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한 달 간의 앙코르 여행 기록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찬이 가족 여행
기간 : 7월 20일(목)-8월 18일(금) 29박 30일
장소 : 인천-태국(방콕-깐짜나부리-나컨빠톰-쑤코타이-씨 쌋차날라이-싸완클록-우돈타니-반치앙-나컨파놈)-라오스(타캑-싸완나켓-빡쎄-짬빠싹-씨판돈)-캄보디아(스뚱뜨렝-깜퐁짬-씨엠리업-바탐봉-씨쏘폰)-방콕-인천
7월 29일(토) 열흘 째
오늘은 오토바이를 빌려 반 푸에(Ban Phue)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볼 생각이다. 호텔 입구에서 렌터카 회사 명함을 뚝뚝 기사에게 보여주면서 그곳으로 가는 뚝뚝 가격을 흥정하였다. 그런데 기사는 나에게 차를 빌릴 거냐고 묻더니 오토바이를 몰려면 면허증이 있어야 하고, 또한 세 명이 오토바이에 타면 불법이라고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반푸에 지역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경찰들이 있기에 안 된다고 한다. 갑자기 이 말을 들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가 겁이 난다. 악명 높은 태국 경찰에게 아까운 외화를 뜯겨서는 안 되지 않는가? 할 수 없이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먼 거리가 아닌데도 뚝뚝 기사들은 처음에는 80 바트 정도를 부른다. 두세 번 다른 기사와 흥정하여 버스 정류장까지 20 바트에 뚝뚝을 타고 갔다. 1번 버스 정류장에서 물어보니 우리가 가려고 하는 푸 프라밧 역사 공원(Phu Phra Bat Historical Park)으로 가는 썽태우는 우돈타니 북쪽 외곽, 우회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타야 한다고 말한다. 버스 타는 곳이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에도 위치가 나와 있지 않고, 론리 플래닛에도 물론 설명이 없다. 다시 뚝뚝을 타고 그쪽으로 가려고 하니 기사들이 최소 40 바트를 부른다. 그러다가 썽태우 한 대가 원래 노선이 아닌데, 우리를 30 바트에 태워주겠다고 해서 썽태우를 타고 갔다.

주도로와 우회도로가 만나는 근처에 시장이 있고, 시장 앞에 농카이 가는 버스와 썽태우들이 서 있다. 푸 프라밧으로 가는 썽태우도 기다리고 있어 올라탔다. 어른은 30 바트, 어린이는 20 바트를 받는다. 정류장 맞은 편에 한글 간판이 보인다. <우돈-이피에이해외인력주식회사>, <우돈타니 기능개발 훈련학교>(Udorn E.P.A. International Recruiting CO. LTD) 한국계 기업인가 보다.
11:20 손님을 태우고 뚝뚝은 출발한다. 에어컨 없어도 달리니 무척 시원하다. 2번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2021번 국도로 좌회전하여 반푸에(Ban Phue)에 도착하였다. 가는 도중에 틈틈이 손님을 태우고, 벨을 누르면 손님을 내려준다. 반푸에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하였다. 길가 표지판에 음주 운전을 하지 말하는 표지판이 종종 보인다. ‘Drunk+Drive=Dead’ 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길가에 보이는 가옥은 대부분 1층은 사용하지 않는 목조 고상 가옥으로 열대 기후 지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물론 겨울이 추운 우리 나라에서는 난방비 감당이 어렵기에 고상 가옥은 여름용 별장에만 어울린다. 장기 여행의 경우 오토바이 대신에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렌터카를 이용하는 방법도 좋을 듯하다는 얘기를 나눈다. 그러려면 나도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따야겠다.
12:30 네거리에서 기사가 내려주고 썽태우는 우회전해서 사라진다. 푸 프라밧 역사공원 입구다. 푸 프라밧은 부처님 발자국 산이라는 뜻이다. 모처럼 햇살이 뜨겁다. 여기서 다시 모또를 타고 5km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한낮이라 모또 기사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다가 한 기사가 다가와서 40B라고 표시된 안내판을 가리킨다. 세오녀가 가격을 깎아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다. 썽태우나 뚝뚝도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뚝뚝이 마침 보여서 공원까지 가자고 하니 모또를 가리키면서 저걸 타고 가라고 한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는 공원까지 모또만 운행하고, 모또 기사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있음에 분명하다. 모또 한 대로만 가자고 해도 안 된단다. 할 수 없이 모또 두 대에 몸을 실었다. 입장료를 어른만 내고 공원에 들어가서 우선 안내소에 들러야 한다. 안내하는 사람이 우리보고 몇 시에 돌아갈 것인지 모또 기사에게 말해주라고 한다. 사실 시간을 정하고 구경하는 것은 생리에 맞지 않기에 그냥 우리가 볼만큼 보고 갈 것이라고 하고 모또 기사는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 세오녀는 내려갈 때는 히치하이킹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안내 팸플릿에는 자세한 지도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낭 우사(Nang Usa) 이야기 그림이 있다. 설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판(Phan)이라는 곳으를 다스리는 파야 콩 판(Phaya Kong Phan)에게는 우사라는 딸이 있었다. 파야 콩 판은 교육을 위하여 수도승인 리시 짠따(Rishi Chanta)에게 딸을 보냈다. 열 여섯까지 우사는 숲속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우사의 집은 버섯 돌처럼 생긴 바위에 굴을 판 집이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왔다. 외로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고 이제 여인으로 짝을 찾을 때가 온 것이다. 그는 그의 외로움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적은 편지를 쓴 꽃배에 담아 메콩강에 내려 보냈다. 그때 따오 바로스(Tao Baros)라는 왕자가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가 이 배를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있던 편지를 읽게 되었다. 그는 바로 말을 타고 달려가 우사를 발견하였고 둘은 바로 사랑에 빠졌다. 따오 바로스는 우사를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파야 콩 판은 바로스 왕자와 절 짓기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샛별이 뜰 때까지 절을 짓지 못하면 지게 되고 패배자는 목을 자르기로 한 게임이다. 해가 뜰 무렵 절 짓기 경기는 시작되었다. 바로스 왕자가 질까 두려워한 우사는 산 꼭대기에 큰 등불을 켜서 자기 아버지가 새벽이 온 것을 보지 못하도록 속임수를 썼다. 그래서 바로스 왕자가 이기게 되었고, 그는 우사를 자기 나라 무앙 파코(Muang Phakho)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우사와 바로스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쁜 소문에 연류된 우사는 바로스의 곁을 떠나 숲속에 돌아와 바로스를 원망하다가 찢어진 가슴을 안고 죽었다. 우사가 도망간 것을 안 바로스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하여 숲속으로 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좌절에 빠진 바로스 역시 비통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우사는 낭 쑤차다(Nang Suchada)로 환생하고, 바로스는 인드라(Indra)로 다시 살아나게 되어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얘기다.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공원 안에 식당이 없어 난감하다. 아침에 사온 바나나 두 손으로 비상 식량으로 한다. 매점에서는 캔맥주와 음료수, 과장 등만 팔고 있다. 수련회를 가지고 있는 듯한 태국인들 단체도 건물에서 행사를 한다.

