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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그럼...옥체 강건히 계십시요.."
"귀비마마나 조심하시지요.황상이 애태우지않도록.."
자소선사는 웃으며 타이르듯 말했지만 그녀는 살짝 얼굴은 붉혔다 .
하지만 선방을 나서자 상궁은 그녀에게 검은 비단으로 만든 멱리를 씌웠다.
"연상궁..가마를 타고 가는데 유멱을 꼭 써야하나?답답하단말야."
"궁의 법도입니다.본래 궁의 호위병들에게도 마마의 얼굴을 보이면 안됩니다.그만 가마에 오르시지요."
그녀는 너울자락을 잡아당기며 미간을 찌푸렸다.밀폐된 가마안에 앉아있으면 좁고 답답해서 차라리 마차가 낫지..말이라도 타고달리면 답답하지나 않지....
문득 가마의 창밖으로 시장의 노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마에서 내리겠어.잠시 시장 좀 둘러볼께."그녀는 가마곁에 따르던 상궁에게 속삭였다.
"안됩니다.황상께서 마마는 황궁을 오갈 때 저잣거리에서 지체하시면 안된다고 명하셨습니다."
"뭐?" 그녀는 의아해 물었다.
"혹 시장의 시정잡배들이 마마를 노릴지 모른다고..시장구경은 참으시지요.필요한 물건은 황궁에서도 사올수 있으니.."
"잠시면 돼."
"황상께서 아시면 노여워하실거에요.소란없이 지체말고 궁으로 돌아가셔야합니다.."
"가마꾼들이 몇시간동안 줄곧 쉬지않고 걷기는 힘들건데.."
"하지만 가마꾼들이 잠시 쉬어야하니 주막곁에서 쉬겠습니다."
그녀는 가마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차림으로는 멀리까지가기는 고사하고 시장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도 무리야...금방 눈에 띌테니..,
조심스레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그녀는 생각했다.
눈이 오는군..
가마에서 내려 걷는다해도 십여명의 병사들과 네명의 시녀들이 동행하니 어디가든 이내 눈에 띄이고 말것이다.
"하지만 주점에서 차는 한잔 할수있겠지요."
상궁은 그녀를 부축해 가마에서 내리도록 도와주었다.주점에서는 여인네들이 자신들끼리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ㅡ시장동쪽의 비단집은 색깔은 고운데 값이 두배야.ㅡ
ㅡ북쪽의 자수집은 수는 좋은데 너무 비싸지요.ㅡ
ㅡ중앙광장의 과자집이 값이 좀 내렸더군요.ㅡ
ㅡ요즘은 사대부여인네들도 머리를 보석이나 비녀로 머리장식하기보다 황궁에서처럼 수놓은 비단끈으로 머리를 높게 묶는 게 유행이랍니다.ㅡ
ㅡ말탈때 날리면 선녀같다지만..말을 못타는 부녀자들은 어울릴까요?ㅡ
응?그건 내가 좋아하는 머리모양방식인데?황궁에서 궁녀들이 따라하더니 궁밖에도 퍼졌나?
목을 축이고 난 무렵이었다.
"해지기전에 도착하셔야합니다.자아.그만 궁으로.."
.그녀의 가마를 호위하는 병사가 귓가에 속삭였다.
"마마..한기가 느껴지시나요?"
시녀가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자 전신이 펄럭이는 두터운 모피에 감싸였다.
"그만 궁으로 출발하세나."
가마를 맨 호위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으나 가마속의 그녀는 답답해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의 가마는 그가 하사한 황실가마였다.크지는 않았지만 일반비빈들이 쓰는 것보다 더 호화스럽게 장식을 해서 비단휘장을 늘이고 자작나무로 조각해 짜맞춘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었다.하지만 그녀에게는 이 가마가 자신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족쇄였다.
한동안 처소밖으로 나갈때마다 궁안에서도 번잡하게 가마로만 움직여야할때도 있었다.말썽을 부린뒤 땅을 밟지않게 한다는 벌이 그런 의미였다는 걸 깨닫자 그에게 사흘동안 울고 졸라서 겨우 일주일만에 해제받았다.성격이 활달한 그녀는 황실사찰의 법회나 제례를 위한 모임이나 문안갈때조차 가마를 타라는 건 감시인들과 항상 동행하게하는 고역이었다.말에서 내리자마자 혹은 태후전이나 선사의 전각밖으로 나오자마자 억지로 가마에 밀어넣어져 처소로 실려오고. ..
궁밖으로 나올때마다 일경이 넘도록 가마안에서 꼼짝못하고..내가 무슨 물건인가..출궁할때마다 십여명의 호위병들이 따라붙어 무슨 죄수를 호송하는 것같다.그는 그녀를 호위병들없이는 궁밖에 내보내주지않았다.금표를 제시하고 여염집처자같이 궁밖에 평복하고 나온다해도 소관자와 시위들서넛이 따라왔다.궁안에서는 상궁들에게 내내 감시당하고....
"내명부의 누구신가?태후마마나 황후마마는 아닌것같은데.."
"귀비마마십니다.황명으로 동도사에서 예불하고 돌아오시는 길입니다."
