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은해사 /전통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
동리산문을 개산한 혜철 선사가 지은 절이다. 동리산문 본사는 전라도 곡성 대안사(현재 태안사)다.
은, 은은하게 빛을 내신 혜철 선사
해, 바다처럼 너른 마음으로 제도하니
사, 사해 대중이 감복하여라.
열여섯에 영주 부석사로 출가, 서해 건너 당나라로 가서 선사 <서당 지장>에게 심인을 받고 돌아와 전라도 곡성에 대안사(현재 태안사)를 세워 동리산문 개조가 되셨다.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것이나 혜철 선사가 동쪽으로 가신 것이나 그 뜻은 같았으리.
경상도 공산 따뜻한 산 아래에 은해사를 열었으니 전라도 묘법과 경상도 묘법은 다른 게 아니라 같은 것이라.
경상도와 전라도는 둘이 아닌 하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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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에 불교는 교종이 밀리고 선종이 득세를 하였다. 9세기에 신라엔 구산선문이 있었다. 동리산문은 그 가운데 하나다.
공산은 고려 이전 팔공산 이름이다. 팔공산은 국립공원으로 대구시 동구, 군위군, 경북 칠곡군과 영천시 등 지역이 광활하다. 팔공산을 의지하는 절이 20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범종각
보화루
극락보전
성보박물관, 안에 사진찍기는 금지.
향나무 /보호수
극락보전 안, 닫집 아래 용조각이 화려하다.
괘불탱화 /보물, 사진 사본
다포식, 공포가 많다.
조사전 안 : 동곡당 일타(주지와 조실) 대종사, 혜철국사(창건주), 고경당 법전 대종사
보화루, 차를 무료로 준다. 읽을 책도 있어 쉬기가 편하다. 믹스 커피와 아메리카노 한 진씩 마셨다. 당연히 커피 두 잔 값은 냈다.
은해사는 마음이 넉넉하다. 누각을 일반인에게 공개, 절을 찾는 이에게 쉼터를 제공한다는 건 자비행이다.
이런 자비행이 더 많은 사람이 절을 찾아 쉼을 얻을 것이다.
인종태실(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가는 길, 800m나 올라야 한다. 포기하였다.
영지사(靈芝寺) /전통사찰
- 경북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신라 의상대사가 처음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 선조 36년(1603) 다시 지었다.
두 번째다. 앞서 왔을 땐 범종각과 명부전 등을 수리하고 있었다.
은해사에서 나올 때 네 시였다. 진불암을 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영지사가 있다. 오후 다섯 시.
공룡발자국 화석, 움푹 파인 곳이 발자국이다.
부도 다섯 기, 석종형으로 조선 후기 부도다.
사적비?
영지사 범종각(泛鐘閣)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영지사 후불탱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화기엔 건륭(乾隆) 41년(1776)년 양공 취증(良工取澄)을 비롯하여 화사(畵師) 정총(定聰), 도한(道閑) 등이 그렸다고.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일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난포고택(蘭圃故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 경북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난포는 영천최씨 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 최철견(崔鐵堅, 1525~1594)의 아호다.
난포고택은 그가 1546년(명종 원년)에 지었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적었다.
난포는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70세 고령인데도 창의(倡義) 하여 대장이 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영천의 권응수(權應銖) 의병과 합세,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창의 :국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
영천 신녕면 전통사찰 한광사 가기 전에 권응수 사당이 있다. 이 카페에 사진이 올려져 있다.
용성면에서 저녁으로 간짜장을 먹었다. 영지사에서 집에 가는 길에 난포고택이 보여 들른 것이다.
2025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