘실밭개’라고도 부른단다.
▼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길을 찾기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잔가지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나무계단도 새것으로 교체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주기적으로 정비를 해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오솔길로 들어선지 20분 만에 임도(이정표 : 옥녀봉 정상↑ 0.5㎞/ 임도 시점← 1.9㎞)를 만났다. 임도를 따라 올라오는 방법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임도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벤치도 놓아두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실컷 즐겨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맞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전망대의 높이가 겨우 5~6m에 불과하지만 시선이 나무의 높이를 살짝 넘기면서 시야를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짙게 낀 안개 때문에 코앞에 있는 거제도까지도 희미하게 나타날 따름이다.
▼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정상까지는 이제 500m가 남았다. 아직까지 산길은 곱다. 고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500m나 남았으니 서두를 게 없는 모양이다.
▼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하던 산길이 언젠가부터 된비알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팔랐던지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 위로 오른다. 그 길은 바위로 이루어진 사면을 헤집기도 한다. 길을 내느라 고생깨나 했겠다.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국제신문의 취재기사를 잠시 옮겨본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500m인데 이제부터 된비알이다. 괜스레 다리가 뻑뻑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500m가 높이가 아니라 거리라는 점이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끔은 산딸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데다 갈증까지 싹 가셔주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한참을 오르면 드디어 옥녀봉 정상이다. 임도전망대를 출발한지 30분 만이다. 구릉(丘陵)처럼 두루뭉술하게 생긴 정상은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나무 한 그루를 제외하고는 잡초로 가득 차있다. 조선시대부터 이곳 가조도에 목장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군마를 사육하면서 훈련을 시키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가조도가 우리 역사에 나타난 때는 고려시대다. 고려시대에 가조도목장을 설치했다는 첫 기록이 고려사에 나타나 있다. 고려 성종 2년(983)에 칠천도에는 검은 소를 기르고 가조도에는 붉은 거제도 말을 방목하는 목장을 설치했다. ‘가조도 목장은 궁중 수레와 말에 관한 관청의 소관으로 진주감목관이 관장했고, 궁중의 고관대작들이 타고 다니는 붉은 거제도 말을 방목했다’는 기록이 있다. 왜구의 침범으로 멀리 피난을 갔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때인데 왜구의 침범을 피해 지리산 동북쪽 거창현의 속현인 가조현으로 가조도 주민들이 단체로 피난을 갔다는 것이다. 조선 세종 4년(1422)에 돌아왔다니 151년 만의 귀향이었던 셈이다.
▼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실전마을 1.0㎞/ 계도마을 1.3㎞), 삼각점(거제 21) 외에도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문까지 만들어 놓은 정자는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염소 똥이 가득하다. 문을 꼭 잠가달라는 거제시청의 안내문까지 붙어있는 걸로 보아 이곳 가조도도 야생동물로 변해버린 염소들로 인해 꽤나 시달림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옥녀봉에는 옥녀와 선군의 애달픈 사랑의 전설이 서려있다. 먼 옛날 옥녀가 아버지인 옥황상제로부터 노여움을 사 인간 세상에 내려와 벌을 받고 있었다. 천 년 동안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순결하게 지내야만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녀가 기약했던 천 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 옥황상제가 옥녀를 시험했던 모양이다. 하늘나라에서 제일 멋있고 잘 생긴 남자 선군을 내려 보내 옥녀를 유혹하게 했으니 말이다. 옥녀가 어찌 그런 사실을 알았겠는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단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옥녀와 선군을 섬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거제 시정시보 제30호에서 발췌)
▼ 맨 꼭대기는 커다란 돌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 옥녀봉의 정상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고 하더니 그 흔적이 아닐까 싶다. 계룡산 봉수대와 고성 벽방산, 진해 천자봉 봉수대를 연결하던 봉수대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옥녀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정면에 위치한 삼성조선이 보이는가 하면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계룡산과 또 다른 옥녀봉인 '장승포 옥녀봉'과 국사봉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이다.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오른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는 가조도의 일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어있기 때문이다.
▼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신교마을 방향이다. 참! 옥녀봉 정상어림에 있다는 옥녀와 관련된 흔적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활량들이 놀았다는 활량터와 선군이 칠선녀를 데리고 내려왔다는 칠선녀 바위, 옥녀가 목욕했다는 약수터(옥수터), 장구통 바위, 탕근바위 등인데 구체적인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었으니 미리 알았던들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 하산길에는 거제도에 대한 조망이 가능하다. 안개가 짙은 오늘은 비록 햇살을 머금어가는 산봉우리들이 하나같이 실루엣으로 처리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한번쯤은 눈에 담고 싶었던 취도는 위치조차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참고로 가조도는 러일전쟁(1904~1905년)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다. 송진포에 주둔한 일본군이 취도를 향해 사격연습을 할 때, 이곳 옥녀봉에는 관제탑이 있었단다. 그 후 일본 해군이 러시아 동양함대 '마카로'호 등 37척과 3000명의 병사를 전멸시킨 기념으로 소화 10년(1935년)에 러일전쟁 승전기념비인 취도기념탑을 세웠다고 한다. 높이 4.17m, 폭 2m의 하얀 탑 상단에는 포탄이 하늘을 보고 박혀있단다. 일본에게는 영광의 흔적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뼈아픈 역사라 하겠다.
▼ 하산길 역시 잘 다듬어져 있다. 가파른 곳에는 어김없이 나무계단을 놓았고, 어떤 곳에는 밧줄까지 매달아 안전을 도모했다.
▼ 그렇게 20분 가까이를 내려오자 장의자 두 개를 놓은 쉼터가 나오고, 이후부터 산길은 완만하게 변한다.
▼ 느긋하게 15분쯤 더 걸었을까 진행방향 저만큼에 신교마을이 나타난다. 길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웃자란 잡초들이 주변을 온통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잠시 후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으려고 쳐놓은 그물망이 보이면 길을 제대로 찾았다고 보면 되겠다.
▼ 그물망이 쳐진 밭두렁이 끝나면 계도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길이 나온다. 이정표(가조출장소 1.9㎞/ 계도마을 2.7㎞/ 옥녀봉 정상 1.2㎞)가 세워진 걸 보면 산길이 끝났다는 얘기일 것이다.
▼ 트레킹 날머리는 신교마을
시멘트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신교마을이 나오면서 가조도 트레킹이 끝을 맺는다. 마을 앞 포구(浦口)에 이르니 자그만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마트가 문을 열고 있다. 캔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마을 손님보다는 낚시꾼과 펜션 투숙객들이 고객이란다. 그러고 보니 광이만 앞바다에서 멸치와 도다리, 볼락, 감성돔 등이 잘 잡힌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아무튼 오늘 트레킹은 대략 2시간50분이 걸렸다. 올동말동하는 비가 걱정되어 중간에 쉬지를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 데만 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