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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상)
성모성심으로 천주성삼께 영광을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총장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는 고(故) 정행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1991년 ‘성모성심을 통해 천주성삼께 영광’을 모토로 설립했다.이에 수도회 회원들은 ‘항상 천주성삼의 현존을 인식하는 삶’을 목표로 삼는다. 수도회 회헌(3항)에 명시된 것처럼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는 삶이다.
1917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정행만 신부는 1929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준비한다. 정 신부는 1936년 예수성심 신심 전파자 마태오 크롤리 신부의 강론에 감화를 받았다. 이후 매일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성모신심을, 매주 목요일 성시간 기도를 봉헌하며 예수성심 신심을 길러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 신부는 1942년 사제품을 받을 때 자신을 천주성삼께 조건 없이 봉헌하는 특별한 신심도 보이게 된다. 이후 그는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는 등 사제로서의 완덕의 삶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정 신부는 1950년 2월 당시 대구대목구장 고(故) 최덕홍 주교의 허락 하에 경상북도 상주에서 수도회 설립을 준비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 발발로 지연됐다. 이듬해 상주에서 지원자를 받고 설립 준비를 재개했으나 심장병을 앓게 돼 중단했다.1962년 대구 동촌본당 주임으로 발령받은 정 신부는 대구 불로동 과수원에 터를 잡고 수도회 창립을 다시 준비했다. 그러나 2년 후 건강 악화로 상주에서 휴양을 해야 했다. 이 기간에도 지원자들이 와서 ‘정 신부 식구’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후 1976년 경기도 안성 미리내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정 신부는, 당시 수원교구장 고(故) 김남수(안젤로) 주교 책임 아래 수사 지원자들과 함께 성당 사제관에서 지내며 수도회 창립을 준비했다.
1978년에는 첫 서원자를 배출하고 피정의 집 ‘대건 회관’을 증축해 수도원으로 봉헌했다. 이듬해에는 재정 자립을 위한 교회용품 제작 공방 ‘요셉 성물 공예사’를 열었다.
수도회는 1987년 수사 신부 2명을 비롯해 총 30명의 유기서원자를 배출하고 9월 교황청에 회헌 인준을 신청했다. 1990년에는 창립자 정 신부를 비롯한 총 19명의 회원들이 종신서원했다. 수도회는 1991년 1월 교황청으로부터 회헌과 설립 인가를 받았다. 2개월 뒤에는 김남수 주교가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라는 명칭으로 설립 인가교령을 반포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3월 27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중)
선교 · 의료 등 여러 사도직에 종사
“회원들은 복음에 제시되고 회헌에 명시된 그리스도를 따름을 생활의 최상 규칙으로 삼는다.”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회헌에는 그 영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언제나 회원들 안에 머무르시는 천주성삼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 신심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 이것이 수도회 영성의 핵심이다.
수도회는 천주성삼과의 긴밀하고 항구적인 일치와 이를 모든 그리스인들에게 가르치려는 확고한 의지를 수도회만의 표지로 삼았다. 이에 회원들은 항상 천주성삼의 모상으로 하나 돼, 거룩한 가족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또 구속사업을 통해 삼위일체인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존경을 받으시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수도회 회원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천상 어머니와 완덕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한다. 또 성 요셉에 대해서도 교회의 보호자이며 동정자들의 수호자, 성덕과 봉사와 침묵에 뛰어난 모범으로서 특별한 신심을 보인다.
수도회는 특히 한국교회의 첫 사제이자 순교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특별한 수호자로 모신다. 그가 이 땅에서 보여준 희생정신과 전교 열정을 본받기 위해서다.
관상과 활동을 함께 하는 수도회 회원들은 예수성심에서 길어낸 사랑의 불을 사도직 활동을 통해 전한다. 모든 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께 영광의 찬미를 드리기 위해서다. 또 장상 허락 하에 회원들은 고독과 침묵 중에 끊임없이 기도하고 보속하며 하느님께 일치하는 관상 생활을 지망할 수 있다.
