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18,1-2.21-23; 19,1-3.9ㄱㄴ; 루카 21,20-28
+ 오소서 성령님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힌 나라는 이집트와 바빌론이고,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박해한 나라는 로마 제국입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은 어제 독서에서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가 같다고 했는데요, 오늘 독서에서는 바빌론과 로마 제국을 비교합니다.
바빌론과 로마 제국의 공통점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첫 번째 성전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이 파괴했고,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지은 두 번째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로마 제국이 파괴했습니다.
제1독서에서 묵시록은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라고 외치는데, 여기서 바빌론은 로마 제국을 의미합니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우상숭배와 탐욕과 도덕적 타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듣습니다. “할렐루야…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묵시록에는 ‘탕녀’, ‘대탕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갈비탕이나 도가니탕과 같은 탕에 진심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도시나 국가를 여성형으로 표현하는 당시 관습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여기서 탕녀 역시 로마 제국을 가리킵니다.
제1독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라는 말로 끝나는데, 탕녀인 로마 제국은 심판을 받고, 하느님 백성이 신부가 되어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혼인을 하는 것이 구세사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내용상 둘로 나뉘는데요, 전반부는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는 세상 종말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포위된 것을 보거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고,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전쟁 때에 예루살렘 성안에 있던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예언은 맞았습니다.
이어서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요, 천체와 바다에 표징들이 나타나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라 하십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라 하시는데, 이는 메시아에 대한 다니엘서의 예언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빌론 제국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로마 제국은 오히려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했고, 380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을 뿐 아니라, 391년에는 그리스도교 외에 모든 종교를 금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역설적인데요, 교만했던 바빌론 제국은 무너져 사라져 버렸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이 세례를 받고, 그 수도였던 도시 로마가 지금은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었고 교황님이 계시는 곳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박노해 시인의 ‘빙산처럼’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 그 시를 다시 떠 올려 봅니다.
“빙산은 거친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진행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만은
엄청난 힘을 지닌 태풍의 진로마저 거스르며 제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빙산은 자기 몸체의 대부분을 바다 속에 두고 있기에 바다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을 흐르는 해류의 흐름만을 따른다.…
내 삶의 큰 부분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내 삶의 자리가 어디쯤 흘러와 있는가
나 무엇의 힘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정 내 몸과 생활의 중심부를
저 깊은 심연에, 밑바닥 현장에 뿌리 박고 있는가
폭풍을 거슬러 바다 깊숙한 흐름만을 따르는
빙산처럼!”
우리는 소란스러운 표면의 바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바다 깊은 곳의 해류를 따라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치는 다른 민족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며 이르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빙산
출처: What is an Iceberg? Everything You Need to Know - American Oce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