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符經解 孤雲 崔致遠천부경해 고운 최치원 천부경의 해설 고운(호) 최치원
천부경天符經
一始無始一析三極無 일시무시일석삼극무
盡本天一一地一二人 진본천일일지일이인
一三一積十鉅無櫃化 일삼일적십거무궤화
三天二三地二三人二 삼천이삼지이삼인이
三大三合六生七八九 삼대삼합육생칠팔구
運三四成環五七一妙 운삼사성환오칠일묘
衍萬往萬來用變不動 행만왕만래용변부동
本本心本太陽昻明人 본본심본태양앙명인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중천지일일종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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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符經 八十一字
천부경은 81자로 된 경전이다.
[天符經解] 孤雲 崔致遠천부경해 고운 최치원
천부경의 해설 고운(호) 최치원
八十一字神訣 神訣字雖八十一 萬法具略
팔십일자신결 신결자수팔십일 만법구략
: 팔십일자로 신(변화)의 이치를 끝낸다
신(변화)의 이치를 비록 팔십일자로 밝히나,
만가지 법을 갖추고 다스린다.
一者 太極也 无始者 无極也 太極始于无極 故曰 '一始無始'
일자 태극야 무시자 무극야 태극시간무극 고왈 일시무시
: 一(일)이라는 태극을 말한다.
무시(시작이 없음)라는 것은 무극을 말한다.
태극은 무극에서 시작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태극은 무극에서 비롯된다"한다.
太極分而爲天 爲地 爲人也 故曰 '一析三'
태극분이위천 위지 위인야 고왈 일석삼
: 태극이 나뉘어져 하늘을 낳고, 땅을 낳고, 사람을 낳는다.
옛말에 이르기를 "하나가 셋을 낳는다."고 한다.
雖分三才 太極依舊自在也 故曰 '無極盡本'
수분삼재 태극의구자재야 고왈 무극진본
: 비록 세 개의 근본으로 나누어지나,
태극에 의지하여 오랫동안 스스로 존재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무극은 다함이 없다"
天得一而爲第一 地得一爲第二 人得一爲第三也
故曰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득일이위제일 지득일위제이 인득일위제삼야 고로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하늘이 一(일,태극)을 얻어 一(일)을 만들고,
땅이 一(일,태극)을 얻어 二(이)를 만들고,
사람이 一(일,태극)을 얻어 三(삼)을 만든다.
옛말에 이르기를 천이 태극을 얻어 一(일)이되고,
땅이 태극을 얻어 二(이)가되고, 사람이 태극을 얻어 三(삼)이도니다
*천지인에 모두 태극이 있다.
无極 則金剛般若眞如之先天也 太極 則阿賴耶識 天地人物 皆因此識而落於后天 生生死死
무극 즉금강반약진여지선천야 태극 즉아뇌야식 천지인물 개인차식이낙어후천 생생사사
四生之道 不息 사생지도 불식
: 무극은 곧 쇠의 강함이 돌아오는, 선천의 원래의 생김 그대로와 같은 것이며(타고난 그대로), 태극은 곧 언덕(무극)에 의지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천,지,인의 물건이 모두가 후천에서 떨어져 이곳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낳고, 낳으며, 죽고, 죽는(목화금수) 네가지를 생성하는 도는 쉬지 않는다.
天一生水 地六成之 居北 地二生火 天七成之 居南 天三生木 地八成之 居東
천일생수 지육성지 거북 지이생화 천칠성지 거남 천삼생목 지팔성지 거동
地四生金 天九成之 居西 天五生土 地十成之 居中也 故曰 '一析十鉅'
지사생금 천구성지 거서 천오생토 지십성지 거중야 고왈 일석십거
: 천의 一(일)이 水(수)를 만들고, 땅의 6이 이루며 북쪽에 거주하며,
땅의 二(이)가 火(화)를 만들고, 하늘의 7을 이루며 남쪽에 거주하며,
천의 三(삼)이 木(목)을 만들고, 땅의 八(팔)을 이루며 동쪽에 거주하고
땅의 四(사)가 金(금)을 만들고, 하늘의 九(구)를 이루며 서쪽에 거주한다.
