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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추워”
나도 모르게 양 팔로 내 몸을 감싸며 웅크렸다.
어느새 가을이 다 가고, 겨울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겨울이 오나보다, 하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어제와 달리 구름이 껴서 세상이 조금 어두워보였다.
급격히 떨어진 온도에 종종 걸음으로 차를 향해 걸어갔다.
자연스레,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는데 오늘따라 차가 막히는지 차가 느리게 움직였다.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는데 하늘이 어두워 그런가, 늘 같은 시간에 움직임에도 오늘은 더 새벽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간은 해가 덜 뜬건지, 구름이 많아 어두운건지 회색빛의 하늘에 몸이 더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어제 원우의 말이 떠올랐다.
- 그 사람이랑 안 만나면 안되?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결국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유를 물었어야 했나 곰곰히 생각하다
아무래도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분명 원우와 나의 사진이었다.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므로, 대학 때 사진일 것이고 그렇다는건 10년도 넘은 사진을 우리 둘을 모르는 제 3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뭘까, 뒷조사라도 했나.
하기야, 그 정도 효심에 어머니 주치의가 될 사람을 허투루 정했을리는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사진은 좀.
그렇게 잡생각을 하다 보니, 서정후씨의 집이자 나의 새로운 직장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나갈 준비를 하고서도 한참을 내리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찝찝해, 이걸 어떻게 돌려서 물어봐야지 고민중인데
똑똑- 하고 창문에 누군가가 인기척을 냈다.
“아 깜짝이야”
놀란 기척을 내며 차문을 천천히 열고 엉기적엉기적 내리자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서정후씨가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하고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춥죠- 하며 내게 텀블러를 내밀었다.
“뭐에요?”
“차요, 추울거 같아서 차 내려왔어요”
“.... 저 주시려구요?”
“그럼 누구겠어요. 따뜻하니 손에 쥐고 들어가요” 하며 나를 문으로 이끌었다.
“감사합니다.” 담백하게 인사를 하고 텀블러를 손에 쥐는데, 너무 따뜻해서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의 타이밍을 놓친 채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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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이 조금씩 낮네요. 원래 고혈압 있으셨죠?”
“네” 작은 목소리로 서정후씨 어머니는 대답했다.
“많이 낮나요?”
“아뇨, 정상범위이긴 한데, 고혈압있는 분이 약 안먹고도 혈압이 낮은게 좋은 신호는 아니네요.
오늘은 약 안드시는게 낫겠어요”
그 외 체온과 몸무게 측정 등의 간단한 검사를 하고, 혈액을 뽑아 통에 담았다.
일주일에 두 번, 혈액검사를 위해 간호사가 집에 와 혈액을 가져가 검사를 진행해준다.
그 검사를 봐야겠지만, 결막이 하얗고 혈압도 낮은 것이 빈혈이 의심되었다.
“혹시 대변보셨어요?”
“네, 아까도 화장실 가셨어요” 옆에 김인숙씨를 간병하는 아저씨가 얘기했다.
“대변 색 보셨어요? 환자분?”
서정후씨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변 보시면 색깔 한번 봐주시겠어요? 피검사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빈혈이 있을거 같아요.
필요하면 수혈도 해야할거 같구요”
“심각할까요?” 걱정스레 아저씨가 물었다.
“봐야 알겠지만, 당장 심박동 수도 괜찮고 새빨간 피가 나온게 아니니 심각한 건 아닐거에요.
아무래도 기저질환도 있고 드시는 식사 양도 적다보니 그럴 수 있어요”
주섬주섬 관찰한 기록들을 노트북에 적고는, 다시 김인숙씨를 바라보았다.
“환자분, 다른 불편한거나 말씀하실 거 있으세요?”
“...움직이면 숨이 너무 차요, 몸도..너무 무거워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다리는 코끼리 다리마냥 부어있고, 손으로 누르자 몇초가 지나도 누른 자국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종이 생겼네요, 체중이 늘어난게 이거 때문인가봐요. 이뇨제 좀 드릴께요”
하며 바쁘게 노트북에 해야할 것을 적어 가는데, 너무 환자를 안보고 일만 하나 하는 생각에
김인숙씨의 얼굴을 바라보자,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이 더 힘들어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김인숙씨를 바라보았다.
“... 많이 힘드시죠”
“......”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일부 암 환자 들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치료가 어렵다고 들으면 우울하지 않은 듯, 미련이 없는듯 호기롭게 추가적인 항암 없이 나는 죽겠다고 하다가도, 막상 몸이 힘들어지면 제발 한번이라도 항암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죽음이 다가운 것을.
