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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빌지 마라
신(神)은 듣고 있지 않으니... 드라마 도깨비(김신) 죽음을 앞두고 한 마지막 독백중에서
경산과 대구를 가르는 능성재에서
길고 길었던 하루는 칠곡군 지천면에서 시작하여 팔공산을 끝으로 넘어가고
배고픈 걸음은 어느 식당으로 인도한다.
나물밥 거하게 한 상 차려지고...
경산시 와촌면으로 내려가는 도로길은 지루하고 잠잘 곳을 찾을 때까지
10km 정도 더 가야 내일 일정을 정할 것 같다
터벅 터벅...
경산시 하양읍에 도착
하루 일정 52km 지점이다
노숙할 거라며 호기롭게 봇따리를 챙겨 왔지만 도심에서 어디 쉽게 누울 곳이 없어보인다.
하는수 없이 둘째날도 여관에서 자고
새벽 3시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도심을 걸어 금호강이 흐르는 하양교 다리를 건넌다.
오늘 일정은 경산시 진량과 용성면 경계를 이루는 금박산(431m)과 덕곡재
그리고 비슬 지맥길에 만나는 용림고개도 넘어야 길이 많이 단축된다
오늘은 뭔가 이루어지려나?
24시간 영업하는 짬뽕집이 있다.
단순하게 불만 켜진 곳일까? 하여 문을 열어보니 향긋한 짬뽕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음!~~~ 바로 이맛이지
식전 댓바람부터 얼큰한 짬뽕 시켜놓고
오늘은 하루 동안 짬뽕이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다.
국물까지 모두 털어 넣고, 맑은 정신으로 경산시 진량땅의 양기리와 다문리를 지나 금박산 초입에 도착한다.
오늘은 금박산을 오르지 못하면 도로 따라 한참 돌아가야 하는 길이라 어쩔 수 없이 금박산으로 오른다.
지금까지 이런 등산로는 없었다
고속도로인가! 지방도로인가!
금박산 등산로는 비포장길이나 정상 직전까지 몇몇이 어깨동무하고 가도 될 정도로 넓었으며
동네 어르신들께서 아주 편안하게 다니셔도 될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저의 영원한 벗 가스 할배(노송님)께서 매주마다 찾아 오르시는 금박산
늘 보내주시던 검은색 책한권 세워놓은듯한 정상석이 노송님께서 환하게 반기듯 반겨준다
어김없이 태양은 떠 오르지만 24년도 마지막 일출이다 보니 남 다르다
오늘도 내 곁에 있어 주기만 애써 바라건만
저녁 무렵 깊은 산속에 나 홀로 있을 때 너를 다시 못 볼까 생각들고
행여 못 보더라도 내일은 멋진 신년 일출로 반겨 주었으면 좋겠다
지나온곳으로
금박산은 산은 낮아도 조망이 아주 좋은 산이다.
대구 인근에 사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가 보셔도 좋을 곳이니 꼭 찾아보시기 바라고
인근에 계시는 노송님께 전화를 드려 금박산에 다녀가노라 전화기 너머로 말씀드린다.
탁 트인곳이라 차가운 바람은 사정없이 불고 태양이 지는 저녁 무렵에 청도 운문사와 아랫재를 넘어야만
내일 배내봉에서 신년 일출을 감상할 것 같아 발 걸음을 옮긴다
걷다 보면 책 속에 진리나 길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터득하는 것이다.
지도에도 보이지 않던 길을 찾아가며
잠시 잡목길을 걷는다.
나도 대나무인
이죽 터널이 반기고
용성면 고죽마을에서
집이라고는 낡은 빈집 몇 채와 사람이 사는듯한 몇 집이 전부인데
양철 지붕 아래 스펀지 밥을 닮은 메주 형제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어릴 적 한겨울에 할머니방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메주를 짚으로 감싼 후에 실겅에 듬성듬성 걸어 놓으면
썰매를 타거나 연을 날리거나 그렇게 놀다가 배고프면 우리 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쳐들어가 메주를 떼먹곤 했었는데
그것도 메주가 딱딱하게 굳어지거나 곰팡이가 생기면 그것도 못하던 생각이 난다
잘 생긴 메주를 보면 누구나 시골에 살던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는게 아닐까!~~~
용성면 외촌리 마을에 들어와
소똥향기 가득한 해안길 같이 걷던 솜주먹님 처가집 마을을 지난다.
