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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8:12-27절) 억울한 죄수
가끔 사랑하는 자로부터 오해를 받고 의심하며 배신당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실망하고 참 억을할 것입니다.
균형잡힌 신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5월 1일부터 *필수 과목*양육을 받아야 하는데, 여러번 초청을 해도 비 대면인 미디어 선교라서 그런지 수다떠는 것으로 취급하고 아무런 반응도 없고,
심지어 어느 팬은 *생명의 양식*이 도둑맞어도 무관심 하고, 또 가명으로 소속도 없이 의심과 편식하곤 먹튀하는 회원도 있는데. 점점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이 온전하개 성장할 수 있을까?
영적 인도자로서 책임감과 갈등과 근심이 되어 요즘 밤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13:17절)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리고 만약 죄(罪)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罪)를 지었다 해서 경찰이 찾아와서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手匣)을 채워 간다면, 굉장한 수치심을 느낄 것입니다.
전에 한 육군 대장은 공관(公館)에서 병들에게 갑 질 했다 해서 온갖 비난을 다 당하고, 국방부 감옥(監獄)에 갇히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벽에다 성경 구절을 붙여 놓으니까 마음이 좀 편해서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그는 무죄(無罪)가 되어서 지금 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조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사람들의 피 값에 대하여 누군가는 갚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억울하게 노예가 되고, 죄인 된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강간미수 혐의로 몰려서 감옥(監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심이 깨끗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을 감옥(監獄)에서 나오게 하시고, 후에 애굽의 총리(總理)가 되게 하셨습니다. 감옥(監獄)은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通路)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곧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완벽하게 변장(變裝)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적당하게 타협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뜻을 바로 밝히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죄수(罪囚)로 몰려서 재판 받는 곳까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Ⅰ.악의 예언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붙들어간 곳은 로마 군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을 체포(逮捕)하는데, 가장 주동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안나스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나스는 전직(前職)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마귀(魔鬼)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나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가장 먼저 예언(預言)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丈人)이었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 사건은 역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렸을 때였습니다. 나사로의 집이 있는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어서 예루살렘 사람들도 와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천사인지는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메시지(message)를 말씀하실 것이며, 그 말씀을 들으면, 얼마든지 살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11:45절)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 었으나”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시대(時代)와 나라를 떠나서 하나님의 메시지(message)를 우리에게 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안나스와 가야바와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가 능력을 행하면서 사람들의 세력(勢力)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우려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것을 그냥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자기들의 세력이 약화가 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이 민란(民亂)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로마인들이 군대를 끌고 와서 유대인들을 학살(虐殺)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나스와 유대 지도자들의 쓸데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 세력(勢力)을 끌어 모을 생각도 없었고, 로마에 대하여 반란(反亂)을 일으킬 생각도 전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지금이 어마어마한 축복의 시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가야바는 로마와의 관계를 굉장히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야바는 예수님에 대하여 좋지 않은 예언(預言)을 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 사람이 죄(罪)를 지었든지, 죄(罪)를 짓지 않았든지, 그가 죽으면, 로마는 유대인들을 덜 의심(疑心)하게 될 것이고, 로마와의 전쟁(戰爭)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11:49-50절)그 중에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으니”
가야바는 예수 한 사람을 죽여 버리면, 로마는 유대인들의 반역(反逆)에 대한 의심(疑心)을 풀게 될 것이고, 전쟁(戰爭)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의 사정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정치(政治)인 중에는“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핵무기를 터트리지 못하게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미군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냥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마10:29절 참조)
사람이 아무리 위협(威脅)하고, 공격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허락(許諾)을 하셔야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나, 유대 지도자들의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무모(無謀)하고, 어리석은 것 같지만,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체포(逮捕)해서 먼저 가야바의 장인(丈人) 안나스의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18:12-14절)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하나님의 아들은 아무 죄(罪)가 없었지만, 죄인(罪人)으로 결박(結縛)되어서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사람들이 너희를 죄인으로 욕하고 결박하고 끌고 갈 때, 기뻐하라* 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선지자들에게도 다 그렇게 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복음서 마20장에서 *포도원 비유*를 하셨습니다.
즉 어떤 주인이 좋은 포도원을 세를 주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질(質)이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기 위하여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주인은 할 수 없어서 아들을 보내었습니다. 주인은“내 아들은 공경하고 세를 내겠지”라고 했는데, 그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고 가서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알지 못한 것은 포도원 주인은 어마어마한 군대(軍隊)를 가진 왕(王)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악(惡)한 농부들을 진멸(盡滅)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포도원을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 포도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福音)*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나라를 자기가 차지하려고 엄청난 투쟁(鬪爭)을 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北韓)이 핵무기를 쏘지 않을까? 미군이 핵공격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말씀대로만 믿고, 그대로 살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敎會)도 서로 차지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은 로마의 비위(非違)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죽였지만, 결국 로마와 전쟁(戰爭)이 일어나서 백십만 명이 예루살렘에서 죽게 됩니다.
