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벌써 5년이 돼 간다. 살면 살수록 어쩌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그렇게도 똑 맞아떨어질까 두렵기까지 하다.
학교에 가려고 타는 버스는 시간표를 어기는 일이 없었다. 지하철 표는 ‘자율 구입’이다. 간혹 표를 검사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독일인은 양심껏 표를 산다. 병원과 미용실도 ‘예약’은 필수다.
이런 독일 사람들의 눈에 한국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85만4007명이다. 이 중 독일인은 1315명이다.(2008년 <등록외국인 현황>)
2009년 10월 18일, 서울 한남동 서울독일학교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학생과 학부모가 쓰던 물건을 사고파는 자리였다.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이들의 모습은 기자의 독일 체류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장면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모인 그들의 대화주제는 ‘한국’이었다. 한국 음식 얘기가 나오고 한국 김치를 좋아하는 독일 친구들이 늘었다는 말도 나왔다. “날씨가 좋다”, “한국인들이 친절하다”는 장점도 화제에 올랐다. 얘기는 이내 한국 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로 옮아갔다.
탄야 크넥티스(40) 씨는 독일 에를랑겐 출신이다. 회사원인 남편이 한국으로 발령받아 자녀와 함께 온 지 1년6개월이 됐다. 크넥티스 씨에게 혼잡한 한국 교통 체계는 한국 생활 적응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횡단보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 인도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는 그에게 공포 자체다.
독일 남서부 도시 카를스루에에서 독문학 공부를 하며 17년간 살았던 한국인 최 엘리스(43) 씨는 공부를 마치고 3년 전 귀국했다. 그는 “한국인과 독일인은 기질 자체가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자기중심적인 문화인 반면 한국은 정을 주고받는 문화입니다. 독일에서의 삶이 조용하고 단조롭다면 한국의 삶은 템포가 빠르고 활기차죠. 여기 돌아와서 독일과는 다른 질서문제로 불편하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물론 독일보다 녹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고,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어요.”
왠지 바쁘고 배려심 부족, 영어 콤플렉스
레기네 최 전 서강대 교수. 1984년부터 서울에 거주했다. 서울은 ‘흥미로운 도시’라며 종종 ‘우리 서울’이라 부른다. |
레기네 최(73) 전(前) 서강대 독문과 교수는 독일 서부 부퍼탈 출신으로 독일 쾰른, 튀빙겐, 본과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독문학과 로마문학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서울 토박이였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있었다. 예스러운 저택의 돌계단과 서재의 고서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최 교수가 한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분주함’이었다. 그가 본 한국인은 횡단보도(橫斷步道)를 뛰면서 건넌다. 말도 빠르다. 성급하게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인천공항에 방금 내린 외국인에게 “한국에 와 보니 어떠세요”, “한국이 마음에 드세요”를 쏟아낸다. 인천공항이 잘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것인지 뭔지 어리둥절할 뿐이란다. “시장에서 계산을 하려고 서 있으면 갑자기 뒤에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서 점주에게 이것저것 요구합니다. 그 사람은 제가 기다리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요. 앞에 서 있는 저는 그 순간 마치 한 줌의 공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 이것도 독일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최 교수에게는 한국인이 사는 모습도 색다르다. 한국인은 여럿이 어울려 활기차게 다니며 서로 가깝게 지낸다. 그래선지 독일처럼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적다. 그는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긴다. 한국인들은 이걸 보고 ‘혼자 있어 안됐다’, ‘외로워 보인다’며 측은해한다.
최 교수는 최근 안동의 도산서원을 종종 찾는다. 그는 “겨울에는 처마가 낮은 한옥의 온돌방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며 “텐트에서 자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2009년 10월 18일 서울독일학교에서 열린 벼룩시장 전경.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한 벼룩시장에는 학생들이 쓰던 장난감, 책, 옷 등이 나왔다. |
―진정한 ‘세계 속의 한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리의 간판이 모두 영문으로 되어 있고 겉보기에 서양과 큰 차이가 없다면 관광객들은 이곳이 과연 동아시아 국가인지 의문을 가질 거예요. 저는 한글과 한국 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것이 한국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일종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어요. 무슨 행사를 주최하면 외국인이 한두 명만 등장해도 ‘국제’ ‘전 세계’ 등을 붙이잖아요.”
―한국 사회의 변화,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까.
