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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시민센터 원문보기 글쓴이: 김용재
참고자료> 출처 : 한겨레신문
책으로 다시 지핀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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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점화부터 탄압까지 ‘아고라의 숨가빴던 4개월’ 집단토론·실천 통해 인류사적 ‘브로드밴드 민주주의’ 일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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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여우와두루미·1만2800원
책 한 권이 뜨고 있다. “17일 완성본을 받았다. 19일쯤 서점에 깔았는데, 23일인 오늘 벌써 1쇄 5천부가 다 나가 2쇄에 들어간다. 기록적이다. 책에 관한 누리꾼들 관심도 폭발적이다. 선집 등 후속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사흘 전에 만난 그 책 기획자는 그렇게 말했다. 이쯤되면 대박이다. 여름에 올림픽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불황의 독서계를 자극할 이 책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여우와두루미 펴냄). 촛불이 서울 중심가를 덮었던 두 달 전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공간 ‘아고라’ 자유토론방 누리꾼 사이에 이런 수작들이 오갔다. “아직도 오프라인에서는 아고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 하루빨리 책을 냈으면 하는데 …”(한글사랑나라사랑) “기대만땅 ~~~~^^* 아고라책이라 ~~~”(촛불살앙) “**놀랠 노자군요”(쥐발에편자) “이런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 저항의 방법은 다양하군요 …”(huraijin) “제가 생각하던 바를 현실로 옮기는 분이 계시다니”(누구세요) “여기는 지방 후진 동네라 아고라 잘 모르는 사람들 많습니다”(형형색색) “훗날 자식들에게도 산 역사의 서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책이 될 듯합니다”(비랑) “나오면 바로 털릴 준비하세요 … 몽땅 사버릴거얌 ㅎㅎㅎㅎㅎ”(스피릿) “아고라 아줌마부대도 넣어주세요 …ㅜㅜ”(약속해줘) “여기 미국인데 어떻게 받아볼 수 있을까요?”(박수진)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아고라에 올라오는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고으니) 이처럼 ‘완벽한’ 시장조사를 거친 <… 아고라>는 주문자들의 입맛에 딱 맞췄다.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비장하지만 결코 구질구질하지 않다. 구호들은 의표를 찌르고 풍자와 해학은 참신하고 쿨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대박의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책의 내용과 출간이 갖는 의미까지도 아울러 제대로 짚으려면 몇 달 전부터 시작된 한국 역사상, 어쩌면 인류 역사상 초유의 ‘브로드밴드(광대역) 민주주의’를 선취한 기념비적인 사태를 되짚어봐야 한다.
그 전인 4월6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46일 만인 그날 아고라에 고등학생 누리꾼 ‘안단테’가 ‘【일천만명 서명】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를 띄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대운하, 몰입식 교육, 보험 민영화, 고소영, 물가정책 …. 국민과 국가와 자존심을 갖다 버리신 대통령님 이런 대통령을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4월15일 교육과학부가 ‘학교 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의 교육시장화를 강행했다. 사흘 뒤인 18일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한 한-미 쇠고기협상이 마무리됐다. 19일 4·19 묘지 앞에서 학교 자율화 반대 촛불문화제가 벌어졌다. 26일 서울 청계천 소라기둥 앞에서 집회가 열렸고, 28일 촛불집회를 하자는 제안이 떴다. 대통령 탄핵서명 개시 26일 만인 5월2일 서명자 50만을 돌파했다. 바로 이날 마침내 청계광장 촛불집회가 중·고등학생들 선도로 시작됐다. ‘미친 소, 미친 교육 반대’ 팻말이 뜨고 ‘되고송’이 떴다. “0교시 하면 잠 못자면 되고, 쇠고기 수입하면 광우병 걸리면 되고,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지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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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적 상상력을 해체하는 새 세대의 역동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세상을 편집해온 언론의 서열이 네티즌의 손으로 재편되기 시작”했음을 알린 전대미문의 대사건 촛불시위의 출현은 아고라의 등장과 표리일체를 이뤘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사회를 이끄는 힘이 순식간에 대중에서 다중으로, 공간 공동체에서 시간 공동체로, 정치에서 문화로, 지도와 계몽에서 집단지성으로 이동”(김형수)했음을 의미했다. 열흘 뒤인 5월13일 탄핵 서명자가 130만을 넘었다.
14일 경찰이 대통령과 광우병에 관한 ‘인터넷 괴담’을 퍼뜨렸다는 누리꾼들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날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내가 안단테다. 잡아가라.” “저도 잡아가주세요.” 등의 1만5천여 ‘자수’ 게시물로 뒤덮였다. 그때 한 누리꾼(peladona)은 “안단테 변호사비, 우리가 대주자”며 이런 계산을 올렸다. “서명인원 130만 × 100원= 1억3천만원.” 같은 셈법으로, 순식간에 수백 수천명이 접속하고 짧은 시간에 수백만명이 찾는 토론방 누리꾼들이 주목한 책이라면 뜰 만하지 않은가. 집단토론을 통해 자발적 실천지침을 도출한 아고라는 20년 전 “6월항쟁의 국민운동본부 같은 실질적 상징적 운동의 중심”이었다. 5월24일 거리로 진출한 시위는 이후 참여자가 연일 수천~수만을 헤아리다 수십만~일백만명이 모인 6월10일, 7월5일을 정점으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 아고라>가 겨냥하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집단토론과 집단실천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의 진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 버리는 초스피드의 사이버 공간에선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인터넷 접근이 원활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런 한계를 인쇄매체를 통해 돌파하자는 것이다. 책에 집약된 아고라를 통해 브로드밴드 직접민주주의, 촛불혁명을 언제든 되살리고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궁극의 목표는 바로 촛불혁명의 완수다. ‘촛불의 추억’은 아직 섣부르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원천봉쇄 완력 앞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는 게 기획자들 생각이다. 거기엔 드물게 한국인들이 선두에 선 이 장대한 인류사적 실험이 정치적 탐욕의 희생물이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겠다는 기백이 스며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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