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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마가복음 9장 14-29절]
얼마 전 어느 권사님께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리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30대가 될 때까지 사셨다고 해요.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귀 안쪽을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고막이 이상하네요.
반쪽 밖에 없어요.
오래전에 다치신 것 같아요.”
권사님은 깜짝 놀라셨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도대체 언제 그런 건지 생각해 보셨다고 해요.
권사님께서 8살, 9살 때쯤
집 앞에서 놀고 있었어요.
동생들이 줄넘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주변에 있는 줄을 잘라서 줬다고 해요.
그런데 그 줄이 공사장에서
줄자 대신 쓰는 거였답니다.
그걸 모르고 잘 놀고 있었는데
공사하시는 아저씨가 오더니
누가 그랬냐며 따졌다고 해요.
권사님께서는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자신이 했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뺨을 때리더랍니다.
귓속이 윙 거리며 얼마나 아팠던지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혹시라도 가족들에게 알리면
괜히 더 신경 쓸까 봐 그러지 못하셨답니다.
그날 이후 귀가 잘 안 들려서
공부도 집중할 수 없었고,
사람들의 말도 못 알아들었다고 해요.
어떤 경우엔 주변에서
“너는 왜 이렇게 행동이 굼뜨냐?”며
나무라기도 했데요.
권사님은 다른 사람도
자기와 똑같이 듣고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해도
변명하지 못하셨다고 해요.
권사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데
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여러분,
만약 우리가 귀가 안 들린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말을 못 한다면 어떨까요?
답답하죠.
너무 힘들 겁니다.
그런데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한다면요?
오늘 본문에 한 남자아이가 등장합니다.
몇 살인지 정확하게 나오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아이가 아프면 부모의 심정은 더 아프죠.
그의 아버지는 날마다 괴로움 속에
신음하며 살았을 거예요.
자식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녔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도
그의 병을 고칠 수 없었어요.
제대로 듣지 못해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아들을 보며
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대신 아프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에게 찾아갔던 병자들은
모두 나았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는 지체하지 않았어요.
그날로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갔어요.
드디어 이 아이가 나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예수님이 계시다는 곳에 가보니
제자들만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셨다고 해요.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어요.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려 갑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제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
귀신에 들려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아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거에요.
그러니 예수님이 아닌
그 제자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했던 겁니다.
제자들은 당황했어요.
처음엔 거절했을 겁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남자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귀신을 내쫓기로 하죠.
“정 그렇다면, 해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남자는 기대에 차서
감사하다고 소리쳤어요.
제자들은 온 힘을 다해 귀신을 내쫓았어요.
그러나 아이의 상태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어요.
“들려? 안들려? 아빠 해봐. 아빠?”
사람들은 점점 기대를 내려 놓기 시작했어요.
웅성거리는 사이로 서기관들이 말합니다.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예수가 했던 건 다 쑈라니까!
뻥이라고!”
그렇게 제자들과 서기관들은
서로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등장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죠.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우리 함께 19절을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이 없는 세대’는
헬라어로 ‘아피스토스’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약한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보실 때
지금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믿음이 약해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상황’이었죠.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모든 걸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마가복음 6장에 따르면
제자들은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심지어 많은 귀신을 내쫓았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우리 함께 마가복음 6장 12-13절을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6:12, 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얼마 전까지 해오던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말 못하는 귀신 하나도
내쫓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믿음이 고갈된 상태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믿음이 고갈되었다는 것은
얼마 전까진 믿음이 있었다는 걸 의미하죠.
그들에게 언제 믿음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곁에 계셨을 때입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보였을 땐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점점 두려워했습니다.
저희 둘째 아들은 화장실을 갈 때
늘 말하고 갑니다.
“아빠 저 화장실 가요.”
같이 가자는 신호지요.
가면 제가 할 일은
먼저 변기에 앉혀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려요.
그러면 제 눈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요.
“저는 아빠랑 있어서 너~무 좋아요.
아빠가 최고예요.
아빠 사랑해요.”
너무 귀엽죠.
그런데 어느 날은 저보고 나가라는 거예요.
자기도 형처럼 혼자 일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무섭지 않냐고 하자
자기는 용감하다며 가라는 겁니다.
저는 몇 번 더 물어보고
변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알겠다고 나갔어요.
조금 뒤에 화장실에서 아들이 저를 부릅니다.
“아빠~ 아빠!”