배는 고파도 구경은 해야겠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름과 서명을 한다. 길을 잃거나 귀환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숲이 우거진 사이로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간다. 울창한 삼림에서 유용한 목재가 생산된다. 곧 이어 여러 가지 이상한 바위와 종교 형상물이 나온다. 우리는 먼저 호 낭 우사(Hoh Nang Usa) 바위를 찾아갔다.

우사 공주가 살던 곳이라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저 좁은 공간에서 정말로 우사가 살았을까? 오두막에 앉아 있던 안내인이 다음 코스를 알려준다.
대만 야류 바닷가에서 본 기괴한 형상의 바위를 연상케 하는 버섯 바위, 고인돌처럼 생긴 사암이 나타난다. 우리 나라 고인돌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청동기 시대 대표적 유물로 수 만 개가 있지만, 이곳에 고인돌처럼 생긴 것은 사암이 빙하에 의하 침식 결과로 생긴 것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고인돌과 선돌처럼 생긴 독특한 바위를 만들었고, 빙퇴석(모레인)을 남기고 있다. 참 내, 이곳에서 빙하 지형을 만날 줄이야.

집단 권력을 행사하여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한 고인돌과 자연의 풍화와 침식으로 생긴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신석기 시대 이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특이한 형태의 바위를 보고 종교적인 수련이나 의식의 장소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고인돌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고인돌처럼 생긴 이상한 바위마다 우사 공주 전설과 관련된 이름을 붙여 놓고 있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바위 도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위벽에 벽화를 남기고 있다. 붉은 색으로 동물과 사람 등을 그려놓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암각화를 주로 남겼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냥 암벽화를 그렸다. 이후에 불교과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상징물들이 자연적 경관에 덧붙여 현재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탐 프라(Tham Phra)는 앙코르 영향을 받은 다시 말해 롭부리 양식의 불상이다.
* 환전
우리은행 2006년 7월 6일
1바트 25.21 원으로 30,000 바트 환전(우대 40% 적용)
외환은행 2006년 7월 19일 환전 클럽 이용
1달러 964.47 원(고시 환율 975.37원에서 사이버 환전으로 65% 할인율 적용)
* 연오랑 세오녀 가족의 다른 여행기는 http://cafe.daum.net/meetangkor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