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이 조금 보이네.
솔향 남상선-수필가
양심의 가책을 소재로 삼은 소설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 있다. 가난에 시달리던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악랄한 전당포 노파와 그 여동생을 살해한다. 목격자가 전혀 없는 완전 범죄였는데, 양심의 가책으로 번민하다가 결국 자수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내용이다.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 심할 경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여 몸을 다친다든지 아니면, 자신이 하던 일을 그르쳐서 낭패를 보게 만든다. 물론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불행이다. 프로이드는 이를‘초자아의 자기처벌’이라고 불렀다. 악을 행할 경우, 아니면 죄를 지을 경우 무의식에 도사린 초자아가 나를 처벌한다는 얘기다.
지은 죄가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조급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 있다. 사자성어로는 '주적심허'(做賊心虛)가 이에 걸 맞은 표현이리라
불교의 가르침에 ‘악인고과(惡因苦果)’라는 말도 있디. “악행의 원인이 있으면 고통스런 업보가 따른다.”는 말이니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닐 수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속담과도 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한 것이 몇 개 있다. 처녀작 수필을 발표할 때는 1달에 1편정도 <문학사랑>에 게재하던 것을 7년 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올리게 되었다. 이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와의 암묵적 약속이기도 했다.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작품 수가 100을 넘지 않을 때는 별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기출 작품이 500에 가깝다 보니 글 쓸 때마다 소재의 빈곤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식언(食言)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눈도 끔적하지 않는 강심장도 많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과의 약속이나, 독자와의 암묵적 약속으로 해 놓은 목요일에 글 발표, 이게 힘겨울 때는 잠자다가도 가위눌림에 힘겨워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내 몫이 조금 보이네.’
가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떳떳한 양심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글을 집필하면서 몸소 체험했다.
양심의 꾸짖음에서 오는
자기 불행!
프로이드의 ‘초자아의 자기처벌,’
내 몫이 조금 보인다.
죄와 벌- 양심의 가책,
현대판 문호가 된 느낌이다.
첫댓글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또 연락드립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있어서 기억은 못하시겠지만, 30여년 전에 유성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다른 직원들과 얘기하다가 고등학교 얘기가 나와서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항상 열정을 갖고 교단에서 분필잡으셨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세월이 흘러 저도 이제 46이네요.
저도 직장생활하면서 힘든 시기때마다 선생님의 그 열정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찾아뵙고 큰절이라도 드려야하지만 이렇게라도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기출작품이 500편이나 된다니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아울러 이번에 새 수필집 출간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