하늘의 五(오)가 土(토)를 만들고, 땅의 10을 만들며 중앙에 거주한다,
그리하여 옛말에 이르기를 "하나가 나뉘어 십을 크게 한다"고 했다.
已落后(天) 三才萬物 生成不息 變化無窮也 故曰 '无櫃化三'
이락후천 삼재만물 생성불식 변화무궁야 고왈 무궤화삼
: 후천에서 떨어진 삼재의 만물은 낳고, 이루는 것을 쉬지 않는다.
변화는 끝이 없다. 옛말에 이르기를 무극이라는 궤는 삼(삼재, 만물, 천지인)으로 화한다.
二 陰數(也) 三 陽數(也) 天地人 皆有陰陽也 故曰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이 음수야 삼 양수야 천지인 개유음양야 고왈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二(이)는 음수이고 삼은 양수이다,
천지인이 모두 음양(二,三)을 가지고 있다.
: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도 이삼(음양),땅도 이삼9음양),사람도 이삼(음양)을 가지고 있다"한다.
后天乾坤配合 (化)生一白水 二黑土 三碧木 四綠木 五黃土 六白金 七赤金 八白土 九紫火 후천건곤배합 화생일백수 이흑토 삼벽목 사녹목 오황토 육백금 칠저금 팔백토 구자화
: 후천의 건(하늘)과 땅(곤)이 서로 짝이 되어 합하여, 一(일)의 흰 수를 만들고,二(이)의 검은 토를 만들며, 三(삼)의 푸른 목을 만들고, 四(사)의 초록 목을 만들고, 五(오)의 누런 토를 만들고,六(육)의 흰 금을 만들고,七(칠)의 붉은 금을 만들고, 八(팔)의 흰 토를 만들고, 九(구)의 자주 빛의 화를 만드는 것으로 변화한다.
批鋪九宮 運化無窮也 故曰 '大乾合坤 生七八九'
비포구궁 운화무궁야 고왈 대건합곤 생칠팔구
: 구궁으로 밀쳐서 펴놓아, 운행하여 변화는 끝이 없느니라.
옛말에 이르기를 "큰 건과 곤이 합하여 6,7,8,9를 만드느니라."한다.
氣具大略 以上 (上述之道 要略言之 氣具一統 運化所成也) 三才萬物 分裂之像也
기구대략 이상 상술지도 요략언지 기구일통 운화소성야 삼재만물 분열지상야
: 기운은 각기 큰 다스림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 도의 지음은 말로써 요약하면, 기가 하나의 큰 줄기를 갖추어서, 운행하고 변화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느니라.)
삼재(천지인)만물이 나뉘어져 형상을 이루게 되느니라.
歸根復命 眞一之道(也) 運三木之日 四金之月 入中結丹 五土 七火 一水 妙合(而)凝 無量廣劫
귀근복명 진일지도야 운삼목지일 사금지월 입중결단 오토 칠화 일수 묘합(이)응 무량광겁
: 근원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명(천명, 본성)으로 돌아오니, 참된 하나(태극)의 도이니라. 三木(삼목)의 해와 四金(사금)의 달을 운행하여 中(중)에 들어, 단(붉음,밝은 마음)을 맺으니, 이를 五土(오토)라 한다. 七火(칠화)와 一水(일수)는 묘하게 합하여져 응결되어, 무량광겁동안
得大自在也 千千萬萬世 長生不死之大道 成仙成佛之眞訣 惟此一法 更无他術也
득대자재야 천천만만세 장생불사지대도 성선성불지진결 유차일법 갱무타술야
: 크게 얻어 스스로 존재하느니라, 천천만만세 동안 오래 살며, 죽지 않는 대도를 만들며, 仙(선)을 만들고 佛(불)의 진결을 만든다. 이 하나의 법을 생각해보면, 고칠 것이 없는 그 이치니라.
故曰 '運三四 成環五 七一妙衍'
고왈 운삼사 성환오 칠일묘연
: 그래서 옛말에 이르기를 삼사(木(목)金(금))를 운행하여 五(오)를 만들고, 칠일(水(수)火(화))묘하여 넘쳐흐른다.
