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도서관
은퇴 후, 나는 국립도서관이 있는 세종시에 정착했다.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산책 삼아 걸어도 삼 십 분이면 올 수 있는 곳에 이렇게 웅장한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바라보니 책을 펼친 모양의 도서관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반기는 것 같다. 회전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섰다. 우중이라서인지 입구에서부터 희미하게 맡아지는 퀴퀴한 책 내음에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학교에 도서관이 생겼다. 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선배가 모교에 기증한 것이다. 도서관 내부는 교실 세 개 정도의 크기로 규모가 상당했다. 내부에는 책이 꽉 들어찬 서고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교과서 외에는 책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 나에게 너무나 황홀한 정경이었다. 한동안 나는 밤마다 책들이 내 품에 안기는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외가에서 살았다. 외가에서 외조부모와 함께 살던 부모님이 다섯 살 무렵 같은 마을에 분가했고 나는 외가에 남겨졌다.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극진했지만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친가와 외가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맘을 붙이지 못하고 떠돌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3학년부터 시작된 학급 임원진 선거가 원인이었다. 우리 반 여학생 중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친구가 있었다. 달리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는데 특히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친구였다. 나와 친해진 그 친구는 4학년 임원 선거 전에 자기가 꼭 부반장을 하고 싶다면서 나에게 부반장 선거에 나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보 지명은 친구들이 했고 그걸 마다할 핑계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그 친구는 토라져서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여자 친구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몇 명씩 모여 도시락을 먹었는데 아무도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음 둘 곳이 없어지자 나는 더욱 도서관에 파묻혀 지냈다. 역사와 과학도 도서관의 책을 통해 친해지고, 위인전과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멋진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헬렌 켈러’이야기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처음에는 헬렌에게 몰입했다가 차츰 그녀에게 눈과 귀를 열어준‘설리반’선생님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나도 커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해준 인물이었다. 나는 책의 힘으로 점점 단단하게 내면을 다져갔다. 독서에도 가속도가 붙어 6학년이 되자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늘 다음에 읽을 책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한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내 삶은 직장인이면서 며느리와 아내 그리고 엄마의 역할로만 촘촘하게 엮어졌다. 책을 멀리 두고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흘러,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무사히 대학교에 합격해 집을 떠나갔다.
어느 날 퇴근해서 혼자 밥을 먹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처음에는 매주 집에 오던 아이들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원하던 승진을 한 남편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올 것이다. 몇 수저 뜨다 만 저녁상을 치우고 아이들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만큼이나 아이들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휘청거렸다. 조금이라도 더 평수를 늘리고 싶어 했던 아파트였는데 이제 그 텅 비어버린 공간이 나를 더 외롭게 하는 데 가세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했다. 노안과 함께 황반변성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의사는 심해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 잘 관찰하고 치료해야 한다며 겁을 주었다. 2.0을 유지하던 시력이 갑자기 0.5까지 떨어지고,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되자 나는 더욱 의기소침해 졌다.
주말마다 백화점을 누비면서 아직 쓸만한 소파를 바꾸고 비싼 옷을 사 입어도 며칠 지나면 시들해졌다. 하고 싶은 일도 사고 싶은 물건도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다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느 토요일 오후, 백화점의 유리 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입은 옷과 가방은 번쩍번쩍하는데 봄 가뭄에 시든 들꽃 같은 표정을 하고 한 여자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낯선 여자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그대로 백화점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찬 바람이 불고, 누렇게 탈색된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져 보도에 쌓였다.
그날 내 발걸음이 데려간 도서관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점자책을 만든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책을 문서로 만들어줄 워드 작업 봉사자를 모집한다고 했다. 나는 오래 잊고 있던 ‘헬렌 켈러’의‘설리반’선생님과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도서관 사무실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점자로 만들기로 선정된 책들을 파일로 작업해 넘기는 1차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띄어쓰기와 약속된 부호를 잘 표시해야 뒤에 넘겨받은 사람이 점자책을 실수 없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책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은 듯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 후 삼 년 동안 주말과 퇴근 후에 꾸준히 자판을 두드려 오십 권이 넘는 책을 문서로 만들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작업하다 보니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뻐근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로지 손끝으로 점자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시각 장애인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는 내가 작업한 동화책을 점자로 읽어 아기에게 들려주려는 엄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운이 났다.
다시 책과 친해지면서 잠시 기우뚱했던 내 마음도 균형을 이루었다. 작업하면서 손과 눈으로 동시에 책을 읽으니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른 봉사자들이 기피 하는 어려운 철학책과 문학평론 등을 작업하면서 의식의 폭을 확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워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눈을 감고 손끝에 마음을 집중해 자판을 더듬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한 권의 책을 파일로 완성할 때마다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어느 시각 장애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면, 그래서 깜깜한 허공에 반짝이는 별처럼 그의 고단한 삶에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왼쪽 눈의 황반변성은 진행되지 않고 처음 발견한 그대로 멈추어 주었다. 평생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신간을 사볼 수 있는 여력도 생겼다. 나는 이따금 서점에 가서 새 책의 휘발유 냄새도 맡아보고, 눈길을 끄는 표지나 제목을 보고 책을 사기도 한다. 그렇지만 새 옷보다 오랫동안 내 몸을 감싸주었던 낡은 옷에 더 손이 가는 것처럼,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만큼 정다운 느낌은 덜한 것 같다. 낡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선 눈을 감고 나보다 먼저 읽은 사람들의 호흡을 손끝으로 느껴본다. 점자책 작업할 때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을 되풀이해 읽으며, 작가와 먼저 읽은 사람들과 함께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빌린 책을 받아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 외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호수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펼쳐 들었다. 나무 그늘이 햇볕을 막아주고 마침 산들바람이 분다. 책 읽기에 썩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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