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복음
세월이 참으로 빠름을 느낍니다. 금년도도 후반기에 들어서더니 벌써 한 달에 지나고 8월을 맞이하였습니다. 결산이 다가옴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전도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16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몇 가지 중요한 것이 있음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복음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이루는 희소식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는 십자가의 도리가 그에게는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죄인이 매어 달린 십자가를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상 부끄러워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과거에 부끄러워했어야 할 것은 자랑했고 자랑했어야 할 것은 부끄러워했습니다. 그 후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힌 이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자신을 밝히기에 열중했습니다. 딤후 1:12에 보면 그는 말하기를“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안 것은 그의 행위는 항상 원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인의 괴수’라고 스스로 고백했고,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헌신한 나머지“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빌 3:17)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심지어 감옥이나 왕 앞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민은 노예나 반역자가 믿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했고, 희랍의 철학 도는 십자가의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소위 현명하다는 이들은 십자가의 외침을 고의적으로 거절했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불신을 알면서도“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민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나는 과연 복음을 부끄러워하는지,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하도록 자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바울처럼 담대히 전하는 후반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