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수업의 복습을 목요일에야 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 시창작반에서 내가 제일 막내건만 어느덧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아마도 우리 반 선배님들도
이해해 주시리라 지레 믿고 복습을 시작해 본다. 선배님들도 바쁘시겠지만 막내는 왜 이리 바쁜지
삶의 앞뒤를 가를 수 없는 지경이다. “복습자료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수업 시작전 늘 풀어가는 서문. 이번주는 “不學詩면 無以言이라” `시를 배우지 않으면 이야기할 것이 없다‘
즉, 시를 배움이 곧 말 배움을 뜻하면서 시가 말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가 요구하는 세밀한 관찰, 정밀한 언어, 단어 소리 어울림과 감각 등은 언어의 개발을
도울 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명료하게 하는 기술을 세련시키기도 한다.
수업은 이동순 시인의 작품 ‘양말’로 시작한다.
양말 / 이동순(1950~ )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사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출전: 시집“그대가 별이라면” (시선사, 2004)
이동순 시인은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197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하셨다. 영남대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임하시면서 총12권의 시집을 출간하셨으며
그 중 ‘양말’이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대화하듯 풀어나가는 싯구가 진솔함을 더해주고 대화체에서 주는 정감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한다.
이어서 교재 11페이지 안도현의 ‘나무‘를 낭송하고 학습한다
나무 / 안도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나무가 버티는 것은
귀뺨을 폭풍한테 얻어맞으면서
이리저리 머리채를 잡힌 채 전전긍긍하면서도
기어이, 버티는 것은
이제 막 꼼지락꼼지락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어린 나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며
나무는 버틴다
나무라고 왜 가지가지 신경통을 모르겠으며
잎사귀마다 서러움으로 울컥일 때가 왜 없었겠는가
죽어버릴 테야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휘저어보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트럭을 탄 벌목꾼들이 당도하기 전에
그냥 푹, 고구라져도 좋을 것을
죽은 듯이 쓰러져 이미 몸 한쪽이 썩어가고 있다는 듯이
엎드려 있어도 될 것을 나무는
한사코 서서, 나무는 버틴다.
안도현의 ’나무‘중에서
알프레드 킬머의 ’나무‘와 비교했을 때 시에서도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각의 차이가 읽혀진다.
시에서 나무는 아버지의 자존심 강건함으로 대변된다.
詩를 쓰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통한 시제 발굴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은근하지만 확실한 이미지 표현과
은근하지만 응축된 의미를 담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는 보여주어야 하며 의미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시는 음악과 같아야 한다. 즉 시의 3요소인 의미성, 영상성(회화성), 은율성(음악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시의 개념을 학습하면서 지난 시간에 내 주신 숙제 ’좋아하는 시인을 정하고 그의 작품 50편 필사하기‘를 강조하셨다.
이어진 학생 작품 발표하기. 이번주는 신입 최종시 쌤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신입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숙제하기, 작품 발표하기, 수업시간 질문 등등... “선배님들 긴장하셔야겠습니다”
이번 학기도 짬을 내서 야외수업을 하기로 중지를 모으고 수업을 마쳤다.
이번주는 여러 사정들로 결석생이 제법 있었다. 단촐한 수업에 오붓한 점심. 송희수 쌤께서
학식(學食)과 커피까지 굶주린 배를 채워주셨다. “송쌤. 감사합니다. 조만간 발표하신다는 댁내 경사. 미리 축하드립니다”
캠퍼스내에 목련, 산수화. 봄꽃이 만개하고 작년에 옹기종기 사진을 찍었던 개나리 진달래가
다음주에 오면 활짝 반겨주겠다며 아직은 수줍은 듯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가천 시창작반에도 봄이 왔나봄
2022. 3. 30. 가천대 시창작반 총무 임병옥 정리.
첫댓글 임병옥 총무님, 복습노트 내용이 훌륭합니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항상 모범이 되어주시는 송희수 선생님,
점심과 커피까지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무님의 수고로 복습 잘 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