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에서 둑길 따라
계절의 시계추가 구월로 접어들자 열대야는 사라져 밤 기온이 무척 서늘해졌다. 며칠 전부터 베란다는 물론 방문 창까지 닫고 잠든다. 낮에는 한때 30도를 넘겨도 아침저녁은 선선해 걷기에 무척 좋은 날씨다. 어제 아침나절은 수산대교를 걸어서 건너 명례로 가는 둑길과 둔치를 걸었다. 구월 초순 첫 주 수요일이다. 대산 유등 강가로 나가 들녘을 걸어 가술까지 걸으려고 길을 나섰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이른 시각에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소답동으로 나갔다. 월영동을 출발 마산 시내를 관통해 오는 46번 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가술까지는 1번과 2번 마을버스와 운행 노선이 겹쳤다가 대산 미곡처리장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우암리로 향했다. 첫차였고 이른 시간이라 가술부터 남은 승객은 혼자서 타고 북부리 동부마을을 거쳤다.
우암리 일대는 새로운 도로가 개설 중인 들녘이었다. 북면에서 동읍 본포를 거쳐 김해 한림으로 뚫는 국가 지원 60번 지방도 공사는 우암에서 미개통 구간으로 남겨졌다. 연전 노거수 팽나무가 배경이 된 ‘우영우 변호사’ 드라마는 도로개설 갈등이 소재였다는데 그 현장이기도 했다. 차창 밖 강변으로는 옅게 낀 안개가 걷히는 즈음으로 도중에 내려 지켜보려다가 유청마을까지 갔다.
유청은 종점 유등에서 이어진 들녘 마을이었다. 외딴 농가를 지날 때 나무 그늘 평상에는 인부들이 두었을 배낭과 옷가지가 보여 근처에 무슨 작업이 있을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가까운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베트남 여성들이 멜론을 수확하느라 바쁜 일손을 움직였다. 벼농사를 대신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특용작물 멜론은 수박을 대신한 추석 차례상에 오를 과일이 될 듯했다.
비닐하우스 바깥에는 베트남 여성들 손길에 수확된 멜론을 농장주가 살피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현지에서 기숙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오기도 하는데 농촌에서는 무척 소중한 인력이라고 했다. 농사일에 익숙해 잘하는데 품삯은 우리나라 사람과 같아 하루 1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 어느 날 아침 모산리 벼 논에서 잡초와 피를 뽑는 베트남 청년들을 본 바도 있다.
멜론 농장에서 들길을 걸으니 도로개설 현장 사무실이 나왔고 신설도로는 죽동천에서 교량이 가설되어 있었다. 가술에서 흘러온 죽동천은 유청 배수장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진영을 둘러 온 주천강은 유등에서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합류했다. 야트막한 동산을 돌아 주천강 강둑으로 나갔다. 조생종 벼가 수확된 일부 논에는 그 그루터기에 움이 터 모를 다시 심어 놓은 듯했다.
천변을 따라 자투리땅은 강 건너 한림 신전마을 주민들이 텃밭 규모를 넘을 밭농사를 잘 지었다. 고추 이랑에는 붉은 고추로 익혀 딸 풋고추가 달려 있었다. 콩과 팥을 심은 터는 잎줄기가 무성해 파릇한 콩깍지를 맺어 풋콩이 채워져 여물어 갈 듯했다. 높은 잎줄기로 자란 들깨도 나중 수확하면 결실이 좋을 듯했다. 참깨를 거둔 자리는 가을 무와 배추를 심어 파릇한 싹이 보였다.
신전으로 가는 다리목에서 동곡으로 향해 가니 길섶 단감 그루 곁에는 무궁화와 함께 해바라기가 자랐는데 풍성한 꽃엔 씨앗이 여물어갔다. 동곡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는 호미로 밭을 일구었는데 참깨를 수확한 터에 마늘을 심으려 이랑을 짓는다고 했다. 두엄과 비료를 넉넉하게 뿌려두었는데 농사 경험이 풍부한 듯했다. 마늘은 종자를 심기 전 밑거름을 많이 써야 수확량이 늘었다.
주천강 천변을 따라 용등마을에서 드넓게 펼쳐진 우암 들녘을 지났다. 아까 버스가 들판을 가로질러 지났던 들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천강 천변을 따라 촌락이 형성된 중포마을에서 25호 국도를 따라 가술로 갔다. 행정복지센터로 가 땀을 식힌 뒤 마을 도서관을 찾아 아침나절을 보냈다. 정신과 전문의와 작고한 미술사가가 펴낸 책을 펼쳐 읽다가 점심때가 되어 열람실을 나왔다. 24.09.04