그녀는 주렴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수비대장이 급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마지막으로 통과해야하는 내궁의 문은 수속이 깐깐하다.가마가 들어올때 황궁의 뒷문에서 신원을 확인하는것도 시간이 걸렸다.하물며 출궁하는 건 더 까다롭다.후원의 뒷문을 통과해지나가도 근위병이 지키는 일곱개의 문을 금패를 보여 확인하며 거쳐야하니..황후도 아닌데 비빈이랍시고 열두새장같은 내궁에서 갇혀살아야하는 족쇄는 더하다.황궁은 들어가는것보다 나오는게 더 힘들다고 죽어야나올수있다는 말이 이유없이 생긴게 아니구나..총애를 받아도 그의 명이 없이는 궁밖에 나가지도 못했다.아니 총애를 받기때문에 그녀를 옭아매는 법도가 더 엄중했다.
"마마..내리시지요.도착했나이다."
이건 과보호야..호위병들과 상궁에게 내내 날 수행하게 하니. ..종일 감시하듯하잖아..그녀는 이마를 찡그리며 가마에서 일어서자 호위병이 그녀를 부축해 내렸다.처소앞의 정문에 마중나온 상궁들과 시녀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황상께서 저녁에 평안궁으로 오시겠답니다.."
궁중의 옷들은 소례복인데도 혼자 치장하기도 힘들어 시녀들 두세명이 도와주어야했다.겹겹의 속치마와 머리장식이 무겁고 불편했지만 지위와 신분상 법도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녀들이 그녀의 겉옷를 벗기자 유모가 손짓으로 시녀들을 내보내고 그녀의 속옷끈들을 풀었다.대리석을 깎은 듯한 가냘픈 몸이 드러나자 유모는 그녀를 애처로운 듯 바라보며 직접 그녀의 몸을 씻기고 욕조옆에서 머리를 감겨주었다.
남이 씻겨주는데 익숙치않아 좋아하지않지만 허리아래로 늘어진 검은 머리만큼은 혼자 감기곤란했다
그가 한올도 자르지못하게 성화를 부리는 탓에...
유모는 그녀를 넓은수건으로 감싸 몸의 물기가 마른뒤 직접 향유를 발라주었다.
상쾌하네...
"어쩌면 피부가 이리 고운지.."
상궁은 옷을 입혀주며 감탄했지만 그녀는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자..약드시지요.절에서 고뿔걸리셨다면서요?"
"탕약까지 필요없어.."
'"황상의 명입니다.폐하의 성의를 생각하셔야지요.."
보모상궁은 그녀에게 거의 억지로 탕약을 먹이고 물러갔다.
모두 어린애다루듯하네..
상궁들은 그녀의 일과부터 옷가지,보석장신구,치장, 음식까지 모두 나누어 모든걸 관리했지만 유모는 어의의 진찰과 탕약을 챙길뿐 아니라 몸시중도 직접했다
침방에서는 거의 매일 그녀의 새옷을 지어보내고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선물들을 보내왔다.대부분 보석들이나 장신구였지만 진귀한 과일이나 향료같은것이 올때도 있었다.
신발과 모자나 부채까지 문안을 나갈때마다 매일 새것으로 바뀌었다.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도 아닌데다 엄중한 구속이라는 비싼 댓가가 따랐다.
그녀에게는 궁밖은 물론 처소밖에는 혼자 나가돌아다니는 외출이 허락되지않는데다 상궁들과 시녀들뿐 아니라 유모나 측근들 모두 자신에게 온갖 간섭을 하며 금지옥엽같은 아이를 키우듯했으므로 그녀는 늘 불만스러웠지만 부끄럽게도 여겼다.
유모는 그중에서도 그녀를 품안의 자신의 유아같이 대했으므로 그보다 더 어린애다루듯했다.
안됩니다..말밖에 못하는것같은 시위병의 호위대장이더라도 그녀를 얼마나 끔찍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더없이 과묵해서 말붙이기도 힘들다..
요람속에 젖먹이대하듯하는 유모와 달리 정중하지만 엄히 다루어야하는, 말안듣는 아이취급하는 상궁들에게는 그녀는 불평조차 못했다.궁중의 늙은 상궁들은 기가세고 완고해서 그녀같은 나이어린 비빈은 손안에 휘어잡고도 남았다.항상 황궁의 법도와 규율,귀비이라는 신분으로 그녀를 압박했으므로 숨이 막힐 듯 했다.그녀는 틈만 나면 잔꾀를 부렸지만 여러번 골탕을 먹은 상궁들은 그녀를 더 엄격히 대했다.젊은 황제가 말썽많은 육촌누이때문에 유모와 상궁들을 이잡듯이 들볶는다는 건 소문난 일이었으므로 이제 그들도 그녀에게 속지않는다.그녀가 상궁들에게는 말썽꾸러기였으므로 사사건건 그에게 일러바치는 건 뻔한 일이다.
"저녁문안은 다녀왔느냐?"
"오자마자 태후전에 들러 자소선사가 직접 만든 차를 바쳤나이다."
"형수님이 네가 혼나지않게 여러모로 마음쓰시는구나."
"알고 있어요."
