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니히제(Koenigssee:왕의 호수)
왕의 호수라는 의미의 퀘니히제는 독일의 최남단 동남쪽 바바리아(Bavaria)주州, 오스트리아 국경부근의
휴양 도시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에 위치한 독일인이 사랑하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빙하가 만든 자연 호수이다. 호수는 베르히테스가덴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호수 인근의 주차장-
** 지나온 독수리 둥지(켈슈타인하우스)에서 퀘니히제(호수)를 내려다 볼수 있었듯이 주차장에서는
독수리 둥지가 올려다 보인다(육안으로는 보이지만 사진에서는 식별이 어렵다).
-독수리 둥지(Zoom In)-
**석회암 능선 위에 건물이 보인다.
- 호수 선착장 인근의 호텔과 상가-
** 호반 길(Seegasse)이라는 이름의 도로 양측으로 식당과 기념품 점이 늘어서 있다.
-유람선 선착장-
**선착장 호반에는 보트 계류 선고(船庫)가 있다. 눈이 많은 지방에서는 보트를 필요시
즉시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고 시설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람선 선내-
** 자연보호구역인 호수를 운행하는 선박의 추진기는 밧테리 모타로, 호수를 오염 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엔진 소음이 전혀없이 정숙하다. 운행거리가 길지 않아 배의 속도는 5 낫트(knot=1.8kmX5)정도이다.
서행의 이유는 5분만에 운행을 끝내면 여행과 관광의 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호수 개황-
**장경 : 7.7 km , 장폭 : 1.7 km, 면적 : 5.218 km ², 평균수심 : 98.1 m, 최대수심: 190 m, 해발 603 m.
퀘니히제(Koenigssee)는 주라기 시대 지구대에 속해 있다.
빙하기 말기의 빙하에 의해 형성된 독일에서 세 번째로 깊은 호수이다.
호수의 출구 외에는 2,700 m 높이 절벽에 둘러싸여 있어 피요르드(fjord)와 매우 유사하다.
-조타실-
-Scene-
- 선장의 트럼펫 연주-
** 약 20분쯤 가다가 호수 가운데에서 배가 멈춘다, 그러면 선장이 출입문을 열고 밖을 보며
트럼펫을 잠시 연주한다. 절벽에서 돌아오는 반향(Echo)이 아름답게 들린다고 한다.
이곳이 메아리(Echo) 절벽이라는 곳이다. 필자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른 유람선-
** 호수 보트 크루즈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호수의 2/3 정도 거리에 있는
성 발토로뮤 수도원까지 가는 코스와 호수 끝 잘레트(Salet)까지 가는 코스이다.
- 빙하가 만든 U자 계곡-
** 계곡에서 흘러내린 빙하 퇴적토가 삼각주를 만들었고 여기에 식생이 형성되어 있다.
-성 발토로뮤(St. Bartholomew) 교회가 보이는 풍경-
**성 발토로뮤 수도원은 주변 산악을 걸어 넘어오는 길과 보트로 밖에는 접근을 할 수가 없다.
겨울에 결빙을 하면 어름 위를 걸어올 수 있겠으나 1964년 폭크스바겐 비틀(Beetle)로 수도원에서
돌아가던 사람이 빠진적이 있다. 자동차는 1997년에야 100 m 깊이에서 발견되었다.
-선착장에서 본 교회와 수도원 주변 풍경--
-선착장 출구-
-성 발토로뮤(St. Barthlomew) 교회-
** 로마 가톨릭 교회로 사도 발토로뮤의 이름을 이어받았고 고산지대의 농부와 목자들의 수호성인이다.
1134년 베르히테스가덴의 제후에 의해 최초 교회가 세워졌다가 1697년 잘츠브르크 대성당을 모델로
바로크 스타일로 개축되었다. 두개의 양파형 돔에 붉은색 지붕을 이었다.
-교회 내부-
-피에타(Pieta)-
- 떠 마실 수 있는 호숫 물-
-야생 오리와 인증샷-
** 이 중국 여성은 많이 해본 솜씨로 오리들을 유인하는 것은 먹이감이 아니다.
사진만 찍고 떠났다. 오리들만 속은 것이다. 관광지의 야생동물들은
이제는 텃새가 되거나 가축으로 진화(퇴화)해 가고 있다.
-교회 뒤편 놀이 공간 과 사냥꾼의 숙소-
** 교회와 같은 이름의 사냥꾼의 숙소가 교회와 동시 지어진 것은 12세기였다.
그 후 여러차례 개축되었는데 1803년까지 베르히테스가덴 제후의 개인 주거지였다가
1810년 이 지역이 바바리아 왕국과 합병되어 이 건물은 인기있는 사냥꾼의 숙소가 되었다.
현재는 여인숙으로 이용되고 있다.
