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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스페이스/영혼을 위한 건축
어떤 도시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폴 키드월지음
건축을 전공하고 평생 집을 지으며 살았고 지금도 현업에서 일을 한다. 사무실 전산실 아파트와 주상복합 판매시설을 주로 지었으나 고건축을 얹은 전시실과 화장장까지 시공을 했으니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은 셈이다. 그러나 정작 주택은 한 번도 시공한 적은 없다. 구조상의 안전성 단열과 결로 소음과 진동 차음에 신경을 쓰다 에코 등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상호 공존하는 계획을 하지는 못했다. 단순히 설계된 도면을 시공자 입장에서가장 경제적으로 적정 공기에 마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업성 검토를 하여 사업자 입장에서 인생후반부에 일을 거들다, 건축문화 창달을 위해 사업자와 시공자와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설사업 관리자로 일을 한다.
지난 주말 친구네 선친께서 물려준 집 뒤에 방을 새로 들이면서 개보수한 집 구경을 했다. 주변 자연을 창으로 끌어들이고 마을의 기존건물과 조화를 위해 층고를 맞추어 단층으로 설계하고 노모를 위해 뜰의 단차를 없애고 경사로로 진입하여 미끄럼 방지를 위해 전 벽돌을 세워 예쁘게 깔았다. 방과 방의 턱은 없애고, 통로를 내여 새로 지은 집과 연결을 잘해 평면은 물론 적절한 창을 내 , 자연을 시야에 잘 끌어들이는 등 주인부부의 높은 안목과 어울리게 조화 있게 설계를 하였다. 침실 거실 주방 손님방 어데서 봐도 동네의 야트막한 야산과 들의 자연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식탁에서 바라보는 후원의 한국식조경과 작은 장독대도 잘 어울리고, 서재에서 바라본 마당의 정자와 연못도 일품이다.
조상의 제사를 모실 공간도 있는데 이곳은 창을 예쁘게 내여 앞마을이 잘 보인다. 아직은 정리가 덜 됐으나 병풍을 치고 행사를 한 뒤 치우고 다시 방으로 쓰기에 적당한 구조다. 옛 농가의 2층 옥상계단도 개보수하여 다락방을 만들고 아이들 방으로 쓰거나 객을 위한 공간으로 쓰고, 아낀 여러 가지 골동품을 곳곳에 수장하여 정리한 안주인의 정성이 층층에 숨어 보인다. 계단 밑 공간은 화장실과 컴퓨터를 놓아 작은 공간을 꼼꼼하게 활용한 점이 좋았다. 외부의 마당은 아직 정리가 덜 됐으나 터가 넓은 관계로, 폭우 시 입수량이 커질 때를 대비해야겠다. 주택의 바닥 마감선이 마당의 마감선과 단차가 별로 없어서, 폭우빗물의 범람 등을 이겨낼 도랑을 잘 치고 배수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유공관 암거로 유도한 후, 멘 홀을 만들거나 트랜치로 배수하는 것이 요즘 기상이변 시 폭우에 대한 대비책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건축의 특성이 있다. 창문이 하나인 방보다 두 개인 방을 선호하고, 대형 도로보다는 편안한 시내 중심가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 풍광을 내다보는 것을 선호하고, 허공에 떠 있는 거리보다는 땅 위에 놓인 작은 거리를 좋아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고층 주거와 넓은 초원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개방적인 풍경을 선호하고 집도 폐쇄적인 느낌보다는 열린 풍경을 좋아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개방형 평면에서 삶을 좋아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좀 더 사적인 생활 방식을 선호한다.
현대를 사는 사람은 1/3은 자신의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으로 조사된다. 집에 위치한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창문 밖으로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가? 집이 고층인가? 도로 옆인가? 이웃 사람은 어떤가? 근처에 어떤 명소가 있는가? 있다면 차로 갈 수 있는 곳인가? 주변에 나무나 녹지가 있는가? 범죄가 날 으슥한 곳은 없는가? 이 곳을 터전으로 먹고 살만한 곳인가? 이런 점들이 우리가 살 집의 위치를 정함에 고려할 점이다.