자소선사는 그 심성고약한 시어머니인 태후에게 한번도 책잡히지않은 맏며느리였다.열여덟에 비빈을 다섯이나 다스리면서도 얼굴한번도 붉히지않았다고하니...
"현아가 출궁한 사흘동안 내궁이 적막했다.짐의 후궁에 비빈은 현귀비하나뿐이니.."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보아도 보아도 달처럼 빛나고 꽃같이 피어나는 용모에 당돌하리만큼 총명하고 재치있다.그녀없이는 황궁의 삶에서 낙이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며칠동안 그녀를 못보고 어찌 지냈을까싶을 만큼..
"자소선사의 절은 지낼만하더냐? "그가 촛불아래 물었다.
"황궁보다는 번잡하지않아 마음은 편더군요."
그녀가 뾰료통해서 대답했다.
"왜 토라졌느냐?뭐가 불만이지? 사흘동안 상궁들의 잔소리와 한림학사들의 공부하라는 독촉이 없어 아주 즐거웠을텐데..그 늙은이들이 엄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현아가 조정대사에 통달했잖아?"
"알고 있어요."
까다롭고 엄격하기는 했지만 이태동안그녀를 가르친 한림학사들의 공도 인정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토라졌느냐 ? 절에서 잘 쉬고 온거 아니었나?"
"쉬기야 잘 쉬었지요.조용하고 호젓하니... "
"절에서 고뿔들었다며? 선방이 춥더냐? 동도사에서 짐의 귀비를 그리 홀대했느냐? 내일부터 다시 수업을 들을 생각하니 우울하느냐?"
그가 따지듯 캐물었다.
사실은 절에서 동자승들과 눈싸움과 눈장난하다가 감기든 것인데...어쩌면 절의 욕간에서 목욕할때 감기든건지도 몰라..물을 데우는 아궁이의 장작불말고는 난방이 잘 되지않았으니..
"오라버니가 절 가마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셨잖아요?"
"또 무슨 말썽을 부리려고?다시 시장에서 소란피우면 짐에게 경을 칠거라고 경고했을텐데..?"지난번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가 그 큰손으로 볼기백대맞을 줄 알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삐죽이더니 불평했다.
"시장구경을 잠시 할수 있나 저잣거리에서 바람을 한번 쐴수 있나..마차든 가마든 절이나 황궁에 닿아야만 내리게해주니..죄수도 아니고...후궁의 일곱개문을 빠져나가기가 첩첩산중같군요.문안에 또 문들이 연달아 줄지어 있으니..."그녀가 투덜거렸다.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쫓아낸 상궁하나가 귀비가 출궁할때는 가마의 문을 밖에서 빗장을 질러잠그고 수행해야한다고까지했어.네가 바람같이 멋대로 빠져나가는데 하도 골탕을 먹어..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겠느냐? 너를 혼자 시장에 나돌아다니게하면 망아지를 들판에 풀어놓는거지.동시나 서시의 시장에 널 벼르는 놈들이 한둘이냐?저잣거리에서 마주치기라도하면..황비이니 위신을 지켜 소란에는 말리지 말거라."
"다시 궁에 돌아오니 법도에 매여 숨이 막혀요.죄수도 아닌데 평생 갇혀 살아야할 운명인가요? 후궁뒷문으로 출궁하는데도 한번 궁밖에 나가기가 이리 까다로우니.."
그가 웃었다. 궁중의 가장 깊은 곳의 처소에서 지내는 황후는 아홉개의 문안에서 살아야하는데..앞으로 어쩌려고...
"황후는 정문으로만 드나드니 겹겹의 문안에서 더 까다롭게 지낸다.현아처럼 월장하는 건 고사하고 시위옷차림을 할 수 있나 말을 못타니 마장이나 활쏘기터에 갈수가 있나..이제 상궁들도 네 꾀를 다 알고 있어.얌전히 지내거라."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신첩이 상궁들치마폭의 아이인가요?그들이 저를 기저귀찬 아기취급해요."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같이 행동하면 아이나 다름없잖은가?그래도 그대에게 벌을 줄수있는 사람은 짐뿐이니...얌전히 법도를 지켜 행동하거라."
그가 그녀를 비단금침으로 끌어당기며 그녀의 탐스러운 둔부를 톡 쳤으므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한달 쯤뒤에 봄에 농사풍작을 기원하는 제례가 있다.궁안의 내명부뿐 아니라 외명부여인들과 종친들도 대거 참석할거야.궁안에서가 아니라 궁밖 황실농원에서 제를 올릴테니.."
그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촛불을 껐다.
"친잠도 배워둬.한림학사들과 공부만 할게 아니야.."
"그건 황후의 일이잖아요?"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멀지않아 필요한 날이 올거다."
모처럼 핀 흰매화위에 잔설이 쌓여있었다.
곧 봄인데도 눈이 오다니..그녀는 얕게 눈이 덮인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초봄의 정원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들려올라갔다.
"오라버니 내려줘요.상궁들이 쳐다보잖아요."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느닷없는 입맞춤이나 포용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대는 아직 고뿔이 낫지않았으니..환자이지않은가...해진후에 찬바람쐬는건 몸에 좋지않아.눈도 오는데.."
