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는 고성능의 가치 기준이 다르다. 빠르고 정확하게 달리는 것 외에도 편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때문에 서스펜션의 세팅이 세단에 비해 복잡하다. 그런 점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성능 튜닝 파트 AMG는 고성능 SUV의 최고 기준을 제시했다
펜더와 리어 범퍼에 AMG 스타일의 보디키트를 붙였다
트렁크공간의 굴곡이 없어 쓰임새가 좋다. 2열은 6:4로 폴딩되고 완전히 평평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넓고 편한 뒷자리. 엉덩이 부분 앞쪽을 약간 올려 앞으로 쏠림이 덜하다
AMG가 개발한 V8 6.2L 엔진.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4.2kg·m를 낸다
빠르고 강하게 달리지만 실내는 더없이 편하다. 어느 속도영역에서나 힘이 넘친다
실내는 굳이 고성능 모델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유용성과 편의성에 중점을 맞췄다
키가 크고 무거운 SUV는 태생적으로 빠르고 강하게 달리는 것에 큰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인피니티 FX50, 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8, BMW X6 4.4L 트윈 터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V8 4.0L 수퍼차저 등 속도경쟁에 뛰어든 수퍼 SUV들이 많다.
이러한 SUV들은 왜 구조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속도경쟁에 뛰어들었을까? 우선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소비욕구에 대한 대응이다. 편안함과 유틸리티성에 스포츠성을 더해 다각적인 소비 패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합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엔진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올리면 되지만, 서스펜션 세팅이 쉽지 않다. 스포츠카들은 지상고가 낮아 에어로다이내믹에 유리하고, 댐핑 스트로크를 짧게 하면서 단단한 하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SUV는 어떤가? 높은 지상고는 에어 서스펜션으로 낮춰야 하고 승차감과 함께 고속에서의 하체 추종성을 위해 댐퍼의 다양한 감쇠력 세팅이 필요하다.
수퍼 SUV 프론티어
메르세데스 벤츠는 1999년 1세대 M클래스에 349마력의 V8 5.5L AMG 엔진을 얹으면서 SUV 속도경쟁의 프론티어(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후 2006년 2세대 ML에도 AMG 버전을 내놓았다.
ML63 AMG는 특화 모델인 만큼 외모에 있어서도 공격적인 보디키트로 차별을 두었다. 펜더를 키우고 스테인리스 발판을 붙였다. AMG 스타일의 그릴과 크롬 배기구도 달린다. 이는 ML을 더욱 우람하게 보이게 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고성능임을 표출한다. 실내는 AMG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나파 가죽, 알칸타라를 씌운 스포츠 시트, 스테인리스 스틸 페달이 특징. 마지막으로 AMG 스타일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고성능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시트에 엉덩이를 올리면 덩치 큰 사람에게 안긴 느낌이다. 시트는 부드럽고 엉덩이와 어깨, 허리를 잘 잡아준다. 편하고 질감이 좋아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만 같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별다른 소음이나 진동을 느낄 수 없다.
컬럼식 기어 셀렉터를 내리고 액셀러레이터에 약간의 힘을 가하자 차체가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시속 100km 이하의 속도에서는 배기음이 절제되면서 SUV 본연의 편안함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고성능 모델임을 잊게 만드는 정숙성에 부드러운 주행감이지만, 하체에는 힘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싣자 통렬한 배기음이 뒤통수를 때리고 속도계 바늘이 금세 ‘180’을 가리킨다. 빠른 엔진 반응에 호쾌한 가속이다. ML63 AMG는 0→시속 100km를 5.0초에 달린다. 웬만한 스포츠카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다. 하지만 현기증 나는 스릴은 아니다. 실제 속도에 비해 체감속도는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이 부드러워 시속 180km에도 시속 120km 정도의 체감속도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너무 쉽고 편하게 시속 230km까지 올라선다. 배기음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소음을 들을 수 없다.
ML63 AMG의 V8 6.2L 엔진은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4.2kg·m를 낸다. 이전까지 AMG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엔진을 가져다 튜닝했지만, 이 엔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AMG가 만든 것이다. 가변식 흡기 매니폴드와 마찰을 줄이면서 견고하게 만든 피스톤으로 빠른 반응과 두터운 토크밴드가 장점이다. 이 엔진이 AMG가 튜닝한 트랜스미션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일반 ML 모델보다 변속이 50% 빠르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노멀 모드보다 30% 빠른 변속을 만든다.
코너링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단단해진 서스펜션은 차체를 잘 잡으면서도 잔 진동을 효과적으로 걸러내 부드러운 승차감을 만든다. 횡중력에는 좌우 서스펜션의 댐퍼가 다르게 반응하면서 몸이 쏠리는 느낌을 줄인다. AMG는 ML의 에어 서스펜션을 앞 100%, 뒤 60%씩 더 단단하게 세팅하고 빌스타인제의 댐퍼로 빠른 반응을 만들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ML63 AMG가 뉘르부르크링크를 8분 40초에 달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포르쉐 911의 랩타임과 비슷하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가진 본능적 에너지 원천을 가장 잘 승화시킨 AMG는 승차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고성능을 만들어 낸다. 스티어링 휠이 가벼워 운전도 쉽고 편하다. 꽤 괜찮은 수퍼 SUV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주유소가 드문 곳으로 움직일 때는 기름통(95L)을 가득 채우고도 여분의 기름을 챙겨야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생활, 2008년 09월호 - 저작권자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첫댓글 ML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