수도회는 매주 목요일 밤 9시에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 26,40)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는 성시간을 봉헌한다. 이 성시간에는 우리의 죄로 고통 받으신 그리스도에게 조금이라도 갚아드린다는 ‘배상’의 마음을 담는다. 성시간에는 묵주를 든 양손을 하늘을 향해 뻗은 채 기도하는 묵주기도가 이어진다.
수도회의 천주성삼 영성은 회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말씀에 따라 여러 사도직에 종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도록 봉사하는 일에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목자처럼’(에페 4,11-12 참조) 회원들이 수도회의 여러 양성 사업을 천주성삼께서 그들에게 맡긴 성무와 애덕으로 여기도록 이끌고 있다. 회원들도 그 뜻에 따라 선교와 자선 의료 활동을 비롯한 여러 사도직 사업에 나서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4월 3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하)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의 천주성삼 영성은 회원들이 여러 양성 사업에 힘을 기울이도록 이끌었다. 교회 사명의 본질적 차원으로 교육 사업을 펼친 수도회는 의료, 복지 등 애덕사업 외에 해외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수도회는 교육 사업을 위해 1992년과 1999년 각각 경기도 화성시와 인천 강화군에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원을 세웠다. 현재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왕림 신학원만 운영 중이다. 1999년에는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내에 피정시설 ‘묵상의 집’을 설립했다.
회헌에 따라 회원들은 소외된 지역이나 농촌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애덕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93년 고(故) 파현우(라이문도) 신부가 서울 신림동에 설립한 결손가정 남자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소규모 그룹홈 ‘예수 그리스도의 집’을 이어 받은 것도 그 일환이다. 1995년에는 경기도 이천에 형제농원을 설립, 배 과수원을 운영 중이다.
수도회는 의료 사도직을 통해 전인적 치료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를 구현하고, 복음을 선포하길 원했다. 이에 2003년 대구 수성구 신매동에 천주성삼병원을 개원했다. 2008년에는 노인요양시설 기능 보강을 위해 병원 인근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인 천주성삼요양원도 설립했다. 병원에서는 회원들이 의료진, 직원들과 함께 지역 내 독거어르신과 불우이웃 등에 음식 및 의복 지원, 무료 진료를 펼치고 있다. 또 지역 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사업을 펼치는 등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며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외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이스라엘 분원을 설립했다. 이스라엘 분원은 설립 당시 예루살렘총대교구의 요청에 따라 현지 청소년 사목에 협력과 지원을 펼쳤다. 환경적 제약으로 어려움에 처한 팔레스타인 신자 자녀들을 위한 물질적·교육적 지원도 병행했다. 또 예루살렘을 찾는 한국인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성지 안내를 하며 순례자들의 신앙심 고취에도 관심을 뒀다.
2009년에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우리집’(Woori Jib)이라는 보육원을 설립하고 청소년 교육과 현지인·한인 대상 사목, 현지 성소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 정글 내 공소를 방문하고 원주민을 지원하는 정글 선교 등을 펼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오클라호마, 캐나다 몬트리올 한인 성당에서도 사목하고 있다.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인보성체수도회 (상)
가난한 이 위한 사랑의 봉사 실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증거했다. 인보(隣保)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하며, 성체성사의 뜻에 깊이 박혀있는 정신이다.
인보성체수도회는 1956년 11월 19일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사회사업가였던 서울대교구 윤을수(라우렌시오·1907~1971) 신부에 의해 성체성사 정신의 핵심인 ‘인격존중과 평등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됐다. 윤 신부는 성체를 공경하고 성체성사의 정신에 따라 살겠다는 의도를 오롯이 담아 수도회 이름을 지었다.
설립자 윤 신부는 1932년 사제품을 받은 뒤 1937년 조선교회 최초의 ‘신부 유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당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한국인 최초의 박사신부가 됐다. 6·25전쟁 중 군종사제로 임명된 그는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가 전쟁 후 피폐해진 삶의 현장에서 사회사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전념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고아를 비롯해 한센병 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국제카리타스 등을 통해 체계적인 사회사업을 할 수 있는 ‘구산후생학교’를 설립했다. 지속적인 사회사업을 위해서는 가톨릭 사회사업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는 사회반과 수도반으로 구분했는데, 당시 수도반 학생들이 인보성체수도회의 첫 서원자가 됐다.