“연장을 사면 겉보기는 독일제나 한국제나 비슷해요. 그런데 쓰다 보면 한국 제품은 쉽게 망가집니다. 특히 전구의 주둥이가 전등에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에선 그런 적이 없거든요. 독일이 100년에 걸쳐 쌓아온 기술을 단기간에 배워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기에 한국은 더욱 노력해야겠죠. 한국인은 경쟁할 때 1등만을 보고 달려가요. 좋은 자세이긴 하지만, 2등은 제쳐놓고 1등만을 최고로 쳐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 경험을 했던 모양이죠.
“독일 괴팅겐대 독일어 교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러 학생 중 특히 한국 학생들은 어학시험을 통과하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요.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독일어를 심도 깊게 배우려 하지 않고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는 식인 거죠. 예전에 있어 왔던 과거시험제도가 이런 단점을 만든 것 같습니다. 독일 교육은 기본 지식을 쌓고, 인성을 기르며 관심 분야를 찾아가는 것이 주목적이에요.”
“20년 전 통독 직전과 現 한국 상황 비슷”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울 후암동 중앙루터교회에서 만난 말테 리노 목사는 정확한 억양의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경기도 루터대학에서 실천신학과 예배학을 강의하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와 생활한 지 17년째다. 그의 눈에 한국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국가, 기독교가 가장 강한 동아시아 국가’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전통적인 한국의 멋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2010년 한국방문의 해에 대처하는 자세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우리’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은 ‘우리’사상, ‘안팎’사상입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학생 세 명이 타고 있는데 한 사람은 앉아 있고 두 사람은 서 있습니다. 이 두 사람 곁에 노인이 서 있다면 자리가 날 경우 앉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경우에는 자리가 나면 노인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친구를 앉히더군요. 그 학생의 입장에서 친구들은 우리 ‘안’에 있는 반면 노인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죠. 이런 경우 한국의 ‘유교’사상은 ‘안팎’사상보다는 약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독일 사람들은 기독교적 양심 때문에 이렇게까지는 못합니다. 물론 독일도 이기주의 경향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노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독일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빈자리를 찾고, 모든 것을 아이 중심으로 생각해요. 한국도 한 자녀 가정이 늘면서 아이들 위주로 교육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른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들 위주로 생활하는 것 같아요.”
말을 하다 보니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진전됐다. 그에게 동서독 통일,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한반도에서도 가능할지 물었다. 리노 목사는 “독일 사람들은 통독에 대해 막연히 기대만 했지 실제로 이뤄지리라 상상도 못했다”며 “그런데 한국은 통독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라 했다.
“혁명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혁명의 특징은 천천히 진행되다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뀌는 것이죠. 북한은 독일의 통일과정을 정밀하게 연구했습니다. 독일처럼 통일되는 것을 피하려고 꾸준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이로 인해 한국의 통일과정은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다른 독일인들도 한반도 통일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서독 출신인 클라우스 돌레(60) 씨는 “아직도 독일 세금에 ‘동독발전기금’이 포함돼있다”며 “한반도 통일은 급히 서두르는 것보다는 천천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하엘 파울루스 연세대 교수. |
미하엘 파울루스(48)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한국도 독일과 같은 상황이 갑자기 닥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와 변화에 따른 대처를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독일에 비해 분단된 시간이 길고 독일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죠. 하지만 한국이 독일의 경우를 보며 통일에 대해 배웠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통일 후의 미래를 걱정하고 경제위기를 걱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거라 생각합니다.”
파울루스 교수는 독일 빌레펠트대와 베를린 자유대, 뉴욕대에서 학업을 마쳤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홍콩에서 DAAD(독일학술교류처) 홍콩지점장을 역임했고 뱁티스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현재 연세대 강의와 함께 DAAD 한국 서울지점장으로 있다. 한국에선 2년 반 정도 살았다.
―살아 보니 어떠세요.
“한국 사람들은 낯을 가리고 토론하기를 꺼리는 편이지만, 친해지면 진심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급하게 일처리를 하려는 경향도 있고요. 이틀 전에 동료 한 명이 ‘오늘 시간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물으며 10분 안에 대답을 해 줘야 한다’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계획에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서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한국과 독일 교육시스템상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전반적으로 한국의 대학교육과 고등교육은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보다 두드러진 서열식 대학시스템이겠죠. 독일은 유럽연합의 볼로냐 협약으로 학·석사 학위과정이 학사와 석사로 나눠지면서 새로운 시스템 적응에 마찰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변화 대처에 빠른 한국이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학생, 학문에 대한 열정 없어”
슈미트 아리안네 한국외대 교수. |
독일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은 또 있다. 바로 한국 학생들의 전공관이다. 슈미트 아리안네(28)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 학생들과 독일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수의 한국 학생은 수능 점수에 맞춰서 전공보다는 학교 위주로 선택합니다. 독일에서는 이와 반대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우선으로 학교를 선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동기부여가 큽니다. 대학교는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해야 하는데 한국 학생들을 보면 열정이나 동기부여가 결핍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009년 3월부터 한국외대 독일어과 강의를 시작한 그는 현재 어학강의와 테마강의를 맡고 있다. 테마강의는 매 학기 독일 문화, 정치 등에서 한 가지 테마를 뽑아 진행한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인 슈미트 교수가 본 독일에서의 한국 인지도는 어느 정도일까.