돌탑 무리가 보이는 짧은 덕곡재 오르막을 지나서
구룡산에서 발원해 경산시를 지나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오목천을 건너서 진행하다 보면 만나는
비슬 지맥길 용림고개 오름길
길이란? 네모지거나 동그란 것은 아니다
요즘길은 대부분 빨리빨리 병으로 생긴 곧은 직선길인데 비해
목적지까지 뱀이 기어가듯 붓으로 휘갈긴 곳이 진짜 길이다
비슬지맥길에 만나는 용림고개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 석천교에서
동창천 지류인 부일천에서 가장 멋진 곳일듯하다.
이제 석천교를 건너면 운문사가 있는 청도땅이다
한내 고개를 넘으면 운문댐이 보이겠고
청도 운문호가 보이지만 운문사까지 15km
저녁에 도착할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까지 25km를 가야 하는데 시간이 벌써 12시가 넘었다
멀리 운문산과 억산이 보이고
운문면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가 넘었기에 점심은 생략하고
걸음을 부지런하게 움직여 운문사로 진행한다
운문사 입구 소나무 지역을 지나고
호거산 운문사
비구니 사찰인 운문사는 팔공산 동화사 말사의 절로서 신라 진흥왕 18년에 신승이 창건한 절인데
어느 사찰이나 대부분 그곳 산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게 마련이라
이곳 청도 운문사 역시 "호거산 운문사"라는 일주문이 있다
虎(범호) 踞(웅크릴 거) 山(뫼산) 호거산이 어디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호거산이란 이름이 운문산을 뜻하는지 바로옆의 복호산을 뜻하는지 아니면 호거대(등선바위)를 뜻하는지...
운문산 옆 범봉과 904m 그 일대를 호거산이라 부르는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억산까지 호거산으로 부르는지
운문사 스님들은 복호산. 지룡산을 호거산으로 부르는가 하면, 한편 절의 남쪽에 있는 산들 모두를 호거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님들 역시 몇 년 지나고 나면 다른 곳으로 떠나시기에 어느 것이나 아직 명확한 것은 없다.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중국 호구산(37m)에서 수도하며 지내다가 운문사에 왔을 때중국의 호구산이란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마저도 확실한 건 아니다.
부처가 되고 싶은 운문사 처진 소나무
수령은 약 400년 정도 되었으며 어느 스님께서 시들해진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소나무는 꺾어서 심는 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들해진 잔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니 대단한 불심을 가진 스님이라 할 것 같다.
대웅보전
운문호를 돌아오니 시간이 늦어져 저녁 예불 시간도 끝나고
사람들도 하나, 둘 빠져나가 조용하기만 하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법당에서 예불 의식으로 오온이 공하다는 270자의 반야심경을 들을 수 있었건만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는 염불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스님께서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작은 방망이로 치는 잉어를 닮은듯한 목탁
물속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으란 뜻도 있고
그 소리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란 뜻도 있다
이 길을 지나며 천성이 게을러 아직 2대 총림을 지나면서 목탁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제 남은 절은 통도사와 범어사뿐이다
부처님께
무안 공항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179명의 명복을 빌어 드리고 나오며 생각해 본다
"신이 있다면 세상의 악은 어디서 오는가?
신이 악을 제거할 의지가 없다면 선하지 않고
악을 제거할 능력이 없다면 전능하지 않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면
우리는 그를 왜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
어느 철학자가 신(神)을 두고 한 말인데 누구나 공감하는 말로써
세월호나 제주항공 같은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신이란 과연 있는가?
있다면 왜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의 끝은 없고...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부처님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삿갓을 닮은 처진 소나무
이제 산문 밖으로 나와 사리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간다.
