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첫째날(5/9일)
우리가 단발머리 찰랑이며 다니던 학교를 졸업 한지도 55년, 꿈 많고 재잘거리던 소녀시절로 돌아가 남도여행 길에 올랐다. 죽전에서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른 우리일행 일곱 명은 이산가족 상봉보다 더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자리 잡고 앉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는 지칠 줄도 모르고, 역시 친구가 그것도 어릴 때 친구가 제일인가 보다.
우리를 축복이나 해 주는 듯 날씨도 맑고 계절의 여왕답게 아름다운 푸르릅을 맘껏 즐기며 달려가서 전북 무안의 來蘇寺에 도착.“여기 들어오는 모든이는 소생하게 하소서”=평화로움이 가득한 세상에로 소생하기를 기원하면서 절을 지었다니 정말 좋은 절이구나. 일주문을 들어서니 그 유명한 전나무 숲길이 우리를 반기는 듯 쫙~~열려져있다. 연초록의 전나무 숲길이 정말로 신선하다. 긴 호흡으로 피톤치트를 맘껏 들여마셔 본다.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서니 이게 왠일 ? 절 마당에 떡 버티고 있는 1000년 된 할매 당산나무, 희안하다. 불교가 뿌리내리기 위해 민간신앙을 포용한 것인데 지금도 스님들이 당산제를 지낸단다. 너그러운 부쳐님의 자비가 오래오래 이어 지소서,
일주문을 지나 닥아 오는 봉래루, 인공적으로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을 이용하여서 樓마루의 기둥 길이가 제각각으로 유명하다. 자연을 그대로 품는 우리 조상의 건축철학을 보여준다. 단청없는 대웅전의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기품있는 사람같은 푹은 함이 느껴진다. 호기심 많은 사미승 때문에 뻥뚫린 천정도 보셨지요? 나는 본전불 뒤편에 모셔진 “백의관음보살좌상”과 눈 맞춤 하면서 소원도 빌어보았지요.
시간 잘 지키는 우리학생들이 다음에 내린 곳은 고창의 古刹 禪雲寺. 주차장에서 선운사가는 길이 너무나 아름답다. 봄에는 벚꽃과 동백꽃, 여름에는 시원한 산바람과 계곡,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불 타는듯 ,겨울에는 고요한 산사, 네 계절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곳. 특히 가는 길가에 우리나라 최대의 “무릇 꽃”군락지, 수선화과의 붉은 꽃으로 9월에 핀다. 잎이 시든 뒤에 꽃이 피어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상사화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이곳은 지정 문화재가 8가지나 되는데 유명한 것이 천연기념물 184호인 동백나무, 사찰보호림으로 조성하여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약 2000 구루가 선운사 뒤에 도솔산을 붉게 물들인다. 이곳 동백나무는 자생지의 북방 한계선에 있어 다른 곳 보다 늦은 4월말에 절정을 이룬다. 우리가 조금 늦어 아쉽네요. 이곳에서 黑梅花나무도보았지요. 그래도 열매는 녹색이랍니다.
다시 목포로, 목포의 자존심 유달산에 올라 일제강점기에 항구로서의 역할이 활발했던 목포에는 아직도 유물이(동양척식회사건물, 영사관건물)남아있어 新舊지역이 대비돼는 도시발달이 보인다. 노적봉을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감탄스럽다. 내려오다 우리 9회 카수들이 노래를 멋지게 불러 유달산충무공께 바치고, 다시 갓 바위로. 갓 바위는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500호)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하구에 위치하여 풍화작용과 海蝕작용으로 형성된 風化穴(tafoni)이다. 풍화혈은 노출암괴의 수분이 균열을 따라 암석내부로 스며들고 그 수분의 부피변화로 粒狀으로 떨어져 나온 곳에 풍화혈이 만들어진다. 해식작용과 풍화작용이 심한 곳에는 더 큰 풍화혈이 발달한다. 이 갓바위는 인위적 요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순수 자연적인 과정으로 형성된 풍화혈 상태의 조각품으로 그 휘기성이 크다.
오늘은 풍천장어정식을 엄청 먹었으니 저녁생각이 없다더니, 풍성한 회정식에 포식했다. 동침할 친구를 뽑는 재미와 설래임을 즐기면서 호텔 방으로 가면서도 19살 소녀들이 재잘거린다.
남도여행 둘쨋 날.(5/10)
복 많은 우리들의 여행 날은 역시나 쾌청하다. 녹색의 계절답게 싱그럽고 상쾌상쾌--
茶山艸堂, 조선 중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10여년을 유배 생활하던 곳, 10여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관의 필독서인 “목민심서” 민초들을 위한“다산 어보”등 많은 실학서적저술의 산실이다.