윤 신부가 펼쳤던 모든 사업은 인보정신의 구현으로 이어졌다. 특히 윤 신부는 인간을 유일한 존재로 존경하는 정신을 가장 강조했다. 그는 유고집에서 인보사상에 대해 “우리의 이상은 병들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웃을 돕는 것”이라며 “이 사상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고 인간다운 이상을 찾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육체가 여기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수도회 사도직 활동의 특징은 가장 어려운 이에게 이웃이 돼주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며, 어느 누구든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윤 신부는 이런 정신에 따라 수도원을 성매매 여성과 죄수 등 모든 이들에게 개방했고 수도자들에게는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엄격히 당부했다. 또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동등하게 대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여겼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3월 6일, 성슬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인보성체수도회 (중)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의 소유가 된 우리는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찾고 사랑한다.”
인보성체수도회의 회헌에는 그 영성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서 ‘나에 대한 참된 겸손, 남에 대한 사랑’(인보정신)을 ‘마음 바르게 부지런히’ 살아감으로써 스스로 행복하고 넘치는 기쁨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보성체수도회 영성의 핵심이다.
제일 먼저 제시된 ‘나 하나의 세계’는 회원 각자가 자기 안에 하나의 스승, 하느님을 모시고 변함없이 그분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참다운 복음을 실현해가는 세계다. 즉, 각자의 마음 안에 세운 하느님 나라라는 의미다.
설립자 고(故)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는 “세속의 일은 필요한 대로 보고 네 마음에는 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야 한다”며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천국”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나’에서 중심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신부는 여기에서 나아가 그리스도의 나라는 타인에게 그 행복의 길을 보여줌으로써 확장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행복은 겸손과 이웃 사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동정이 있고, 남을 향해 열려 있으며,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남에게 내어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보성체수도회 수도자들은 이 영성에 따라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할 줄 알고 남을 돕는 데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결국 수도회의 이상은 ‘병들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인보사상’에 있으며, 이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정신과 육체가 여기 있음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회원들이 영원한 생명을 향해 가는 두 가지 방법은 ‘마음 바르게’ 그리고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누구나 다 자신감이 생기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마음의 불안도 사라져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신부 설명에 따르면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는 뜻이고, 부지런하다는 것은 자기 임무에 충실하다는 얘기다.
모든 기도생활은 결국 스스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부지런히 임무에 충실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리고 회원들은 이 모든 것을 오직 진리의 근원이며 진리 자체인 하느님으로부터만 배워 실천한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하느님의 거룩한 섭리로 받아들이며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그 안에서 용기를 얻고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는 삶이 곧 회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자 이들의 영성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3월 13일, 성슬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인보성체수도회 (하)
사회적 약자 위한 사회사업에 투신
“우리는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하는 사회사업으로써 방방곡곡에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인보성체수도회 회헌 6조에는 수도회의 사도직 활동의 핵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도자들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할 줄 알고 남을 돕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상”이라고 강조한 설립자 고(故)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의 ‘행복 영성’에 따라 시대의 변두리로 나가 그 시대에 가장 나약하고 도움이 절박한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나선다.
나아가 이들에게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이들의 손을 어떻게 잡아줄지 고민하며 하느님이 스스로를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아가페적 사랑을 이들에게 실천한다. 특히 설립자 신부의 영적 유산을 이어받기 위해 투신하며 역동적으로 활동한다.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사회사업을 펼쳐온 수도회는 지난 40여 년간 설립자 윤 신부의 영성과 정체성을 고민하며, 시대의 표징에 걸맞은 카리스마를 적용하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로 변화된 사회현실 안에서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펼치기 위해 늘 깨어있다.