그는 다짜고짜 그녀를 안고 복도를 걸어오며 잔소리해댔다.
"시녀들은 다 어디갔나?잠시도 떨어져선 안된다고 일렀는데.."
정원에 서있던 시녀들이 황망히 그들을 따라왔다.
"유모,현아에게 약 먹일 시간이니..탕약을 가져와.어의는 진찰하고 간건가?."
"마침 유어의가 진맥을 청하고 있나이다."
그는 그녀를 보물처럼 안아들고 내실로 왔지만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기바쁘게 어의를 불러 진찰을 재촉했다.
"감기가 나아졌으니 이제 매일 진맥하러 오지않아도.."
"안된다.귀비가 몸이 병약하니 매일 살피거라.탕약은?"
"상궁이 밖에 가져왔나이다."
"들이게."
"이제 탕약까지는 필요없데도요..웁.."
그녀는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쓴 탕약이 투덜거리는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잠자코 마셔.."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는 떼쓰는 말썽꾸러기를 약먹이듯 아랑곳않았고 그녀를 안고 억지로 탕약을 먹였다.
"유어의의 귀는 오라버니에게만 열려있고 다른 이에게는 닫혀있나봐요."
약을 마신고 난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평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지.황궁에 믿을 사람이 몇안되니 유어의말에 따르거라."
"그 노인은 오라버니말만 듣잖아요.황명이라며.."
"유어의가 귀비 한명에게 쏟는 정성이 비빈 수십명에게 들이는 공보다 더할거다.짐은 비빈이라고는 그대하나밖에 없잖느냐?제왕은 비빈만 수십명을 두는데..황후가 후사를 낳지못하면 구빈을 들이는게 관례라고 최소 아홉명의 부인을 두니... ,황후도 받지못하는 총애를 현아 혼자 독차지하고 있잖아..매일같이 짐이 처소에서 밤을 보내고 건천궁에서조차 내내 곁에 두고 있으니..."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그게 총애라기보다 철벽같은 감시지 ...황제라는 낭군이자 오라버니가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있으니..
"강남의 아버님을 뵙고 싶어요."
"사람을 보내어 사부님을 황궁으로 불러드려?"
"그나이에 황도까지 오시기는 너무 멀어요.지난번 속옷을 지어보낸뒤 답신에 몸이 편찮으시다더군요.간결하게 한문장만 쓰셨지만 편지를 가져온 하인말로는.."
"사찰로 어의를 보내드리랴?"
"가서 간병을 하는게 자식된 도리잖아요?"
"강남까지는 길이 멀고 험해.귀비이니 황궁밖출입을 하기가 쉽지않다는 건 알겠지.?더구나 장거리여행이니..."
"운하를 타면 사흘이면 될거에요."
"오고가는 시간이 사흘이 더 걸리지.사부님을 간병하려면 일주일은 걸리겠군.열흘이나 후궁을 비우는 건 너무 오랜 시일이야."
그녀는 입을 삐죽였다.문병을 핑계로 초봄에 강남나들이를 하려고했는데..
"황비가 홀로 강남유람이라..안될 말이지 ."
"금방 다녀올게요.북서풍이 불어올테니 뱃길로는 이삼일이면 되어요. " 그녀가 보채며 졸라댔다.
"열흘이나 수업을 빼먹고 나면 코끝에 강남바람이 들어 또 무슨 꾀를 부리려고?겨우 요즘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그가 짓궇게 물었다.
"다녀와서도 수업을 열심히 하겠나이다."
"상궁들과 호위병들 열명을 딸려보낼테니 훈육상궁들의 말을 잘 듣겠다고 약속하겠느냐?"
그가 문득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염집 처자처럼 단촐히 꾸미고 가게해주세요.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으니.."
"안된다.봉보어멈과 훈육상궁들과 동행해야해.황궁법도야."
" 돌아와서 그 할멈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자질하면 또 절 혼내시려구요?"
그녀가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
"적어도 주상궁과 가상궁은 따라가야지."
"그 제일 잔소리많은 할멈들을 동행하라고요?"
훈육상궁인 주상궁과 보모상궁인 가상궁은 상궁들 중에서도 까다롭고 엄격해서 사사건건 그녀의 수업진행뿐 아니라 하루일과를 그에게 일러바쳤다.
" 태후가 알아채는 것보다 짐에게 보고하는 것이 낫지않느냐?"
지난번 절에서 비구니주지가 그녀가 예불에 태만히 했다고 태후에게 고자질을 해 벌로 그녀는 불경을 베껴서 태후에게 바쳐야했다.
수업에 숙제도 많은데 밤늦도록 끙끙거리며 필사를 해야했으니 고역이 아닐수 없다.
" 절에서 돌아와서도 태후마마가 신첩에게 일주일간 몇시간씩 매달려야할만큼 두꺼운 불경을 내린걸보면 황상의 백모에게 그 비구니땡중이 시시콜콜 일러바쳤겠지요."
그가 소리내 웃었다.
"상궁들보다 짐이 낫지..강남까지 짐이 같이 따라가 현아를 감시해야겠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네?"