초입부터 곧고 아름다운 赤松숲과 바람이 불때마다 소나기 오는 소리를 내는 대나무 숲을 지나노라니 “혼불”이 생각난다. 숨 가쁘게 오르다보니 민초들의 팍팍한 생활을 그려놓은 듯한 “뿌리 길”을 지나 92개 계단을 허이 허이 오르면 비로서 “다산 초당”이 살포시 자리한다. 10여년전에 이곳을 오를때는 다람쥐처럼 올라 백련사까지 가면서 멀리 다도해를 바라보며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을 흥얼 거렸는데 어찌 이리 높은고, 초당을 더 높은 곳으로 옮겨 지었나보다.ㅋㅋㅋㅋ. 조심조심 내려와 강진에서 보성으로 이동. 사진촬영의 일 번지 녹차밭으로 향한다.
흙길 양옆에 하늘높이 치솟은 삼나무숲은 관상수와 防風林 병충해예방 용도로 심었다고 하는데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곳의 명물이며 기분 좋은 산책로로 걷는 즐거움을 안겨 준다. 가을에서 초겨울에 피는 茶꽃이 정말 아름답다는데 보는 즐거움을 갖지는 못했으나 흰색의 다섯 꽃잎을 피운 답니다. 이 다섯 꽃잎은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떫은 인생의 맛을 의미한단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초록의 물결, 층층이 아름다운 차밭을 여유있게 산책하고 내려오니 올해수확한 우전차가 기다리고 있어 차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였지요. 녹차 한 잔으로 끝 낼리 없어 은은한 녹색의 아이스크림을 우리의 총무가 열심히 날라다준다. 은은한 향과 차가운 목 넘김이 몸 구석구석에 녹아들면서 보성 차밭을 뒤로 옛날과 현대가 어울러져있는 순천 낙안 읍성으로 향 한다.
이곳은 다른 민속촌과는 다르게 120세대 288명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초가집과 돌담길, 싸리문, 물래방아----조선 시대 중부지방 평민들의 생활상을 느껴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낙안읍성 초입의 엿 가게에서는 뻔데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옛날 냄새, 지금도 맛보기는 싫은 냄새, 성안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초가집들이 정겹다. 한 가운데 큼직한 기와집은 누구의 집일까? 부자집이 아니고 죄수를 갇워 두는 감옥이라고. 민초는 죄를 지어야 기와집에서 잘 수 있었겠네요.ㅋㅋㅋ
오늘의 마지막 순천만의 갈대밭으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재 빨리 내려 걷기시작. 이곳 순천만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海岸河口의 자연생태계가 훼손 되지 않고 잘 보전된 곳으로 2006년 1월 20일 연안 습지로서 “람사스협약”에 등록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갈대밭이 조밀하게 형성된 단일군락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등 희귀조류 11종이 월동하는 지역으로 세계에서도 희귀조류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람하기 좋게 잘 꾸며진 길은 .... 연인과 함께하면 그림이 너무 좋겠이만~~~, 21.6 ㎢의 갯벌과 5.4㎢의 갈대밭을 볼 욕심으로 전망대를 향하여 부지런히걸었지요. 그러나 전망대 초입에서 올려다 본 전망대는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
포기하고 다시 찬찬히 둘러보며 주차장으로---그러나 우리의 健脚들 권오영.이명숙, 이을섬, 이숙경, 이영희, 김의나,최문경는 기필코 정상을 정복하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와 자랑이 끝이 없다. 샘이나서 내 속으로 한 말 “쟤네들 내일 다리 아퍼 일어나지도 못할꺼야” 점심의 꼬막이 너무 매워 조금 먹었더니 배에서 쪼르륵. 산채정식을 나물까지 삭슬어먹고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지리산 온천 호텔로, 벌써 9시 강행 이었다.
남도여행 셋째날(5/11)
아침은 남도의 별미 재첩국에 밥말어 든든히 먹고 지리산 서쪽에 자리 잡은 古刹 華嚴寺로향한다. 구례 화엄사는 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五大寺刹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국보 네 개가 있는데 그중 覺皇殿은 지은지 1500년이 넘는 건물로 現存하는 목조건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석등(국보12호), 四獅子三層石塔(국보 35호)은 보았는데 영산회 괘불탱화는 찾아보지 못했다. 어데 였드라 석가래를 구부러진 나무 그대로사용해서 지은 집이 멋있었는데 생각이 않나네~~~~ 이 절의 또 하나 특이 한 것은 가람 배치의 중심이 대웅전이 아니고 각황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主佛도 각황전에 “비로자나불” 이다.