訣中秘旨 口口相傳 不記于文 故 不遇眞師 莫能知之 欲聞秘旨者 正心修戒 至誠發願 心有眞師
결중비지 구구상전 불기우문 고 불우진사 막능지지 욕문비지자 정심수계 지성발원 심유진사
: 중을 잡고, 아름다움을 숨겨서 입과 입으로만 서로 전하여 오고 문자로 기록하지 않았다. 고로 진짜 스승을 만날 수 없어서 능히 알지를 못하였다. 숨겨진 선미(아름다운 맛)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계를 지켜서, 지극한 정성으로 원하는 것을 발하면, 마음이 진짜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下敎矣 以上 (上述之道) 誠意 正心 修身等事也 故曰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하교의 이상 (상술지도) 성의 정심 수신등사야 고왈 만왕만래 용변불동본
: 아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하면, 성의(뜻을 성스럽게함), 정심(마음을 바르게 함),수신(모을 닦는 것) 와 일(범사, 정사)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이르기를 "만사가 가고, 만사가 오듯이 그 쓰임은 변하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 가지 일이 내 마음이 조화를 벗어나지 않는다." ,"조화는 일어나나 근본(중)은 변하지 않는다."
'本心本太陽 昻明' 以上 (之道) 齊家 治國 平天下等事也
본심본태양 앙명 이상 지도 제가 치국 평천하등사야
: 원래의 마음은 크게 밝은 것이 근본이니 밝은 것을 우러러 보라.
이상의 도는 제가(집안을 돌보고), 치국(나라를 다스리고), 평천하(세상을 편하게 하는것)과 것과 같은 일이다.
至戌亥之會 天地人物 莫不壤滅 無終者 惟此眞一也 故曰 '人中天地一一終 無終'
지술해지회 천지인물 막불양멸 무종자 유차진일야 고왈 입중천지일 일종 무종
: 술해(토수,토(중)에서 처음으로 수(1)이 생긴다.)의 모임에 이르면 천지인의 물건이되고, 흙(토)이 멸망하여 없어지는 아니한다(토는 사라지지 않는다). 무종(끝이 없다는)는 것은, 생각해보면 이것이 참된 하나(태극)이느니라.
옛말에 이르기를 중(토)에 들어가면, 천지가 하나이고, 하나(태극)으로 끝나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道家之守中抱一者 此也 佛家之萬法歸一者 此也 猶未乃也 至於三年乳哺 九年面壁 至於無極
도가지수중포일자 차야 불가지만법귀일자 차야 유미내야 지어삼년유포 구년면벽 지어무극
: 도가의 일(태극)을 안고 중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고, 불가의 만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이것이니라. 지금도 아직 이르지 못했느니라.
삼년 간 젖을 먹이는 것에 이르고(선도수련), 구년간 벽을 바라보면 (구년면벽,불도수련) 하면, 무극에 이르게 되고,
以後 了當也 이후 요당야
: 이후에 마침내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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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고
하늘 땅 사람은 모습은 다르되 근본은 같으니라.
하늘의 정기가 충만해지건만 담을 상자 없어 사람으로 변하노라
삼극이 돌고 돌아 24절기를 만들고
삼극의 조화로 기가 몸과 마음을 감싸노니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도다.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구나.
만물의 쓰임은 변해도 근본은 변치 않고
근본 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간에 으뜸이니라.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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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보면 "一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一이며" 라는 뜻이다. 이 一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온갖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시중 책들에 나열한 것만 해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몽땅 다 틀린 것이 전부 다 지맘대로 추측해서 쓰기 때문이다. 이 一이 무엇인가는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이 천부경의 다음 문장에 나와있다. 즉,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이라고 천부경에서 밝히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 문장의 뜻은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황당무계한 학설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하늘[天]의 수는 一一이요, 땅[地]의 수는 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一三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즉, 一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된 모든 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二란 수는 땅이며 三이란 수는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한문을 아는 중학생도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진 것이 천부경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후학들이 황당한 장난을 친 탓에 마치 난해한 기문둔갑술의 주문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첫째 문장 '一始無始一'의 뜻은? 어려울 것도 없다. 글자 그대로,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니." 라는 뜻이다. 이런 문장이 해석이 안 되어서 어려울 게 뭐 있노 이말다. 이거 못 읽는다 하면 빙신들이다.
