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전단향을 사르며
2017-09-11 배재호 논설위원·용인대 교수
동료 교수가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좋은 향냄새 때문에 왔다고 한다
전단향이 멀리 퍼져
문틈 사이로 새어나간 모양이다
순간, 잘려진 전단수
나무신이 생각난다
그리고 불설전단수경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떠올리면서
붓다와 같은 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되뇌어 본다
연일 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도 향을 피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책속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을 사른다. 며칠 전, ‘전단향(檀香)’을 선물 받았다. 전단향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향냄새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불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단목(檀木)이다. 백단(白檀), 자단(紫檀), 흑단(黑檀)도 있지만, 단목 중에 최고는 단연 전단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석가모니 붓다가 된 후, 어머니 마야(Maya)부인에게 설법하기 위해 인간세상을 떠나 도리천(利天)에 올라갔을 때, 코삼비국(Kausambi)의 우다야나왕(Udhayana, 우전왕 優塡王)은 붓다를 그리워한 나머지 불상을 만들었는데, 그 때 사용한 것이 바로 전단목이었다.
나무의 심지와 군데군데 검은 띠가 있는 전단이 향으로 처음 사용된 곳은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라고 한다. 전단향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후한시대 양부(楊孚)가 쓴 <교주이물지(交州異物志)>에서 이 향나무를 물에 넣었을 때 가라앉는 침향(香)으로 분류하고, 말레이반도에서 가져왔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단향은 아열대 지방인 이곳에서 곰팡이 냄새를 제거하고 벌레를 쫓으며 병든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능을 했다.
사실 전단향이 만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인식된 것은 중국에서 2세기경에 번역된 <불설전단수경(佛說檀樹經)>에서 이미 확인된다. 내용인즉 이렇다.
“한 겨울에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곁에 서 있던 전단수 나무신이 음식과 옷을 주면서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머물기를 허락하였다. 봄이 되어 사람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돌아가려 할 때, 나무신에게 이름을 알려달라고 애원한다. 나무신은 자신의 이름이 전단이며, 뿌리와 줄기, 가지, 잎은 사람의 온갖 병을 낫게 하며, 그 향기는 멀리 퍼지므로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탐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라 국왕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전단향을 구하고자 하였다. 후한 보상에 눈이 먼 사람은 나무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전단수가 있는 곳을 국왕에게 알려 준다. 왕의 명을 받은 신하가 그 사람과 함께 나무가 있는 곳에 도달했지만 곧게 자란 자태와 찬란한 빛으로 둘러싸인 나무를 보고 놀라 차마 벨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 때 나무신이 자신을 자르되 자른 곳에 사람의 피를 바르면 다시 원래 모습이 된다고 하였다. 잘린 나뭇가지가 떨어져 약속을 어긴 사람을 찔러 죽였다. 신하는 그 사람의 피를 발라 나무는 다시 원래 모습이 되었다.”
<불설전단수경>은 전단수가 잎에서 뿌리까지 한 부분도 빠짐없이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모든 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신성한 나무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린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침 동료 교수가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좋은 향냄새 때문에 왔다고 한다. 전단향이 멀리 퍼져 문틈 사이로 새어나간 모양이다. 순간, 잘려진 전단수 나무신이 생각난다. 다시 연구실에 가득 찬 전단향을 느껴 본다. 그리고 <불설전단수경>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떠올리면서 붓다와 같은 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되뇌어 본다.
[불교신문3329호/2017년9월13일자]
©불교신문
첫댓글 백단(白檀), 자단(紫檀), 흑단(黑檀)도 있지만, 단목 중에 최고는 단연 전단.
불상도 전단으로 만들었다는.
전단수,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