가끔 사리암에서 빠져나오는 차와 올라가는 차만 있을 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길이다
사리암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삼계봉 중턱에 자리하는 사리암에는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학심이골로 올라가는 계곡에는 철조망 문이 굳게 닫혀 출입통제임을 알린다
주위에는 보는 사람들이 많아 계곡 아래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후다닥 지나 임도길로 걷는다
학심이 계곡 1,5km 구간 왜 통제하고 단속을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인근 사리암이나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물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버스 한 대 다닐 수 있는 임도길을 두고 꼭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단속하겠다면 가지산, 운문산 북쪽 일대와 상운산 서쪽 계곡인
학심이골 전체를 단속하던가 할 것이지 짧은 1,5km 구간만 단속하기에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도심이지만 어느 집은 담장을 허물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앞마당을 내주며 쉬어가라는 분들도 계시는데
마음씨 고운 사리암 스님네들께서 그럴리야 없겠지만 등산객들을 상대로 통제하였다면 배려란 걸 베풀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앞으로 가지산 북봉인듯한데 우람하게 보이고
24년도 마지막 햇살이 60을 하루 앞둔 평생을 뒤돌아 보게하는 햇살처럼 느껴진다.
임도길 올라오는 도중에 곳곳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단속하시는 분께 걸리는 건 별 문제가 아닌데
홀로 있으면서 왜 없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학심이골 삼거리에 도착하니 없던 죄에서 스스로 벗어난 느낌이 든다.
해는 빠지고 주위가 점차 어두워질 무렵 아랫재 3,7 km 방향 앞에 선다.
주위분들이 가끔 전국 어느곳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가? 물어보면
주저 없이 이곳에서 아랫재까지 이어지는 3,7km 구간이라고 말씀드리는데
하늘 조차 보이지 않고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 그 말은 바로 이곳 계곡의 단풍을 두고 한말이다.
산정 높은곳에서 보는 조망이 있다면 그와 반대로 철저한 어둠이 기다리는 저 깊고 깊은 심해의 경치도 최고가 아닐까
지금은 단풍이 떨어져 볼품없지만 내년 가을에 찾으면 너무 아름다운 참나무 단풍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 희미하던 길 마저 잃을 수도 있다
묵은 자갈 임도길 위로 낙엽이 쌓여 있긴해도 길 찾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중간 이후로 임도길은 끊어지고
희미하던 길마저도 낙엽에 덮여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 때
그럴 때 눈에 보이는 돌탑
어느 누구의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촘촘하게 세워 놓아 어두운 밤 길에 마치 등불 같은 역할을 하였고
자연보호 현수막 역시 드문 드문 달아놓아 어렵지 않게 아랫재로 오를 수 있었다.
학심이골 초입에서 아랫재까지 돌탑을 세워 놓아 길임을 알려 주신 분 누군지 모르겠으나
갈길도 바빴을 텐데 작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랫재에서
운문산이나 가지산 진짜 주인인 묏선생 가족들과의 반가운 조우
그리고 일찍 감치 높은 나뭇가지 위에 자리 잡은 부엉이까지
그렇게 초저녁은 깊어갔고
이곳 아랫재 초소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가지산에서 신년 일출을 볼까 하다, 내일 일정도 그렇고 밀양시 산내면 삼양 마을로 내려가서 노숙하기로 한다.
삼양마을 도로가에 자리 잡은 삼양 슈퍼
저녁 8시가 다되어 불 켜진 슈퍼에 문이 열고 고개를 내밀며
"안녕하세요 혹시 라면 끓여 주나요?" 하니 시간이 늦어서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따뜻한 난로가 켜져 있기에 뭐라도 사 올까 하고 들어가니... 불쌍해 보이셨는지 "라면 끓여 주겠노라"며 앉으란다.
잠시 앉아서 동네분들과 이야기하며 어디 노숙할 곳이 없나 여쭈어 보니 앞의 안경 쓰신 분께서
자기 과수원에 낡은 컨테이너가 있는데 자고 가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횡재가 있나 싶어 라면값과 함께 아저씨가 드셨던 소주값까지 24,000원을 미리 계산해 드리고
이제 여유를 가지고 라면 그릇을 받아 든다.
3일간 164km 진행했으며 오늘 하루 동안 약 59km 진행
라면에 공깃밥까지 다 먹고 나니 앞에서 술을 드시던 안경 쓴 아저씨께서 피곤해 보인다며 도로 인근 과수원으로 가서
컨테이너 문을 열고 전기불을 켜 주신다
약간 지저분하지만 이 정도면 호텔 부럽지 않고 편안하게 잠잘 수 있을 것 같다.
침낭 펴고 자리에 앉아 발바닥에 생긴 물집 바늘로 터트리고 약을 발라 놓는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새벽 3시다.