"강남 끝지방에서 강의 봄홍수로 제방이 넘쳐 수해가 생겼다구나.짐과 같이 동행해서 돌아오는 길에 사부님께 들리자."
"정말인가요?"
그녀가 반색하며 물었다.
"대신 병자들을 돌보고 짐의 일을 도울 생각을 해야한다.수해난 뒤라 민심이 흉흉할테니..오늘 군대를 파견해 제방을 보수하게했지만..전염병이 도는 모양이다."
"전염병이요?아마 오염된 물로 인한 돌림병일거에요?"
"어의들 말로도 그런 것같다."
그녀는 당장 의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시각이 늦었으니 그만 잠자리에 들지."
저녁상을 물리고 목욕후에도 한참 상소를 뒤적이며 읽던 그가 용포를 벗어던지며 그녀의 궁중소례복를 잠옷으로 갈아입히려하자 그녀는 당혹해 얼굴을 붉혔다.하지만 그는 아랑곳않고 그녀의 비단허리띠를 풀고 직접 옷을 갈아입혀주었다.
"지존의 몸께서 이런일까지 하실 필요는..."
"아무말 말아라.짐이 늘 그대를 안스럽게 여겨하는 일이니.."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그토록 첩실이란 신분을 싫어하는데 억지로 입궁시켜 비빈으로 만든 걸 늘 그가 마음에 걸려한다는걸 알고 있었으니...본디 그의 정실부인이 되도록 키워졌건만..
그가 내실에서 자주 그녀를 어린애같이 다루었지만 말릴 사람도 없어 때로는 몹시 곤란했다.숙제검사에 의대수발에 몸이 아프면 싫어하는 탕약을 억지로 먹이고 말썽을 부리면 혼도 직접내야 직성이 풀렸다.
젊은 황제가 꽃같이 피어나는 귀비를 곁에 떼어놓고는 견디지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다 시녀들이나 내관들이나 상궁들이 주위에 있건말건 그는 그녀에대한 애정과 집착을 꺼리낌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시녀들이 침실에서는 그가 그녀를 무릎위에서 내려놓지않고 지낸다고 수근거릴 정도였다.
측근들이 그가 직접 그녀에게 약을 먹이거나 머리를 빗겨주는걸 종종 봤을 뿐아니라 내실에서 그녀를 안고있는 광경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생긴 소문이었다.애첩이 입맛이 없으면 황제가 손수 죽까지 먹여준다..
황후는 안중에도 없고 수천 수백의 궁안의 어느 여인에게도 눈길조차주지않으면서 육촌누이동생인 어린 귀비에게는 젊은 황제가 지나칠만큼 익애한다며 총애가 도를 넘었다고 궁녀들은 말했다.
황상이 귀비를 대하는 게 비빈이 아니라 아비가 딸을 키우듯한다는게 궁중의 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침실에서는 육촌오라버니에게 자주 혼나고 있었다.그녀가 사소하게나마 법도를 그르치면 상궁들은 사사건건 고해바쳤고 그는 어김없이 저녁마다 자신의 품에 안은채 그녀에게 꾸지람하는 게 그의 일과였고 특기였다.그녀가 울것같으면 어린애 달래듯 어르고 그리고는 시녀들과 상궁들을 질책하곤했다.
그가 온갖 간섭을하고 걱정을 하며 측근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으므로 신변의 안전때문에 겨우 열일곱의 황제의 귀비는 혼자서는 처소밖에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요람속의 공주처럼 대해졌다.하루종일 여러명의 상궁들의 감시와 엄한 한림학사들의 간섭 속에 지내하야만하는 그녀는 자유를 잃어 자주 불평했지만 달래기만하는 그도 상궁들도 그녀의 응석과 불평을 들은 척도 않았으므로 도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불공드리러 출가한 선대황후에게나 다녀오라는그의 명이 유일한 궁밖으로의 외출이었다.궁밖의 시장에 놀러나가러 몰래 월담하거나 입궁전 지냈던 왕부에 멋대로 다녀오다 시비에 휘말린 일로 그에게 아이처럼 혼난이래 그녀는 어릴적 자란 집조차 잃어버렸다고 불평했다.
아무런 반항이나 투정도 못하고 후궁에 갇힌 그녀를 그가 가엾게 여겨 허락해주는 일이란 친척언니들의 방문이었는데 출궁이 힘든 그녀를위해 이따금 사촌들이 만나러 오지만 차마시고 돌아가는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의 일족을 위해 그에게 무언가를 조른 적이 없었다.그것이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했다.입궁해 이태가 되어가면 권력에 눈을 뜰만도한데..
"이번 강남의 시찰에 귀비를 동행할까하오."
"귀비를 데려가겠다는 말씀이신가요?무슨 이유로..?"
"귀비가 의약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니 병자와 홍수의 난민들을 구휼하는데 도움이 될거요."
"지난번 가뭄지역의 시찰에도 동행하지않으셨는지요?"
황후의 얼굴에는 질투가 뚜렷이 보였다.
"본디 황실의 아량을 보이는게 황후의 소임이나 ...황후는 유행병을 앓은지 얼마되지않으니 장거리여행이 무리요.또 병자가 많은 데 들렀다가 병이 재발하거나 악화되어서는 안되지않소? ..옥체는 어떠시오?"
