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와 나의 마라톤 --5km 달리기 성공하기
다음날 저녁 퇴근 후 다시 운동장을 찾았다. 그리고 천천히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힘들어도 참으면서 미래를 생각하며 달리니 세 바퀴까지 가능했다.
첫날 한 바퀴 달리고 멈췄는데 세 바퀴라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놀랐다.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5km까지는 달릴 수 있을 거야.
5km 달린 뒤에 아버님을 찾아가면 뭔가 답을 주겠지."
미래에게 전화가 왔다. 신발을 사러 가자고 그랬다. 아빠가 그랬다면서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발이기에 신발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신발이 적합해야 부상도
입지 않고 달리기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미래가 메모를 해온 쪽지를 점원에게
보여주니 점원이 “이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시려는 모양이죠.” 하고는 바로 신발을
꺼내 주었다.
푹신한 착용감. 가벼운 느낌. 그러나 쿠션이 많은 신발이었다. "이 신발을 신고 내가
마라톤을 달린단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이 신발 신고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게 아니고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또 신발을 사야 하는 거래. 이건 연습용이면서 하프거리까지
달리는데 적당한 거라고 아빠가 말씀하셨어."
그날 저녁 새 신발을 신고 다시 운동장으로 갔다. 여느 때처럼 운동장은 고요했다.
운동장엔 아무도 없고 단지 나 혼자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달리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새 신발을 신어서 그런지
발이 무척 가벼웠고 달리는 폼도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섯 바퀴를 돌았는데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친김에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려보자고 했다. 몸엔 땀이 흐르고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여덟 바퀴를 돌고 나니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도 무겁고. 그래도 오늘은 꼭
열 바퀴를 달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열이라는 그 숫자가 나에게 큰 힘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홉 바퀴를 돌고 나서 멈춰 서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만 더 참자는 생각으로 나머지 한 바퀴를 안간힘을 쓰며 달렸다.
열 바퀴를 돌고 마지막 발을 내딛는 순간 스스로의 대견함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퀴는 순간
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5km를 달릴 수 있으면 10km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10km를 완주하면 하프(21.0975km)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하프를 완주하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달렸다. 매일 달리다 보니 달리기가 쉽게 느껴졌다.
거리 또한 조금씩 늘려갔고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운동장 스물다섯 바퀴 --5km를
달릴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버님이 미래에게 내가 드디어 5km를 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가 달리고 있는 운동장으로 미래와 함께 찾아왔다. 아버님께서 내 손을
잡더니 축하한다고 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선 함께 달리자고 했다.
날씬한 몸매, 가벼운 발놀림. 부드럽게 달려가는 아버님의 달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달리는 건 달리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 달리기는 자세가 중요하지. 우선 몸을 전봇대처럼
일자로 세우고 시선은 전방 50미터 앞을 응시하는 거야. 머리가 치켜들지 않도록
턱을 조금 잡아당기고 팔은 앞에서 볼 때 여덟 팔자가 되게 위치를 해주는 거야.
이때 팔을 흔들 때, 앞으로 내밀면서 팔 치기를 하는 게 아니라 팔꿈치를 뒤로
내밀면서 리듬감을 살려 반복운동을 해주는 거지."
"허리는 가볍게 들어줘야 하고 착지를 할 때는 발의 아치 부분이 땅에 닿는다는
느낌으로 내딛으면 되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질 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도록
대퇴부 근육을 이용하여 몸을 추진시켜 주는 거야."
아버님의 달리기 자세에 대한 강의는 너무 쉽게 들렸지만 막상 적용해 보니
쉽게 되지가 않았다. “자세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닐세. 달릴 때마다
반복해서 연습을 하다 보면 조금씩 좋아져 가는 자신의 자세를 볼 수가 있는 거지.
호흡은 4보를 내딛고 숨을 들이마시고, 4보를 내딛고 숨을 내뱉는 것을 주기로 하여
반복하면 될 걸세. 조금 빠르게 달리기 위해선 2보에 주기를 맞춰야 하기도 하고."
그냥 운동화 신고 빠르게 달리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알게 되었다. “이제 달리기를 하다 보면
마라톤이 얼마나 과학적인 운동인가를 알 수 있을 걸세. 마라톤 하려면 공부
많이 해야 하거든. 그래야 부상을 입지 않고 즐겁게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네.”
아버님과 미래와 함께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학교 운동장을 걸어 나오면서
내가 무척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래 아버님이 무척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