짐 정리하고 등산화를 신고 하루를 시작한다
묵직한 배낭 때문에 어깨는 아프지만 밖으로 나와 총총한 별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은 상쾌하고
동네 닭들이 새해임을 알리느라 바쁘다.
도로따라 석남터널까지 대략 10km 오름길이다 보니 등과 이마에 땀이 난다
신년 일출 때문인지 석남사 터널로 올라오는 차들은 점점 많아지고
터널 인근에 도착하니 포장마차 하시는 사장님께서 일찍 문을 열어 두셨다
뜻하지 않게 계란 두 개의 행복을 느껴본 신년 새벽길
차가운 바람보다 땀을 너무 흘렸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기다리며 싱크대 아래를 보니 계란이 보인다.
"사장님 혹시 계란 후라이 두 개 해주실 수 있나요?" 하니
처음 해 본다며 이렇게 해주셨다.
커피값과 계란값 3천원을 드리려다 신년인데 싶어 만원짜리 새 지폐를 꺼내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하니
너무 감사하다며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말씀하신다.
석남터널 앞에서
가지산으로 신년 일출 보러 오신 분들로 인해 도로갓길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울주땅의 포장마차 불빛은 대단하고
불은 켜져 있지만 대부분 손님은 없다.
배내고개에 도착해서 잠시 오르면 배내봉이다
신년 일출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시고
아직 일출은 시작되지 않았고
오고 가다가 주운 대나무 지팡이
이곳에서 울산 다물 산악회 회원님을 만나서 인사 나누는데.
울주군에서 주는 무슨 배지 때문에 산행하러 오셨다고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모두 새로운 마음은 첫 일출로부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더 많은 복을 주지 않을 듯하고
살다 보면
뛰는 놈이 있는가 하면
나는 놈도 있고
기는 놈도 있을 테고
뒤돌아 보는 놈도 있을 테고
나처럼 가는 듯 마는듯한 놈도 있고
갈까 말까 하는 놈도 있을터
한해 첫 시작점에서 모든 분들이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일 년에 단 이틀간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의 신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태양신을 굳게 믿고 있다.
가는 해 끝자락에서 서산 넘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해의 감사 인사와
신년에 떠 오르는 태양을 보며 마음속으로 무언의 소원을 빈다
이미 날은 밝아있고 멀리 신불산이 보이는데
오늘은 밀양 얼음골이 있는 삼양마을에서 시작해서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그리고 통도사를 지나 양산시청까지 60km를 가야
한다
간월산에 도착하고
잠시 앉아서 물 한잔 하려니 배낭 옆구리에 달고 온 물병이 어디론가 도망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간월재에 도착했으나 간월재 매점은 굳게 닫혀있다
신불산 오름길에 만난 대전의 대단한 젊은 산꾼들
우측분은 다방님이신데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좋았습니다.
새해에도 하고자 하는 산행 원 없이 하시고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불산에서 보는 영축산
신불산 정상석
중년의 남, 녀가 서로 바꿔가며 인증사진을 찍는데
남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어지간하면 다른 분들께 자리를 좀 비켜 주시지
좋은날이라 욕도 못하고 자리를 바꾸는 틈에
겨우 정상석만 한 장 담고
영축산에서
배낭 속에 깊이 넣어둔 비상용 물한병 꺼내 마시고
가끔 우리 집 녀석들이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는데
산에 갈 때면 생수 작은 것 3개는 기본이고
그중에 한 병은 아무리 목이 마르더라도 꺼내지 말고
가능하면 집으로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한다.
꼭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면 하산을 앞둔 시점이나 인근에서 물을 구할 수 있을 때 친구들과 마시라고...
큰 애는 잘 따라 하는데, 작은애는 늘 물이 없다고 전화가 온다.ㅠㅠ
통도사로 내려가는 길에 산이 운영자님이 올라오셨습니다.