이 천부경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시적인 멋을 조금 부린 데가 있다. 즉, 당시의 한시의 형태를 따서 시종대귀법을 사용했다. 첫장과 종장을 대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위한 목적에서는 천부경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자 설명 안해도 총명한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하고 이 우주의 생성원리를 한마디로 짤라서 말하고 있다.
천부경의 첫 문장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요,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 글자가 바로 전체 동양의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고대의 우리 선인(先人)들이 이미 밝혀놓은 우주의 실체이다. 스티븐 호킹은 일만년이 지난 지금에사 이 우주는 시작이 있을 수 없다, 고로 우주의 종말은 없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석가의 우주관이 여기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 문장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가의 반어법이 천부경에서 나왔음이다. 석가는 이 문장을 바꾸어서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라 말했고,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므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 라고 말했다.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으니라." 불가의 비장의 보도인 반어법은 모두 천부경에서 베낀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가 이 천부경을 알고 있었는가? 답은 그렇다. 이다. 유불선이 천부경에서 비롯된 내막들을 설명할 차례이다.
석가모니 자신의 혈통이 아리안[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인종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본디는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인도나 이란에 이주한 고대 민족으로, 언어를 포함한 문화상의 공통성으로 보아 이들이 서진한 것이 그리스인, 로마인, 게르만인, 슬라브인, 켈트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아니었고, 동이족(東夷族)이었다. 모든 초상화의 특징이 그것을 보여 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 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음이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析三極 無盡本 (석삼극 무진본)
이 문장은 학자들이 대충 '3극(三極)=3태극(三太極)=음양중(陰陽中)=천지인(天地人)'의 뜻으로 여기서 쓰인 三은 사람[人]의 상징이 아닌 3[三]의 뜻이다. 이 문장은 여기에서 말하는 3가지의 극(極)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 밑의 문장을 먼저 해석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이 문장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천부경이 사용할 수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은 문장이다. 하늘을 一이라는 수로, 땅을 二라는 수로 사람을 三이라는 수로 대치해서 설법하겠노라 하는 말이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천지인에 각각 一이라는 수가 하나씩 더 들어갔느냐 하면 여기에 천부경의 기막힌 압축법 (즉, 여든한 글자를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는 놀라운 비결)의 요체가 있다. 이 극도의 압축을 시도한 천부경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의 황당한 궤변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했지만 천부경은 대구법을 쓰고 있으므로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찾아 한꺼번에 보지 않으면 뜻이 숨어서 안 나타난다. 이 문장과 같은 형태의 문장을 찾아보면 바로 네 번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 그것이다. '一始無始一'과 '一終無終一'을 붙여서 읽고 해석하듯이 이 두 문장도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놓으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천지인에 각각 네 개씩의 숫자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天]에 사용된 수 : 一一二三
땅[地]에 사용된 수 : 一二二三
사람[人]에 사용된 수 : 一二三三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를 두개씩 가지고 있다. 하늘[天]은 一을 두개 가지고 있고, 땅[地]은 二를 두개 가지고 있고, 사람[人]은 三을 두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천지인은 자신의 고유 수 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즉, 하늘은 땅의 수 二와 사람의 수 三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땅은 하늘의 수 一과 사람의 수 三을, 사람은 하늘의 수 一과 땅의 수 二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뭔가 번쩍하고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천지인의 3극에 음과 양과 중을 대입시켜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것이 음양학의 제 1 원리이고 기본 법칙이다. 이런 이야기는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재미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머리 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삼청궁 선녀를 만났을 때가 아니면 죽어도 못 듣는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어떤 책에서도 이건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면 좋겠다.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난해한 주문이거나 뜻을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단어로 설명해야 할 것을 극도로 압축하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각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천지인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하면 아마 수십 페이지는 족히 필요할 것을 단 두 문장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넘어갔던 앞의 문장 '析三極 無盡本 (석삼극 무진본)'으로 돌아가자. 한자 뜻으로 풀어보면 "세 극을 나누어도 그 본(本)은 다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3극은 천지인의 삼신(三神)을 뜻한다. 이 천부경에서 나온 한 단어 "3극"에서 한(韓)사상의 '삼신사상'이 나왔고, 하늘을 양, 땅을 음, 사람을 중으로 보는 음양사상이 나왔다. 무진본(無盡本)은 무진장과 같은 뜻의 단어이다. 엄청나게 많아서 결코 마르지 않는, 다하지 않는, 다함이 없는 그런 뜻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다함이 없다.[변함이 없다]의 뜻이다. 천지인과 음양중의 3극이 비롯되는 이 다하지 않는 본(本)을 우리는 태극이라 부른다. 불가의 진아일여(眞我一如). 우리 한(韓)사상이 지향하는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상태가 우주 본래의 자리, 그대로의 본 모습인 태극이다. 곧 무진본인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천부경에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한 구절과 만나게 된다.
