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46-57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본문에서 모세는 애굽에 풍년이 들었을 때에 요셉이 많은 곡식을 애굽 창고에 저장한 사실과(46-49), 요셉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난 사실과(50-52), 애굽에 흉년이 들기 시작한 사실들을 차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53-57).
1. 본문 46절은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입니다.
1) 모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요셉이 정치에 나아갈 때의 나이를 기록했습니다.
(1) 첫째는, 나이 많은 자들은 젊은이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아무런 질투도 없이 정치에 나서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나이 이상으로 존경과 위엄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디모데의 연소함이 멸시를 받을지도 모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면, 요셉 역시 그 같은 멸시를 받을 똑 같은 위험에 부딪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없도록 그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또 그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 같은 권위를 갖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범한 덕성이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2) 또한 여기에 요셉의 나이를 지목한 둘째 이유는, 그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겪어왔던 수난이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의 대우는 인간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13년 동안 아버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종살이 때문이기도 했고 구금 생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러한 자리에 승진하게 된 것은 오랜 시련을 견딘 후였습니다.
2) 그리고 나서 요셉은 자기 임무를 최대한 성실로 지켜나갔다고 모세는 덧붙여 말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그의 순회활동은 여간 근면한 본보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가 대사를 임명하여 무거운 짐을 그들에게 일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일체 짐스러운 일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불과 몇 마디 말로 요셉의 놀라운 신중성을 칭찬했습니다.
2. 본문 47-49절은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49) 저장한 곡물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입니다.
또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풍성한 소출을 주셨다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요셉이 곡물을 보존할 최상의 방법을 강구하는 일에 지혜로왔다고 했습니다.
한 해 하고도 그 5분의 1의 수확량을 더 저장한 창고를 도성마다 건립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일정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먼 곳까지 가지 않고도 식량을 구할 수 있게 한 것은 역시 지혜로운 증거입니다.
이런 일 직후에 다시금 칭찬을 받을만했던 그의 정직성이 피력됩니다.
그가 막대한 곡물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하급 관리나 해야할 그런 자제(自制)를 스스로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의 덕성에 대한 자랑이 됩니다.
그는 많은 수확을 수집한 다음에도 늘 하던 대로 근면하여 그가 맡은 모든 의무를 다 완수한 사실입니다.
'포만을 싫증을 가져온다'는 옛 격언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풍요는 흔히 게으름의 어머니가 됩니다.
따라서 요셉의 근면성이 끝까지 지속되어 현재의 풍요에 만족하는 데서 끝났다면 비축한 것이 아무리 많았다 하더라도 7년 간의 기근이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지 않았겠습니까?
이 점에서 요셉은 충성을 다했고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 비상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그는 7년 간의 끈기 있는 노고에도 지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남아있는 7년 간의 곡물을 다 준비하기까지는 그는 조금도 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몽과 같이 오래지 않아 애굽에 7년 동안 풍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에 따라 요셉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그의 행정력(行政力)은 더욱 능률을 발휘하여 곡식을 국가 창고에 무수히 저장하게 되었습니다.
3. 본문 50-52절은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 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 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 셨다 함이었더라" 입니다.
1) 요셉은 자기 업무 결과에 따라서 다소 경건스럽게 아들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가문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좀처럼 변명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전 모든 불행을 '잊게' 해 주셨다고 감사 드린 것은 경건하고 거룩한 동기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서 자기 아버지의 집에 대한 소망과 추억을 떨쳐버린다는 것은 조금도 명예로운 일이 못됩니다.
그가 애굽 총독일지라도 교회에서 떨어진 유랑자로 있는 한 행복하다 할 수 없습니다.
이 경건한 사람을 변명해 주려고 어떤 자는 요셉이 하나님이 베푸신 현재 은총을 너무나 즐거워한 나머지 자기 형제들이 가했던 피해를 잊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억측입니다.
진실로 요셉의 죄를 변명하려고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매력에 항상 경계를 가져 우리 마음이 지나치게 거기에 감읍(感泣)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그는 하나님을 순전히 예배했습니다.
그렇지만 명예의 감미로움에 노예가 되었고 그의 정신이 흐려져 자기 아버지 집에 무심해지고 애굽에 있는 것으로 자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에서 이탈(離脫) 한 것이나 별로 다를 바 없는 처사였습니다.
자기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서 자신의 어두운 처지를 기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야 올바른 겸손이었을 것입니다.
비천한 자리에서 높은 권세 자리에 출세한 자들은 자기들 과거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치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장차 높은 지위보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더욱 중하게 생각했습니다.
2) 이미 우리가 보았던 대로 이 부분에 요셉의 가정 형편의 행복한 것이 진술됩니다.
이것이 여기 기록된 목적은 하나님께서 여러 방면으로 고난 당한 요셉을 위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려서 부모를 떠나 멀리 외국에 팔려가서 종살이 하는 오랜 세월 동안 가정의 위안을 도무지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정까지 이루어 주셔서 위로를 받게 하시므로 그는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던 생각과 과거의 쓰라렸던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첫 아들 이름을 "므낫세" 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세" 란 말 뜻은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외국에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면서 극히 외로웠었는데 이제 아들을 둘이나 보게 되었으므로 왕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창성함" 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잊거나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요,
옳고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나 창성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혜택이라는 것입니다.
4. 본문 53-54절은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 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 에는 식물이 있더니" 입니다.
지나간 7년은 비상하게 풍작이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예언자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요셉에게 명성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애굽인들은 요셉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만한 백성이 번영 시절에 한 외국인의 통치를 잘 감내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따르는 기근은 교만과 잔인한 정신에서는 더 예민하고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권위 당국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말에 의하면 이웃나라들은 굶주렸을 때에도 애굽 전역에는 곡식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애굽인들이 개인적으로도 곡물을 비축해 두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이미 말했지만 기근이 다가온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서 모든 곳에서 걱정을 하고 각자가 자기 식량을 비축하지 아니했더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아무리 준비성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준비한 것은 곧 바닥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명으로 식량을 공식적으로 비축해 두는 일이 없이는 애굽도 안전하지 못했을 터이니 요셉이 처음부터 얼마나 슬기롭게 처신했습니까?
5. 본문 55-57절은
"(55)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 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입니다.
1) 자기 백성이 수난을 겪고 있을 때라면 왕들도 열락을 삼가는 것이 결코 비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는 무엇인가 다른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도 모든 불편에서 떠나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어서 곡물 배분의 수고를 몸소 마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을 지극히 신임했던 연고로 모든 것을 기꺼이 그에게 맡기고 그가 맡은 직무를 수행하는 일에 조금도 간섭하려 하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2) 여기서는 바로의 꿈을 해몽한 요셉의 말대로 성취되어서 온 땅에 흉년이 들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었으므로 그는 과거에 저장했던 곡식을 백성에게 방출(放出)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각국에 퍼지므로 가나안에 살던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으로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의 약속(15:13)이 이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