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2월4일
[심장 건강] 가톨릭대 명예교수(노태호심장클리닉 원장)
심장에 이상이 발생해도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심장이 뛰면서 피를 온몸에 보내려면 전기의 힘이 필요하다. 몸 안에 전기라니 무슨 소리인가 갸우뚱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신경과 혈관 네트워크로 빈틈없이 연결돼 있고 원활히 작동하려면 전기 활동은 필수
적이다.심전도ㆍ근전도ㆍ뇌파 검사 등은 모두 내가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심장과 근육,
뇌의 미세한 전기 활동을 증폭하고 걸러서 기록하는 검사다. 심장과 근육, 뇌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상 우리
몸속 거의 모든 장기나 조직에 전기 활동이 존재한다.
심장박동 수가 늦은 ‘서맥(徐脈)’은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한다. 즉 ①심장 발전소인 동결절(洞結節)에서
전기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거나(동기능 부전), ②발전소에서 전기를 제대로 만들더라도 혈액 펌프
역할을 하는 심실로 내려가는 전선인 방실결절(房室結節)에 문제가 생겨 전기 흐름이 막히는 경우(방실 차단)
이다.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은데 오래 사용해서 생기는 즉 노화가 가장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밖에 여러 심장병이 심장 내 전기 시스템을 침범해 생기기도 한다. 심근경색이나 심부전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서맥이 고착화될 때가 많다.
또 약물이나 전해질 불균형도 심장박동 이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원인이 교정되면 회복할 수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증상은 비슷하다. 심장박동 수가 적절해야 온몸에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데 심장박동 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심박출 혈액량이 감소하고 온몸이 다 같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예민한 기관은 바로 뇌다. 뇌는 몸의 장기 중 평상시 가장 많은 혈액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기립성 동물
이며 일어서면 뇌는 심장보다 수직선상 위에 위치한다. 바로 중력의 반대 방향이다.
따라서 뇌로 가는 혈류는 심장박동 수가 감소할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뇌로 가는 혈액량이 줄어들 때
나타나는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 어지러움이다. 또 만성적으로 뇌혈류량이 감소하면 두통ㆍ기억력 감퇴 등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만일 단기간에 걸쳐 수초 이상 심장박동이 정지하면 (동기능 부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지러운
정도를 넘어 ‘핑’ 하는 느낌이 들면서 의식을 잃고 실신할 수 있다.
뇌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 혈류 공급이 지속적으로 모자라게 돼 만성적으로 기운이 없는 무기력증, 운동
시 호흡곤란, 운동 능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증상에서 실신을 빼면 어지러움,
만성 두통, 기억력 감퇴, 운동 시 숨이 찬 증상, 운동 능력 감퇴 등이 나이가 든 고령인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고령인 가운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그저 나이가 들어 그러려니 하고
의학적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노화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의 양상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맥의 두 가지 원인인 동기능 부전과 방실 차단은 증상이 거의 같지만 예후는 다를 수 있다. 동기능 부전은
이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을 때가 거의 없다. 그러나 방실 차단은 심장사와도 관련이 있어 증상이 없어도
예방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현시점에서 치료는 약이 아니라 영구 심박동기이다. 영구 심박동기로 심장박동 수를 올려주면 심장사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증상 호전과 함께 삶의 질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노태호 가톨릭대 명예교수(노태호심장클리닉 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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