이절의 또 하나 보물은 천연기념물458호, 수령 450년의 紅梅花다. 대웅전과 각황전 사이에 매화나무 한 구루, 4월 중순에 꽃을 핀다고 하여 꽃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뫃여 든다고 한다. 꽃이 불타는 듯 붉어 흑매화라고 불리운 단다. 시간에 쫓기어 발걸음도 바쁘게 松廣寺로 향한다
꼬박 이틀을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웠으니 할 말이 다 떨어 졌나보다. 마이크를 잡고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우리의 가수 이명숙, 박혜자, 이을섬, new face 김화수등등 누구였드라 .......기억이 가믈가믈~~~ 우아하게 멋지게 노래도 부르고, 이현원이의 무인도를 못 들어서 아쉬웠다오.
우리의 英詩의 여왕 황광자가 英詩“ Annabel lee”와 이기철의 “내가 바라는 세상”을 멋지게 낭송하고 또 한명이 영시 낭송을 했는데 내 I,Q가 한 자리라서 깜빡 미안해, 아는 사람은 댓글로알려주시기를 바라옵니다. T 양과 H 양의 애교 섞인 와이당으로 까르륵~~~
나도 마이크잡고 “새 나라의 어린이”부터 “학교종이 땡땡땡”하니까우리 총명한 부고여학생들 벌써 알아차리고 “산토끼” “옹달샘” 줄줄이 나오네요. 끝없이 이어져 初딩에서 中딩으로 가려는데 송광사에 도착. 중딩 고딩은 선농축전에서 마무리 했답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중 하나인 僧寶宗刹이다.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國師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답게 대웅전에 풍경도 없다. 또 대웅전 앞마당에는 탑과 석등도 없어 더욱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비사리구시” 조선 영조 이후 國齊를 모실 때 절을 찾은 사람들을 위해 쌀 일곱가마니의 밥을 지어 퍼 놓던 목조용기란다. 송광사가 아주큰 大刹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鐘鼓樓앞에서니 10여년 전 無泊 2日 여행으로 새벽3시에 이곳에 오니 스님이치는 四物(木魚 雲版,法鼓 大鐘)의 소리는 신비로웠고 춤추는 듯이 장삼을 펄럭이며 法鼓를 치고있는 스님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엇다. 송광사 새벽예불소리는 C,D로 나올만큼 음악적인 예술이라고 한다.
조용히 사찰을 물러나와 속세의 떡갈비집으로 향한다. 담양하면 대나무(풀이라는 것도 알고), 죽순밥과 떡갈비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집에서 기다려주는 임을 위해 떡갈비 포장을 해 들고 나오니 마음이 흐믓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선 최고의 정원 소쇄원에 도착했다.소쇄원은 조선 중기 정조때 梁山甫가 조성한 민간 정원이다. 조선 중기 호남문화를 이끌던 인물들의 교류처 역할을 하던 장소로 송순,김인후,정철등이 드나들며 정치 문화 사상등을 論하던 곳이다.
주인이 거처하며 글읽던 곳인 제월당과 손님을 위한 사랑방인 광풍각, 두전각이 살작 비껴 서로 바라보고 있다. "소쇄처사 양공지려" 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황토 돌담이 자연 모습 그대로 이 정원의 문폐노릇을 하고있다. 피로가 풀리는 듯 마음이 차분해 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다음에 들른곳은 ....... "한국 가사문학원"
원장 이정옥님의 청아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歌辭와 詩調, 唱까지유괘한 만남이었다. 소쇄원에서 시문을 주고 받던 선비들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어 절묘한 위치에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古典시간에 배운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등이 생각난다. 위 가사의 작자인 송강 정철은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가사문학가로 칭송받는 학자라고 한다.
2박 3일의즐거운 일정을 다 마치고 문화원을 출발, 서울로 싱싱 달린다.
우리들에게 좋은 구경, 좋은 숙소,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게 알찬 계흭을 짜고 주선 해준 안장훈 동문께 감사합니다. 경비마련에 수고 하시고 여행진행을 맡아서 아주 많이 고생하신 조동암 김정섭회장단과 차안에서 심심할틈 없이 주전부리를 공급해준 이을섬 김영원총무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강행군인데도 시간 잘 지키고 아프지도 않고 가이드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들은 우리 친구들 과연부고 출신답게 대단하십니다.
나쁜기억은 다 흘려버리고 지금 만큼 건강하여 60주년에도 또 만나 재잘거려 보자구요.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친구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