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너의 패역함을 알라 (찬 290)
1. 8장에서 이스라엘의 소극적인 죄—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를 다루었고 이제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죄,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다룬다.
가나안 민족들은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나라들’이었다(1~2). 이스라엘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순종했었다. 객관적인 사실과 그것을 아는 지식이 불순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객관적인 지식과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3). 이스라엘은 ‘장대한 아낙 자손이 강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앞서 나아가사 그들을 멸하시고 엎드러지게 하신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현실과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표면적 사실에서 더 나아간다. ‘하나님은 그들보다 더 강하시다’는 심층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는... 이유가 무엇인가(4~6)? 그것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니다(4~6)! 그 민족들의 악함 때문이고(4,5)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다(5). 하나님은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신다(6).
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곧은 증거들을 말한다(7~24).
이 단락의 첫 말과 마지막 말은이 단락의 중심 주제를 보여준다.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7),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24)는 지적이다. 그들이 잊어버릴 수 없는 가장 부끄러운 사건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었다(8~21). 모세를 통해 모든 율법을 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었다(출 24). 하지만 모세가 돌판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 그들은 ‘빨리’ 그 명한 도를 떠났다(10~12,16). 이것은 마치 갈라디아 교인들이 사도가 전해준 복음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은 것과 같다. 하나님의 선언이 무엇이었는가?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12).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13).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었다. 모세는 그 일로 다시 40일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다(9,18). 이스라엘은 이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했다(7).
3. 하나님께 반역한 일이 이것뿐인가?
맛사(므리바)에서 물이 없어서 불평하였던 사건(출 17), 다베라에서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여 진 끝이 태워진 사건(민 11:1~3),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먹을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여 메추라기를 주셨지만 탐욕을 품었던 무리들이 죽었던 사건(민 11:4~35),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땅을 악평했던 결정적인 불순종과 반역 사건들을(민 13,14) 그들은 잊어서는 안 되었다.
4.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과 신실하신 성품에 근거하여 이런 백성을 중보하였다(27).
‘열조들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에 근거를 둔 기도였고,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보겠습니까?’라고 모세는 하나님께 호소했다.
5.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신자는 눈에 보이는 단순 사실로만 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심층 사실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며 도우시는 것은 동일하다! 당신은 그것을 믿고 사는가? 또한 신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의로운 자들이 아니라 패역한 자들이고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당연히 누리는 권세가 아니라 오직 합당하지 않은 자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다. 이것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삶을 불평과 한숨이 아니라 감사와 찬송으로 데려간다.
6.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로 저희에게 후히 베푸시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신자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임을 알고 범사에 믿음과 감사함으로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