유럽에서 아시아를 말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리는 사람이 다수다. 1988년 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개최했지만 ‘개최국’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분단국 이미지는 뚜렷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삼성, LG 같은 세계적 기업의 성공적인 해외 마케팅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계 인사 등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의 폭이 아주 넓어져 이제 유럽의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에도 한국문화가 활발히 전파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그는 전했다.
실제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행사를 성공리에 치렀고, 2004년 베를린 영화제에선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7년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면서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한국영화를 알렸다.
한국인의 ‘문화적 파워’가 올림픽·월드컵 개최와 같은 일회성 행사보다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의 힘에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줄 콘텐츠까지 보탠다면 대한민국의 문화경쟁력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 남해 독일마을에 가 보니
남해 독일마을을 방문한 독일인 베커 씨 가족. 왼쪽부터 베커 씨, 최은미씨, 베커 씨 부모. |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가면 독일마을이란 곳이 있다. 1960년대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갔던 교포들의 희망에 따라 2000년부터 추진됐다. 현재 독일마을 주민은 대부분 재독교포 출신들이다. 하지만 이곳에 장기 거주자로 등록한 독일인도 3명이 있다. 독일마을은 이국적 분위기 때문에 지금은 거주지로서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인기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인 엥엘프리드 빌헬름(80) 씨는 부인 우춘자(禹春子·73)씨와 6년 전 남해로 왔다. 부부는 남해에 터를 잡은 이후 독일에는 두 번밖에 방문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곳 생활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
파독 간호사 출신 송애영씨와 남편 클라우스 돌레 씨 |
1972년 11월 1일 KLM 비행기에 몸을 싣고 쾰른으로 떠났던 송애영(宋愛英· 60)씨는 독일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37년 동안 근무하다 2009년 퇴직한 뒤 남편 클라우스 돌레(60) 씨와 함께 독일마을로 왔다. 돌레 씨는 전북 전주에 사는 처가댁을 오가면서 한국 생활에 푹 빠져 있다. 그는 “남해에 정착하는 것은 미지수지만, 이곳은 내 비상구를 열어 두고 원할 때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독일에서 30여 년간 광부로 일하다 귀국한 구장서(具長書·64)씨는 독일마을에서 민박집 ‘노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스트라우스 김 루드빅(83) 씨는 아직 병원과 편의시설 등이 부족하고 관광지화되다 보니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으로선 불편한 점도 있다는 불만도 털어놓았다.
남해 군청 문화관광과 김정철(金正澈·49) 계장은 “독일마을 주민과 대화를 통해 개인 생활을 존중하고 보호받는 독일정서와 국내 공동체 생활을 위주로 하는 한국정서를 상호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에서 독일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독일 하우스맥주의 명가 <옥토버훼스트>
옥토버훼스트는 뮌헨공대에서 맥주양조학위를 받은 브루 마스터 방호권씨가 운영하는 독일 정통 맥주전문점이다. 2002년 7월, 강남점을 필두로 종로점, 신촌점, 마포점을 열었다. 브루 마스터가 직접 만든 맥주와 남부 독일식 돼지 족발요리인 학센 메뉴가 자랑인 이곳은 일시적인 유행을 떠나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로점 이원식(李元植·43) 대표는 “독일에서의 맥주는 한국처럼 ‘부어라 마셔라’보다는 조금씩 마시면서 인간관계를 좋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는 “맥주가 가진 고유의 맛과 깊은 향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독일맥주와 어울리는 음식문화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옥토버훼스트(www.oktoberfest.co.kr)
독일 건강 호밀빵 전문 〈Ach so!〉
“독일에서 즐겨 먹는 독일빵을 만들고 싶어서 제조하게 됐습니다.” 한남동에 있는 ‘Ach so!(악소)’ 베이커리의 사장 허상회씨의 말이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유학하던 중 제빵 기술을 배운 그는 “한국 사람들은 독일에서 접하기 어려운 ‘바움쿠헨’이나 ‘스톨렌’을 대표적인 독일빵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정작 독일에서 실제로 즐겨 먹는 빵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 아쉽다”고 했다. 주변에 독일대사관, 독일문화원, 서울 독일학교가 위치해 있어 독일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호밀빵, 흰빵, 잡곡빵이 주 메뉴이며, 빵에 기름기와 설탕기가 들어 있지 않아 건강식으로도 좋다. 버터나 치즈 혹은 햄 등을 곁들여 먹는 것이 특징이다.