최근 수도회는 난민과 청소년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가정해체로 길거리에 떠도는 아이들 그리고 생태환경 분야에 헌신하고 있다. 먼저 난민과 이주민들이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판단한 수도자들은 지난해 2월 이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인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을 마련했다. 의정부시 가능동에 위치한 이곳에서 수도자들은 이들과 같은 생활조건으로 함께 살아가며 이들의 이웃이 돼주며, 이들을 환대해주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이 근처에서 36개월 미만 난민 어린이들을 맡아주는 사도직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9~24세)들을 위한 무료식당 ‘얘들아~! 밥먹자~!’ 프로젝트도 한창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오픈한 ‘서울 인보의 집’은 서울 후암동 골목에 위치한 곳으로, 청소년들에게 원하는 식사 메뉴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 등의 청소년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3가지 밑반찬과 간식을 집집마다 방문해 전달하기도 한다.아울러 이와 관련해 모금운동을 한 적은 없지만, 소식을 알고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 주교를 비롯 많은 부모들의 후원이 이어져 올해 4~5월에는 신림동 고시촌 등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찾아가는 ‘푸드 트럭’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또 생태환경을 위한 자연 살리기 운동도 실천하고 있다. 2020년 6월 시작한 ‘인보자연숲교육센터’(충남 예산군 덕산면)는 교육과 치유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으로, 부모로부터 버려진 어린 아이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물론 아이들에게 통합 교육을 제공하며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외방선교회 (상)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일군 한국교회는 그동안 받았던 도움을 나누기 위해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인 선교사 파견을 논의한다. 이에 주교회의는 1974년 외방선교회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 외방선교회 설립을 구체화했다. 1975년 2월 26일 주교회의는 한국외방선교회 설립을 정식으로 의결하고, 설립자에 최재선(요한) 주교, 초대 총재에 정진석(니콜라오) 주교를 임명했다.
한국외방선교회의 설립에는 ‘형제적 나눔’을 실천코자 한 최재선 주교의 뜻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73년 9월 부산교구장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11월 교황청 포교 연맹 한국지부장에 임명된 최 주교는 한국외방선교회를 태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수립한다. 평소 성소의 빈곤을 호소하는 세계교회의 요청에 부응해 우리 교회가 그들과 형제적 나눔을 실천해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 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외국의 형제들로부터 많은 물직적·영성적 도움을 받아 오늘날의 교회로 성장한 한국교회가 이제는 과거에 받은 도움에 감사하고, 그 감사에 대한 보은으로 어려움 속에 있는 해외의 형제자매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질적 성숙을 지향할 시기가 되었다는 최 주교의 생각은 한국외방선교회의 비전 수립에 반영됐다.
한국외방선교회의 목적은 복음화 활동이 필요한 곳이면 세계 어디에든지 그 지방 교구장의 선교와 사목협조요청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한국 선교사를 양성ㆍ지도하는 데 있으며, 특히 궁극적인 선교지 목표를 북한과 중국 침묵의 교회로 삼았다. 또한 한국 순교선열들의 영성을 핵심 가치로 따르는 한국외방선교회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며 개혁적인 선교활동을 지향한다.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한국외방선교회가 창립됨으로써 비로소 한국교회는 성소 빈곤을 호소하는 세계교회의 요청에 능동적으로 부응하게 됐고,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전환하게 됐다는 점은 한국교회 역사 안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1976년 3월 1일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대신학생 16명, 소신학생 33명으로 신학원이 정식으로 개원됐다. 신학원의 초대 지도신부로는 이홍근(바오로) 신부가, 1979년 2월에는 초대 원장으로 길홍균(이냐시오) 신부가 부임해 선교 사제 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같은 해 4월에는 김남수(안젤로) 주교가 제2대 총재로 선임됐으며 7월에는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가 창립돼 자립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2월 13일, 민경화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외방선교회 (중)
감사 · 보은 실천하는 선교사들
한국외방선교회는 고(故) 최재선(요한) 주교가 받은 성령의 특별한 은총, 즉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최 주교는 자신이 체험한 특별한 은사를 한국외방선교회의 공동체에 영적인 자산으로 남겼다. 그리고 한국외방선교회 회원들은 설립자의 영성을 세상을 위한 복음화에 중요한 자양분으로 삼고 실천에 힘쓰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회헌 제7조에서는 설립자 영성에 대해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회원들은 설립자의 권고와 모범에 따라 기도와 단순한 생활 가운데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쁘게 주님의 선교 사명에 투신한다.”