-돌아갈 배편-
퀘니히슈로스(Koenigsschloss)
퀘니히슈로스는 왕의 성이라는 의미이다. 왕의 성의 이름이 헤렌킴제(Herrenchiemsee)로
뮌헨(Műnchen)에서 60 km 남쪽에 위치한 헤렌 섬(Herreninsel)가운데 세워져 있다.
-킴제(Chiemsee : 킴湖) 와 헤렌 섬(Herreninsel) 요도-
**스톸(Stock) 선창에서 훼리보트로 15분 걸린다.
-루드비히 2세-
** 선창가에 세워진 원기둥 위에 루드비히 2세의 얼굴 모습을
철판을 오려내는 기법으로 제작하여 올려 놓았다. 4각주 기단에 글은.
" Ludwig II. koenig von Bayern(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
☀1845. 8. 25
☨1886.6. 13
-선창을 떠나며-
-선창으로 들어오는 배-
헤렌 섬(Herren- Insel)의 선착장-
** Herren-Insel(= Island), Kőnigsschloss(Kőnig=King, schloss=castle), ő = oe로 대체 가능. β = ss
-소로를 따라서 성으로-
** 성까지는 약 5분 정도 걸어들어 간다.
-헤렌섬(島)의 헤렌킴제城(좌) 조감도 와 헤렌킴제(Herrenchiemsee)城의 항공사진(우)-
-헤렌인젤(Herreninsel)섬 서쪽 호안(湖岸)에 굴착된 운하-
**강으로 부터 성이나 궁전까지 선박이 되도록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수로를
구축한 예는 상뜨 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이나 파리의 루브르 궁전 등에서 볼 수있다.
-정원 입구에서 본 헤렌킴제 城-
**프랑스식 정원 양식을 표방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분수대와 고전주의 양식의 조각상이 즐비하며
낭만주의적 양식도 빠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루드비히 왕가가 선호했던 양식이다.
-원형 분수 뒤로 보이는 헤렌킴제 성 전경-
-거대한 원형 분수-
-원형 분수대의 대리석 상-
** 손가락 등 세밀한 부분은 손상이 되었다.
-물을 분출 하는 모습-
** 분수대가 수로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계속 물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 간격을 두고 분출한다.
-2 기의 대형 분수대 중 오른편의 분수대-
- 분출 정지 시의 모습-
** 정원과 분수대는 궁전 만큼이나 건축면에서 평가받을 만한 것으로 보인다.
-왼편 대형 분수대-
-청명한 날씨 속에 헤렌킴제 城(구글 자료)-
** 우천시에 방문했었기에 참고로 밝은 사진 인용 게재합니다.
-분출 정지 중-
-분수대 주변의 인물상-
** 장방형의 수반 주변에는 각각 12개의 실물대의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다.
-청동 인물상-
** 여인상은 동일 모델처럼 보인다.
-청동 인물상-
**좌대에 붙어있는 안내문은 작품 해설인줄 알고 들여다 보니 " 만지지 마시오" 였다.
-헤렌킴제 궁전-
** 루드비히 2세가 건축한 3개의 성(노이슈반슈타인, 헤렌킴제, 린더호프) 중 규모와 비용 면에서는
1위의 성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건설한 최대의 성이다. 성은 1878년~1886년까지 건축되었고,
루드비히 2세는 프랑스 풍의 이 성을 건립하기 위하여 파리를 두번 방문하였다
-궁전 현관-
**베르사유 궁전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국가의 재정이 거덜날 정도로 무리한 공사를 감행했다.
하지만 루드비히 2세가 이곳에 머문것은 단 9일 이라고 한다. 궁전 공사를 위하여 1863년부터 1886년까지
1657만9674마르크(mark)가 쓰였다. 2007년 8월 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1억2540만 불(미화)이다(위키피디아).
-궁전 내부 회랑-
-루드비히 2세(Ludwig I I)-
**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으로 불리지만 '거울의 방'은 베르사유 궁전보다 훨씬 길고 화려하다고 한다.
완성된 방은 20여개 뿐 나머지 50여개의 방은 루드비히 2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후 그대로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전시실 외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전시품 # 1 (거실) -
-전시품 # 2 (루드비히 2세) -
-전시품 # 3 -
-전시품 # 4 -
-전시품 # 5 -
-전시품 # 6 (마이센 도자기) -
** 마이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명품 도자기 생산지이다.
-전시품 # 7 -
** 전시품 # 6 의 세부
- 전시품 # 8 -
** 전시품 # 6 의 세부
- 전시품 # 9 -
- 전시품 # 10 -
-전시품 # 11 (침실) -
** 비 상식적으로 성을 짓는데 집착한 나머지 국고를 탕진한 루드비히 2세는 의회의 탄핵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유배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하여 헤렌킴제 성은 미완으로 남는다.
-귀 로(선착장으로 가는 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