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낳아 키우다 보면 가끔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항상 밝은 모습에 하는 말 다하며 지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느낄 때 부모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됩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인데 큰 딸이 학교에서 친구와 의견 충돌이 있었는지 친구생일 잔치 모임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어떤 낌새를 알아채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의 물꼬를 터보니 이런 저런 상황 설명을 하며 금새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나름 생활속 관계에서 억울함이 있었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꾹 참고 있었지 않았나 짐작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론 딸이 맘속에 담고 있었던 말을 눈물과 함께 쏟아 붓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껴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엄마의 지혜로서 딸과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다음날 친구 생일 잔치에 잘 다녀온 것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가끔 사람에게는 말 못할 상황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안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하면 더 좋은 말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아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 부분이 적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표현하는 삶과 표현해 내는 삶의 경험을 통해 커가는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한 사리판단이 생기고 쌓여 갔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위와 같은 일이 있는 경우 아빠로서 아내가 있다는 것에 참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각자의 판단과 평가로 자신이 아버지로서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며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렇지만, 비록 자녀를 존중하고 자녀에게 자상한 아빠라 하더라도 가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이성이 다른 아빠로서 자녀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설령 그 고민이 무엇인지 안다고 하더라도 해결할 방법을 못 찾는 경우도 많은데 섬세한 여자로서의 엄마는 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자주 읽었던 칼럼 중에 디어 애비(Dear Abby)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칼럼니스트는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를 상식적이면서도 재치 있게 해결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얼마전 그분이 알츠아이머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녀는 시시콜콜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답변을 전하기 위해 CEO, 대법관,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질문하고 자문을 해 답변을 해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상담을 잘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가 말만 번지르하게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민 당사자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위해 모르는 부분은 질의를 하는 등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늘 비슷했었다는 기억입니다.
우물우물 말하지 말고 분명히 말하고, 두려움을 없애고 희망을 가져라.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가끔식은 표현도 하면서 답답함에 따른 카타르시스도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카타르시스의 뜻에 정화, 배설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도 생각되네요.
첫댓글 정화...배설... 공존(?)의 묘미다 ㅎㅎ
배설이란 비우고 정리한다는 개념 아니것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