우리가 집에서 밖을 훤히 내다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원시 시대의 환경에 뿌리를 둔다. 첫 째 우리에 다가오는 위협을 확인하고자하는 본능이다. 포식자나 적으로부터 전망을 최대한 넓힘이다. 두 번째는 전망을 확보하여 식량 물 같은 자원들을 찾고 날씨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일단 창이 너무 크면 포식자에 노출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경우 은신의 욕구는 희생된다. 집이 너무 밀폐돼도 주변을 감시할 욕구가 희생된다.
침실은 동굴처럼 밀폐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동생활 공간은 편안하고 밝고 은신공간과 전망공간처럼 빛과 어둠을 구분해야 한다. 집의 창과 우리의 시야는 집으로부터 받는 인상과 느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이나 병원 같은 공공의 입면은 차폐 개방 비율이 높아야한다. 그러나 성당 같은 예배공간은 그 비율이 낮다.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의 차폐비율은 중간이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넓게 트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집을 좋아한다. 좁은 복도를 지나 나타나는 큰 공간이 있는 집이다. 집 안에 방이 여러 개일 경우, 사람들은 방의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쪽을 선호한다. 모서리가 각 진방이 곡면 처리된 방보다 기능적이라 여긴다. 다소 고르지 않은 벽이 평평한 벽보다 더 큰 즐거움을 준다고 여긴다.
출구를 명확하게 배치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중요하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출구가 어딘지 잘 파악되지 않는 건물을 싫어한다. 너무 좁거나 혼잡한 출입구도 덜 좋아한다. 좁다란 입구는 사회적 교류의 장과는 거리가 멀다. 넓게 트인 로비나 현관을 선호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가장 완벽한 풍경은 자연이다. 빅토리아 시대엔 주인들이 거리가 마주 보이는 단이 진 응접실에서 손님을 맞이함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의 평면을 바꾸고 있다. 집은 자연을 향한 노출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배치되고 있다. 이제 실내용 식물을 반려동물과 가정생활에 주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방의 천정의 높이는 중요하다. 미국과 유렵에서 건물의 최소 천정고를 2.4m (8尺)로 정하고 있는데. 일반 가정집 천정고도 비슷하다. 조사에 의하면 천정고는 최고 3.04M(10尺)에 달했다가, 높이가 더 높아지면 감소한다. 이 연구는 표준적인 천정고보다 사람들은 60센티 높은 것을 선호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천정을 즐기려면 비용이 더 들고 냉, 난방비를 더 들여야 하지만 정신적 행복이란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집의 요소는 자연경관과 일치한다. 우리는 세련된 도시환경 속에서 살지만,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동굴 속에서 살고 있다. 도시의 인공 환경이 선조가 살았던 자연환경과 너무 동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변화는 우리 인간의 정신적 행복에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변화가 도시거주자에 나오는 불안과 우울증의 원인이다. 집에 정원과 녹지공간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보상으로 실내에서 식물이나 반려동물, 정원의 화단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 놓을 수 있다. 실내 벽지나 그림이라도 자연을 모방물로 들이면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집안에 정원이 없다면 주말 농장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손에 흙을 묻혀가며, 식물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도 커다란 치유효과가 있다. 도시에서 초목에 노출되는 정도가 작은 사람일수록 시골로 자주 휴가를 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사람의 성격이 집의 모습을 그린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이 덜 표현된 집보다 보여주기 위한 사물이 돋보인 집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인구가 많고 북적거리는 도심생활을 잘 적용하는 편인데, 이는 그들이 사생활이나 개인 시간보다 사회성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더 아파트에 적응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외향적인 사람은 교외지역보다 북적이는 도심지 생활을 선호하고, 폐쇄적인 평면보다는 개방적인 평면에 살고, 사생활보다는 사교성이 강조된 집을 더 좋아할 것이다.
좋은 집은 사는 이와 공명한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욕구에 맞게 지은 건물이 좋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한 집에 오래 살수록 집의 고유한 특성도 더 많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집은 사람 사는 가정집으로 변하고, 거주자들은 그 집에 애착을 느끼게 된다.