"무탈합니다."황후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병자들이 아우성치는 험한 곳에 황후를 데려갈 생각은 없소.귀비야 본래 험한 곳도 가리지않으니.."
황후는 웃던 얼굴이 순간 식었다.
"그럼 몸조리잘하시오.귀비에게 알리러가리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지만 그가 나가자 긴 한숨을 쉬었다.
"운하를 타니 속도가 빠르군.금방 강의 하류로 나올수 있으니.."
선내의 침실에서 그가 평했다.
"호위군사들은 뒤따르는 배에 타고 있는건가요?"
"응..모두 뱃사람처럼 보이지만 황궁의 최정예부대야."
"같은 배에 동승한 이들이 금위병장교들이라고했잖아요?"
"응 .호위병들중에서 무예에 초고수들이지.짐이 미복잠행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꾸미고 출발했으니 요란하게 차릴 수는 없지."
"아침에 수해지역에 도착하면 전 구휼소에 들러 가봐야겠군요."
"의관을 따라가렴.무리할 건 없다.돌아오는 길에 사부님께 들려봐야지."
그가 침상에서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멋대로 나다니지말고 의관의 말에 따라.구휼하는 시늉만 하면 된다.위험한 짓하면 혼내줄거야."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으나 그녀는 입을 삐죽였다.그러나 그가 그녀를 잠자리로 끌어당기자 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하얀 팔을 감았다.
"새소리가 범상치않군."
"마마, 봄이라 새들도 짯찟기를 하나봅니다."
후원을 걷던 황후의 말에 시녀가 대답했다.
나무위를 바라보자 한쌍의 제비가 보였다.
황후는 후원에서 발걸음을 돌려 처소로 돌아왔다.황제가 귀비를 데리고 남방지역의 시찰을 나간지 이틀이었다.적막한 궁안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를 내어오던 시녀가 긴한숨을 내쉬는 황후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번 파종제가 기회일겁니다."
"무슨 뜻이냐 ? "황후는 의아한 듯 측근궁녀에게 물었다.
"귀비를 없애시려면 ..."
궁녀는 품안에서 무언가 싼 종이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이게 뭔가?"
궁녀는 비녀끝에 흰가루를 묻히더니 금붕어를 담은 도자기안의 물을 휘저었다.
이내 두세마리의 금붕어가 허옇게 배를 뒤집고 물위에 떠올랐다.
"이것은..?"놀란 황후가 소리치듯 물었다.
"사천독사의 독을 말린 맹독입니다."
"자네 제정신인가?"
"처소에서 호위병들을 대동않고는 나오지를 않는데다 까다로운 상궁들이 둘러싸고있으니..무엇보다 황상께서 장중보옥같이 여기시니..곁에 가기조차 어렵습니다.저러다 덜컥 회임이라도 하는 날엔 용종을 품게되면..아들이라도 낳으면..당장 태자로 책봉하려 하실것아닙니까? 다른 비빈도없으니 ..그럼 황후께서는 어찌 되시겠습니까?조정에 세가 없어도 황상의 총애가 지극한데다 태자라도 낳는날엔 마마의 지위가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적모이지않은가?"
"적모라도 생모와 같겠습니까?일정량을 쓰면 저승길을 가지만 소량을 쓰면 불임이 됩니다."
"불임이라.."황후의 얼굴빛이 변했다.
" 황상께서 평안궁의 출입을 극히 통제하니 드나드는 이는 측근시녀들뿐이고 이따금 문안오는 이들이 귀비의 친척들이라곤해도 적막할 지경입니다.낯선 이는 처소문턱넘는건 고사하고.. 접근조차 못하니.. 매일같이 황상께서 처소에 가시는데도 황상께는 청탁한번 않으니 더 어여쁘여기시는게 아닙니까? 황상께서 황후마마집안의 축재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게 어제오늘일이 아닙니다.귀비를 그냥두면 결국 마마께서는 총애를 받을 수없고 내쳐지실겁니다.귀비라 해도 비빈일뿐입니다.후궁의 생사여탈은 황후마마의 손에 달려있습니.."
"알았네.."
새벽에 관사의 뒷뜰에서 같이 활을 쏘고 온뒤 그는 총비에게 옷을 갈아입히며 그녀보다 더 분주했다.
"몇년만에 아버님을 뵙는 건데 예쁘게하고 가야지.자주빛은 네 배자나 외투와는 안 어울려.."
"아무 옷이나 괜찮아요."
"짐이 현아를 홀대했다고 여기시면 어찌 하느냐?이모부님의 불같은 성정에 짐을 탓하시기라도하면.."
그가 중얼거리자 시녀는 병풍안으로 다시 걸어들어온 그녀의 자줏빛치마를 벗기고는 다른 비취빛치마를 입혔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주홍빛과 쪽푸른 남빛은 그녀가 창백해보인다고 물리고 상아색예복은 길의 흙먼지가 묻을 걸 걱정하고 자줏빛비단은 두루마기겉옷과 색깔이 안 맞는다고 타박이었다.
벌써 갈아입기만 다섯벌째다.
