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조재형 신부
복음;마르 6,7-13 <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7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10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 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11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 하라고 선포하였다. 13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예전에는 천동설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 것을 매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별의 ‘연주 시차’와 금성의 모양 변화가 그것이었습니다. 별의 연주 시차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운동하기 때문에 별을 바라보았을 때, 별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바뀌어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지구가 천동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면 연주 시차가 나타날 리가 없기 때문에 천동설로는 연주 시차를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금성을 관측하면 달처럼 다양한 모양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천동설에 의하면 금성은 초승달 또는 그믐달 모양으로만 보여야 했기 때문에 금성의 위상 변화 역시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지구는 1시간에 약 1,670km의 속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자전)하면서, 태양을 둘러싼 대략 9억 6천 만km에 달하는 타원 궤도를 1년 동안 돌고(공전) 있습니다. 지구의 운동으로 생기는 현상 중 대표적인 것은 일주 운동과 계절 변화인데 일주 운동은 지구의 자전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며,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성이며, 태양은 우리은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항성이며, 우리은하는 우주의 변방에서 우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의 꿈을 확장시켰습니다. 우리는 달을 탐사하였고, 화성까지 탐사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천동설과 지동설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 성당의 중심은 아닙니다. 댈러스 한인 성당은 중남부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성당은 포트워스 한인 성당입니다. 그리고 대략 4시간 거리에 오스틴, 휴스턴, 샌 안토니오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10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엘파소, 덴버, 콜로라도 성당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가기에는 먼 거리에 피닉스, 라스베이거스 성당이 있습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사제들이 함께 모여서 연대하는 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중남부 지역 대표 신부님과 휴스턴, 오스틴, 샌 안토니오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꾸르실료 담당 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레지오, 엠이, 성령기도회도 담당신부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4시간 거리에 있는 성당이라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피정도 함께 하면 좋겠고, 성령기도회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사명감’을 이야기합니다. 사명감은 목적지와 같습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비록 힘들어도, 고난이 닥쳐도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내딛습니다. 1시간만 더 걸으면 시원한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참을 수 있습니다. 곧 더위와 갈증을 피할 수 있는 물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아모스는 그저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모스는 가축을 키우는 목자의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빵도, 전대의 돈도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은 신지만 옷도 두벌은 입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성공, 명예,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박해와 고난이 있었고, 목숨을 바쳤지만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포기한 것이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포기도, 선택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댈러스 겅 김대건 안드레아성당/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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