Ⅱ.베드로의 실패한 구출작전
베드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구출(救出)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감람산에게 유대인들에게 붙들릴 때, 칼을 빼서 한 사람(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장 우려(憂慮)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희생(犧牲)의 제물(祭物)로 바쳐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가셔서“시험이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이 세 사람이 가장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었고, 다혈질(多血質)인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 등산에게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이 세 제자는 잠만 쿨쿨 잤습니다. 그 이유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은 예루살렘에 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유대 장로들에게 붙들려서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도“절대로 그런 약(弱)한 말씀을 하시지 말라”고 하면서 반대(反對)했다가 주님께“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고 책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은 제자들이 도망을 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슥13:7절)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비겁하게 도망을 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베드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는 몰래 예수님을 뒤따라서 안나스의 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날 사탄(詐誕)이 베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맹렬(猛烈)하게 설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詐誕)은 가룟 유다 하나만, 지옥(地獄)에 데려가는 것은 수지(受支)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베드로까지 죽게 해서 지옥(地獄)으로 끌고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일단 다른 제자가 안나스 집의 하인들과 잘 아는 사이여서 베드로는 안나스의 집까지 잠입(潛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을 찾아서 함께 도망을 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門)을 지키는 여종(女宗)이 베드로를 보고“당신은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 이 여자는 확신(確信)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예수의 제자가 여기에 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면, 베드로는 잡혔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알단 자신의 신분(身分)을 감추기 위해서 이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야!*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주님을 부인(否認)한 것이었고, 닭이 첫 번째로 울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너무나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베드로는 사정을 좀 봐야 하니까 추워서 모닥불을 피운데 가서 하인들과 같이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베드로를 보고 *너도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여기에 정탐(偵探)하러 온 것이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마음이 뜨끔해지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야. 나는 예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구!*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 구출작전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얼굴이 많이 팔려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결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즉 *당신은 예수의 제자가 틀림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억양이 갈릴리 억양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사투리나 억양이 다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 또 거기서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예수님에 대하여 저주(咀呪)까지 하면서 부인(否認)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닭이 세 번째 울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을 부인(否認)한 것을 알고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痛哭)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否認)하면, 그는 정말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신앙이 없어지게 될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베드로의 신앙이 아주 위험(危險)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그동안 예수님에 대하여 고백(告白)했던 모든 신앙이 다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가 고백했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또 *영생하는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는 고백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룟 유다만큼이나, 심각한 불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이라도 챙기고, 양심(良心)의 가책으로 자살(自殺)이라도 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咀呪)하고. 세 번이나 부인(否認)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하게 통곡(痛哭)했습니다. 그는 회개(悔改)를 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베드로와 닭은 사이가 좋았을까? 나쁘게 되었을까? 일단 그 닭은 베드로에게 불신앙을 깨닫게 한 고마운 닭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천주교(天主敎) 성당 첨탑(尖塔)에 보면, 닭이 세워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수 닭은 베드로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서 통곡하게 했습니다.
민수기 22장에서 나귀는 돈에 팔려가는 발람 선지자가 천사의 칼에 맞아 죽지 않도록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련해지면, 닭이나, 나귀보다 더 못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롬13:11절)...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밤이고,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처럼 모든 사탄(詐誕) 마귀(魔鬼)가 뛰쳐나와서 설치고 있습니다. 이때 시험(試驗)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Ⅲ.안나스의 심문
드디어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審問)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罪)가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나스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일 년에 세 번 유대인의 명절 때, 들어오는 엄청난 수입(收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해서 돈줄이 막히니까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사56:17절)...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막11:17절)...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책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성전(聖殿)은 이 세상에서 실패(失敗)하고, 죄(罪)짓고, 병(病)들고,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기도하는 곳인데, 대제사장들이나 유대 지도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收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에게 *네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느냐?*고 물었습니다. 즉 안나스는 예수님이 가르친 것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단(異端)으로 정죄(定罪)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것을 다시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대제사장을 아주 경멸(輕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19-21절)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여기 대제사장은 안나스입니다. 안나스는 자기가 유대인들 중에는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예수님도 자기 명령에 복종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안나스는 예수님에게“네가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을 여기서 다시 반복해서 말하라”고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은 직책이 높은 사람들이니까 상(床)을 다시 한 번 차려달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천국 잔치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도 똑같을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오는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고, 성령이 다르게 역사하기 때문에 똑같은 말씀을 다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회당(會堂)과 성전(聖殿)에서 다 가르쳤기 때문에 더 이상 대제사장이라고 해서 줄 말씀이 없다고 하니까 옆에 서 있던 하인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후려치면서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따위 식으로 말을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會堂)과 성전(聖殿)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갈급한자는 예수님에게 와서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뱃속에서부터 솟아나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永生)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말씀을 들은 자에게 물어보라*는 것은 진실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이라는 교만(驕慢)을 버리고, 먼저 말씀을 들은 자에게 배우려고 하는 겸손한 자세만 있으면, 생명(生命)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나스는 그렇게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죽어야 로마와 전쟁(戰爭)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대제사장 가야바가 아무리 예수님의 죄(罪)를 입증(立證)하려고, 거짓 증인들을 불러 모아도 말이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서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 고 하시면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니까 가야바는 자기 옷을 찢으면서 *우리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죽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진짜 메시야(essiah)이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안나스와 가야바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권력(勸力)과 돈에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예수를 죽여서 자신들의 권력과 돈을 유지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을 신성 모독 죄를 지었었다 해서 죽이도록 넘겼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들만 망한 것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로마와 전쟁(戰爭)을 해서 공적(公的)으로 예루살렘에서만 110만 명이 죽습니다.
*그 피를 우리 후손에게 돌리라*고 했는데, 이차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잔치는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회(機會)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 잔치에 모두 참여해서 충만(充滿)한 은혜(恩惠)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336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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