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인이 사는 곳은 지중해의 전부였다
그리스 본토는 땅이 워낙 척박하여서 농사를 지어서 살기로는 힘든 곳이다. 그들은 BC8세기 경부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예게 해의 여러 섬에 정착하였고, 터키의 서쪽 해안에 진출하여 도시를 건설하였다. 항해는 생활의 방편이었으므로 항해술이 발달하였다. 터키-시리아 서쪽 해안 지역이 이오니아 지역이다.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 인 도시로는 밀레토스가 중심이었고 과학과 철학의 중심지였다. 이오니아에는 12개의 그리스 인 도시가 있었다.
이곳은 터키에 있는 나라 리디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페르시아가 리디아를 정복하자. 이오니아의 그리스 도시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터키에 리디아라는 강력한 나라가 있었다. 이란 땅의 페르시아도 리디아의 속국이었으나, 페르시아가 성장하여 리디아를 정복하고, 리디아가 지배하던 지역이 페르시아 땅이 되었다. 터키와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지역(이오니아 지역)도 페르시아 땅이 되었다. 이오니아 지역에는 그리스 도시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페르시아-그리스 마찰이 일어났다.)
그리스 인은 에게해와 소아시아 뿐 아니라, 서쪽으로도 진출하여 스페인과 프랑스의 남부 해안, 아프리카의 북부 해안, 시실리를 비롯한 이태리의 남부 지역, 저 북꼭 흑해 해안지역(조지아 지역-이아손 이야기는 배경이 조지아이다.)에도 그리스 식민 도시를 세웠다. 식민 도시가 그리스 본토보다 더 부유하고 잘 살았다. 그리스 세력권은 지중해 지역이 모두 해당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무역을 했고, 때로는 무력으로 침범하여 남의 재물을 뻬앗는 해적질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해적질은 살기 위한 그들의 생활이었지,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리스 인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그리스는 참주정을 거치고, 솔론의 개혁을 거치고, 만주정을 하고 있었다.
페르시아가 패권국가가 되자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 도시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 불만이 많았다.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왕정의 페르시아 제국과 항해가 기본 생활 방식이며, 민주정의 작은 도시 국가인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 인은 생활 방식과 사유세계가 맞을 수 없었다. 페르시아의 지배에 불편함을 느끼던 이오니아의 그리스 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그리스 본토의 국가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군사를 파견한 그리스 본토 국가는 아테네 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소수의 해군함선을 보냈으나 곧 패배하였다. 그리고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 인 반란도 진압당하므로 실패했다.
이것을 두고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한 것이라고 말한다. 강력한 페르시아에 맞선 그리스 도시 국가가 패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긴 하였지만 지중해의 그리스 도시 국가는 페르시아가 처들어오리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페르시아 전쟁이라면 손바닥만한 그리스가 어떻게 페르시아와 맞장을 뜨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중해 연안의 식민도시를 생각하면 전 지중해 지역이 그리스라고 생각하면 그리스도 작은 나라가 아니고 막강한 세력권을 형성한 나라가 된다.)
*호머가 노래한 일리아드 시대는 미케네 시대이다. 도리아인이 남하해오자. 미케네인은 바다도 도망갔다. 에게해의 여러 섬과 이오니아 지역에 대표적인 12도시를 건설했다.(밀레토스가 중심이다.)
밀레토스의 주민이고, 철학의 아버지라는 탈레스는 BC640년 경에 살았다.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인이 본토의 그리스인보다 더 부유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