잠시 이야기하다가 좋은 임도길을 굽이돌아 통도사로 내려간다
통도사 금강 계단과 진신사리탑
자장께서 646년 독수리가 날개를 편듯한 영축산 아래 구룡지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을 쫓아내려 했지만
죽어도 못 나가겠다는 아홉 용에게 흰 종이에 화(火) 자를 써서 도망가게 했는데
여덟 마리는 어디로 떠나고 그중에 눈먼 용 한 마리가" 어디 갈곳이 없으니 이곳에 살게 해 주면 절을 잘 지키게 해 주겠다"라고 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바로 옆에 작은 구룡지라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오늘은 25년도 1월 1일 첫날이라 그동안 굳게 닫아두었던 자장율사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진신사리탑이 모셔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래서 그런지 통도사는 하루동안 불교 신자들로 가득했으며 많은 분들이 사리탑 주위를 돌면서 참배하고 있어
사리탑 앞에서 108배를 해야 함에도 뻐근한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다
무릎이 아파서 겨우 3배만 하고 일어났지만 회원님들의 25년도 안전산행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드려본다
통도사는 1,700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 불교의 성지이며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나무가 부처의 집이 된 대웅전에는 부처님을 따로 모시지 않으며, 현판을 보면 각 방향마다 다르게 걸려있는데
동쪽에는 대웅전(大雄殿), 남쪽에는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금강 계단(金剛戒壇)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각각 걸려있다
통도사의 정신적 지주인 자장율사의 영정이 모셔진 혜장보각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1,363년 전 중국 오대산에서 21일간 기도를 마치고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부처님 진신사리 100과와 가사, 그리고 400여 편 경전을 가지고 와 봉안한 적멸보궁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 유학을 마치고 신라땅으로 돌아가고자 "중국 장안현의 종남산에 계시는 원향선사에게 머리를 조아려
"대사!~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 인사를 드리니"신라땅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우면 발해의 여러 나라가 그대의 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자장이 신라로 귀국하여 이를 왕(선덕)에게 알리자 왕은 진흥왕께서 창건한 황룡사에 9층목탑을 만들도록 허락을 하셨고
645년 황룡사를 건립하여 이듬해 병오년에 황룡사 9층목탑을 완공한다.
자장율사께서 가장 애지중지하셨으나 고려 고종 25년 때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없는 곳, 흔적만 남아 있는 황룡사와 태화사
그리고 한국 삼보 사찰의 대표적인 계율종의 통도사
지금은 두 곳은 불타 없고 통도사만 남아있으니 그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을 말하며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중대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양산 통도사를 말하는데 이중에 두 곳은 사리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산이 지부장님과 보라님께서 신년이라며 떡국을 사 주셨고
오랜만에 만났지만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여
두 분은 울산으로 가시고 지난날 걸었던 양산천 따라 양산시청으로 향한다.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와도 목적지가 아직 멀기에 걸음은 멈출 수 없고
다방봉이나 금정산이 보이는데 내일 새벽에 일출을 볼 것 같다
오늘은 양산 시청 인근 53km 정도 와서 저녁 먹고 따뜻한 물에 씻고
발바닥의 물집 치료하고 일찍 잠에 든다.
새벽 4시 무렵에
잠에서 일찍 깨어났지만 발바닥의 물집이 말썽이라 슬리퍼 신고 산에 오른다.
오늘 일정은 대략 12km 급할 것도 없고
천천히 진행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가니 바람이 제법 차갑다.
시청 앞으로 걸어가 다방봉 들머리인 양산 극동 아파트를 찾아간다
도로가를 걸으며 어디 먹을 곳이 있나 없나 본능적으로 찾아보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먹을 걸 찾아가며 걸었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부지런한 동네 할매들께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산에 다녀오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동네 뒷산에 가면서 뭐 그리 큰 배낭을 메고 오느냐!"시며
ㅎㅎㅎ
좀 그렇죠 운동삼아 돌댕이 몇 개 넣어서요
다방봉 올라가는 길에 본 양산시
영축산 방향
지금 순간에 통도사 새벽 예불을 드릴 것 같아
조용히 눈감으며 맑은 풍경소리와 깨어있으라는 목탁소리를 더듬어 보며
보이지 않는 양산천과 그 옆으로 낙동강을 유추해 본다
우리가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오래전부터 강물의 흐름을 살펴봐야 하고
먼저 건너간 사람들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다, 강가에 서서 강물에 발을 담그면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자료가 쓸모없다는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불어 있다면 힘없는 두 다리는 견디지 못할 것이며
흙탕물이라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음을 알아차린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어둠이 점차 사라질 무렵
앞으로는 장군봉과 갑오봉이 보이고
멀리 아홉산 방향에서 신년 들어 두 번째 붉은 기운이 올라온다.