一積十鉅 無櫃化三 (일적십거 무궤화삼)
이제는 여러분도 한자의 뜻만 알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一이 쌓여서 十이 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三으로 변(變)한다" 이다. 일이란 하늘이다. 三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해석된 뜻은? 하늘의 정기가 쌓이고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櫃]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變)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동양사상의 오직 하나의 외침이 나온다.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사람을 창조함과 일맥상통한다.
동학에서 주장한 인내천(人乃天)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 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음이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變)한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이었다. 이것이 일만년 전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 민족의 종교적 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사상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 글자가 된다.
하늘의 기(氣)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이란 말로 대치해도 되겠다]으로 화(化)한다는 이 말은 이 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놓은 그릇[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하고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인 것이다.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이다. 서양의 신과 인간이 대립관계요 종속관계라면 동양은 일체관계요 수평관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 문장은 그 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 귀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명료하게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경전이다.
이제 우리는 천부경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하나의 흥미로운 수수께끼와 마주친다. 바로 이 문장이다.
大三合六 生七八九 (대삼합육 생칠팔구)
대삼합육(大三合六)은 글자 그대로 큰 3개를 더하면 6이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큰 3개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천지인의 3극이다. 즉 하늘[天]의 수 一이고, 땅[地]의 수 二와, 사람[人]의 수 三을 합하면 六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덧셈을 왜 하고 있을까? 앞에서 하늘의 수가 4가지였다. 一一二三, 땅의 수는 一二二三, 사람의 수는 一二三三,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천지인은 동본이상(同本異象)이다.' 이 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3극이 모여 있는 합일된 상태인 태극의 수가 바로 '666'이다. 3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大三)의 수인 것이다.
천부경 여든한 글자를 3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많이 본 것 같은 수일 것이다. 맞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칭했던 바로 그 숫자이다. 동양사상을 숫자로 상징하면 '666'이 나오는데 환상을 보고 있던 요한의 혼돈된 뇌리에 왜 이 숫자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말세에 기독교의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동양의 정신이라는 것을 요한은 예언적인 환각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를 붕괴시키고, 멸절시킬 거대한 힘의 상징을 이 숫자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정체를 사탄을 추종하는 짐승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 요한의 계시록과 우리 한(韓)민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개의 대립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신약 성경의 마지막 권. 신자들의 박해와 환난을 위로‧격려하고 예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 및 로마의 멸망 따위를 상징적으로 예언하였다]과 《정감록》을 대조분석하면 미래세의 방향을 알 수 있다. '666'이란 숫자에 얽힌 동서양이 대문명의 충돌과 그 종말....
그건 일단 뒤로 미루고, 뒤 구절을 보자. 생칠팔구(生七八九), 789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 789를 더하면 천하의 절기가 스물네 개이다. 일년의 운행이 24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하루의 시간 역시 24로 나누어진다. 3극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666'이란 숫자를 본 김에 잠깐만 옆길로 새자. 경문 풀이만 하니까 지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잠깐 분위기 바꾸는 거다. 물론 천부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화신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천부경으로 이어진 한(韓)사상의 아들들, 그 옛날 환인이 통치하던 천계(天界)의 후손들. 바로 우리 민족이다. 배달민족의 이마에는 이 한(韓)사상이 지울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들의 이마에는 '666'의 표상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설사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한(韓)사상이 출렁거리는 삼신의 세계이다.
