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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산문 연재
如如山房에서 보내는 편지 ⑨
양문규 시인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 지 10년, 옛 생각 껴안고 나지막하게 엎드려 천태산 여여산방에서 펼치는 마음의 풍경! 그는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오랜 울음을 갈무리해 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 그 작고 보잘것없는 초라한 물상들에 끊임없이 눈 맞추며, 공동체적 삶의 숨결을 읽어낸다. 지금 바로 여기, 여여(如如)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양식으로 어둠 속에서 빛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맑은 시처럼 길어 올리고 있다.
행복한 사진
양문규
섣달그믐으로 가는 달빛은 잦은 폭설과 한파에도 불구하고 꽁꽁 얼어붙은 천태산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 달이 기울어지면 우리의 최대 명절인 설날이지요. 요즘 설날의 의미는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과거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요. 뿐만 아니라 농경사회가 해체되면서 박제된 문화로 전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최대 명절로 설날을 즐깁니다. 이른 아침 온 가족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후 어른께 세배를 드리지요. 드문 풍경이긴 하지만 농촌에서는 아직도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너나없이 떠들썩하게 골목을 누비며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정월 대보름날까지 우리의 민속놀이 중 절반이 넘는 놀이를 이 기간 동안 같이 행하고 즐기고 서로의 우의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날을 앞두고 저 환한 달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여간 어두운 게 아닙니다. 이 혹한 속에서도 MB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쉼 없이 강행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확산으로 가축들이 생매장되고, 시설 비닐하우스 작물들은 한파에 얼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오늘도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쁩니다. 종교는 어떠할까요.
이 땅의 지도자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일까요. MB는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로부터 4대강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이 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 꿈이 이뤄지는 것이고, 그러한 꿈에 도전하는 긍지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속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했거늘, 어찌 MB는 진실과 정의가 아닌 것을 진실과 정의라 하고, 그것도 부족해 4대강 죽이기 사업을 마치 강산개조라고 국민을 호도하는 걸까요.
종교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정치와 종교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요. 그동안 MB 정권은 불교계와 소원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한나라당은 불교계와의 상황 전환을 위해 템플스테이 예산 185억 원의 지원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60여억 원이 삭감된 122억 원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불교계는 뿔이 난 것이지요.
이 사태를 두고 여권 내부에선 “예결위에서 착오로 삭감됐다.”, “새벽에 급히 수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깎은 것으로 보인다.”라는 등의 해명이 나왔지만, 불교계는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은 즉각적인 대응 방식을 내놓았는데요. 그 대응 방식이 막가파식으로 마치 돈 안 주니까 떼쓰는 애들 같습니다. 그래, 어디 해보자식 강짜를 보이는 한국 불교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픕니다.
어디 4대강 사업 반대가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되어서 반대할 사안입니까. 예산 많이 주면 4대강 죽이기 사업이든, 뭐든 그냥 눈감아 주고 말 사안인지요. 타종교 단체처럼 자연·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진작 내놓고 반대 투쟁을 전개 했어야 옳지 않았을까요. 더욱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예산안 통과 직후 종단(宗團) 간부들에게 “앞으로 한나라당 사람들의 전화는 일절 받지 마라. 만약 이런 방침을 어기고 사적(私的)으로 통화하면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서울 조계사에는 “종교편향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조계사 출입을 거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범어사 천왕문 화재가 일어났는데요.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범어사를 방문한 것을 두고 조계종 총무원장은 “범어사의 대응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면서 내부 단속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돈 때문에, 돈 안 준 정치세력에게는 절문을 열지 않는다는 발상은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는 스님의 처신은 아니라 봅니다. 이게 한국 불교, 조계종 총무원의 현주소입니까?
늙은 몸이 폭설 끌어안고도 우렁우렁 꿈이 세다
고요한 나뭇등걸 속에는
아직도 푸른 잎사귀들이
귓바퀴를 쫑긋거린다
광기에 찬 예술가들,
포장지로 감싼 성직자들,
혀가 긴 정치가들,
곰팡내가 나는 공직자들
피 묻은 입술의 사업가들,
……그래그래
우리는 모두 견디는 중이다
한때는 나도 독재자를 등 뒤에 두고
산행을 갔다
꿈은 저렇게 무거운 옷을 걸치고도
앵글 앞에서 환한 표정을 지어줄 수 있다
다람쥐에게 슬쩍 등
내밀어 주는 일
너구리에게 사글세도 없이
굴을 내주는 일
딱따구리를 불러들여
구멍을 빌려주는 일
해와 달과 별에게
……그래그래
또, 나의 가장 뜨거운
눈을 맞추어 보는
꿈은 꿈이어서 스스로 독려하며
나는 아직 힘이 세다
