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묵상해본다....
말은 사람이 생각이나 감정을 입을 통해 소리로나타내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재료이다. 우리는 통상 "그게 말이 돼?"하고 의미 없는 공허한말, 믿지 못하는 참이 아닌 거짓이 속에 들어 있는 것에 의구심을 나타낼때 사용한다. 말인즉, 사람의 말에는 참말과 거짓말이 있다는 것이다. 참말은 말이 되고 거짓말은 말이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거짓말에 속고 또 속는다. 거짓말은 항상 먼저 오고 참말(진실어린 말)은 나중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급하면 게을러진다. 부지런함의 반대말은 조급함이다. 부지런함은 인내를 동반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영향력을 평가한다. 따라서 부지런함으로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다.
한편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소위 선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어뗳게 구분할까? 쉽지 않다. 거짓말을 구분하는 핵심을 나는 그가 하는 거짓말을 통해 tkae advantage 하며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그런 자들은 천국에 못들어 간다고 성경은 계시록에 말씀하고 있다. 탐심이란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다르게 성경에서는 취급하고 있다. 기생 라합의 예가 그렇다. 정탐군을 살려주고 거짓으로 그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는 것은 거짓말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갔다.
또 다른 한편에서 어르신들이 하는 말은 우리는 말씀이라고 한다. 그 어르신의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존칭의미로 말씀이라 한다. 그 말속에는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란 곧 진실을 포함한 말을 높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란 단어는 그런 차원을 넘는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곧 참 진리의 말씀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 말씀이신 것이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비밀이 있다.
세상에는 훌륭한 말씀들이 많다. 하지만 그안에 생명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하나님은 공기를 불어 넣은 것이 아니다.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즉 살리는 말씀을 불어 넣으셨다. 즉 아담은 살리는 말씀이 그속에 들어와 지속적으로 호흡하며 살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살리는 말씀이 있으면 죽이는 말도 있는 것이다.
말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은 영이다. 영의 기능 중에 하나가 생각의 흐름을 인지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 영은 밖에서 받아 들일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살리는 말씀이요 사탄의 말은 죽이는 말이다. 예수의 영을 받으면 주님의 말씀이 나가고 사탄의 영을 받으면 마귀의 말이 나간다. 살리는 말씀과 죽이는 말이 우리 입을 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우리 안에는 살리는 말씀이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다스리시면 살리는 말씀이 성령을 통해 나간다. 하나님께 말씀이란 끈이 연결되어 있지 못하면 번지점프에 줄없이 떨어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말씀들이 있다. 그것을 요약하면 무엇이 될까? 어떤이는 요3:16절이 전체 성경의 주제라 요약한다. 말씀은 축약될 수 있는 것이다. 비유로도 역사로도 여러가지 말씀은 표현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말씀은 하나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이름이리거 본다. 이름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예수라는 이름은 특별하다. 성경전체 말씀을 요약하면 "예수"란 이름으로 귀결된다.예수란 이름의 뜻은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자란 뜻이다. 그런데 이 예수란 이름이 마리아의 몸에서 나온 아기와 결합된 것이다. 우리는 이름과 자기자신을 분리시킬 수없다. 그 이름이 곧 나인 것이다. 예수란 이름이 한 사람과 결합하여 그 이름으로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다. 삼위일체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 육체는 우리와 동일한 육체이나 이름이 다르다.
모로코 땅에 살면서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항상 묵상해왔다. 비밀은 그 이름에 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에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요17: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인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녀의 몸을 통해 나오신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의 이름이 결합되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안에 존재하실수 있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그분들 안에 거할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살리는 말씀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평안한 주일 오후다. <2024.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