運三四成 環五七 (운삼사성 환오칠)
한자 그대로 읽으면 '三이 움직여 四를 이루고, 五와 七을 덮는다.' 이다. 三이 움직인다는 것은 析三極, 즉 천지인 또는 음양중의 3극으로 나누어진 태극은 고정되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상생상극(相生相剋)하며 돌게 되는데 이것은 천지의 운행이고 음양의 회전이다. 3극은 움직인다.[運] 이 3극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成] 것이 4[四]이다. 이 四가 바로 기(氣)이다. 기(氣)의 부실함은 바로 3극의 움직임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氣)가 5와 7을 둘러싼다.[環] 5는 오행, 즉 모든 물질과 제반현상이고, 7을 7기(七氣) 즉, 7정(七情)인 마음이다. 태극이 나뉘어 3극[三神]이 되고 이 3극이 조화로 운행하면 기(氣)가 생기며 이 기(氣)가 몸[物質]과 마음[情神]을 같이 둘러싼다고 하는 음양오행의 이론적 시원이 여기서 나왔다.
一妙衍 萬往萬來 (일묘연 만왕만래)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고도 묘하여라.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도다.
用變 不動本 (용변 부동본)
세상만물이 그 쓰임[형태, 모습]이 변해도 근본자리는 바뀌지 않음이니.
本心 本太陽 (본심 본태양)
근본 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그리고 이 다음에 천부경의 결론이 되는 구절이 나온다.
昻明人 中天地一 (앙명인 중천지일)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 중에 으뜸이니라. 이 지구상에 이보다 더 인간을 존중하는 종교나 사상은 찾아볼 수 없음이다. 해서 석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다. 한 생명이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이 나니라."
밝혀지는 역사라는 영화의 주인공과 결말
인류사라는 서부극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은 유대민족과 한(韓)민족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정해진 신의 계획이다. 두 민족은 주인공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두 민족은 지구상에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류였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이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방계가족들이다. 물론 상고 시대에 이 두 민족은 지구의 지배자였다. 한 쪽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대서양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두 민족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들의 방계인 민족들의 강성함에 눌려 역사의 조연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와 로마, 배달민족은 황하유역의 황토인들에게 일시 그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액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꼭 악당들에게 잡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비참함에 빠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로 해서 스토리가 이어져 가야한다.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건 복수를 위해 주인공이 잠깐 도피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세계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여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이 세계는 그들 두 민족이 움직여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반쪽 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韓)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유불선으로 움직였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앞세운 주인공들은 반짝 연기로 사라졌지만 이 두 주인공의 힘은 시종일관 세계를 움직였다. 두 주인공 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개의 축이었던 것이다.
양대민족은 종교적으로 "선민사상(選民思想)"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이 두 민족만이 보이는 특질이다.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하나님의 부름으로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만큼 신앙이 두터워, 바울은 신앙의 아버지로 숭상하였다]의 신이고 모세[기원전 13세기 경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민족의 지도자. 시내산에서 십계를 비롯한 신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전통을 확립하였다]의 신인데 반해 우리의 신은 환인이요, 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이 두 민족만이 신이 지정해준 땅을 가지고 있는 시오니즘[유대인들의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그들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써 실현]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이 지정해 준 땅은 가나안[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쪽 지역의 옛 이름. 기원전 13세기 경, 먼저 거주하던 가나안족을 정복하고 고대 이스라엘이 정착한 지역으로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이요, 우리의 환인[하늘님]이 지정해 준 땅이 신시(神市)[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밑에 세웠다는 도시. 상고 시대에, 신정(神政) 사회에서 신성하게 여긴 도시 부근의 장소]로부터 발원한 한반도였다. 이 두 민족만이 상고 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유지시켜 왔다. 유대사상과 한(韓)사상이다. 이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체제를 담고 있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Bible과 三大聖書[天符經, 三一神誥, 參佺戒經]가 그것이다. 이 두 민족 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것은 《구약》과 《모든세기》이며 우리의 것은 《신지》와 《정감록》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사의 마지막에 대한 개념과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기간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왔다. 그들은 땅을 잃은 채 역사[Bible]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고, 우리는 역사를 잃은 채 땅[한반도]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다.
이 두 주인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에 최후의 위기를 똑같이 맞는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말살의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왜인들에게 말살의 위협에 직면했다. 두 민족은 똑같이 최후의 시련을 견뎌냈으며 이제 악당들에게 빼앗겼던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대지를 방랑하는 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고 한 신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 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불의일까? 다음 역사가 그것으로 결정되리라.
