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구속사 강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의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 산 언약을 체결하고 성막을 짖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신 것은 시내 산 언약으로서의 율법과 성막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율법이 그 나라의 헌법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막은 그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성막의 양식이나 도구들이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때문이다. 번제단과 성막 뜰의 장막에 대한 본문의 말씀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이스라엘 공동체의 특성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단순히 상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막은 백성이 직접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기능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결핍을 갖게된 백성으로 하여금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제사를 시행하는 놋제단은 이런 점에서 백성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언약 관계를 깨뜨린 백성으로 하여금 제사를 통하여 다시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길목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피의 제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아마 이것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는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언약을 파기함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대속을 필요로 할 때에는 피흘리는 제물을 가져와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생명을 위하여 생명으로 대속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요구인 것이다.
제사 제도에서 피흘리는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번제 및 화목제가 있다. 그 중에서도 번제에서 희생물을 태우는 행위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제물 전체를 남김없이 제단 위에서 태워야 하기 대문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제단에서 제물 전체가 불태워지는 제물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연기를 바라볼 때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완전한 헌신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한 바울 사도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성소에 번제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록 언약을 파기한 결핍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 앞에서 제물을 태움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대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이 들여졌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정신이기도 하다. 아무리 잘 다듬어지고 화려하게 만들어진 언약궤가 있다 할지라도 번제단이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야 한다는 의무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번제단이 있음으로 해서 죄인 된 백성이라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의 결핍은 그만큼 공동체 전체의 결핍을 초래한다. 때문에 그 한 사람의 결핍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동체 전체의 완전함을 기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어느 한 사람이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뜨렸다가 회복한다는 것은 전체 공동체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 시내 산 언약의 근간이기도 하다. 특히 안식의 정신이 하나님의 긍휼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님의 긍휼은 안식년 제도에서 그 핵심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며 자유로워야 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록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가 대속의 과정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또한 깨어진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번제단은 제사의 외적인 규율을 넘어 그 자신이 죄에 대하여 변화되었음을 외적으로 고백하는 증거를 보여줌으로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과 화목하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다시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사회의 구성원인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증거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성막에 나아와 제사 제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그리고 그 문화를 세워나가는 독특한 공동체이다. 이처럼 공동의 목적과 존재 의식과 사명을 가진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다.
2. 이스라엘 공동체와 중보자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둘러싼 마당이 있는데 이곳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마당은 포장으로 둘러 싸 외부와 구별하였다. 이곳은 제사장의 몸을 성결케 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성결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제사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정한 백성의 만남을 중보하는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부정한 백성을 대신해 자신을 성결케 한 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성막 뜰은 제사장이 외부의 부정으로부터 성결을 유지시켜 주는 거룩한 장소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정한 백성이 직접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부정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놋제단의 제물이 자신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부정한 사람은 자신의 속죄를 위해 성결한 제사장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보자의 사상은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고 말한 중보자로서의 메시야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부정한 백성은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성막 뜰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고 성막 뜰을 감사고 있는 포장이 그 역할을 하도록 성막은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중보의 개념은 놋제단과 성막 뜰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범죄와 허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범죄는 형벌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형벌 이전에 그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처벌만으로는 죄인을 온전케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비록 형벌을 통해 범죄의 대가를 치렀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그가 온전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는 죄에 대한 책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죄책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완성되는 최후 심판의 날에 그 사람을 여전히 고소할 것이며 하나님은 거룩한 나라에 결코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이다. 따라서 죄책으로부터 영원히 그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