―양문규, 「행복한 사진」 전문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놓고 조계종 총무원과 갈등과 대립각을 세웠던 명진 스님이 문경 봉암사에서 동안거 중 대중 법회에서 현 정부와 불교를 강하게 질타하였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이날 법회는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을 비롯 400여 명의 불자가 함께 하였는데요. 최근 논란 중인 조계종 템플스테이 예산삭감과 관련 “고흥길,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좌파주지 척결문제를 논의했을 당시 그 자리에서 템플스테이 예산문제가 논의됐었다.”며 “좌파주지는 일단 내보냈는데 예산을 못 받게 됐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느냐.”고 조계종 총무원과 한나라당을 싸잡아 비난하였다지요. 또한 이 자리에서 명진 스님은 “재작년 시청 앞에서 20만 명이 모여 종교편향 항의집회를 열 때부터 정부와 불교 갈등은 예견돼 있었고 계속 누적됐던 문제”라며 “돈 60억 원 때문에 불교가 정신을 차리게 해줘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템플스테이 예산을 정부가 주지 않는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게 됐는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템플스테이 예산문제로 우리 전통과 민족문화를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의 기독교 편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일갈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MB 정권이 들어서고 종교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가운데 기독교의 ‘땅 밟기’에 대해 명진 스님은 “한국의 기독교는 변종된 기독교”라며 “내 마음의 편견과 오만, 못된 습관을 무너뜨리는 ‘땅 밟기’를 해야지 남의 절이 무너지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잘못된 기독교의 행태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문제 제기를 하였답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을 향해 후안무치하다고 했었는데 이제 그 정도의 도를 넘어선 것 같다.”며 “이명박 정권은 철판정권”이라고 명명하며 “돈만 많으면 선진국이냐, 배가 잔뜩 불러 자기 욕심만 채우는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인가”, “도덕이 살아 있고 믿음이 있는 사회여야 진정한 선진국 아니냐.” 그리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일컬어 우이독경이라고 불렀는데 생각해보니 소가 무슨 죄인가 싶다”, “생각해보니 인간 곁에서 가장 말을 잘 안 듣는 것은 ‘쥐’여서 앞으로는 ‘서이독경’이라 부를 생각”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지요. 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요즘 보온병에 자연산 넣고 다니다 되게 다친 모양이던데 나는 안상수 대표의 별명을 빈대떡 의원이라 지었다.”며 “빈대떡 그만 뒤집고 좌파주지 척결발언의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라.”고 해 대중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답니다.
무엇보다 명진 스님은 “고래 등 같은 대웅전을 짓고 금단청 은단청 잘 꾸며놔도 그 안에 올바른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것”, “허물어진 텐트, 천막에 막대기 하나 꽂혀 있더라도 그 안에 올바른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대웅전”이라고 전언했다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갈등, 종교계의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 개발과 반개발의 갈등, 강자와 약자의 갈등 등 사회 전반의 대립과 갈등 양상이 확대 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조화로운 삶을 무시하고 ‘부자 나라, 부자 국민’ 등 개발만을 독려하고 있는 현 정권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산하가 금 만드는 황금거위로 착각한 채 4대강 사업 등 개발독재로만 치달리고 있으니까요.
그믐으로 가는 달빛은 차가우면서 따뜻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최대 명절 설날을 가까이 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메스컴은 긴 설 연휴 교통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내놓고 있는데요. 이번 설 연휴는 매우 깁니다. 구제역 파동으로 고향 방문을 자제하고 있는 지자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이동 인구는 지난해보다 3.2퍼센트 증가한 3천 173만 명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설 명절 이동 인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설 명절 동안 1천만 명 이상 고향을 찾는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과거 행복했던 농촌 가족공동체를 그리워해서일까요. 각박한 세태의 도시를 벗어나 전원을 꿈꾸며 귀향하는 것일까요. 전 행복한 사진을 꿈꾸는 가족의 열망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빛바랜 사진 속으로 사라져 없어진 우리의 고유한 명절 설날, 새해 아침 가족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정경,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이지요. 저 “광기에 찬 예술가들,/포장지로 감싼 성직자들,/혀가 긴 정치가들,/곰팡내가 나는 공직자들/피 묻은 입술의 사업가들,”의 아수라 세상이 아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사진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 속에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개와 소, 닭, 돼지 등도 함께 하겠지요.
천태산 은행나무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도 새해를 새해답게 준비 중입니다. 추위와 폭설로 현실은 더욱 척박하고 각박할수록 자신을 모두 비우고도 또 한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니까요. “다람쥐에게 슬쩍 등/내밀어 주는 일/너구리에게 사글세도 없이/굴을 내주는 일/딱따구리를 불러들여/구멍을 빌려주는 일” 뿐이겠습니까. 저 욕망의 부적격의 주체들(정치가, 종교가, 사업가, 공직자)과는 달리 천태산 은행나무는 “저렇게 무거운 옷을 걸치고도/앵글 앞에서 환한 표정을 지어”주고 있으니까요. 행복한 사진이 뭐 별것이겠습니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풍경, 바로 그것이겠지요.
달라이 라마는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만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돈, 성공과 명예, 완전한 육체, 심지어 완벽한 배우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이 마음이라는 기본 도구만으로도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 자비심”을 키울 것을 역설합니다. 천태산 은행나무는 그 전언을 오래전부터 제 몸으로 체득, 오늘도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 자비심” 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혹한과 폭설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천태산에 어젯밤 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천 년 은행나무는 몇 짐의 폭설을 지고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갑니다. 아름드리 나뭇등걸 속에 푸른 잎사귀들이 쫑긋 귀를 세우고 봄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 큰 나무 앞에 서서 “해와 달과 별에게/……그래그래/또, 나의 가장 뜨거운/눈을 맞추어” 봅니다.
양문규
충북 영동 출생. 1989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등.
―『시에』2011년 봄호
첫댓글 “허물어진 텐트, 천막에 막대기 하나 꽂혀 있더라도 그 안에 올바른 부처님의 정법이 살아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대웅전” _()_
행복한 사진이 봄바람처럼 내걸렸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해보지만,
.
그저,
그 바람도 한낱, 나른한 봄날에 잠깐 꾸는 꿈일 뿐인 세상입니다.
환하고 고운 꽃들이 살아가는 꽃밭을 봅니다, 축제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