‘감사와 보은’은 최 주교가 한국외방선교회를 설립한 동기이기에, 이 선교회가 지향하는 모든 활동의 근본적인 원동력인 동시에 목적이다. 스스로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무수한 순교 선열들의 신앙을 밑거름으로 하여 여러 이웃 교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하느님의 은총 속에 성장했다.
따라서 최 주교는 ‘감사와 보은’을 실천하는 것이 신자들의 마땅한 도리라고 한결같이 생각했다. 최 주교는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고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응답해 한국 땅에서 복음의 가치를 심고 신앙을 증거한 이웃 교회와 여러 선교회 수도회의 형제적 사랑과 도움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은하는 길은, 어려운 이웃 교회들에 한국인 선교사를 파견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한국외방선교회 회원들은 한국 순교자들을 주보성인으로 모시며, 순교를 불사한 그분들의 복음적 열성을 본받아 온 몸과 마음, 목숨을 다하여 선교 활동에 매진한다. 또한 창립자의 삶을 본받아 모든 선교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의탁하며 교회를 통한 하느님 구원 사업의 도구가 돼 순교자적 자세로 최선을 다한다.
정결, 청빈 그리고 순명의 복음삼덕을 몸소 철저히 실천했던 최 주교는 생애를 마감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심혈을 기울였던 해외선교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따라서 한국외방선교회 회원들은 창립자의 표양을 따라 기도와 봉사, 그리고 검박한 삶을 통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1고린 9,22)이 된 선교사의 사표, 사도 바오로의 모범을 본받는다.
그리하여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육화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세계를 구현함으로써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갈망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2월 20일, 민경화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외방선교회 (하)
62명 선교사제 8개국서 활동 중
1981년 11월 김동기(미카엘) 신부를 포함한 4명의 선교사를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에 파견하며 한국외방선교회의 선교 여정이 시작됐다.
이후 선교 지역을 넓혀나가 현재는 파푸아뉴기니와 대만, 중국, 캄보디아, 모잠비크, 필리핀, 멕시코, 미국 등 8개 국가에서 62명의 선교사제가 활동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11명의 선교사제는 교통과 통신 수단, 사회적 제반 여건이 미비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본당 사목뿐 아니라 대민 지원 활동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대만에 선교사를 파견하는데 주력했다. 대만 가톨릭 교세의 위축과 만성적인 성소자 부족, 그리고 사제의 고령화 현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젊은 선교사제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당시 대만의 신주교구장 리우시엔탕 주교는 한국외방선교회에 선교사제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990년 3월 신주교구에 3명의 선교사제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9명의 선교사제가 본당 사목뿐 아니라 교정 사목과 원주민 사목에도 관여해 신자 공동체의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선교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감사와 보은’을 보다 많은 나라에서 실천하게 됐다.
2001년 세운 캄보디아지부에서는 8개 나라 중 가장 많은 선교사제가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14명의 선교사제들은 최근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워진 이들을 위해 본당 사목뿐 아니라 긴급 식량 지원과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아울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코미소(KOMISO) 직업학교, 무료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코미소 클리닉도 세웠다.
2011년 말 한국외방선교회는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대교구와의 사전 접촉을 통해 선교사 파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2012년 11월 2명의 선교사제를 파견하게 됐다. 이후에도 많은 수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회원을 파견해 앵커리지대교구를 돕고 알래스카 선교를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주려 노력해 왔다.
앵커리지와 그 외곽인 와실라를 중심으로 선교를 시작, 본당 사목은 물론이고 공소와 양로원 방문, 가톨릭 학교 교목, 교도소 사목 등을 통해 알래스카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지역의 다른 교파와도 연계해 빈곤, 청소년 가출,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 등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 공동체와 공조를 이끌어내는 한편 교회일치운동에도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