유대민족에서 발원된 기독교 정신,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씨앗으로 해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서양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나는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유의 정신은 근세 이후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꽃피었다. 평등의 사상은 필연에 따라 사회주의를 잉태하여 공산주의를 낳고, 반세기에 걸쳐 평등의 아들이 지구의 반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초기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창시자들이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과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마르크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부경으로 시작된 한(韓)사상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양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와 '질서'였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질서의 전쟁이고, 평등과 조화의 전쟁이다. '자유와 평등'이 승리하면 말세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이 될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하는 사회간의 전쟁이요,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간의 전쟁이다.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계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간의 전쟁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문명 간의 충돌이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와 질서', 이 둘 중에 앞으로의 인류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종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를 몰락으로 인도할 것이고,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음이 양을 지배하여 둘로 가르면 후천개벽의 징조이다.』 신지의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음의 인류, 서양인들이 양의 인류의 적자인 한(韓)민족을 지배해서 둘로 갈라놓는다는 말이다. 오늘의 분단상황이다. 반은 평등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자유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양이 음을 초극하여 하나가 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 예언은 '통일한국'이 남쪽의 '천민 자본주의'와 북쪽의 '교조 사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에 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 평등에 따른 강제행복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아닌 '조화와 질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의 형태가 후천사의 세계 인류의 따라오는 바가 될 것이다. 타골이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감록》이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이다. 우리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다음의 세기는 찬란한 동양정신, 한(韓)사상의 세기이다. 한(韓)민족은 인류사의 주인공으로 찬란하게 복귀하게 될 것이다.
천부경 사상
천부경은 그 내용이 길지 않으면서도 우주와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불교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200여 글자로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이다. 이 반야심경의 내용을 여든한 글자로 압축하면 천부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반야심경을 한 글자로 줄이면 '心'이다. 천부경을 한 글자로 줄이면 '人'이다.
천부경의 가르침은 크게 세가지이다. 하나는 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 현재 우주물리학은 시작이 있는 세계, 즉 "Big Bang"이라 말하는 대폭발 이론으로부터 그게 전부가 아니다하는 쪽으로 가고있다. 즉 "Big Bang"이 우주의 시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폭발설 이후에 거품우주, 다원우주이론 등이 폭넓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 우주물리학은 결론의 가닥을 "시종이 없는 우주"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천부경이 대개 종교적인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이 천부경에 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불교의 가르침도 신은 종속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구원의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하늘, 즉 우주 그 자체이다' 라고 말하고 있고,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이 영원하는 우주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태양과, 달과, 염소와, 독수리와, 뱀을 신으로 받들고, 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인간의 심장을 바쳤던 때에 한(韓)민족은 이러한 졸렬유치한 종교관이나, 신관으로부터 훨씬 높은 차원에 가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우상을 세우지 않았던 민족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 불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소도는 그저 평평한 마당에 작대기 하나[솟대] 세워 놓은 것이었다. 그 제사의 성격은 신에게 봉행(奉行)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님을 모시고 산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잔치였다.
인간을 벌하는 신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은 신 앞에 죄의식에 사로잡힌 채 두려운 심정으로 나아갔다. 한(韓)민족은 원래 신 앞에서 더욱 명랑한 민족이었다. 신을 공경했지[敬天]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에 대한 공경은 인간에 대한 사랑[愛人]의 다른 방법이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밝은 마음이 우리 민족의 종교관을 형성한 것은 환인 천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져 온 천부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우주건 사람이던 간에) 무엇인가를 만드는 신, 질투하는 신, 시험[test]하는 신, 분노하는 신, 복수하는 신, 편드는 신, 파괴하는 신, 벌주는 신이란 개념은 우리 민족에게는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알고 있는 신은 그렇게 촐삭거리는 신이 아닌 것이다.
우주의 본질 다음으로 천부경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하늘의 기(氣)가 형상으로 나타난 것, 이것이 인간이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이라 말하고 있다. 인간을 신을 위해 봉사하는 피조물로 여기는 대부분의 종교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천부경으로 시작된 하늘의 개념이 지배한 고대 동양에서는 신을 위한 건축물을 짓지 않았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사원이나 탑들은 부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들이다. 부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쁘기 위한 것들이다.
신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삼신(三神)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천지인의 삼신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