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걸대의 관하여
계 로이
몽골 국립대 교수
“노걸대”에 관하여 계 로이 몽골 국립대학 강사 “노걸대(老乞大, Lao Kida)” 어원 해석에 관하여 1930년대 무렵부터 내외 학자들이 몇 차례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발표된 것을 간추리면 오오사카 외국어대학 와다베 군타로(渡部薰太郞) 님의 “대중국”설(1935), 연세 대학교 민 영규 님의
“노한아”설(1964)과 서울 대학교 이 기문 님의 “참된 중국, 참된 중국인”설(1967)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서강 대학교 이 승욱 님의 “몽어와 번역(언해)된 노걸대”설(1983)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논의된 내용을 음미하여 보면 “걸대”를 “중국”으로 본 것이 공통점이라 하겠는데 이의 효시가 된 와다베 군타로 님의
《여진어의 신연구》에 실린 내용을 해석 과정에서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덜기 위하여 원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朝鮮ニ 於ケル 女眞語ノ 敎科書ニ (老乞大)ト 題スル 一書アリ. 乞大ハ 北京ノ
發音ヲ 以テシテハ 不可ナリ. 故ニ 當時ノ 音ニ 從フテ kitat 又ハ kitaiト 讀ミ 大支那ヲ 表スル 蒙古語ナリ.
발표된 글들에서 “걸대”를 “중국”으로 보는 것은 서적 이름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움이 있음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족쇄가 채워진 채 신비스럽게만 생각하여 온 셈이 되었다. “노걸대” 어원 해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책 이름에 적합하여야 하는 것을 필요 조건으로 삼아야 하고, 둘째로 한어, 몽어, 만주어,
일어와도 연관되어 있으므로 국제 언어적 성격을 띤 널리 쓰이는 낱말이어야 한다는 충분 조건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걸대”와 관련된 글을 살펴보면 노걸대를 교과서, 어학 교재, 역학서,
회화체 교본, 교습서와 학습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두 책을 뜻하는 낱말뿐이고 다른 낱말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책”이라는 말 자체에서 어원 해석의 실마리를 풀어 보기로 한다.
넓은 의미의 책을 나타내는 어휘를 몇 나라 말에서 찾아 비교해 보면 어떠한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데 몽어에서는
“bitSig, dэbtэr”, 만주어에서는 “bitxэ, dэbtэlin”, 티베트어에서는 “peka, deb”, 위구르어에서는
“bitik, pyt yk, kitap, dэptэr”, 터키어에서는 “bitik, py tyk, kitap, defter”, 카자흐어에서는
“kitap, depter” 등이 있다. “bitSig, bitxэ, peka, pitik, pytyk”와 “ki tap”, 그리고
“dэbtэr, dэbdɜlin, deb, depter”과 “defter”는 서로 뿌리를 같이하는 각각 동일어임을 알 수 있고,
“kitap”는 아랍어에서, “defter”는 그리스어에서 차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걸대”를 “kitat”(중국)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kitap”(책)으로 읽자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의견이다.
이 기문 님은 “老”의 해석에서 중세 몽어 “lab”이 아닐까 하는 억견을 가진다고 하였는데 몽어 “lab”에서
파생된 명사 “lablalt”는 ‘질문, 참조’의 뜻을 가지며, 파생된 동사 “l ablah”는 ‘질문하다, 실태를
조사하다, 참고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 가운데서 ‘참고하다’라는 말이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하는데
“labl ah bitSig”는 바로 ‘참고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며 웬만한 몽골어 사전에 실려 있는 낱말이다.
“lablah bitSig”의 ‘bitSig’(책)를 ‘kit ap’(책)으로 대치시킨 “lablah kitap”를 “노걸대(Lao Kida)”
로 해석하자는 의견이다. 즉 다시 말하면 “몽어 노걸대”는 ‘몽어 참고서’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필요
조건을 푼 셈인데 충분 조건을 몇 나라 말에서 찾아 보기로 한다.
만주어에서 몽골어 “lab”와 발음상 대응된다고 볼 수 있는 낱말에 “labdu”가 있다.
그 뜻은 ‘풍부한, 다량의, 다수의, 광활한’의 뜻 외에 ‘심오한 박학’(глубокая учёность)의
뜻이 있다. 즉 ‘학문이 넓다’는 뜻이므로 “labdu bitxэ”를 학습서로 뜻풀이할 수 있다고 보며, “labdu bitxэ”
와 “labdu kitap”는 바로 ‘노걸대’라는 뜻이다. 결국 만주어에서 “몽어 노걸대”는 ‘몽어 학습서’라는 뜻이다.