Ach So! (악소·02-794-1142)
[인터뷰]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독일대사
부임 반년도 안돼 직접 김장 담가
한스 울리히 자이트(57) 주한독일대사는 한국에 오기 전 모스크바, 브뤼셀 소재 나토 상설대표부, 워싱턴에서 근무한 후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지냈다. 작년 하반기 3개월 동안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객원교수로서 수업을 하며 한국 사람들을 알게 됐다.
짧은 한국 생활에도 그는 평소 한식을 즐겨 먹고 아침엔 물김치를 먹는다. 아내와 함께 직접 김장을 담그고 일주일간 한옥 체험도 했다. 영화 ‘서편제’를 본 후 판소리를 좋아하게 됐고, 궁중음악, 민요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음악은 세계인에게 보여줄 것이 많다”며 “베를린에 윤이상(尹伊桑)씨 생가도 박물관으로 개조돼 현재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한국 자동차, 평면TV 좋은 평가
―부임 전에 한국에 대해 어떤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까.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온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과 독일이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도 알고 있습니다.”
―2008년 양국 교역량은 250억 달러를 넘었는데, 양국 간의 무역신장의 원인은 무엇이라 봅니까.
“2009년 10월 한·EU FTA가 체결됐고 2010년에 발효될 것이므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독일과 한국 모두 신속한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혁신상품, 미래 산업분야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국 모두 생명공학, 나노공학, IT, 환경공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환경공학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한국 상품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자동차, 섬유, 평면 TV, 비디오 부문이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독일 대선이 끝나면서 새로운 보수정당연합(기민·기사당과 자민당)이 결성됐습니다. 한독 외교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독·한 의원친선협회장인 하르트무트 코식 의원은 새로 구성된 독일연방정부 재무부의 차관이 되면서 2010년에 있을 G20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베스터벨레 신임 외무부장관 역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고, 한양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을 잘 아는 분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신(新) 정부 내에서 한독관계는 더 돈독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동독과 구서독 장벽은 한국의 지역주의와 같아”
―통독 20년이 지난 지금도 일반적인 근로시간, 임금의 계약조건 이외에도 구동독과 구서독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어 보이는데요.
“동독과 서독의 심리적 장벽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독일에서 보이는 현상은 한국의 ‘지역주의’와 같습니다. 동·서 간의 지역주의, 북독과 남독의 지역주의 등 각 지역별로 지역주의가 있지 않습니까.”
―통독 이후 독일의 수도기능이 구서독의 수도인 본에서 단계적으로 베를린으로 옮겨지면서 정부기관들을 모두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정부기관을 서울에서 세종시로 옮기려던 계획을 정부가 백지화하면서 논란이 있습니다.
“통일 후 상황은 독일만이 가졌던 특별하고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본과 베를린은 700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행기로 왕복해야 할 정도인데, 한국은 서울과 세종시가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어 단순 비교가 어렵습니다. 세종시 프로젝트는 서울에 집중돼 있는 역할들을 지방분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에 관한 개인적 의견은 따로 없습니다.”
―근래에 문화수출이 세계화된 국제경제에 큰 영향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 영화 또는 최근 많이 주목받는 한국 영화에 비해 독일 영화는 관심이 적은 편입니다.
“독일 영화 산업은 60년대 이후로 작가적인 성향을 띠며 대중을 위한 영화이기보다는 지적인 능력을 갖춘 소규모 마니아를 위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할리우드에서 독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2007년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독일문화 수출은 어떻습니까.
“크게 두 가지 분야인데 첫 번째는 음악입니다. 독일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연주회도 성황리에 개최되는 등 한국에는 독일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둘째는 현대미술입니다. 1970년대부터 독일 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신 독일회화를 주도하는 ‘라이프치히학파’는 생생하고 활기찬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 현대미술을 서울의 많은 갤러리에서 접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한독관계가 경제, 학술, 문화 분야에서 더 친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론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와인을 재배하는 지역 근처라서 독일의 화이트 와인, 리슬링(독일 알자스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 품종)의 퀄리티에 대한 홍보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