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동생의 논에 한국전력 고압 송전철탑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다 분신 사망한 밀양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주민 이치우(74) 씨. 고인의 장례가 사고 이후 52일 만에 마무리됐다. 애초 시민장이 거론됐지만,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7일 오전 밀양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밀양시공설화장장을 거쳐 고인은 고향인 보라마을에 있는 가족묘에 봉안됐다. 고인의 부인 현종숙(74) 씨는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졌고, 자식들도 마지막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 씨가 떠나는 마지막 길은 비록 조용했지만, 그동안 경남을 포함해 수많은 시민단체와 정치인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까지 '일방적인 한전의 송전탑 강행'을 규탄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추진되는 송전탑으로 제2, 3의 사고가 잇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전탑이 세워질 밀양 산외·상동·부북·단장 등 4개 면에서는 주민과 한전 건설·용역업체가 한 해 가까이 대치를 해왔다. 고령의 주민들은 움막까지 지어가면서 공사를 막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한전과 지식경제부 책임자들의 방문도 있었지만, 성난 밀양의 민심을 잠재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장례 절차를 마쳤지만, 밀양 주민을 비롯해 전국 시민단체와 정치인이 참여하는 '765kV 송전탑 반대 고(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는 밀양시청 앞에 있는 분향소를 그대로 운영하기로 했다. 분신대책위 관계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를 맞아 진행되는 탈핵 운동과 결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제 관심은 한전의 대책 마련에 눈길이 쏠리게 됐다. 앞서 주민 대표들로 꾸려진 장례위원회와 한전 협상단은 90일 공사 중단과 장례 이후 2주 동안 애도 기간을 두기로 합의했다. 이치우 씨가 숨지고 밀양지역 송전탑 공사는 전면 중단된 상태이기도 하다. 우선, 주민과 한전 양쪽에서 협의 주체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 쪽은 협의체 구성을 검토 중이다. 한전 협상단 관계자는 "합의한 대로 2주 동안 애도 기간을 갖고, 90일 공사 중단 상태에서 협의할 것이다. 이번 불상사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되는 거니까 서로 협의하자는 차원이다"며 "기간 내 어떻게 협의할 것인지 세부적인 방법은 안 나왔지만, 반대 지역별로 협의할 수도 있고, 협의체를 어떻게 가동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주민과 한전의 갈등이 다시 증폭될 가능성도 크다. 분신대책위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에너지 대안 고민 없이 진행되는 신고리 원전과 고압 송전탑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부산 기장군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영남지역 등에 보내고자 기장, 울산 울주군, 양산·밀양·창녕 등 5개 시·군을 지나는 송전선로 90.5㎞를 설치해 철탑 161기를 세우고 있다. 이 가운데 69기로 밀양시가 가장 많다.
밀양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한 고 이치우 씨 장례식이 7일 오전 치러졌다. 고인의 시신은 밀양 한솔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밀양 공설 화장장에서 화장돼 보라마을 가족묘에 안장됐다. 이날 고인의 부인 현종숙 씨가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
이에 분신대책위는 송전탑과 신고리 핵발전소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오는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반핵 집회에 참여하고, 17~18일 '탈핵희망버스'와 송전탑 예정 부지 나무 심기 등을 추진한다.
5월 31일까지 이뤄질 국회 진상 조사단의 성과도 주목된다. 조사단은 송전탑 공사로 발생한 주민 환경권과 재산권 침해 등을 다룰 예정이다. 반면, 이런 상황에도 한전 관계자는 "주민과 협의해 동의를 얻어야 하고, 합의된 지역은 공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여전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