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도전을 강하게 비판하고 깎아내린 이유는 **철저하게 성리학적 '명분론(名分論)'에 입각한 정치적·학문적 관점** 때문입니다.
조선의 정통 주자학자였던 송시열에게 정도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역적'이자 '학문적 이단아'였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신하로서 왕을 폐위한' 대역죄인(폐립의 문제)
송시열의 입장에서 가장 큰 결격 사유는 **정도전이 왕(고려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한 점**입니다.
* 성리학은 **'군신유의(君臣有義)'**, 즉 군신 간의 의리를 최우선 가치로 둡니다. 아무리 고려가 부패했더라도 신하가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것은 '찬탈(篡奪)'로 보았습니다.
* 송시열은 정도전을 '군신의 의리를 저버린 간신'으로 규정함으로써, 조선의 통치 정당성을 도덕적으로 더욱 엄격하게 세우려 했습니다.
### 2. 불교와 성리학의 혼합적 태도
정도전은 고려의 불교를 강력히 비판했지만, 송시열이 보기에 정도전의 학문적 뿌리는 여전히 불교적 색채가 남아 있거나 철저한 성리학적 정통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 송시열은 주희(朱熹)의 해석만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주자 근본주의자'**였습니다.
* 정도전은 고려 말의 유학자로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소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학문 태도를 보였는데, 송시열은 이를 '도통(道統, 학문의 정통)'을 잇지 못한 변종으로 간주했습니다.
### 3. '재상 중심 정치'에 대한 반감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꿈꾸며 '재상 중심 정치'를 주장했습니다. 반면, 송시열이 살았던 시대는 왕권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사대부의 권위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 송시열은 신하가 왕을 제약하는 시스템보다, **'왕의 도덕적 정통성을 사대부가 보좌하고 견제하는 구조'**를 중시했습니다.
*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 중심의 시스템은 자칫 '왕권을 찬탈했던 불온한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었기에 송시열은 이를 결코 좋게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 4. 정치적 정당성 확보 (서인 세력의 이데올로기)
당시 송시열이 이끌던 '서인' 세력은 왕실의 정통성과 성리학적 명분을 지키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았습니다.
* 정도전과 같은 **'역성혁명가(왕조를 바꾼 자)'**를 긍정하게 되면, 왕조의 근본을 흔드는 사상을 허용하는 셈이 됩니다.
* 따라서 송시열은 정도전을 '학문적·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로 박제화함으로써, 서인 세력이 지향하는 '성리학적 절대주의'와 '왕실 권위주의'의 정당성을 공고히 했습니다.
### 결과: 정도전의 복권
송시열이 이처럼 정도전을 극도로 혐오하고 깎아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은 조선 후기 **고종 때가 되어서야 완전히 복권**됩니다.
* 조선 내내 정도전은 '건국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송시열과 같은 정통 성리학자들에 의해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등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 훗날 고종이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 건국 초기의 공신들을 예우하면서, 정도전은 비로소 '조선의 설계자'로서 명예를 회복하게 됩니다.
결국 송시열에게 정도전은 **"성리학적 의리를 훼손하고 군신 간의 도리를 저버린, 조선의 이념적 토대를 위협하는 경계 대상 1호"**였던 셈입니다.
정도전과 송시열, 두 사람 중 누구의 사상이 더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