더 이상 삶에 미련 없다던 환자들도 보통 이 순간엔 두려움으로 가득쌓여 결국 외래로 찾아온다. 제발 살려달라고,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의사들에게 애원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건, 보통 그런 환자들은 더 이상 의학적으로 완치를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그럴때마다 의사들이 해줄 수 있는건, 현실을 직시 시켜주고 할 일을 주는 것이다.
“오늘은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 쉬시는게 낫겠어요”
그녀의 기분과 같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사모님. 오늘은 날도 안좋은데 집에서 맛있는거 먹고 쉬어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아저씨가 김인숙씨를 위로했다.
“오늘은, 버킷리스트를 써보시는건 어떠세요?”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것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목록으로 써보세요
생각보다 도움이 될거에요” 하고 싱긋 웃고는 아셨죠? 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너무 말라버리고 지방이 사라진 살가죽이 손으로 느껴졌지만 더욱 힘주어 손을 잡고는
“그리고 저희랑 맛있는거 만들어 먹어요. 어때요?” 하고 물었다.
“좋은데요?”
언제 들어온건지, 문 옆에 서정후씨가 기대어 말했다.
“어머니, 저도 끼워주실거죠?” 하고 아이같이 웃자
“... 그래, 그러자” 작지만 행복한 목소리로 김인숙씨가 대답했다.
그제야, 나도 간병하는 아저씨도 진심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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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간호사로부터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를 듣는데, 생각보다 좋지 않다
아무래도 가까운 병원에라도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는게 좋을 거 같은데
저 상태로 왔다갔다하는게 몸에 무리라도 될까 걱정이 되었다.
이래서 병원에 있는게 좋긴 한데 하고 씁쓸히 혼자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는데
내가 앉은 곳의 맞은편 의자에 서정후씨가 앉았다.
“무슨 생각해요?”
“아, 어머님이요. 생각보다 혈액검사가 별로 안좋아서요.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라도 찍어보는게 나을거같아서요”
내 말을 들은 서정후씨는 조용히 탁자를 내려다 보다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병원을 별로 안좋아하세요. 몇 년전까지 거의 갇혀있다 싶이 살았다 보니 가고 싶지 않으신가봐요.”
“그래도, 갑자기 숨찬게 심해지고 빈혈도 심해지는게 암이 더 빠르게 퍼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딘가 염증이 퍼지고 있는거일 수 도 있어요”
“그게, 어머니 여생을 얼마나 더 짧게 할까요?”
솔직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다르게 질문하죠. 검사를 하면 어머니가 더 오래 사시게 되나요? 혹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검사를 하고 그에 맞는 시술 혹은 치료를 하면 몇일에서 몇 달은 더 살 수 있겠지.
근데 그게 김인숙씨에게 행복한 몇 일일까? 괴로운 몇 달이진 않을까?
아무말 못하고 머그잔만 만지작 거리는 내 손을 서정후씨가 잡았다.
갑작스런 접촉에 놀라 쳐다보자,
“감사해요, 진심으로 신경써주셔서요”
“그러라고 고용된 사람인걸요”
“그래도요. 감사해요”
“.... 그럼 검사는, 더 힘들어지시면 가 보는걸로 할께요”
문득, 그와 김인숙씨와 서정후씨의 첫만남이 궁금해졌다.
“어머니가 되게 잘해주셨나봐요. 이렇게 바르게 잘큰거 보면”
“입양아들 답지 않게 많이 혼내시긴 했죠” 하고 하하 웃었다.
“많이 혼내고, 많이 아껴주셨어요. 바쁘실텐데도 저랑 시간을 보내려 많이 노력하셨죠.
제가 저번에 말한 적 있었죠? 형이 있었다고. 그 형이 8살인가 병으로 일찍 죽었대요. 그 이후로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아버지가 8살이었던 저를 데려오셨어요.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는데 어느새 제 어머니가 되어 있더라구요. 많이 감사하죠”
“생각보다 늦게 입양되었네요? 보통 애기일 때 입양되던데”
무심코 얘기하다, 아차 싶었다.
혹시나 상처를 건드린건 아닐까 급히 화두를 바꾸었다.
“근데, 저녁 뭐먹죠?” 하고 핸드폰을 꺼내 음식을 찾으려 하는데
그가 말했다.
“파양 당했었어요, 한번”
“아...”
순간 머리회로가 고장나버린 듯 몸이 굳어버렸다.