"비취색이 낫겠구나.두루마기가 연두색이니 어울리지않느냐."
새치마를 걸치고 거울앞에 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더는 갈아입기귀찮아서 아무옷이나 상관없다.새벽부터 속치마부터 입혔다 벗겼다...극성이군.
궁중의 대례복한번 입는것보다는 덜 번잡하지만 나들이옷차림으로 모양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머리장식은 이게 좋겠다."
그는 시녀가 바치는 작은 자개함을 열고 잠시 뒤적이다 직접 고른 비취가 박힌 나비모양의 떨잠을 꺼내 그녀의 정수리머리에 꽂았다.
그녀의 오른편머리에도 작은 홍옥을 잔뜩 박은 금으로 만든 동백이 왼편에도 새끼손톱만한 보랏빛수정들이 박힌 은으로 만든 모란이 얹혀있었다.
"그렇게 잔뜩 꽂으면 무거워요."그녀는 투덜거렸지만 그는 아랑곳않았다.
"진주박힌 꽃떨잠도 하자.머리위에 꽃과 나비가 올라간 것같잖아.그것보다는 이게 낫겠어."
결국 그녀의 검은 머리는 잔뜩 올려꽂은 보석장식아래 대부분이 감춰졌다.
아버님한번 만나러가는데 극성이군....그녀는 입을 삐죽였다.하지만 그는 신이 난듯 보였다.
현아가 황궁에 들어온 이래 내가 최고의 호사를 시켜준다는 걸 보여줘야지.비록 첩실이라지만 황제의 귀비이니..어느 여인못지않게...
"가락지도 끼고 목걸이와 귀걸이도 치장해라."
그가 홍옥의 목걸이와 진주귀걸이를 집어들며 일렀다.
"아니 옷이 비취빛과 연두색이니 녹옥으로 만든 목걸이와 가락지가 낫겠다."
보석함을 뒤적이던 그가 말했다.
"귀걸이는 이걸로 그냥 하죠."
이미 낀 진주귀걸이를 빼기 귀찮은 그녀가 대꾸했다.
"황상께서 사찰의 이 늙은이를 문병하시다니 황감하옵니다."
"스승님.말씀을 낮추시지요.민망합니다."
늙은 사부는 사위이자 5촌외조카인 젊은 황제를 바라보았다.어릴적 글을 가르칠 때 총명하기도 했지만 무예에도 소질을 보여 문무를 겸비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초식을 가르칠때만해도 검쓰는 게 제법 날렵했으니...
십년전 출가하기전 마지막으로 만나보고 헤어질 때는 어린 소년의 티가 남았는데 선이 굵어진 얼굴과 뼈대가 굵어진 어깨와 등,훌쩍 큰 키를 보니 기골장대한 청년으로 변해있었다.
젊은 황제의 반짝이는 눈과 힘있는 어조의 말투는 권력자의 기품과 포부가 엿보였다.
"조정의 상황은 어떠하오?황상의 친위세력이 적어 고심이 심할텐데.."
"제 지지세력이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늙은이가 이젠 출가한지 십년이 넘었으니 힘이 없어 돕지를 못하는구료."
"아닙니다.스승님이 연계해주신 병부의 장군들과 젊은 관리들이 명석하고 패기에 넘치니 힘이 됩니다.장차 크게 도움이 될것입니다."
젊을 적 변방을 내달리던 장군이던 만큼 끔찍하게 사랑하던 아내가 죽고 출가하기전에는 군부의 상당한 실세였다.
"조정을 좌우하려면 우선 여론을 만들어야하오."
"명심하겠습니다."
늙은 사부는 한숨을 내쉬며 미소지었다
"현아가 고집이 세고 성정이 소년같아 황상께서 종종 속을 썩으실거요.말을 안들으면 혼을 좀 내주구려."
"아닙니다.사부님.요즘 현아가 철이 나서 근래에 아주 얌전해졌습니다."
"그간 유모가 보내온 서찰을 보니 황상이 현아를 야단칠 일이 꽤 많았을건데?한번도 부모에게 혼나 본 적이 없으니 버릇이 없을거요.육촌오라버니가 늘 친누이처럼 귀여워하며 키웠으니..응석받이에다 천방지축 말괄량이를 떠맡지않소?."
"사부님도 늦게 얻은 외동딸이라 매한번 든 적이 없이 애지중지 키웠는데 짐이 어떻게 현아에게 손을 올리겠습니까?아이도 아닌데.."그는 웃었으나 이내 양심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유모가 서신으로 시시콜콜 그간 황궁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린건가..
"정말 얌전히 지내는거요?황궁법도를 어겨 황후마마나 태후마마에게 자주 벌을 받지는 않았던가? 둘다 현아를 달가와하지않을건데..유모의 말로는 태후가 현아에게 회초리를 내릴만큼 여러번 말썽을 부렸다던데...황상이 몇번인가 무섭게 진노했다면서...?"
혹시 지난 번 문병 다녀간 유모가 죄다 일러바친건가?그는 마음이 불편해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모부님.아니 아버님.현아가 궁중법도를 가끔 어겨서 짐이 나무란 적이 좀 있습니다..."