4대 종찰 마지막날인 오늘 목적지인 금정산이 지척이고
장군봉에서 본 갑오봉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방향을 가르쳐 주는 이정목이 반갑고
준, 희선배님의 사랑이 가득한 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빵 하나로 아침해결한다
일출인데
금정산에 도착해서
일출 구경한다며 금정산 정상에 올라온 육군사관학교 학생과, 해병대 그 친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군 제대 할 때까지 손 끝하나 다치지 말고 부모님 곁으로 가는 게 효도라고 이야기해 드리고
범어사로 향한다
하산하면서 생각해본다 신년 일출의 붉은 기운(氣運)과 인생에 있어 가장 젊은 청춘들의 기(氣)를 받는게 어느게 더 좋은지
물론 젊은 청춘들의 기를 받는게 더 좋겠다
금정산 북문을 지나고
범어사 산신각에 들러 산신 할배께 고마움과 금정산을 지나는 모든 산객들의 안전을 지켜 달라 기원드린다.
참고로 금정산 정상 아래에 고당할매를 모신 조그만 집이 있다
두 가지 전설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하늘의 신선할매가 고당봉에 내려와 금정산 산신이 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범어사와 관련된 설화로 밀양박(朴)씨에 관한 전설이다. 박보살은 일찍 결혼하였으나 실패하고,
범어사에서 공양주 보살이 되어 살림을 도맡아 일을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박보살이 죽을 때가 되자 범어사 큰 스님께 유언을 남긴다.
"스님 제가 죽으면 화장하여 금정산 가장 높은 곳에 뿌려 주십시오! 그 봉우리에 작은 집을 짓고 정월대보름에 제(祭)를 지내 주시면 범어사를 영원히 지키겠습니다". 며 범어사를 걱정하며 불심(佛心)을 보였다.
큰 스님의 그녀의 유언대로 정상에 산신각(山神閣)을 짓고 이름을 할미고(姑) 자와 집당(堂)자를 써서 고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렇듯 금정산에는 산신이 할매인데 천년고찰인 범어사 산신각에는 할배께서 근엄하게 계신다.
금정총림 범어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이며 10개의 산내(內) 암자와 2백여 개의 산외(外) 말사로 이루어진 범어사는 양산 통도사 그리고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경남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화엄십찰(十刹)중 하나이며 그중에 범어사, 해인사, 화엄사, 옥천사, 부석사가 대표적인데 모두가 대단한 사찰이며 누구나 한 번쯤 가 본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예전부터 나라를 대표하는 고승들의 수도처로 창건주이셨던
의상, 원효, 표훈스님과 경허, 한용운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승대덕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리고 범어사는 또한 국내 사찰 중 유일하게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 법당에 들어가니 보살님들께서 부처님께 사시예불 드릴 준비로 바쁘시고
한쪽 구석에서 3배하며 짧았던 4대 종찰길을 마무리한다.
5일간 뭔가를 찾거나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산문 밖으로 나가면 또 새로운 길이 생길것만 같다
범어사 일주문 조계문
단단한 체구의 사천왕 허벅지 같은 돌기둥이 다포형으로 이루어진 조계문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모습인데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아름다운 일주문을 살펴보면 부산의 범어사, 순천 선암사 일주문, 문경 희양산 봉암사 봉황문,
대구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 구례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이 있다.
길거나 짧거나
경남 해인사, 대구 팔공산 동화사, 영축산 통도사, 마지막으로 금정산 범어사까지 5일간 230km 일정을 모두 마치고
산문(山門)을 벗어난다.
누군가 이런 길을 걷는다면 대충 해보라 말하고 싶다.
모처럼 여러 날 시간을 빼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데
지도를 보고 길이 있는지 없는지
하루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을 식당이 있나 없나
잠잘 곳이 있는지
모든 걸 빠짐없이 꼼꼼하게 살펴더라도
가다가 변수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 하기마련이다.
이 모든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
대충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건 다 빼더라도 배낭에 침낭하나 넣고 가면 끝이다
걷다 보면 공식 같은 3가지 (평지와 약간의 산이 있다면 다르지만)
1) 비박 배낭 80리터를 메고 60km 걷기 새벽 3시에 나와 저녁 7시까지 걸으면 되고
2) 중간 40리터 정도의 배낭을 메고 70km 걷기 새벽 3시에 나와 9시까지 걸으면 되고
3) 가벼운 배낭으로 80km 걷기 새벽 3시에 나와 밤 12시까지 걸으면 답이 나온다.