위로를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는데 그가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그 집 꼬마를 다치게 할 뻔 했거든요”
“... 그렇다고 파양을 해요? 서정후씨도 애기였을 거 아니에요”
“그쵸, 근데 저는 입양아고, 그 꼬마는 친자식이었으니까. 불임이라서 저를 데려왔는데, 얼마 있지 않아 애기가 생겨 동생을 낳으셨거든요. 이전 부모님들이”
아무 표정도 없이 담담히 얘기를 하는데, 어쩐지 슬퍼 보였다.
아니, 슬프겠지.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나쁜 사람들이네요”
“그러게요” 하고 빙긋 웃음을 짓자,
“웃지 마요. 웃을 타이밍 아닌데”
“그럼 울어요?” 하더니 팔을 눈으로 가리고 “엉엉 이렇게 울어요?” 하며 장난스레 우는 시늉을 했다.
“그게 뭐에요-” 하며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자 서정후씨도 나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그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준 거니까”
“부처님인 줄. 도 닦으세요?” 장난스럽게 얘기했지만, 처음으로 그가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배우고 싶은 마음가짐이다.
“선생님-, 사모님께서 잡채 먹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거 만들까요?”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잡채를 검색하며 우리가 앉아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좋죠, 윤슬씨 잡채 좋아해요?”
“완전요” 그렇게 우리 셋은 한번도 만들어 보지않은 요리를 위해 잡채 만들기를 각자 핸드폰으로 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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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원우는 병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이네, 강선생”
병원장은 보고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돋보기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안경을 쓰고 있어 코에 통증이 느껴지자 잠시 콧등을 손으로 누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다가왔다.
“앉게나-”
손으로 안내하며, 본인도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사실 원우는 갑작스러운 병원장 호출에 긴장했다.
병원장은 외과 의사로, 대학교 때 잠시 수업을 듣고, 인턴 때 잠시 한두번 수술장에서 얼굴을 본 게 다인 사이였다.
“자네 아버님이 강재천 선생님이라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양 소파 팔걸이에 팔을 늘어놓은채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뭐 때문에 그러시죠?”
“지금 아버님은 뭐하시나?”
자꾸 설명없이 물어보기만 하는 말과 태도에 약간 짜증이 밀려온 원우는 짧게 대답했다.
“제가 있던 병원에서 교수를 하고 계십니다만”
“샌디에고 대학 말인가”
“네, 그런데 무슨일 때문에 그러시죠?”
그러자, 병원장은 소파에서 등을 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자네 제인그룹에 아는 사람 있나?”
제인그룹?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때,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문쪽을 쳐다보자, 강과장이 들어왔다.
뭐야, 하고 바라보자 강과장은 자연스레 소파에 앉았다.
“솔직하게 말하지, 자네 연구에 참여하겠나?”
“강과장님께서 참여하고 있는 연구라면, 제가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
“제인그룹에서 딱 집어 자네를 조건으로 내세웠네”
“....네?” 당황한 얼굴로 강과장을 쳐다보자, 개의치 않고 병원장은 말을 이었다.
“자네가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투자를 2배로 늘리겠다고”
무슨 이야기냐는 얼굴로 강과장과 병원장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가 왜, 갑자기.. 왜?”
“우리야 모르지, 나는 자네가 답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이 병원에 온건, 오로지 제 의지였습니다. 그쪽에서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랑은 관련이 없습니다.”
“자네가 이 병원에 지원하자마자 그 얘기가 나왔어”
조용히 듣고 있던 강과장이 말했다.
“처음엔 자네가 순순히 연구를 하겠다고 해서 당연히 뭔가 있겠거니 했지, 근데 갑자기 연구를 안하다고 해서 연구팀을 새로 짜서 올렸더니, 자네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지 않나”
“아뇨,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연구도 애초에 - ”
이윤슬 때문에 하겠다고 한건데요. 라는 뒷말은 겨우 삼키고는 고개를 저으며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처음에 연구를 받아들인건 흥미로워서였고,
근무 시작해 보니 업무가 바빠 거절한 것 뿐입니다. 제 결정은 변함없습니다”
“그럼 단이 선생은”
“단이가 왜요?”
“이 연구 무너지면 홍 단 선생은 이 병원에 필요가 없네”
“.....!”
“어떻게 하겠는가? 참여하겠나?”
반 협박으로 이루어진 문장에, 원우는 얼굴이 굳었다.
실력 좋은 단이지만, 스스로 병원을 이직하는것과 젊은 나이에 해고 당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병원장의 의도에 원우는 화가 났고, 자신의 대답이 정해져있다는 것도 알았다.
“시간이 없으니, 하루 주겠네. 생각해보고 연락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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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정후와 윤슬의 관계에 원우를 홍단 을넣어서 협박을 하는 원장 무엇때문에 원이를 연구의일원으로 넣으려고 하는지 제인그룹의 이상한 처사도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