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上香, 향 피우기)과 경주(敬酒, 술 올리기)는 마방들이 먼 길을 떠나기 전 행하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의례였다. 상향(上香)은 향 세 자루를 피워 토지묘 앞이나 감실 입구에 꽂았다. 불교나 도교, 그리고 나시족의 동바 신앙이 융합된 형태이다. 헌주(獻酒) 및 소지(燒紙)는 작은 잔에 술을 따라 토지묘 앞 땅에 뿌리며(고수레와 유사한 방식) 땅의 신에게 바치고, 종이 돈(지전)을 태워 무사 안녕을 빌었다.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신성(神性)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누미노제(Numinosum)'라고 불렀는데, 이는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한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두려움(Mysterium Tremendum)으로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느끼는 전율과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매혹적인 이끌림(Mysterium Fascinans)으로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외이다.
첫댓글 나시족 등 소수민족이 길가에 조성해 둔 작은 사당은 토지신이나 산신을 모시는 토지묘나 제단이다.
구조물 정면 아래쪽에 향(香)을 피워 올린 막대기와 재, 그리고 향로 대용으로 꽂아둔 흔적이 명확히 남아 있다.
판석과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상부에 커다란 덮개돌을 얹은 모습은, 윈난성 일대의 전통 석실묘(石室墓) 형태나 길가의 산신·토지신 제단(土地廟)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차마고도 길목에 이런 제단이나 무덤이 위치한 이유는, 과거 길을 오가던 마방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안전한 통행과 복을 빌기 위해 향을 피우거나(매향), 조상과 마을 영령을 모시는 장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향을 피우는 작은 입구와 덮개돌 형태를 볼 때, 마을 주민들이 향을 피우며 길의 안녕을 빌던 소형 제단(토지묘) 또는 전통 석묘이다. 차마고도 길가에서 이 지역 사람들의 오래된 민속 신앙 흔적이다!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들은 험준한 호도협 절벽길을 지나기 전, 길가에 마련된 이러한 작은 사당(토지묘)에 향을 피우며 "무사히 협곡을 건너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정면에 향을 피워 꽂아둔 흔적(향개비)을 보면, 옛 마방들이 해오던 신앙적 행위가 오늘날 마을 주민들이나 길을 오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파른 호도협 절벽길에서는 낙석이나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 마방들이 적지 않았다.
연고가 없는 마방이 사망하면 동료들이나 길가의 마을 사람들이 길옆에 돌을 쌓아 돌무덤(석실묘)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 작은 돌 구조물은 험난한 옛길을 오가며 생존과 무사를 빌었던 마방들의 땀과 기도가 서려 있는 차마고도의 소중한 민속 역사적 현장이다.
5,000m급 설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희박한 공기 속에서, 입에서 단내가 나고 말의 다리가 덜덜 떨릴 때까지 채찍질을 하며 28번을 꺾어 올라가야 했던 지옥 같은 오르막이었다.
길가에 정성스레 돌을 쌓아 토지묘(土地庙)를 만들고 향을 피우며 "오늘도 무사히 이 고개를 넘게 해달라"고 빌던 마방들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그 길고 험난한 차마고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차마고도 길목의 토지묘(土地庙)는 오늘날에도 소수민족 마을 주민들과 길을 오가는 이들에 의해 그 의례적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상향(上香, 향 피우기)과 경주(敬酒, 술 올리기)는
마방들이 먼 길을 떠나기 전 행하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의례였다.
상향(上香)은 향 세 자루를 피워 토지묘 앞이나 감실 입구에 꽂았다. 불교나 도교, 그리고 나시족의 동바 신앙이 융합된 형태이다.
헌주(獻酒) 및 소지(燒紙)는 작은 잔에 술을 따라 토지묘 앞 땅에 뿌리며(고수레와 유사한 방식) 땅의 신에게 바치고, 종이 돈(지전)을 태워 무사 안녕을 빌었다.
기복(祈福)과 제마(祭馬, 말과 가축을 위한 기도)는
험준한 절벽길에서 사람뿐만 아니라 말의 생명도 곧 마방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었기에 가축의 안녕을 비는 특유의 의례였다.
마방들은 토지묘를 지날 때 자신이 쓰던 말채찍이나 말방울을 토지묘 제단에 살짝 대었다가 가져가며, 말이 길에서 실족하거나 병들지 않기를 빌었다.
말이 기력을 얻고 무사히 고개를 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소금 한 뼘이나 곡식 알갱이를 제단에 조금 올리고 떠나곤 했다.
출향(出鄕) 및 환향(還鄕) 제례는
마을 주민들과 마방 조직이 정기적으로 행하던 공동체 의례였다.
장거리 먼길(티베트 라사나 중원 방면)을 떠나는 날 아침, 마을 어귀나 첫 고갯길에 위치한 토지묘에 마을 사람들과 마방 가족들이 함께 모여 닭을 잡거나 음식상을 차려놓고 무사 귀환을 빌었다.
몇 달, 혹은 1년 만에 무사히 물자를 싣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 어귀 토지묘에 가장 먼저 들러 무사히 돌아오게 해 준 땅과 산의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오늘날에도 호도협 트레킹 코스 주변의 현지 나시족 주민들은 명절(음력 설, 샌두절 등)이나 개인적인 큰일을 앞두고 산길의 토지묘를 찾아 향을 피우며, 트레커들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들도 안전을 기원하며 향을 꽂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모시고 제단을 쌓는 근본적인 원형(원형적 심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독한 자연의 위엄 앞에서의 두려움'과 '생존을 향한 간절한 기원'에서 출발한다.
차마고도의 험준한 절벽, 호도협의 미친 듯한 강물, 28굽이길의 낙석과 추락 위험은 마방의 능력이나 의지만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조심해도 돌 하나만 잘못 떨어지면 목숨을 잃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길과 땅에도 주인이 있다'고 믿으며 토지신(土地神)에게 제단을 바쳤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라기보다, 거대한 자연 앞에 겸손해짐으로써 불안을 달래고 무사 통행을 염원하는 생존 기원이었다.
일본에 800만이나 되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게 된 결정적 배경은 지진, 지남(거대 파도), 화산 폭발, 태풍이 끊이지 않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 자연은 언제든 파괴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파괴적인 자연 현상 그 자체를 '성난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 신을 달래고자(鎭魂) 했다.
자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에 산, 바다, 바람, 나무, 심지어 집안의 문이나 화장실에까지 신이 있다고 믿으며 매일 평안을 빌었던 것이다.
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신성(神性)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누미노제(Numinosum)'라고 불렀는데, 이는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한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두려움(Mysterium Tremendum)으로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느끼는 전율과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매혹적인 이끌림(Mysterium Fascinans)으로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외이다.
차마고도에서 만난 자그마한 돌 제단(토지묘)이나, 일본의 방방곡곡에 세워진 수많은 토속 사당(신사) 모두 "인간은 결코 자연 위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한 인류가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건넨 가장 겸손한 인사이자 고백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