"가끔 ?가끔이 아닐텐데..?"장인은 눈을 가늘게뜨고 이실직고하라는 듯 사위를 쳐다보았다.
설마 정말 저 말괄량이가 자신에게 볼기맞은 일을 눈치챈건가?전같으면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딸을 누가 쥐어박는 꼴한번도 못볼텐데..이러다 장인에게 한대 얻어맞는거 아닌가?네 이놈 감히 내딸에게 손찌검을 해? 그가 기억하는 장인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원하신다면 짐을 한번 주먹질하셔도 좋습니다."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괜찮소..현아가 말썽을 부리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좀 내든지 ...따끔하게 야단을 쳐도 좋으니..황궁에서 쫓아내지만 마시오. 때로 제 오라버니가 아니 낭군이 무서운 줄도 알아야지.."그리고 장인은 껄껄 웃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입궁 초에는 현아가 왕부에서처럼 자유분방하고 멋대로 행동해서 물의가 좀 있었습니다만... 짐이 귀비를 꽤나 나무랐었지요.현아가 황궁의 규율이나 상궁들의 간섭을 힘들어해서..하지만 내내 짐이 곁에두고 돌봤습니다.장차 황후로 세울것이니 조정의 일에대해서도 알아야하니 ...한림학사들이 엄히 조정일에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훈육상궁들도 까다롭게 예법을 훈육하고 있으니..."
"저 철부지가 이제 철이 나야지..말안듣는 망아지는 엉덩이라도 때려서 버릇을 고쳐야하는거요. 정 황상이 화가 나면 볼기라도 몇대 때려주게.아이취급받는게 부끄러운줄 알아야지..황상이 어릴 적부터 너무 귀여워한 탓이요. 말썽부릴지 뻔히 알면서 입궁시켰으니.."
"짐의 자업자득입니다."그가 쓰게 웃었다.내궁에서 현아는 그에게 유일하게 어리광에 질투에 생떼까지 쓰는 인물이었다...
"정말 황후책봉을 하실 생각이요?외척도 조정의 세도도 없는 가문의 여식인데..."
장인이 정색을하고 물었다.
"일개 후궁으로 살게 할 생각이면 그렇게 야단 칠 이유도 없고 억지로 공부시킬 이유도 없지않습니까?처음에는 불평하기도 했지만 이내 일취월장으로 따라배우더군요.본디 총명하니...황후가 되려면 그정도 압박은 견더내야하지않습니까?물론 현아에게는 힘든 과정일수도 있겠지만..."
한림학사들 셋에 상궁들 셋 유모들과 그까지 한통속이 되어 버릇고친다고 얼마나 열심히 가르쳤는데?당연히 밤낮으로 십여명의 잔소리꾼들아래 들볶이는 현아에게는 도망치고싶을만큼 괴로왔겠지만..
그가 진지하게 답하자 늙은 사부는 미소지었다.
"유모가 그러더군.황상이 어린 딸을 키우듯 현아를 품에 안고 가르친다고..정무만 끝나면 내내 현아처소에서 둘이 붙어지낸다고..."
그녀의 부친은 이윽고 허허 웃었다.
"황궁은 바다와 같고 현아는 황궁에서 고아나 다름없으니 황상께서 잘 돌봐주시구려..어미가 일찍 가서 무남독녀라 오냐오나하며 키웠더니 ..그녀석이 말썽부리는 걸 너그럽게 이해하시오."
"아버님,말씀이.."
그녀가 약탕을 가지고 선방에 들어오며 눈살을 찌푸렸다.
"오랫만의 질주로구나.내내 마차로 시찰을 다녔으니..."
그가 그녀를 말에서 내려주며 말했다.
"네,가슴이 뚫리는 것군요."
"황궁에서도 오후마다 짐과 말을 타지않느냐?"
"마장의 공터와 황궁의 지정된 길을 한바퀴 도는거하고 이런 들판을 달리는 거하고 같을 수가 있나요?"
그녀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관청으로 돌아가있거라.곧 갈터이니..짐은 고을의 유지들을 만날 예정이야."
"신첩은 목욕하고 황상을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욕실에서 나오니 손님이 와 있다며 상궁이 알렸다.
거실에서 현령의 부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마마 고을의 지주부인이 마마를 뵙기 청하나이다."
"나를?왜죠?"
"황상께서 강남의 유지들에게 기부를 권고하지 않으셨나이까?"
"그일은 황상께 아뢰시지요. 황상께서 구호를 감찰하시니.."
"긴히 마마를 뵙고 싶어하나이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선물을 올릴 눈치입니다."
아...이건 뇌물이구나..퍼득 그녀의 머리에 스치는게 있었다.
"본궁은 황상의 정무에 참견할 수도 없고 황상께서 주시는 선물이 많아 다른 이의 선물은 바라지않는다고 전하시지요.?"
"하지만 마마..."
"피곤하니 그만 쉬어야겠네요.오시느라 수고하셨으니 차와 다과를 보내겠습니다.본궁이 오늘 몸에 탈이 좀 나서.."
그녀는 웃으며 재빨리 현령부인의 접견에서 빠져나왔다.
첫댓글 드디어 황후가 비빈에게 위해를 가할마음을 갖게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