티베트어에서 ‘학습하다’의 뜻을 가진 낱말에 동사 “lobpa”가 있다. 동사 완료형은 “lab”,
명령형은 “lob”, 미래형은 “lab”로 어기 변화를 하는데 “lob”와 “deb”와의 합성어 “lob deb”는
바로 교과서를 뜻하는 낱말이다. 몽골어 “lablah bitSig”와 마찬가지로 현행 티베트어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이다.
“노걸대”를 “lob deb”의 “deb”(책)를 “kitap”(책)으로 대치시킨 “lob kitap”로 읽을 수 있다.
티베트어에서 “몽어 노걸대”는 ‘몽어 교과서’라는 뜻이다. 위구르어에서 ‘말’, ‘언어’를
나타내는 낱말에 “lebiɜ”와 “lap”가 있다. 전자는 일반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쓸데 없는 말, 과장된 말, 거짓말, 바보스러운 말, 오만한 말, 큰소리’ 등으로 제한시켜 풀이하고
있어 대표성이 없다고 본다. 때문에 전자인 “le biɜ”와 “kitap”와의 복합어 “lebiɜ kitap”를
‘어학서’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위구르어에서 “몽어 노걸대”는 ‘몽어 어학서’라는 뜻이다.
터키어에서 “말”을 나타내는 낱말에 “laf”가 있다. “노걸대”는 “laf”와 “kitap”와의 합성어 “laf kitap”
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어학서’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laf”와 ‘말하다, 거짓말하다, 허풍 떨다’를 나타내는
동사 “at mak”와 복합되면 “대화하다”(konuşmak)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져 “laf kitap”는
‘회화서’로 해석이 가능하다. 터키어에서 “몽어 노걸대”는 ‘몽어 어학서’ 또는 ‘몽어 회화서’라는 뜻이다.
카자흐어에서 ‘말’, ‘언어’를 나타내는 말에 위구르어에서와 마찬가지로 “lebiɜ”가 있고 이의 동사형
“lebiɜdesu”는 ‘대화하다’로 풀이되고 있다. “lebiɜ kitap”는 ‘어학서’ 또는 ‘회화서’로
해석할 수 있어 카자흐어에서 “몽어 노걸대”는 ‘몽어 어학서’ 또는 ‘몽어 회화서’라는 뜻이다.
앞에서 열거한 여섯 나라 말은 알타이어족 중의 터키어군에 속하는 것이 셋이고, 몽골・퉁구스어군에 속하는 것이
둘이다. 여기에 열거하지 아니한 터키어군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어, 투루크멘어, 키르키즈어와 우즈베크어를 대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조사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오리라고 믿는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한자음을 차용할 때
‘老’, ‘乞’, ‘大’ 글자를 선택한 이유를 찾아 본다. 한어 ‘lǎo’의 발음을 갖는 문자에는
“老”, “佬”, “姥”, “潦” 등이 있고, ‘qǐ’의 발음을 갖는 문자에는
“乞”, “企”, “啓”, “杞”, “起”, “綺” 등이 있으며, ‘dà’ 발음을 갖는 문자에는 “大”, “汏”
등이 있다. 한어 “老”는 다른 뜻 외에 ‘매우, 몹시, 대단히’라는 뜻도 있고, 한어 “乞”도 다른 뜻 외에
‘간절히 바란다’는 뜻도 있으며, 한어 “大”도 역시 다른 뜻 이외에 ‘몹시, 완전히, 대단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억측일는지는 모르나 위의 풀이를 바탕으로 “노걸대”를 ‘매우 간절히 바란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어 “老大”는 다른 뜻 외에 ‘대단히, 몹시, 매우’를 뜻하는 부사로서 현재 쓰고 있어 위의 추정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본다.
“몽어 노걸대”를 축자 해석한 ‘몽골어를 매우 간절히 바란다’라는 표현과 내용은 그 대상인 외국어 학습서와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여러 글자 가운데서 유독 “老”, “乞”, “大” 글자를 선택한 오묘한 뜻이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몽어 노걸대” 책 이름을 지을 그 시대에 노걸대 낱말의 사용 빈도와 그 성가는 한어, 몽어, 만주어, 일어 교과서에까지
적용할 정도였으므로 근래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hand book’이나 ‘note book’의 성가보다 훨씬 더 높았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