일부러 조용히 있어 봤어요.
그랬더니 아까보다 더 급박하게 저를 찾아요.
“아빠! 아빠! 아!! 빠!!”
조금 조용해져서 가봤더니
아들이 울고 있는 거예요.
그리곤 저에게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왜 안 와요. 아빠가 없어진 줄 알았어요.
사실 저는 용기가 없어요.”
제 아들은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자
용기를 잃었어요.
혼자 있다고 느껴지자
두려움이 엄습했던 거죠.
아빠가 안 보이니까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들을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저는 그 아이 곁에 있었어요.
제자들은 이걸 몰랐어요.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니까
믿음이 고갈되어 버렸어요.
그들은 눈으로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이 시편 139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139:9,10,18b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마태복음 가장 마지막 구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언제까지요?
세상 끝날까지.
그러므로 약속을 믿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된 걸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이렇게 부탁한 것도 들으셨죠.
우리 22절을 읽어볼까요?
마가복음 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처음에 아이의 아버지에겐 믿음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치유해주실 것을 믿었죠.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걸 보자
실망했던 겁니다.
우리도 교회를 다니다 보면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죠.
이번 시험에는 꼭 합격시켜 주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원하는 회사에 입사가 안 될 때,
승진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물질의 복을 구했는데
오히려 돈이 나갈 곳이 생겼을 때
그러면 우리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할 수 있으면 해 주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올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 예수 믿게 해주세요.’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더래요.
돈은 잘 벌어주는데,
매일 늦은 밤까지 술을 먹고 들어오니
너무 힘들더랍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서
속병이 들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다고 대화를 안 하지,
그렇다고 이 사실을 교회에 이야기할 순 없지.
왜냐하면 이 남자가 교회 집사였거든요.
아내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운 거예요.
반면에 남편은 아내의 상태를 몰랐어요.
돈만 잘 벌어주면 되는 줄 알았고,
평소엔 너무 착해서
좋은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2시까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내가 곤히 자고 있더랍니다.
그날따라 그녀의 머리맡에 있던 노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그 노트를 봤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수유리로 너머로 갔다.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오늘도 죽음을 생각했다.
약을 먹고 죽을까?
아니면 손목을 그어 죽을까?
그러나 그것이 내가 취할 길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되돌아 왔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위해 내게 주신 남편이니
나는 사랑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사랑하라 명하시므로
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주님 도와주세요.
나의 약함을 주님께서 잘 아시잖아요.’
이 글을 읽고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가수 이승윤의 아버지
이재철 목사님이십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고자 애를 씁니다.
바뀌지 않는 상황만 보라고 하죠.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함께 오늘 본문 23절을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우리의 믿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이 말씀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아이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예수님, 우리는 왜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기적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함께 본문 29절을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적의 비법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했던 이유는
믿음의 고갈이었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기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외에는 우리에게 비법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믿음은 고갈됩니다.
반대로 고갈된 믿음이 채워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바늘과 실처럼 기도와 믿음도 함께 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주 기도하고
오래 기도합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자녀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대화가 많다는 겁니다.
서로 말을 많이 주고 받을수록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더 깊은 신뢰관계를 갖게 됩니다.
믿음이 생기는 거죠.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쉬지 말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기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께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께서 기도하라는
감동을 주시더랍니다.
너무 강하게 감동을 주시니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기도 소리가 커지더니
나중에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자기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더랍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왔습니다.
평소처럼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는데
아내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해요.
남편이 겪은 일은 이랬습니다.
건설사 아파트를 짓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24층 지붕에서 작업이 있었답니다.
약간 경사가 진 곳이라
평소보다 더 조심했답니다.
그런데 바닥에 있던 모래 때문에
발이 미끌어진 겁니다.
옆에 있던 시멘트 통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통도 같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으악!”소리와 함께
24층 아래로 떨어지려는 찰나,
갑자가 누군가가 남편의 뒤를 잡았답니다.
그리곤 뒤로 확 끌어 당기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봤는데
지붕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아내는 깜짝 놀라며
사고 시각을 물었습니다.
정확히 자신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기도하던
그 시간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저의 부모님의 이야기죠.
몇 달 전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 믿음이 없을 때가 많잖아요.
어떤 경우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셔?
기적이 일어나긴 해?’라며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세요.
기도할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 한 사람이 기도하면 내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살고,
우리 교회가 살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