사는 사람과 공명에 실패한 집은, 현대 건축이 범한 큰 유죄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규정지으려 했다는 것이다. 장식이 없는 집은 거주자와 공명하는 데 실패했고, 건강한 자아감을 강화해주지도 못했다. 우리가 황량한 상자 안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보다 더 풍부하고 개성이 담긴 집에서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정체성을 가진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좋은 집에는, 동굴 같은 은신처와 자연을 향한 전망 사이의 균형, 밋밋한 미니멀리즘과 반대되는 복합성과 신비스러움, 복합성을 제한하는 질서와 완결성, 개인표현의 가능성, 선택한 사람들과 집을 공유할 수 있는 여지, 집의 물리적 측면과 거주자의 성격 사이의 조화 등이 갖추어져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장소는 주변의 맥락, 즉 지역 공동체로부터 분리 될 수 없다. 집은 어느 정도까지 이웃 환경의 심리에 연장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덜한 지역의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더 잘 도와준다. 이유는 그들이 도시 생활의 부담으로부터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람을 서로 도외시하게 하는 도시 생활의 잠재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지금부터라도 이웃 환경에 대해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좋은 거리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듯 시내 중심가는 지역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종은 동맥이다. 집 안팎에 장식을 다는 것을 꺼리는 현대적 취향의 질감과 복합성에 인간의 본능적 선호도를 무시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취향을 변화 가능한 문화적 선호도로 여기는 것으로 신념은 건축가들로 하여금 사람에게서 장식과 자연광, 인간적 규모에 대한 향유권을 빼앗아 간다. 이 것이 수많은 사람을 밋밋한 콘크리트 상자에 살도록 만들은 것이다. 때문에 역사성이 없는 지역에 시각적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걷기 좋은 거리의 힘은 걷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구역에 상대적으로 나무와 앞뜰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거리는 횡단보도가 잘 설치되어 있고,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으며 교통량도 적다. 상점과 카페, 술집, 음식점 등이 많이 있다. 반면 아파트와 고층 건물의 밀도가 높고 쓰레기가 많은 거리에는 걷고 싶은 욕구가 저하된다.
다양한 건물의 입면과 풍성한 녹지의 경관의 아름다움과 깨끗하고 인간 활동의 풍부함, 인간적 규모의 건물 크기 등이다.
교통량이 많은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버스와 대형 트럭, 자동차들이 차지한 거리를 포기해버린 모습을 보인다. 교통량이 적은 거리의 사람들은 산책과 쇼핑을 하고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같은 소음도 축제와 관련된 소리는 긍정적이다. 공교와 관련된 소음은 더 긍정적이다. 이 것은 참배자라는 사회적 정체성 때문이다.
걸음이 닿은 생활이란, 사는 곳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이웃 환경 영역 내에서의 삶을 말한다. 이 영역을 포함하는 원의 반경은 오리 십리로 정의될 수 있고, 10분 거리처럼 정의 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시설 등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배치할 수 있다. 집 주변에 있는 공간이나 집이 한 눈에 들어오는가? 이는 환경심리학자들이 방어 공간 이라는 개념이다.
이제 은퇴할 즈음이 되니 주택의 위치와 환경 등에 관심이 고조된다. 위치선택은 모두에 든 예처럼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선택한다. 예로 내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 H는 친자연환경과 화훼를 너무 좋아하여 수천 평의 농장을 무주에 장만하여 매일 꽃나무 키우기에 열중한다. 눈이 오는 날이면 이 친구가 생각나 걱정스런 전화를 한다. L는 홍천강가에 “팬션”을 지어 돈도 벌고 주민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동화하여 여유 작작 해한다. 또 다른H는 양재에 반도시반농촌 동내에 개량 한식으로 목조주택을 지어 그가 좋아하는 목공 방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전통 목공예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솜씨도 좋아 나의 방에 있는 책꽂이 서가가 그의 작품인데 아직 집들이 전이라 올 봄에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S는 서두에 쓴 방문기처럼 증개축으로 잘 지어서 산에 과수를 싶고 요즘은 전지작업에 전념중이다. G는 미원에 호도농장을 가꾸고 있는데 이제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할까 고려하는 눈치다. K는 아주 서울로 이사를 가,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전원생활은 특히 체력이 따라야 하는데 앞으로 한 5년 정도 최대 10년 정도는 과수농사나 화훼농원도 가능할 것이다. 그 후는 후계자를 누구에 줘야 할 것인가가 숙제이지만, 다 임자는 있는 법이니 오늘을 즐기면 될 것이다.
2018 03 08
헤드스페이스
풀키드웰 지음 /김성환 옮김
파우제
첫댓글 영혼을 위한 건축이
입맛에 맞는 것이 쉽사리 없겠지요.
자신이 환경에 따라
가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