위의 모든 건 물론 하루 정도 걷는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날 이렇게 걷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제 마무리하며 마중 나와주신 귀한님, 부산 지부장님(뛰어갈거다)께 감사드리며
길을 걷는 동안 지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 전하며 신년 한 해 안전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글을 다 읽으신 분들은 올 한해 절대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것입니다.
음을 약속드린다
첫댓글 매일 떠오르는 아침 해
정월 초하루라고 별다를 것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청춘들의 기(氣)와 엉망진창 계란후라이에서
그 어떤 일출에서보다 복됨을 느껴 봅니다.
긴걸음~ 긴후기~
클럽 회원님들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마음 담긴 한 자 한 자~
감사히 보네요.
방장님도 올 한 해 무탈한 걸음 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구요.
오늘도 수학 문제 풀고 있는 딸 옆에서 글 읽습니다.
좋은 글과 명쾌한 사진 잘 보았습니다.
삶에서 길과 흉을 만나야 대업을 이룬다 하던데 용기를 갖고 끈기 있게 인내하며 그것을 이루는 분은 손에 꼽겠지요.
그 대업를 이루고 있는 분 중 한 분의 글 잘 읽고 새해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방장님, 계획한 산행 무사 완주 왕~ 축하 드립니다.
신년의 해를 바라보며 맘속으로 바라는 일들이 진정으로 일어나길 기원해 보기도 했지만 그닥 그렇게 되진 않았고 매년 되풀이 되는건 늘상 맘속에는 그래도 언젠가는 이루어 질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올해는 붉은 태양이 아닌 회색재빛 하늘에 간절히 기도 했었습니다 수고 하셨구요 가시는길에 늘 무탈함을 기원 합니다
회원들의 무사종주 기원길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육사생도, 해병대 장병의 거수 경례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고놈들 경례 주인 제대로 만난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일출산행을 가려다
귀차니즘 때문에 나서지 않았는데
예전과 비교해서 의욕이 뚝 떨어진
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클럽회원님들을 향한 방장님의 정성때문에라도
올한해도 무탈하게 산행을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먼길 걷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해동통금범~
방장님 신년 발걸음 따라 잔잔히 깔린
음악까지도 마음이 뭉클해 집니다.
아말다말한 방장님의 을사년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긴 걸음
시원한 글 솜씨
"뱀이 기어가듯 붓으로 휘갈긴 곳이 진짜길이다"
꽂힙니다
아드님들에게 일러주는 물병이야기 저도 하고있는데요
2025년에도 모쪼록
건강하고 자연을 닮은 발걸음 글걸음 기대합니다~♡
창밖으로 불빛따라 눈발이 ~~~
귀하디 귀한게 날립니다
퇴근길 가슴 설레이겠어요 ㅋㅋ
언제나 그랬지만 2025년 한해 회원들의 무사한 발걸음을 위하여 애써주신 방장님이 계시니 J3클럽 인으로서 살아가는게 자랑스럽습니다😊 덕분에 열거된 사찰의 자세한 이야기로 역사공부도 덤으로 했네요📝 감사합니다🥰
푸른뱀의 해가 밝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올 한해도 끝까지 멋진 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연치 않게 신불산 정상 전 데크 쉼터에서 뵙게되었는데, 사진도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의 전화통화로 방장님의 해박한 산행지식을 배울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방장님의 신년 귀한 발걸음으로, 올해도 별탈없이 안전하게 보낼거 같습니다~^_^~
산행 중 우연히 만나시는 분들과의 추억도 참 많을듯 합니다.
풍천노숙 피할 수 있게 콘테이너 내준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행운이네요.
정상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있는데 똑같은 사진 계속 찍으면 꼴봬기 싫죠.
"다 잃으신 분들은 올 한해 절대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글에 밑줄 쫙 긋습니다.
1,2부 다 읽었기에 방장님 말씀 믿습니다^^
기나긴 길인데도 일상인듯 지나셨네요.
이제 도인이 된듯 ㅎㅎ
잘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코로나 이후로 긴 산행을 접고 뒷산만 다니고 있다보니
예전에 어떻게 걸었나 하며 한번씩 뒤돌아보게 되는데
방장님의 산행열정은 끝이 없는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무탈한 산행 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